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
당신의 신앙은 건강합니까?"(고후13:5,시19:7-11)
오늘 아침은 우리의 신앙의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자기 자신의 영적 건강 상태
를 '정상’으로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 자신의 영적 상태가 건강한지를 주관적인 평가가 아닌 객관
적인 평가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우리의 영적 건강 상태를 제대로 체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의 교회생활 및 신앙생활을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여러분 중에 새롭고 신선한 것이 없다고 해
서 감격과 감동도 없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 소원은 있는데 열정은 없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 교회에서 예배드
릴 때 눈물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은 영적 건강 상태에 적신호가 들어온 상태입니다. 만약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분
은 "영적 매너리즘"(틀에 박힌 태도)에 빠진 분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분은 감동도 없고 감격도 없고 그냥 덤덤하게 신앙생활을 합
니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의 매너리즘은 매우 심각한 상황입니
다. 그리고 교회의 매너리즘은 각 개인의 신앙과 영혼의 위기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면 신앙과 영혼을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 쉽지 않
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대체적으로 꿈과 목표를 상실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성
공이라는 목표가 있으면 힘이 드는 줄 모르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성공한 후에 목표가 없어져 버리면 바로 안주하게 됩니다. 그래
서 성공보다 성공을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사역하는 시대 상황이 이런 매너리즘의 상황입니다. 에스라
나 학개가 사역하던 시대처럼 성전 건축이라는 목표도 없고, 느헤미야가 사역하던 시대처럼 성벽 건축이라는 목표도 없습니다. 사람들
은 안주한 상태에서 신앙의 열심과 충성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말라기 시대의 사람들은 화석처럼 되어 가고 있는 형식주의적인 신앙
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지금 충성하는 마음과 열심이 사라지고 있는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환경에 많이 노출되어 있음을 알고 이런 때일수록 더욱 매너리즘을 깨
뜨려 보려고 몸부림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을 병들지 않은 건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
서 사도 바울이 고후 13:5에서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
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의 믿음의 건강성을 스스로 체크할 수 있습니까?
①"하나님의 말씀이 달게 느껴지는가"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몸이 아프면 음식 맛을 잃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병들면 말씀의 맛부터 잃어버리게 됩니다. 물론 말씀
을 전하는 사람이 말씀을 별미로 만드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실상 말씀을 받는 분의 열린 자세, 사모하는 자세가 더 중요합
니다.
②"교회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까? 교회 일을 많이 하지 못해도 교회 일을 즐겁
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우리 자신이 무슨 일을 한 것처럼 원망하고 짜증을 냅니다. 소중한 일을 앞두고 짜증
나기로 한다면 누가 짜증이 나겠습니까?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주님의 답답한 심정을 먼저 생각해 보세요. "아무개야. 너 데
리고 일하려니까 정말 답답하구나!" 그렇게 답답하셔도 일하는 기쁨과 일을 통한 보람을 느끼게 하기 위해 우리를 실업자로 만들지 않
고 일거리를 주시는데 감사하지 않습니까? 신앙의 맛과 봉사의 맛을 아는 사람에게 일거리 없는 것은 지옥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
이 높아져 일거리를 빼앗기면 다시 새로운 일거리를 얻게 될 때까지 끝없는 영혼의 방황이 시작됩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면 사실
상 우리가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이기에 교회 일을 하면서 잠시 쉴 수도 있고, 짜증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이 공로의식으로 인해 생기는 짜증과 불평이 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수고하는 땀을 공로의식으로 발전시키지 말고 우리의 수
고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수고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
래서 우리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쁜 봉사를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일하면서도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랍
니다.
