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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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받은 사명
디모데전서 2장 1~7절
필립 H. 입슨 목사(영국 런던신학교 학장)
오늘날 교회의 주요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선교적 사명입니다. 영광스러운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는 사명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복음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4절). 본문에 계속해서 반복된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1, 2, 4, 6절).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교회가 받은 사명에 대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요 사상을 반드시 강조해야 합니다.
1. 복음진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은 그 본질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1)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십니다.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만 아니시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모든 사람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족속과 나라와 방언의 백성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2) 오직 한 중보자만 계십니다.
이는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오직 한 길 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은 이 길로 가고 이슬람교도들은 저 길로 가고 불교인들은 또 다른 길로 갈 수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은 결코 많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유일한 중보자만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유일무이한 길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모든 백성과 방언과 나라들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참된 신이 없습니다. 세상의 구주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외에는 다른 중보자나 구세주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세주는 우리를 죄의 노예와 권세, 죄책 그리고 그 결과로부터 자유케 해 주시는 유일하신 구주이십니다. 만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이 위대한 메시지를 듣지 못함으로 구세주를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과 중보자를 알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소망은 없고 영원한 불행만 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진리임을 확실히 믿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사실이 여러분을 움직여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에서 전쟁과 기근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한다면 마음이 아플 것이고 아마 모르긴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남자와 여자가, 어린 소년과 소녀가 영원히 고통스런 지옥의 나락을 향하여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실이 우리에게 그들을 더욱 도우려는 마음을 주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이 없음으로 소망을 가지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집안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쉴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들고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위대한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였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목화사업을 하고 있던 니 용파(Ni Yongfa)가 테일러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와 관계 없는 중국개혁불교종단의 지도자로서 진리를 찾고자 애쓴 인물이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설교가 끝마치던 시점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난 수십년 동안 진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나는 진리를 찾고자 먼곳까지 여행도 했지만 여전히 진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유교나 불교나 도교에서도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나는 내가 들은 테일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참된 안식을 찾았습니다. 오늘로부터 나는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곳에 있던 다른 한 사람도 같이 회심했고 그와 니 용파는 함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니 용파는 영국에 복음이 알려진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테일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수백년도 훨씬 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니 용파는 “뭐라구요?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 이제야 우리에게 와서 복음을 전했단 말입니까? 내 아버지는 지난 20년 동안 진리를 추구하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왜 좀더 일찍 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옵니다. 우리는 저 흑암의 세계에 있는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복음에 무지한 영국에도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도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대영제국의 많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교외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복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메시지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2.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 1절에서 기도에 대한 4가지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간구(supplications)와 기도(prayers)와 도고(intercessions)와 그리고 감사(giving of thanks)입니다. 사실 바울은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기도의 여러 가지 방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중대하게 강조하는 것은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포괄적인 기도생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좁은 기도가 아닌 아주 폭넓은 기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구들이나 여러분의 민족만을 위해 기도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만일 복음 진리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복음진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2절).
바울이 본서를 기록할 때 그가 선교 여행시에 여러 도시들에 세웠던 교회의 자세한 통계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숫자와 여러 가지 자료의 분석에 의해 압도당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아는 것은 유익한 것입니다만은 통계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신 모든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요소는 다름 아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혜롭게 통치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사실상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바벨론 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했습니다(렘 29:7).
본문 2절의 말씀을 다른 구절과 관계없이 읽는다면 아마 여러분은 이 기도가 매우 이기적인 기도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구절이 우리가 우리 발을 높은 곳에 올려두고 쉬며 우리 인생을 즐기기 위해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도의 주요 목적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기독교 복음이 사회 구석 구석에 미치게 하기 위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고요하고 안정된 사회를 위해 지혜롭게 잘 통치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바울과 그 일행이 로마의 다른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일반적인 번영과 안정된 사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음진리를 전했던 것입니다. 소위 Fax Romana(로마 지배를 통한 평화시대)는 바울의 선교여행을 위해 존재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선교 여행은 아주 쉬운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지역적인 반대와 핍박과 고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편이 여의치 않았던 그 시대에 복음이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을 만큼 손쉽게 선교 여행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대영제국은 선교사들로 하여금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모든 가깝고 먼 나라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대영제국이나 팍스 로마나보다 더욱 중대한 것은 그 지난 과거의 세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전파와 진보를 위해 강렬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광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는 것은 매우 중대합니다. 우리 지역도 중대하며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전 세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더 큰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명한 웨일즈의 한 찬송작가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위대하고 능력 있는 복음이여, 세상을 통치하라!
복음의 승리와 정복은 쉼이 없네
영원한 통치여 계속되어
구세주의 홀(scepter)을 온 세상에 흔들라!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기 위한 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의 계속되는 확장을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기도시간에 예배시간에 모이고 흩어질 때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며 성도된 여러분의 개인적 삶의 중대한 부분을 차지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이 복음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세상의 모든 종류와 조건의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입술과 삶을 통해 선포되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개인은 하나님의 왕국의 확장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감당해야 합니다.
