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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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5
선교대상으로서의 북한 사회
박완신 교수
북한선교와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북한사회에 대한 바른 진단과 예측이 있어야 하겠 다. “Seeing is believing” 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북한이라는 견해도 있다. 물 론 북한은 그동안 철저한 폐쇄 노선을 걸어 왔기 때문에 겉만 보고는 믿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체제임을 경험해 왔다. 그러 나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는 북한이 세계 속에 보다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 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공항에 나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함으로써 세계 속에 드러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 치 행태(行態:behavior)도 지금까지 서방 세계에 보여주었던 이미지와는 다른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우리도 북한선교 와 평화통일 전략의 효율화를 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통일 환경 변화에 따른 북한 사회의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북한 당국이 전략적 목표를 바꾸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통일 환경변화에 따라 사회 체제의 신축적인 전술상 의 변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은 그동안 철저한 조선식 사회주의 폐쇄 노선을 취해왔다. 그러 나 1995년 노동당 창당 50주년을 계기로 제한적 개방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모기장 이론이 그것 을 입증하고 있다. 이 모기장 이론은 선진국의 자본 기술 등은 시원한 바람에 비유하여 들어오게 하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사조 는 파리 모기에 비유하여 차단한다는 논리이다.
1999년에도 “모기장을 든든히 치자” 고 하여 다시 제한적 개방정책을 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나진 선봉의 제한적 개방이나 금강산 관광 등을 허용한 것에서 입증되고 있다.
필자는 1999년 2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금강산 관광객 대상으로 ‘평화 통 일’ 주제 강연차 북한의 금강산, 해금강, 삼일포, 온정리 마을 등을 다녀온 바 있는데 온정리 마을의 담장이나 관광도로 주변 철조 망에서도 모기장 이론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필자는 2001년 8월 평양과 북한의 여러 지방을 돌 아보면서 북한 사회가 총대, 사상, 과학기술을 3대 기둥으로한 강성대국 사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총대가 강하면 나라는 작아도 나라는 발전할 수 있다”는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강성대국, 총대철학에 기초하여 북한당국은 미사일개발, 핵문제를 가지고 그들의 생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북한의 핵문제가 한반도 안보에 위협요인이 되지 않도록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전쟁도 평화도 하나 님 손에 있음을 믿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며 평화적으로 북한핵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다 만 앞으로 북한이 99년부터 주장해 온 ‘강성 대국’ 논리를 어떻게 전개해 갈 것인가가 주목된다.
북한 당국은 2003년 1월 1일 신년 공동 사설에서 “강성대국 “논리를 강조하 고 있음을 볼 때 앞으로도 핵문제를 가지고 그들의 체제보장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이 강성대국 정착을 위해 북한당 국은 1998년 헌법 개정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보다 강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0년 에 들어와서는 강성대국 건설 본격화를 위한 “사상, 총대, 과학 기술” 등 3대 기둥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서 사상은 당=수령을 강조하면서 주체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체제 기강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총대는 모든 부문에서 최우선시 해야 할 국사 중의 제일 국사라고 하면서 인민군대는 강성대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양성해야 함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과학 기술 면에서는 새로운 과학 연구와 기술 혁신 안 수용 및 과학 기술 행정 등을 강화하면서 경제 건설 역량을 집중한다 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사회는 강성대국 건설에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강성대국 논리가 지속되 는 한 북한 체제는 그 발전이 둔화 될 것이며 경제난은 심각하게 되어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로 이어지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북한에서는 1995년 이 후부터 홍수 한해 등으로 농산물 수확량이 감소하여 지금까지 3백 여 만 명이 기아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북한의 식량소요량은 6백7십 여만 톤인데, 생산량 은 3백7십 여만 톤밖에 되지 않아 3백 여만 톤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북한동포돕 기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교회는 기아로 인해 굶어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돕는데 앞장서야 할 것 이다.
북한은 강성 대국 체제 유지로 경제난은 가중되어 주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게 되어 탈북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것이 현 실이다. 그래서 북한정권은 탈북자들이 증가할 것을 대비하여 철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탈북자가 계속 증가하자 북한의 김정일은 “간첩 하나 잡는 것 보다 탈북자 하나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시를 하달, 주민들의 이동 및 출근 여부 통제와 동향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② 조·중 국경지역을‘전쟁지대’로 선포하여 취약지역에‘지뢰매설’을 하였다.
③ 국경경비를 전담하는‘10군단’을 창설, 압록강 지역에 전면 배치하였다.
④ 국가보위부 요원과 현지 공관원으로‘탈북자 체포조’를 만들어 러시아, 중국 등지에 파견, 적극적인 탈북자 체포 활동을 벌이고 있다.
⑤ 탈북자가 러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체포될 경우,‘반역자’로 간주하여 철사로 코를 꿰거나 마취, 족쇄, 깁스를 하여 북한으로 끌고 간다.
⑥ 탈북어린이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 1998년 7월부터 어린이도 잡히면 발목이 잘리는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⑦ 북한당국은 끌고 간 탈북자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수용하고 심지어는 고문한 후 공개처형까지 하고 있다.