③"긍정적인 자세와 밝은 모습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은혜가 넘치고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긍정적이고 마음이 밝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밝으면 사물의 밝은 면에 관심을 많이 둡니
다. 어떤 사람의 의견이나 아니면 사물이나 사람을 볼 때 반사적으로 어떤 분은 단점부터 부고, 어떤 분은 장점부터 봅니다. 똑같
은 사람의 똑같은 얼굴을 보더라도 어떤 분은 좋은 점부터 봅니다. "참 편안한 얼굴입니다. 지혜롭게 생겼군요. 귀가 복스럽게 생겼
네요." 그러나 부정적이고 상처 많은 사람들은 나쁜 점부터 봅니다. "눈이 사무라이처럼 생겼구나. 코가 어떻게 저렇게 눌렸지? 오
천 평이네." 왜 그런 차이가 생기게 됩니까? 마음이 다르고, 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옛날 속담에 "개 눈에는 무엇 밖에 보이
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많고, 꽃이 있고, 아름다운 그 무엇이 있어도 기본적으로 눈이 잘못되면 좋은 것
은 보이지 않고 나쁜 것만 보입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교회에 오면 좋은 것부터 봅니다. "참 친절하다. 밝구나." 사람을 볼 때도 나쁜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
저 보려고 합니다. 그처럼 긍정적이고 밝은 자세는 신앙의 건강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시입니다. 그리고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은 현재
의 모습보다는 가능성을 볼 줄 압니다. 일이 잘될 때 더욱 겸손하고, 일이 안될 때 가능성을 보는 자세! 그러한 자세를 가진 사람
이 은혜를 알고, 신앙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건강한 성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
을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는 것! 그것이 은혜 받은 증거요, 신앙이 건강한 증거입니다.
④"내게 전도하고 싶은 열의가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그때가 신앙
이 가장 경건할 때입니다. 우리는 예레미야가 예레미야 20장 9절에서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
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라
고 말씀하고 고백하고 있어야 합니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끼고 왠지 미안함을 가지는 모습! 그러한 마음이 있으면 그 사
람이 은혜를 아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가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영적 매널지즘을 극복하고 영적으로 건강해 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건강비결?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말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①규칙적인 운동을 하고 말씀
을 읽는 것이고 ② 모든 복수심을 버리는 것이고 ③ 치료자는 하나님이심을 믿을 것이고 ④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이고 ⑤ 내 몸은 하
나님의 성전임을 믿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첫 번째 것입니다.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이
는 규칙적인 운동은 육신의 건강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건강을 줍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
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계 1:3에서 하
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충만한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만 사람이 영적으로 퇴보된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
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어떤 예민한 안테나가 없는 사람은 지금 영적인 상태가 썩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
니다. 그리고 지금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대화가 막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본문
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줍니다.
본문 7절 상반 절에서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
씀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을 다시 살려 줍니다. '소생 한다'라는 것은 새로 생기를 불어 넣어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은 병든 영혼으로 하여금 소생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영혼에 생기를 줍니다. 그러기에 다웟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
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 용기도 살아나고, 믿음도 살아나며, 병든 육체도 고쳐 줍니다. 뿐만 아니
라 예수님께서 마 4:4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모두를 새롭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귀하고 아름답고 또 사랑하는 대
상이 많이 있지만 사실 가장 귀한 것은 영혼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미모와 조건도 귀하지만 더 귀한 것
은 그 영혼을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인격적인 사람일수록 육체보다도 그 마음을 중히 여깁니다. 신앙이 깊은 사람은 마음보다도 그 영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
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두루 다니며 찾기까지 애쓰는 선한 목자(牧者)되신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그 영혼을 구원하
기 위해 기도해주고, 사랑과 긍휼과 용서를 베풀고 또 그를 위해 희생하고 도와주면서 애쓰는 분들을 볼 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
니다. 누가복음 15:7에 보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
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요한3서 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육체보다도 영혼이 더 귀
하다는 것을 안다면 영혼이 잘되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항상 주의 말씀을 붙잡고 의
지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는 것은 도덕 철학 윤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하는 것
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영혼을 소성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 새로운 변화
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본문 7절 하반 절에서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육성 테이프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에 지혜가 임합니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잘 처리합니다. 지혜에는 육성에 의한 지혜가 있고, 하나
님의 영성에 의한 지혜가 있습니다. 육성에 의한 지혜란 '인생의 종합적인 사리 판단력(判斷力)'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지혜도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악한지 선한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사업을 경영하는데 인사가 만사라
는 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 잘못 선택해서 길러놓고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람도 입고, 어떤 사람은 성공시켜줌으로 평생 인연
이 되어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존경하는 이런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삶의 지혜를 주시기
를 바랍니다.