1)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경건하고 단정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2절). 이 단어들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요약해줍니다. 이것들은 비그리스도인들이 우리들을 통해 보아야 할 특성들입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께 진실한 생활양식이며 단순히 쇼를 위한 겉치례가 아닙니다. 이것은 가식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그 증거로서의 진정한 삶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명목적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생활양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고, 그리스도인처럼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당신은 당신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처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증인이 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접촉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을 선용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입술을 통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하여 대답할 말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일부를 따로 부르셔서 복음전파사역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게 하십니다. 본문 6절에 표현된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실제적 대속의 죽음을 가리키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예수는 이 대속의 죽음을 통해 온 세상의 구주로 계시되었습니다. 동시에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복음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계시하심을 나타냅니다. 디도서 1장 3절은 이를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 어떤 경우든지 본문 2장 7절은 교회가 받은 메시지를 반드시 설교해야 함을 계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따로 구별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직과 삶은 교회의 가장 중대한 사명이 복음을 온 세상 모든 족속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바울의 사도직은 반복될 수 없는 것이지만 설교와 가르침의 사역은 교회라는 구속기관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부르셔서 설교자와 교사로 파송하십니다. 지역교회에서 설교하고 교훈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목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에서 설교와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했던 디모데와 디도 그리고 실라와 같이 지역교회에서 세상의 다른 곳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을 받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속해 있는 서구 사회는 목회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정말 필사적으로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믿고 부르며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도 못한 예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습니까? 하물며 그들이 듣지도 못한 예수의 이름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누군가 설교하는 자가 없다면 그들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않고 어떻게 설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롬 10:14-15)? 그러므로 참된 복음을 설교하는 설교자가 목사가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영혼 구원을 위해 전 세계에 파송된 여러분의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심에 있어서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한 선포인 설교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세주를 알고 믿고 고백하는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더욱 구주를 깊이 알고 그 분께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위탁하고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때를 아껴서 일할 수 있을 때 힘써 일하십시오. 평화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증거하십시오. 그것이 교회가 받은 지상에서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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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장 1~7절
필립 H. 입슨 목사(영국 런던신학교 학장)
오늘날 교회의 주요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선교적 사명입니다. 영광스러운 메시지를 선포해야 하는 사명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복음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4절). 본문에 계속해서 반복된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말씀에 주목하십시오(1, 2, 4, 6절).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 교회가 받은 사명에 대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요 사상을 반드시 강조해야 합니다.
1. 복음진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복음은 그 본질에 있어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1) 오직 한 하나님만 계십니다.
그는 유대인의 하나님만 아니시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모든 사람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족속과 나라와 방언의 백성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2) 오직 한 중보자만 계십니다.
이는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향하는 길이 오직 한 길 뿐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은 이 길로 가고 이슬람교도들은 저 길로 가고 불교인들은 또 다른 길로 갈 수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천국으로 가는 길은 결코 많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유일한 중보자만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구원의 유일무이한 길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모든 백성과 방언과 나라들을 위한 메시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참된 신이 없습니다. 세상의 구주로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보냄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외에는 다른 중보자나 구세주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것을 분명히 하는 것은 대단히 중대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세주는 우리를 죄의 노예와 권세, 죄책 그리고 그 결과로부터 자유케 해 주시는 유일하신 구주이십니다. 만일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이 위대한 메시지를 듣지 못함으로 구세주를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이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과 중보자를 알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소망은 없고 영원한 불행만 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이 진리임을 확실히 믿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사실이 여러분을 움직여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에서 전쟁과 기근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목격한다면 마음이 아플 것이고 아마 모르긴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들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남자와 여자가, 어린 소년과 소녀가 영원히 고통스런 지옥의 나락을 향하여 열심히 걸어가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사실이 우리에게 그들을 더욱 도우려는 마음을 주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이 없음으로 소망을 가지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전히 집안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쉴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들고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은 사람은 다름 아닌 위대한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였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 목화사업을 하고 있던 니 용파(Ni Yongfa)가 테일러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와 관계 없는 중국개혁불교종단의 지도자로서 진리를 찾고자 애쓴 인물이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의 설교가 끝마치던 시점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난 수십년 동안 진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나는 진리를 찾고자 먼곳까지 여행도 했지만 여전히 진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유교나 불교나 도교에서도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나는 내가 들은 테일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참된 안식을 찾았습니다. 오늘로부터 나는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곳에 있던 다른 한 사람도 같이 회심했고 그와 니 용파는 함께 세례를 받아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후 니 용파는 영국에 복음이 알려진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테일러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테일러는 수백년도 훨씬 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니 용파는 “뭐라구요?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 이제야 우리에게 와서 복음을 전했단 말입니까? 내 아버지는 지난 20년 동안 진리를 추구하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가셨는데 왜 좀더 일찍 오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옵니다. 우리는 저 흑암의 세계에 있는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복음에 무지한 영국에도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아시아 여러 나라도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대영제국의 많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교외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복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메시지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2.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 1절에서 기도에 대한 4가지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간구(supplications)와 기도(prayers)와 도고(intercessions)와 그리고 감사(giving of thanks)입니다. 사실 바울은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기도의 여러 가지 방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 중대하게 강조하는 것은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포괄적인 기도생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좁은 기도가 아닌 아주 폭넓은 기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단지 여러분의 가족이나 친구들이나 여러분의 민족만을 위해 기도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만일 복음 진리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그 복음진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2절).