⑧ 1996년 5월말 한국으로 망명하려다 러시아에서 체포되어 북한당국에 넘겨졌던 탈북주민 1명을 북한당국이 국경지역 현장에서 즉결 처형해버린 사실이 러시아 연해주 당국에 의해 확인되었다.
⑨ 1998년 6월 중국 훈춘에 은신 중이던 탈북 일가족 4명이 체포되어 처형되기도 하였다.
향후 탈북자 대책 및 북한선교에 관한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국 내에서 건전한 통일선교문화 창출을 위 해 범교회적인 노력을 함께 펼쳐가야 하겠다. 특히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위해 정책이나 마음이 하나되지 못한 채 혼돈을 가져 와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둘째,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 교육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종 교 등 객관적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래서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장, 단기계획을 수립, 시행해 야 하겠다.
셋째, 영적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먼저 탈북자들의 마음의 안정을 기하도록 하고 생활안정을 위한 물질적 지원은 물론 직업알 선, 그리고 직업훈련 등을 통한 한국사회에 적응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북한선교 사역을 감당하도록 비전을 심 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대책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사회를 진단해 보았는데, 앞으로 남북관계가 보다 활발하게 진전되므로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문제는 많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선언한 5개항의 합의문이 실천에 옮겨지면 남북 관계가 보다 발전될 것이며, 남북 종교교류 도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렇게 되었을 때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문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앞 으로 북한 당국이 종교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지를 한국교회는 예의 주시하면서 창조적으로 대북 선교·통일정책을 수행해 가 야 할 것이다.
원래 공산주의는 종교는“민중의 아편”이라 하여 종교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서방 세계와의 개방화가 이루어지면서 공산권 국가들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적이나마 인정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종교 단체의 활동을 정치적 이유에서나마 인정하기 시작했 다. 1973년 평양신학교를 개교했고 80년대 중반에는 성경과 찬송가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 고 1988년에는 최초로 평양의 봉수교회가 세워졌고 1992년에는 칠골교회가 헌당 되었다. 그리고 북 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북한에는 가정교회가 520여 개가 있고 기독 교 신자는 1만 여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드러난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복음적인 교회로 변화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북한 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 교회가 진정한 복음적인 교회로 성장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는 북한의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북한의 기아·탈북자 문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 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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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선교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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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신 교수
북한선교와 평화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북한사회에 대한 바른 진단과 예측이 있어야 하겠 다. “Seeing is believing” 이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북한이라는 견해도 있다. 물 론 북한은 그동안 철저한 폐쇄 노선을 걸어 왔기 때문에 겉만 보고는 믿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체제임을 경험해 왔다. 그러 나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는 북한이 세계 속에 보다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시작했 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공항에 나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함으로써 세계 속에 드러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 치 행태(行態:behavior)도 지금까지 서방 세계에 보여주었던 이미지와는 다른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우리도 북한선교 와 평화통일 전략의 효율화를 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통일 환경 변화에 따른 북한 사회의 정확한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겠다.
북한 당국이 전략적 목표를 바꾸기까지는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겠지만 통일 환경변화에 따라 사회 체제의 신축적인 전술상 의 변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북한은 그동안 철저한 조선식 사회주의 폐쇄 노선을 취해왔다. 그러 나 1995년 노동당 창당 50주년을 계기로 제한적 개방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모기장 이론이 그것 을 입증하고 있다. 이 모기장 이론은 선진국의 자본 기술 등은 시원한 바람에 비유하여 들어오게 하되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 사조 는 파리 모기에 비유하여 차단한다는 논리이다.
1999년에도 “모기장을 든든히 치자” 고 하여 다시 제한적 개방정책을 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나진 선봉의 제한적 개방이나 금강산 관광 등을 허용한 것에서 입증되고 있다.
필자는 1999년 2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금강산 관광객 대상으로 ‘평화 통 일’ 주제 강연차 북한의 금강산, 해금강, 삼일포, 온정리 마을 등을 다녀온 바 있는데 온정리 마을의 담장이나 관광도로 주변 철조 망에서도 모기장 이론을 실감할 수 있었다. 또한 필자는 2001년 8월 평양과 북한의 여러 지방을 돌 아보면서 북한 사회가 총대, 사상, 과학기술을 3대 기둥으로한 강성대국 사회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총대가 강하면 나라는 작아도 나라는 발전할 수 있다”는 구호가 난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강성대국, 총대철학에 기초하여 북한당국은 미사일개발, 핵문제를 가지고 그들의 생존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북한의 핵문제가 한반도 안보에 위협요인이 되지 않도록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전쟁도 평화도 하나 님 손에 있음을 믿는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며 평화적으로 북한핵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다 만 앞으로 북한이 99년부터 주장해 온 ‘강성 대국’ 논리를 어떻게 전개해 갈 것인가가 주목된다.
