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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 세미나 포기한 이동원 목사
입력시각 : 201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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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기도는 타락한 영들의 세계로의 문을 여는 비성경적인 이교도들의 기도의식이다.
그동안 비성경적인 마귀적 실행인 관상기도를 국내에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관상기도 세미나를 진행해 온 이동원 목사가 관상기도 세미나를 접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목사는 최근 목회리더십연구소 홈페이지에 ‘관상기도에 대한 나의 입장’이란 칼럼을 게재했는데, 그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지난 2년간 왜 관상기도 세미나를 계속하지 않느냐는 질문과 인터넷이나 기독교 매체에 관상기도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면서 나의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적지 않게 받았다. 지난 2000년 안식년에 미국 워싱턴에서 ‘살렘 인스티튜트’에서 안식하는 목회자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그곳의 ‘성직자를 위한 영적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관상기도를 알게 되었다. 살렘 인스티튜트는 일종의 에큐메니칼 연구소로 주로 성공회 계통의 분들이 최고 지도자이지만 교단을 초월해서 가톨릭 사제들도 참여해 영성을 연구하고 영성 훈련을 제공하는 곳이었으며, 지금도 이 연구소는 한국 성공회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이 목사는 비성경적인 에큐메니즘을 수용했기에 관상기도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에큐메니컬 운동은 기독교 각 교파들 간의 교리적 차이를 무시하고 상호 다양성 존중과 일치를 강조하는 비성경적인 운동이다. 이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고통 받던 사람들을 카톨릭이 인종·국적·종교의 차별 없이 원조한 뒤 전후 평화 확립에 노력을 기울인 것을 계기로 교황 요한 23세가 제2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한 것으로, 달리 말하면 ‘교회일치주의 운동’이다. 교회가 아닌 이교도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도화선 삼아 전 세계 교회들을 자기 밑으로 모아들일 호기를 만든 것이었는데, 이 목사는 진리를 모르기에 여기에 걸려든 것이다. 에큐메니즘을 성경적인 주의로 여기고, 형상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모임인 카톨릭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기독교로 인정했기에 그들의 영성훈련을 거리낌 없이 수용해 버린 것이다.



“첫 번째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살렘이 다원주의적인 연구소라는 것을 알게 됐다. 복음주의자로 일생을 살아온 나로서 다소 불편했지만 프로그램의 일부였던 ‘관상’에 대한 강의에 관심이 끌렸다. 숨 쉴 여유를 갖고 천천히 생각하는 페이스로 기도하며, 일상의 삶을 살자는 강조는 전형적인 바쁜 한국 교회 목회자로 살아온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다. 한국 교회 영성 생활의 균형을 위해 꼭 도입이 필요한 부분으로 인식하면서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관상기도 세미나를 시작하게 됐다. 관상기도 세미나 중 살렘의 가르침은 10%도 되지 않았으며, 가톨릭이나 정통 신학권 밖에서 가르쳐지는 관상기도 실천 중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을 먼저 지적하고 주의와 함께 강의를 시작했으며, 관상기도와 동양 명상의 차이도 명확하게 규정해왔다.”

- 이 목사는 전형적인 혼합주의자요 타협주의자이다. 자칭 복음주의자인 그는 “살렘 연구소의 다원주의적 성향이 불편했지만 ‘관상’에 대한 강의에 관심이 끌렸다,” “관상기도 세미나 살렘의 가르침은 10%도 되지 않는다,” “관상기도 실천 중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을 먼저 지적했다,” “관상기도와 동양 명상의 차이도 명확하게 규정했다.”는 식의 말로 자신의 실체를 드러냈다. 하나님께서는 성별주의자이시다.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고후 6:14-15).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그 어떤 긍정적인 부분이라도 같이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리주의자이시고 극단주의자이시다. 옳으면 옳고 틀리면 틀린 것이다. 생긴 것만 멀쩡한 정신병자를 정신병원에서 빼낸다고 그가 정상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관상기도에서 수용할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구분하여 받아들인다고 그것이 성경적인 실행이 되는 것인가? 이 목사가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 것 중 성경적인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란 말인가? 