또 우리는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되
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알아야 되며, 또 영분별의 은사도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이 신령한 지혜는 어떤 강의
를 받거나 어떤 수양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성경을 읽
는 가운데 참 놀라운 깨달음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놀라운 지혜가 있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
편 37:31에서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어떤 학문을 통달했다고 해서 그 머리 속에 자기 삶의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
리는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어떤 곳이 안전한 곳인지 어떤 곳이 위험한 곳인지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갑자기 한 발자국 사이에 삶
과 죽음이 좌우되는 사실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
분 마음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본문 8절 상반 절에서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신바람 나게 합니다. 말씀이 나로 하여금 소생의 역사를 이루
게 합니다. 사람이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기쁘고 즐겁게 사는 이것은 천만금을 주고
도 살 수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욥기 8:21에 보면 "웃음으로 네 입에, 즐거운 소리로 네 입술에 채우시리
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웃는 모습은 마치 꽃이 만개되어 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마음에 참 기쁨이 있습니
다. 성경을 읽다가 마음에 넘치는 기쁨이 있을 때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해보세요. 주님이 여러분 마음속에 넘치는 기쁨과 소망과 하나
님의 놀라운 평화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평화롭게 살고, 하루를 살아도 만족할 줄 알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그래서 잠
언 17:1에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했습
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먹으면서 투정하는 것보다도 소찬이라도 기쁘게 감사함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입니
까?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아는 이런 참 행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9:2에 보면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
다. 이는 주님을 인한 기쁨을 말한 것입니다. 또 시편 16:11에 보면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
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스펄젼 목사는 “은사 중에 최대
의 은사는 웃는 은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증거는 감사와 기쁨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눈을 뜨게 합니다.
본문 8절 하반 절에서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은 신령한 눈을 뜨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미래를 봅니다. 영원한 미래세계
를 바라봅니다. 답답한 세상에서 살지만 소망의 세계를 성경을 통해서 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는 육신의 눈도 있고, 지혜의 눈도 있고, 마음의 눈도 있고, 영의 눈도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음 눈'을 밝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땅에 살고 있지만 신령한 주님의 세계를 항상 마음속에 그려보고 간직하며 저 천국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삶
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에베소서 1:18, 19에 보면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
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
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마음의 눈이 밝을 때 부르심의 소망을 바라보게 되고, 기업의 영광의 풍성
을 바라보게 되며,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천국의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눈을 밝게 한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선악을 분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선악(善惡)간에 모든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시
편 119:9에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했
습니다.
5.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자에게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영적 매널리즘에 빠진 심령을 새롭게 합니다. 영적 건강을 회복케 합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음으로 말미암아 승리의 즐거움과 기쁨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 렘 15:20에서 “내가 너로 이 백성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
은 내가 저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그의 말씀을 먹는 자에게 놋 성벽이 되
게 하겠다”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그의 방패가 되어주신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
는 렘 15:16에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
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을 먹었습니다. 그리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절망에서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예레미야 선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 전에는 절망의 상태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소망의 상태로 변화하였다
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분명히 눈물의 선지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기쁨의 선지자, 소망의 선지
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 같은 사람도 지쳐 쓰러져 로뎀나무 아래서 죽고자 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먹이시고 그로 하여금 사십주야
를 걷게 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새로운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양
식을 받아먹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양식을 얻는 자는 다른 이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
는 그 누구도 이 어려운 세대를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57 -59절에서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
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써 내려운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 죽은 것과 같이 아니하며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성도들의 마음은 결국 뜨거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눅 24:32에
서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
지 아니하더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뜨거웠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상응하는 말로 하면 곧 마음에 은혜
를 받았다 혹은 감동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의 제자들이 어느 때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받았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그러하였다