북한 당국은 2003년 1월 1일 신년 공동 사설에서 “강성대국 “논리를 강조하 고 있음을 볼 때 앞으로도 핵문제를 가지고 그들의 체제보장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이 강성대국 정착을 위해 북한당 국은 1998년 헌법 개정에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를 보다 강화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0년 에 들어와서는 강성대국 건설 본격화를 위한 “사상, 총대, 과학 기술” 등 3대 기둥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 서 사상은 당=수령을 강조하면서 주체 이데올로기로 무장하여 체제 기강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총대는 모든 부문에서 최우선시 해야 할 국사 중의 제일 국사라고 하면서 인민군대는 강성대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양성해야 함을 강조하는 철학이다.
과학 기술 면에서는 새로운 과학 연구와 기술 혁신 안 수용 및 과학 기술 행정 등을 강화하면서 경제 건설 역량을 집중한다 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사회는 강성대국 건설에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강성대국 논리가 지속되 는 한 북한 체제는 그 발전이 둔화 될 것이며 경제난은 심각하게 되어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로 이어지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북한에서는 1995년 이 후부터 홍수 한해 등으로 농산물 수확량이 감소하여 지금까지 3백 여 만 명이 기아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북한의 식량소요량은 6백7십 여만 톤인데, 생산량 은 3백7십 여만 톤밖에 되지 않아 3백 여만 톤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북한동포돕 기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교회는 기아로 인해 굶어죽어가는 북한동포들을 돕는데 앞장서야 할 것 이다.
북한은 강성 대국 체제 유지로 경제난은 가중되어 주민들의 생존권마저 위협을 받게 되어 탈북자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것이 현 실이다. 그래서 북한정권은 탈북자들이 증가할 것을 대비하여 철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탈북자가 계속 증가하자 북한의 김정일은 “간첩 하나 잡는 것 보다 탈북자 하나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시를 하달, 주민들의 이동 및 출근 여부 통제와 동향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② 조·중 국경지역을‘전쟁지대’로 선포하여 취약지역에‘지뢰매설’을 하였다.
③ 국경경비를 전담하는‘10군단’을 창설, 압록강 지역에 전면 배치하였다.
④ 국가보위부 요원과 현지 공관원으로‘탈북자 체포조’를 만들어 러시아, 중국 등지에 파견, 적극적인 탈북자 체포 활동을 벌이고 있다.
⑤ 탈북자가 러시아나 중국 등지에서 체포될 경우,‘반역자’로 간주하여 철사로 코를 꿰거나 마취, 족쇄, 깁스를 하여 북한으로 끌고 간다.
⑥ 탈북어린이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지난 1998년 7월부터 어린이도 잡히면 발목이 잘리는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⑦ 북한당국은 끌고 간 탈북자들을 정치범수용소에 수용하고 심지어는 고문한 후 공개처형까지 하고 있다.
⑧ 1996년 5월말 한국으로 망명하려다 러시아에서 체포되어 북한당국에 넘겨졌던 탈북주민 1명을 북한당국이 국경지역 현장에서 즉결 처형해버린 사실이 러시아 연해주 당국에 의해 확인되었다.
⑨ 1998년 6월 중국 훈춘에 은신 중이던 탈북 일가족 4명이 체포되어 처형되기도 하였다.
향후 탈북자 대책 및 북한선교에 관한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국 내에서 건전한 통일선교문화 창출을 위 해 범교회적인 노력을 함께 펼쳐가야 하겠다. 특히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위해 정책이나 마음이 하나되지 못한 채 혼돈을 가져 와 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둘째,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연구, 교육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종 교 등 객관적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그래서 탈북자 및 북한선교를 위한 보다 구체적인 장, 단기계획을 수립, 시행해 야 하겠다.
셋째, 영적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먼저 탈북자들의 마음의 안정을 기하도록 하고 생활안정을 위한 물질적 지원은 물론 직업알 선, 그리고 직업훈련 등을 통한 한국사회에 적응하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북한선교 사역을 감당하도록 비전을 심 어 주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대책문제를 중심으로 북한사회를 진단해 보았는데, 앞으로 남북관계가 보다 활발하게 진전되므로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문제는 많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선언한 5개항의 합의문이 실천에 옮겨지면 남북 관계가 보다 발전될 것이며, 남북 종교교류 도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렇게 되었을 때 북한의 핵·기아·탈북자 문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앞 으로 북한 당국이 종교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켜 갈 것인지를 한국교회는 예의 주시하면서 창조적으로 대북 선교·통일정책을 수행해 가 야 할 것이다.
원래 공산주의는 종교는“민중의 아편”이라 하여 종교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서방 세계와의 개방화가 이루어지면서 공산권 국가들이 종교의 자유를 제한적이나마 인정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종교 단체의 활동을 정치적 이유에서나마 인정하기 시작했 다. 1973년 평양신학교를 개교했고 80년대 중반에는 성경과 찬송가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리 고 1988년에는 최초로 평양의 봉수교회가 세워졌고 1992년에는 칠골교회가 헌당 되었다. 그리고 북 한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북한에는 가정교회가 520여 개가 있고 기독 교 신자는 1만 여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드러난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복음적인 교회로 변화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북한 의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의 교류 협력을 통해 북한 교회가 진정한 복음적인 교회로 성장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는 북한의 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고 북한의 기아·탈북자 문제가 보다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 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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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공: 선교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