바울이 본서를 기록할 때 그가 선교 여행시에 여러 도시들에 세웠던 교회의 자세한 통계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숫자와 여러 가지 자료의 분석에 의해 압도당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아는 것은 유익한 것입니다만은 통계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신 모든 나라의 백성들을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요소는 다름 아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혜롭게 통치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사실상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에게 바벨론 제국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했습니다(렘 29:7).
본문 2절의 말씀을 다른 구절과 관계없이 읽는다면 아마 여러분은 이 기도가 매우 이기적인 기도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구절이 우리가 우리 발을 높은 곳에 올려두고 쉬며 우리 인생을 즐기기 위해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도의 주요 목적은 다름 아닌 사람들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기독교 복음이 사회 구석 구석에 미치게 하기 위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고요하고 안정된 사회를 위해 지혜롭게 잘 통치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바울과 그 일행이 로마의 다른 여러 도시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일반적인 번영과 안정된 사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음진리를 전했던 것입니다. 소위 Fax Romana(로마 지배를 통한 평화시대)는 바울의 선교여행을 위해 존재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선교 여행은 아주 쉬운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지역적인 반대와 핍박과 고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편이 여의치 않았던 그 시대에 복음이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을 만큼 손쉽게 선교 여행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19세기 대영제국은 선교사들로 하여금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모든 가깝고 먼 나라를 여행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대영제국이나 팍스 로마나보다 더욱 중대한 것은 그 지난 과거의 세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전파와 진보를 위해 강렬하고 열정적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광대한 비전을 가슴에 품는 것은 매우 중대합니다. 우리 지역도 중대하며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전 세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더 큰 사명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명한 웨일즈의 한 찬송작가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위대하고 능력 있는 복음이여, 세상을 통치하라!
복음의 승리와 정복은 쉼이 없네
영원한 통치여 계속되어
구세주의 홀(scepter)을 온 세상에 흔들라!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기 위한 기도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의 계속되는 확장을 위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기도시간에 예배시간에 모이고 흩어질 때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삶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며 성도된 여러분의 개인적 삶의 중대한 부분을 차지해야 합니다.
3. 우리는 이 복음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이 복음은 세상의 모든 종류와 조건의 사람들에게 여러분의 입술과 삶을 통해 선포되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개인은 하나님의 왕국의 확장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감당해야 합니다.
1) 우리의 삶을 통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경건하고 단정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2절). 이 단어들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요약해줍니다. 이것들은 비그리스도인들이 우리들을 통해 보아야 할 특성들입니다. 이것은 세상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나님께 진실한 생활양식이며 단순히 쇼를 위한 겉치례가 아닙니다. 이것은 가식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그 증거로서의 진정한 삶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 명목적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동일한 생활양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처럼 행동하고, 그리스도인처럼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당신은 당신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업처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증인이 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종류의 사람들과 접촉할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을 선용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입술을 통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하여 대답할 말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일부를 따로 부르셔서 복음전파사역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하게 하십니다. 본문 6절에 표현된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실제적 대속의 죽음을 가리키는데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예수는 이 대속의 죽음을 통해 온 세상의 구주로 계시되었습니다. 동시에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의 복음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계시하심을 나타냅니다. 디도서 1장 3절은 이를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딛 1:3). 어떤 경우든지 본문 2장 7절은 교회가 받은 메시지를 반드시 설교해야 함을 계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특별히 이방인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따로 구별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직과 삶은 교회의 가장 중대한 사명이 복음을 온 세상 모든 족속에서 설교하고 가르치는 것임을 잘 보여줍니다. 바울의 사도직은 반복될 수 없는 것이지만 설교와 가르침의 사역은 교회라는 구속기관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부르셔서 설교자와 교사로 파송하십니다. 지역교회에서 설교하고 교훈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목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에서 설교와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했던 디모데와 디도 그리고 실라와 같이 지역교회에서 세상의 다른 곳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을 받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제가 속해 있는 서구 사회는 목회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정말 필사적으로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믿고 부르며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듣지도 못한 예수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습니까? 하물며 그들이 듣지도 못한 예수의 이름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누군가 설교하는 자가 없다면 그들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보내심을 받지 않고 어떻게 설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롬 10:14-15)? 그러므로 참된 복음을 설교하는 설교자가 목사가 더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영혼 구원을 위해 전 세계에 파송된 여러분의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르심에 있어서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한 선포인 설교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도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세주를 알고 믿고 고백하는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더욱 구주를 깊이 알고 그 분께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위탁하고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내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때를 아껴서 일할 수 있을 때 힘써 일하십시오. 평화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증거하십시오. 그것이 교회가 받은 지상에서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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