고 성경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왕하 22:11에서 “왕의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 옷을 찟으니라”고 있
는 것처럼 유다 나라의 제16대 왕 요시야가 대제사장 힐기야를 시켜 성전을 수리케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수리하던 중 대제사
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율법책 하나를 발견하여 서기관 사반으로 하여금 요시야왕 앞에서 율법책을 읽게 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에 요시
야 왕이 율법책의 말씀을 듣을 때에 옷을 찢으면서 회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시야 왕이 찢었습니까? 그것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
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요시야왕의 마음에 깊은 감도과 찔림을 주었기 때문에 그는 견딜 수 없어 옷을 찢을 정도로 깊은 감동을 주
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감히 왕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은 일국의 왕의 마음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느 8:9에 보면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
이 나팔절에 예루살렘에 모여 절기를 기키던 중에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스라가 새벽부터 오정까지 율법의 말씀
을 낭독할 때 율법의 말씀을 듣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말씀을 듣을 때에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
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행 2:37에 보면 오순절 날에 베드로 설교를 듣고 들은 사람들이 베드로 설교를 듣고 “어찌할
꼬?”라고 하면서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베드로가 무슨 설교를 하였기에 그들이 마음의 찔림을 받았습
니까? 베드로는 오순절 날에 다른 어떤 말을 하지 아니하고, 요엘서와 시편에 있는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던 것입니
다. 그랬더니 듣는 자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생명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도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먹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게 합니다. 읽지 못하게 합니다. 듣지 못합
니다. 오히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게 합니다. 먹지 말아야 할 먹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말씀을 듣는 시간에는 졸게 만들고 하
나님의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마귀의 이러한 유혹에 성도들이 쉽게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해
야 합니다. 영적 매널리즘에 빠진 사람들이 계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적 건강을 회
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자만이 끝까지 충성하고 그 삶에 스릴
이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은 후 하나님의 대언할 때 해골이 군대가 되었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수가 흘
러나와 강이 되었으며 바다에 고기가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자에게만 가능한 은혜입니다. 말세에는 양식이 없
어서 기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풍성
한 역사를 체험합니다. 밤새도록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었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
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나미] 볼펜의 [손삼석 장로님]에 관한 얘기를 많이 들어 보셨지요? 그분은 해방 후 볼펜 공장
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사업의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① 주일성수 ② 십일조 생활 ③ 교회봉사 우선 그리고 그 다짐을 꼭 이행
하겠다는 각오로 모나미 볼펜에 153이라는 숫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모나미 볼펜을 보면 "153"이라는 숫자를 새겨
져 있습니다. 그 뜻은 여러분들도 잘 알다시피 요한복음 21장 11절에 나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
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큰 고기를 153마리나 잡았다는 말씀에서 인용한 숫자입니
다. 살아계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
적 건강을 온전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가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 안에서 우리를 기다린
다.”
(Word of God wa its for us in the Bible)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구
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경건한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영
혼을 다시 살게 해주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해주며,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신령한 눈을 뜨게 해주는 능력이 있습니
다.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통 '영의 양식'이라고 말합니다. 욥기 23:12에 보면 "내가 그의 입술
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도 욥과 같이 육의 양식보다도 영
의 양식을 더 귀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벧전 2:2-3에서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
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말씀하고 신령
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사모하는데 어떤 때는 싫증이 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은 절대로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본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
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고백하
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패된 세상이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혼란한 가치관과 삶의 유혹뿐입니다. 바
로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항상 틀고 들어야 할 것입니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를 품게 해야 할 것입니다. 구명보트에 몸을 던지듯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 던지야 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
로 어떤 때는 인간의 말대로 움직이는 것은 한 발은 반석에 한 발은 모래수부에 디디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신뢰해
야 할 것입니다. 뉴스에 굶주린 현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린 자로, 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이 우리 혈관 속에 흐르
게 하고, 말씀으로 우리의 맥박이 뛰게 하고,말씀이 우리의 심비에 새겨지게 하고, 말씀을 들이쉬고, 말씀을 내쉬는 저와 여러분
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말씀의 보고와 말씀의 은행이 됩시다. 여기에 행복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골 3:16)는 사도 바울의 권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
히 거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증거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말씀
을 듣지 못한 기갈 중에 있는 시대입니다.(암 8:11-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지금 영적 건강 상태가 좋지 아니한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 영적 매널리즘에 빠
진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며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