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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편 강해

2017.05.10 07:41

말씀사랑 조회 수:255

[시편 8]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름

시편 8,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름

시편 8편을 읽어보면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은 우리 인간은 참 귀하게 지음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하셨지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실 정도로 귀한 대접을 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입니다. 이스라엘의 시 중에서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시인들에게 있어서 자연은 위대한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에 불과했습니다. 시편의 시 중에서 자연을 노래한 시는 대부분 아무리 웅장한 자연의 모습을 보더라도 그것이 숭배의 대상은 절대 아니고 그러한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시편 8편은 처음과 끝이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특별히 이 첫 문장은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주의 기도를 연상시킵니다. 주기도문에서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운명과 성격을 지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을 고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한 뒤에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꾼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사울이라는 이름에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고치고 이방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 고려시대에 몽고의 침입으로 나라가 황폐했던 시절에는 울던 어린아이가 징기스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울음을 뚝 그쳤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징기스칸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능력을 나타낼 수 있고, 만물을 굴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시편 시인이 1절에서 말하는 여호와의 이름이 온 땅에 아름답다고 고백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감정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이 크고 아름다운 이유에 대해서 3절 이하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 , , 사람들을 비롯하여 모든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천지 만물의 자연을 보고 그 아름다운 자연에 놀라지만 그 자연은 고작 하나님께서 창조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창조 신앙은 그야말로 고대 근동의 주변 민족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고대 근동이 주변 민족은 자연의 모든 현상이 하나의 숭배의 대상이었고, 인간이 감히 다가갈 수 없는 해와 달을 신으로 생각하고 숭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창조 신앙은 해와 달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릅니다. 창세기 116절에 그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큰 등불과 작은 등불로 표현한 것은 당시에 해와 달이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8편에서는 해와 달과 별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서 지으셨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 9절까지는 그러한 하나님께 대한 감격과 찬양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의 중심에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시편의 시인에게는 감격의 조건이었습니다.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보잘것 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을 귀하게 대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시편 시인의 신앙고백을 우리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웅장한 자연을 보면 한없이 보잘것 없는 것이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높게 평가해 주시는 것입니다. 약한 인간이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창조됨으로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약한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시고 귀하게 대접하신다는 것을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편 시인에게 있어서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감격이었습니다. 살아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젊어서 양을 치는 일을 했던 다윗에게 있어서 밤에 양들과 함께 들판에서 잠을 지새우면서 바라본 하늘의 별들과 달은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사람들이 아닌 다윗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어디를 가나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시편 8편을 읽어보면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고, 그 자연 속에 비록 약한 인간으로 서 있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면 더할 나위없이 감격스러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 중에 사람이야말로 가장 귀하게 지음받은 존재라는 사실,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귀하게 지음받은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주신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날마다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이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영광과 존귀로 씌움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일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죄와 허물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이 영광과 존귀의 책임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씌워주신 영광과 존귀를 삶 속에서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광 대신에 수치를, 존귀 대신에 비천함을 보이는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어기는 사람입니다.

6절에서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로 씌움받은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게 하는 지배권을 주셨습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특권을 잘못 오해하여 만물을 함부로 하며 자연을 훼손시키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물을 우리의 발 아래 두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을 잘 가꾸고 돌보라는 청지기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시편 8편은 신약 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올리우심에 대한 설명 속에서 해석되었습니다. 시편 64절의 인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하면서, 히브리서 26~10절에서는 시편 64~6절을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시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편 65절의 천사보다 조금못하게 하시고라는 부분은 히브리서 27절에서 저를 잠간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잠간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다고 고백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세상의 만물이 그에게 복종하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편 6편의 시는 창조의 행위를 통해서 인간,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이름을 아름답다고 보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체가 시인에게는 감격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정신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고백이 된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크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빌립보서 29~11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높여지고 영화롭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6편에서 하나님이 이름이 높고 아름다운 이유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인간을 위해 창조하시고 인간들을 존귀하게 대접하심 때문입니다. 신약성경 빌립보서 29~11절과 히브리서 26~10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고 아름다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낮아져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약과 신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가 보잘 것 없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위대한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을 실천하시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희생시키면서 그 놀라우신 사랑을 보여주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그 사랑을 본받아서 이웃과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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