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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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노릇 제대로 하기
김경원 목사
얼마 전 모 출판사에서 〈큰 교회 큰 목사 이야기〉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국내 대형교회 중 몇 군데를 선정하고 그 교회 목사의 이야기를 수록한 책이다. 큰 교회는 있을 수 있다. 큰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기에 굳이 큰 교회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큰 교회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지금 전국교회 숫자 중 소위 말하는 큰 교회에 해당되는 교회는 0.5%도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큰 교회 목회자를 큰 목사로 지칭하고 우러러 본다는데 있다. 물론 큰 교회는 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남다른 노력과 목회 노하우가 있어서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때로는 윌리암 채드윅이 지적한 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의 수평이동(양 도둑질)이 주류가 되어 성장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형교회의 목사를 큰 목사라고 부르고 존경(?)한다고 한다면 그것에는 문제가 있다.
과연 큰 것이 좋은 것인가? 오늘의 많은 목회자 머리 속에는 교회성장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있다. 크다고 결코 아름다운 것은 아닌데(물론 작다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성장 위주의 목회는 문제가 있다.
사실 교단도 그러하다. 예장합동 총회를 대 교단이라고 한다. 또는 장자교단이라고 말하며 교계연합 사업에 대교단의 위세를 떨친다. 지금 상태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교단이 되기 위하여 다른 교단을 영입한다고 한다.
크다고 좋은 것인가? 오히려 교단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노회 역시 그러하다. 다들 큰 노회가 되려고 한다. 대 노회가 되어 총회 총대 수를 많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자꾸만 타 교단 교회를 영입하고 있다고 하는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얼마 전 동료 목사와 목회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 60대의 목사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G12, 알파, 성장의 벤치마킹과 같은 목회 프로그램이 유행한다며 변화하는 목회 환경과 도입되는 목회 프로그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 한다. 사실 그러하다. 지금 과학기술이나 사회변화의 속도는 엄청나다. 여기에 목회환경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목회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다. 30~40대 젊은 목회자들은 이에 쉽게 적응하겠지만, 50대 후반~60대 목회자는 그것이 쉽지 않다. 어떤 목회자는 고백하기를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목회에 뒤쳐지는 느낌이고 이것저것 따라 하자니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사실 목회 프로그램도 유행을 탄다. 60~70년대는 부흥회 은사 중심으로 가더니, 그 후 바이블 스터디, 제자훈련, 소그룹, 경배와 찬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영성운동, 총동원전도, 온더온, 어노인팅, 가정사역, 바나바사역, 셀, 알파, 가정교회, G12 등으로 이어져 왔다. 모두 특징 있는 좋은 목회 프로그램이다.
어느 교회는 그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질적, 양적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케이스를 도그마 하는데 있다. 어느 교회 어느 목사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케이스를 너도 나도 분별없이 마구 도입하여 그것이 절대적인 교리인양 채용하다가 자기 목회 현장에 맞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교회는 결코 적자생존의 정글이 아닌데도 자꾸만 그 쪽으로 가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이어지니 오늘의 교회는 본질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클렌 와그너는 「사람을 잃지 않고 성장하는 교회」에서 '오늘의 목사가 누구인가?'를 이야기했다. 보다 명확히 말하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목회자의 모델은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미국교회 사정이지만 한국교회 역시 똑같이 느껴진다. 즉 오늘의 교회는 신앙공동체가 아닌 기업체처럼 여기게 되고, 목사는 목회자가 아닌 최고 경영자가 되려고 애쓴다. 목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목자이지 CEO가 아니다. 그런데 대형교회로 지향하며, 리더십 이론을 부추겨 CEO형 목회자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 교회를 이루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의식으로 온갖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목사의 기본, 목회의 본질은 약화되어 가고 있다.