- 관상기도는 성경에 없는 기도이다. 그들이 관상기도를 가르친다고 내세우는 구절들을 보면 문맥과 전혀 관계없는 구절들이다. 말씀으로 관상기도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관상기도로 성경 구절을 해석하는 역해석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거짓 실행을 하는 것이다. 이 목사는 관상기도와 동양 명상의 차이를 명확히 규정했다고 했지만, 성경에 없다면 이교도들의 명상에서 나온 것이 관상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동양 명상이 기독교의 옷을 입고 들어온 것이 관상기도란 얘기다. 그것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늑대의 기도이다.



“사실 관상에 대한 관심은 이미 미국 복음주의 신학교를 포함해 여러 신학교 등에서 과목으로 채택할 정도이며 한국 교회도 관상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관상기도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전체적 접목이 아닌 선택적인 적용에 불과했고 이런 노력으로 복음주의 경건의 실천이 더 확장되기를 기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이단 시비로까지 비화되는 것을 보고 나의 기대가 순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이 목사는 이교도들의 관상기도에 오염된 미국 복음주의 신학교를 강조하면서 관상기도를 가르친 자신을 변호했다. 악을 변호하기 위해 악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 신학교들은 성경대로 믿고 실행하는 신학교들이 아니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기에 하나님의 입장에선 이미 폐교된 학교들이다. 이 목사의 기준은 성경인가, 복음주의 신학교인가? 성도의 믿음과 실행의 최종권위인 성경으로 증명이 되어야만 옳은 것으로 수용될 수 있다. 

- 이 목사는 자신이 그저 순수한 의도로 관상기도를 한국교회에 전파했다고 했다. 왜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나쁘다는 소리만 하느냐는 것이다. 궁색한 변명은 이제 그만두도록 하라. 자신이 붙든 것이 진리였다면 끝까지 지켰어야 옳다. 비록 이단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진리를 수호하는 것이 진리로 주님을 섬기는 자의 자세이다. 소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목사가 자신이 가르친 것에 대한 신념도 없이, 죽더라도 그것을 지키겠다는 믿음도 없이 남이 하는 것이 좋아 보여 가져다 실험해 보았더니 이단 시비만 일고 반발이 거세어 이제 그만 접겠다고 했다면, 그는 진리도 모르고 진리를 실행할 의지도 없는 허수아비이다. 그런 물 같은 믿음을 하나님께서 존중해 주시겠는가? 그가 진리를 알았다 해도 그 진리가 그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으며, 그를 통해서 어떤 선한 열매가 맺힐 수 있겠는가?



관상기도는 “타락한 영들의 세계로의 문을 여는 비성경적인 기도의식”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의지를 상실하게 하고, 영적인 마비증세를 겪게 하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한다는 거짓 속임수에 걸려 넘어져 이교도들의 명상에 빠지게 한다. 관상기도는 뉴에이지 명상훈련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로마카톨릭에 의해 친카톨릭 기독교 내로 유입된 것으로, 이것을 실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주파수를 맞추라’는 이교 경전들의 신비주의 의식을 실행하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그렇게 만나지 않는다. 성령이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셋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주파수를 맞출 필요가 없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분과 동행할 수 있게 되고, 또 성령께서 성경에 조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기에 주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주님은 우리가 주파수를 맞춰서 찾아야 할 만큼 멀리 계신 분이 아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은 성경에 자신을 계시하셔서 언제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스도인이 마귀를 따르는 이교도들의 종교적 실행을 흉내 낸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이 가증한 일을 가르치고 실행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오염시켜 놓고서 자기 마음을 몰라주기 때문에 관상기도 세미나를 접겠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 노릇이란 말인가!


2011년 07월 18일 
바이블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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