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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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5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엡 4:1-6,행 2:42-47)
오늘은 사도 신경의 열 번째 부분에 대한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대한 고백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 는 것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은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도가 서로 나누는 신령한 교제는 주님께서 교회를 설립 하신 목적 가운데 아주 중요한 부분에 속합니다(행 2:1-4) 교회의 목적을 분류해 본다면 예배와 봉사와 교제입니 다. 때문에 교회는 예배와 봉사와 교제를 위한 신령한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목적은 예배(禮拜)입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방향이며 이웃을 향한 방향입니다.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라 할 수 있습니 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교제를 이루고자 하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신령과 진정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 야 만이 하나님과 나아 와 진정한 교제를 만들어집니다. 예배를 토한 이 교제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요소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요소 가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헌금하고 찬송하는 것은 드리는 요소입니다. 반면에 주시는 요소는 설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이며 그리고 성례입니다.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피를 기념하고 주님의 살을 기념하는 은혜를 풍성하게 주십니다.
예배는 성도끼리의 신령한 교제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특색이 있습니다. 개인적이기보다는 공중적입니다. 지금 이 예배는 공 동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격식도 필요하고 질서도 필요합니다. 나의 언행 심사가 옆에 있는 성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 다. 성도의 별명은 “예배하는 자”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처럼 이웃 앞에서도 예배(禮拜)드리는 자가 되어 야 할 것입니다. 주일 하루만 예배(禮拜)드리는 작 아니라 365일 언제나 예배(禮拜)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 다.
교회의 두 번째 목적은 봉사입니다.
봉사도 역시 하나의 교제입니다. 교회는 봉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는 봉사를 통해서 부담 없는 교제를 기질 수 있습 니다. 우리 성도들은 누가복음 10장의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숨 은 봉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몸소 종의 도를 행하시고 봉사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 에서 봉사의 손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제목에는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를 위한 순서가 빠져서는 절대 안됩니 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자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교회의 세 번째 목적은 교제입니다.
교회는 성도가 함께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사도 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교제 는 딱딱한 법으로가 아니라 따스한 사랑으로 유지됩니다. 초목은 수분을 먹고 자라듯 육신은 음식을 먹고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는 사랑이 있어야 성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신경에서 말하는 「교통」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 은 “교제한다, 통찰한다, 공급한다”라는 여러 뜻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여기에서 「공급」이란 말이 「코이노니아」라는 단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히 13:16) 여기에서 「나누어준다」는 말이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신경에 비추어 볼 때 교제에 관한 고백 은 성도끼리 서로 찬미하며 있는 것을 나누어 갖고 동고동락하는 생활을 믿는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면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모범적인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초대 교회
초대 교회 있어서 한 아름다운 미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의 교제인데 행 2:42을 보면 이것에 대해 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성도가 서로 교제하 는 것과” 이 문장을 세 가지로 분석해 봅시다.
1) 성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예배드리는 무리가 거룩합니까? 죄인(罪人)된 우리에게는 어쩐지 쑥 스러운 어색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거룩한 공회(公會)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인이지만 교회의 회원 이기 때문에 성도라고 부른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 도라는 이 그 거룩성의 원인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성도이지 우리가 거룩해 서 성도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의 지체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고전 6:19) 우리 속에 거룩 한 성령이 계시고 또 믿음을 보시고 거룩하다고 칭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2) 서로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서로의 교제이고 모두의 교제입니다. 행여 라도 교회에서 나누는 교제가 끼리끼리의 교제가 되어선 안됩니 다. “너희가 아들 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성도 는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교제할 때에 다같이 사랑으로 교제해야 합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 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꿋케 하시느니라” (요15:1). 가지 전체가 열매를 맺어야 하고 가지 전체가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신령한 서로 서 로 의 교제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에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 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 이나 자비가 있거든“(빌2:1)
교회의 교제는 성부, 성자, 성령의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 속에서 나오는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끼리 만남이 잦아질수록 주의(注意) 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① 교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우리 인간적인 만족의 향락이나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성도 성도가 어떠한 곳에서 봉사하며 교제를 하 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② 교제는 주님의 뜻입니다.
교제를 하다 보면 내 뜻이 앞장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말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다 하지만 내 뜻과 내 고집이 주장되어 집니다. 언제나 우리는 무슨 모임에서든지 성령께 의뢰하고 우리는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③ 성령의 지도입니다. 그래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 4:3). 성령의 지도에는 평안이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교제 시에 불안하거나 짜증이 나면 성령의 지도에 불응 하고 있음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또 성령의 지도에는 하나로 되는 일이 따릅니다. 교제의 으뜸가는 목적은 서로 하나가 되는데 있 습니다. 사랑으로, 기도함으로, 교제함으로 하나가 되감을 느껴야 합니다.