소명과 이 소명을 이루기 위한 기도와 말씀의 약화가 오늘 목회자의 위기이며 동시에 교회의 위기이다. 왜 목사가 되었는가? 어느 것이 목자장이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장이며 목회사역인가? 모든 목회자는 이 기본적인 질문에 늘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기독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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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원 목사
얼마 전 모 출판사에서 〈큰 교회 큰 목사 이야기〉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국내 대형교회 중 몇 군데를 선정하고 그 교회 목사의 이야기를 수록한 책이다. 큰 교회는 있을 수 있다. 큰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기에 굳이 큰 교회를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모든 교회가 큰 교회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 지금 전국교회 숫자 중 소위 말하는 큰 교회에 해당되는 교회는 0.5%도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큰 교회 목회자를 큰 목사로 지칭하고 우러러 본다는데 있다. 물론 큰 교회는 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남다른 노력과 목회 노하우가 있어서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때로는 윌리암 채드윅이 지적한 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의 수평이동(양 도둑질)이 주류가 되어 성장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대형교회의 목사를 큰 목사라고 부르고 존경(?)한다고 한다면 그것에는 문제가 있다.
과연 큰 것이 좋은 것인가? 오늘의 많은 목회자 머리 속에는 교회성장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있다. 크다고 결코 아름다운 것은 아닌데(물론 작다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성장 위주의 목회는 문제가 있다.
사실 교단도 그러하다. 예장합동 총회를 대 교단이라고 한다. 또는 장자교단이라고 말하며 교계연합 사업에 대교단의 위세를 떨친다. 지금 상태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교단이 되기 위하여 다른 교단을 영입한다고 한다.
크다고 좋은 것인가? 오히려 교단의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노회 역시 그러하다. 다들 큰 노회가 되려고 한다. 대 노회가 되어 총회 총대 수를 많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자꾸만 타 교단 교회를 영입하고 있다고 하는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얼마 전 동료 목사와 목회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 60대의 목사는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G12, 알파, 성장의 벤치마킹과 같은 목회 프로그램이 유행한다며 변화하는 목회 환경과 도입되는 목회 프로그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고 한다. 사실 그러하다. 지금 과학기술이나 사회변화의 속도는 엄청나다. 여기에 목회환경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목회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다. 30~40대 젊은 목회자들은 이에 쉽게 적응하겠지만, 50대 후반~60대 목회자는 그것이 쉽지 않다. 어떤 목회자는 고백하기를 모르고 가만히 있으면 목회에 뒤쳐지는 느낌이고 이것저것 따라 하자니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사실 목회 프로그램도 유행을 탄다. 60~70년대는 부흥회 은사 중심으로 가더니, 그 후 바이블 스터디, 제자훈련, 소그룹, 경배와 찬양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다시 영성운동, 총동원전도, 온더온, 어노인팅, 가정사역, 바나바사역, 셀, 알파, 가정교회, G12 등으로 이어져 왔다. 모두 특징 있는 좋은 목회 프로그램이다.
어느 교회는 그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질적, 양적 성장을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케이스를 도그마 하는데 있다. 어느 교회 어느 목사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케이스를 너도 나도 분별없이 마구 도입하여 그것이 절대적인 교리인양 채용하다가 자기 목회 현장에 맞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교회는 결코 적자생존의 정글이 아닌데도 자꾸만 그 쪽으로 가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이어지니 오늘의 교회는 본질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클렌 와그너는 「사람을 잃지 않고 성장하는 교회」에서 '오늘의 목사가 누구인가?'를 이야기했다. 보다 명확히 말하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목회자의 모델은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미국교회 사정이지만 한국교회 역시 똑같이 느껴진다. 즉 오늘의 교회는 신앙공동체가 아닌 기업체처럼 여기게 되고, 목사는 목회자가 아닌 최고 경영자가 되려고 애쓴다. 목사는 성경에서 말하는 목자이지 CEO가 아니다. 그런데 대형교회로 지향하며, 리더십 이론을 부추겨 CEO형 목회자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대 교회를 이루기 위해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의식으로 온갖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목사의 기본, 목회의 본질은 약화되어 가고 있다.
소명과 이 소명을 이루기 위한 기도와 말씀의 약화가 오늘 목회자의 위기이며 동시에 교회의 위기이다. 왜 목사가 되었는가? 어느 것이 목자장이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목장이며 목회사역인가? 모든 목회자는 이 기본적인 질문에 늘 대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기독신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