3) 교통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교통이라고 하는 말은 성도끼리 서로 도우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고립 신앙 즉, 독불장군의 신앙이란 있 을 수 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은 형제와 나와의 삼각 관계입니 다.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 하여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 라 하였나이다”(눅10:27).
혼자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합심해서 서로 기도한다면 은혜가 더 충만할 것입니다. 혼자서 찬송하 며 은혜를 사모하는 것 중요하고 좋지만 형제끼리 모여서 찬미한다면 더 충만할 것입니다. 이 충만한 성령 강림은 오순절 때 한 자리 에 모여 예배드릴 때에 임했습니다.
2.“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의미
신앙고백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말속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1) 신앙 생활의 터전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성도끼리의 교제를 싫어하여 혼자서 그냥 왔다 갔다 합니다. 기관에 봉사하는 것도 싫고 무슨 모임에 동참하는 것 도 싫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가면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집에서 조용히 혼자서 예배드린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즉 무 (無)교회주의 입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은 공동 생활입니다 초대 교회가 혼자의 힘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서로 모이고 또 모 인 것이 교회로 생겨진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다 같이 믿어야 하며 가족끼리 함께 출석도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직원 전체 가 예수를 믿으면 그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2) 신앙 생활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모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여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가는 더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모이기에는 힘을 썼지 만 각각 나눈다는 토론이 「바울파」,「아볼로파」,「게바파」(베드로),「그리스도파」 등과 같이 참으로 분쟁만 하는 모임이었습니 다. 서로 사이를 만들어 잡음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며 성경의 교훈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에는 화목과 평화가 있 어야 합니다.
성도끼리 서로 일치해야 합니다. 목적이 하나여야 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성경에“서 로 교통하는 것”에 대하여 즉, 그 방법과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 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네 형제 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롬 12:15)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롬12:1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 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너희 죄를 서로 고하 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 이 없나니”(요 15:13)
이런 방법과 내용이 어떻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 다. 교회 성도가 많다 보면 얼굴을 모르니 시장에서 다툴 수밖에 없어요. 또 교회 올 때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경건함을 찾아 야 할 것이며 사회 친구이건 가족이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교제로 이끌어 주는 요소입니 다. 교회 안에서 유무 상통하는 교제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성도가 한 의자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 과 사랑이 없이는 함께 집사도 장로도 할 수 없습니다.
성도끼리 도울 일이 있을 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십일조를 모아 두었다가 어려운 교 회를 도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생각은 인간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공로가 앞장서 버리 기 십상입니다. 가정에서 대 청소를 하다 보면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몽땅 교회로 가지고 오십시오, 어느 성도에 게 생활 필수품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서로 도우면 그 교제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또 성도의 교통을 위해서 교회의 모임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참신한 교제를 하게 됩니다. 사랑이 넘치는, 신뢰가 넘치는 교제의 장소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먹고 말 씀을 사랑하는 신령한 모임이기에 저절로 아름다워집니다. 또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성도 각 사람이 나 의 허물을 고백하는 고백이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모두가 진실에 이르게 되면 성도끼리 나누는 사랑의 교제가 두터 워져야만 갈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중심 해서 교회가 부흥하 고 화평하게 될 때에 성도 개인들의 심령 또한 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교제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 러나게 하는 신령한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교회가 부흥된 것을 믿고 감사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교제의 원리
성도들의 교통의 근거점은 계 14:1-5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도들의 교통에 있어서는 것처럼 “어린 양 되 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가 「바탕」이며 서로를 맺어 주는 「끈」이어야 합니다. 성도는 사람의 어떤 사업이나 이해관 계로써 맺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자들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 시기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50)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 도가 「하나 되는 것」과 「교통」과 「사귐」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진리」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희생시키면서 성도의 교제와 교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 님의 진리를 확실히 하여 그 진리를 전파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교회라는 단체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 다. 현대 교인들이나 교회가 사회사업과 자선 사업에 치중하므로 교회가 참으로 지향해야 하는 진리와 원칙에서 탈선하게 되는 경우 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성도의 교통이 아니라 사탄의 장난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통은 같은 하나님과 같은 구원, 같은 사랑 가운데서 같은 소망을 기뻐하는 모습이요 생활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 도 교제의 특징은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기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빌4:4-5,벧 전 5:2,빌3:20,행2:42,행2:44-47) 이것은 성도의 서로 교통함에 있어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우리에 게 보여주는 표본이요, 원칙이라고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의 교통과 교제에 대하여 빌립보서에서 권유하고 있습니다 (빌 2:2-5)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화목함을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신령한 단체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부름 받아 하나님의 자녀 가 된 무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또 성도들끼리 서로 사귀며 교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은 엡 4:4에서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도 같이하고 어려움도 나누어 가지는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 다. 롬 12:10-13에서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리지 말고 열 심을 품고 주를 섬기되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 라”는 명령을 힘써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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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도 신경의 열 번째 부분에 대한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대한 고백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 는 것을 믿사오며”라는 고백은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고백입니다. 성도가 서로 나누는 신령한 교제는 주님께서 교회를 설립 하신 목적 가운데 아주 중요한 부분에 속합니다(행 2:1-4) 교회의 목적을 분류해 본다면 예배와 봉사와 교제입니 다. 때문에 교회는 예배와 봉사와 교제를 위한 신령한 공동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목적은 예배(禮拜)입니다.
이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방향이며 이웃을 향한 방향입니다.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라 할 수 있습니 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교제를 이루고자 하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신령과 진정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 야 만이 하나님과 나아 와 진정한 교제를 만들어집니다. 예배를 토한 이 교제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요소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요소 가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헌금하고 찬송하는 것은 드리는 요소입니다. 반면에 주시는 요소는 설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이며 그리고 성례입니다.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주님의 피를 기념하고 주님의 살을 기념하는 은혜를 풍성하게 주십니다.
예배는 성도끼리의 신령한 교제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특색이 있습니다. 개인적이기보다는 공중적입니다. 지금 이 예배는 공 동 예배입니다. 그러기에 격식도 필요하고 질서도 필요합니다. 나의 언행 심사가 옆에 있는 성도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 다. 성도의 별명은 “예배하는 자”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처럼 이웃 앞에서도 예배(禮拜)드리는 자가 되어 야 할 것입니다. 주일 하루만 예배(禮拜)드리는 작 아니라 365일 언제나 예배(禮拜)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 다.
교회의 두 번째 목적은 봉사입니다.
봉사도 역시 하나의 교제입니다. 교회는 봉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성도는 봉사를 통해서 부담 없는 교제를 기질 수 있습 니다. 우리 성도들은 누가복음 10장의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숨 은 봉사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몸소 종의 도를 행하시고 봉사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활 속 에서 봉사의 손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 제목에는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를 위한 순서가 빠져서는 절대 안됩니 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자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교회의 세 번째 목적은 교제입니다.
교회는 성도가 함께 교제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사도 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교제 는 딱딱한 법으로가 아니라 따스한 사랑으로 유지됩니다. 초목은 수분을 먹고 자라듯 육신은 음식을 먹고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는 사랑이 있어야 성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신경에서 말하는 「교통」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 은 “교제한다, 통찰한다, 공급한다”라는 여러 뜻이 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 여기에서 「공급」이란 말이 「코이노니아」라는 단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히 13:16) 여기에서 「나누어준다」는 말이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신경에 비추어 볼 때 교제에 관한 고백 은 성도끼리 서로 찬미하며 있는 것을 나누어 갖고 동고동락하는 생활을 믿는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러면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모범적인 교제의 공동체로서의 초대 교회
초대 교회 있어서 한 아름다운 미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의 교제인데 행 2:42을 보면 이것에 대해 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성도가 서로 교제하 는 것과” 이 문장을 세 가지로 분석해 봅시다.
1) 성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예배드리는 무리가 거룩합니까? 죄인(罪人)된 우리에게는 어쩐지 쑥 스러운 어색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거룩한 공회(公會)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인이지만 교회의 회원 이기 때문에 성도라고 부른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 2:9).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입니다. 성 도라는 이 그 거룩성의 원인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성도이지 우리가 거룩해 서 성도인 것은 절대 아닙니다. 따라서 성도의 지체는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고전 6:19) 우리 속에 거룩 한 성령이 계시고 또 믿음을 보시고 거룩하다고 칭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
2) 서로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서로의 교제이고 모두의 교제입니다. 행여 라도 교회에서 나누는 교제가 끼리끼리의 교제가 되어선 안됩니 다. “너희가 아들 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성도 는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교제할 때에 다같이 사랑으로 교제해야 합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 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꿋케 하시느니라” (요15:1). 가지 전체가 열매를 맺어야 하고 가지 전체가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신령한 서로 서 로 의 교제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에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 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1:3)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 이나 자비가 있거든“(빌2:1)
교회의 교제는 성부, 성자, 성령의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제 속에서 나오는 교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끼리 만남이 잦아질수록 주의(注意) 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① 교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우리 인간적인 만족의 향락이나 교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성도 성도가 어떠한 곳에서 봉사하며 교제를 하 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앞서야 할 것입니다.“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② 교제는 주님의 뜻입니다.
교제를 하다 보면 내 뜻이 앞장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말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다 하지만 내 뜻과 내 고집이 주장되어 집니다. 언제나 우리는 무슨 모임에서든지 성령께 의뢰하고 우리는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③ 성령의 지도입니다. 그래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 4:3). 성령의 지도에는 평안이 따른다는 말씀입니다. 교제 시에 불안하거나 짜증이 나면 성령의 지도에 불응 하고 있음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또 성령의 지도에는 하나로 되는 일이 따릅니다. 교제의 으뜸가는 목적은 서로 하나가 되는데 있 습니다. 사랑으로, 기도함으로, 교제함으로 하나가 되감을 느껴야 합니다.
3) 교통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도의 교통이라고 하는 말은 성도끼리 서로 도우면서 산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고립 신앙 즉, 독불장군의 신앙이란 있 을 수 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앙은 형제와 나와의 삼각 관계입니 다.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 하여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 라 하였나이다”(눅10:27).
혼자서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합심해서 서로 기도한다면 은혜가 더 충만할 것입니다. 혼자서 찬송하 며 은혜를 사모하는 것 중요하고 좋지만 형제끼리 모여서 찬미한다면 더 충만할 것입니다. 이 충만한 성령 강림은 오순절 때 한 자리 에 모여 예배드릴 때에 임했습니다.
2.“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의미
신앙고백의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말속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1) 신앙 생활의 터전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성도끼리의 교제를 싫어하여 혼자서 그냥 왔다 갔다 합니다. 기관에 봉사하는 것도 싫고 무슨 모임에 동참하는 것 도 싫어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가면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집에서 조용히 혼자서 예배드린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즉 무 (無)교회주의 입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은 공동 생활입니다 초대 교회가 혼자의 힘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서로 모이고 또 모 인 것이 교회로 생겨진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다 같이 믿어야 하며 가족끼리 함께 출석도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직원 전체 가 예수를 믿으면 그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2) 신앙 생활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모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여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 가는 더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모이기에는 힘을 썼지 만 각각 나눈다는 토론이 「바울파」,「아볼로파」,「게바파」(베드로),「그리스도파」 등과 같이 참으로 분쟁만 하는 모임이었습니 다. 서로 사이를 만들어 잡음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며 성경의 교훈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에는 화목과 평화가 있 어야 합니다.
성도끼리 서로 일치해야 합니다. 목적이 하나여야 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성경에“서 로 교통하는 것”에 대하여 즉, 그 방법과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 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네 형제 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마 18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롬 12:15)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 하라”(롬12:1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 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너희 죄를 서로 고하 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약 5:16)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 이 없나니”(요 15:13)
이런 방법과 내용이 어떻든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 다. 교회 성도가 많다 보면 얼굴을 모르니 시장에서 다툴 수밖에 없어요. 또 교회 올 때에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경건함을 찾아 야 할 것이며 사회 친구이건 가족이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신령한 교제로 이끌어 주는 요소입니 다. 교회 안에서 유무 상통하는 교제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부자와 가난한 성도가 한 의자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 과 사랑이 없이는 함께 집사도 장로도 할 수 없습니다.
성도끼리 도울 일이 있을 때는 오른 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십일조를 모아 두었다가 어려운 교 회를 도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 생각은 인간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자기 자랑과 자기 공로가 앞장서 버리 기 십상입니다. 가정에서 대 청소를 하다 보면 아무 쓸모 없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몽땅 교회로 가지고 오십시오, 어느 성도에 게 생활 필수품으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서로 도우면 그 교제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또 성도의 교통을 위해서 교회의 모임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참신한 교제를 하게 됩니다. 사랑이 넘치는, 신뢰가 넘치는 교제의 장소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먹고 말 씀을 사랑하는 신령한 모임이기에 저절로 아름다워집니다. 또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방법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성도 각 사람이 나 의 허물을 고백하는 고백이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모두가 진실에 이르게 되면 성도끼리 나누는 사랑의 교제가 두터 워져야만 갈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종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중심 해서 교회가 부흥하 고 화평하게 될 때에 성도 개인들의 심령 또한 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교제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 러나게 하는 신령한 교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교회가 부흥된 것을 믿고 감사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교제의 원리
성도들의 교통의 근거점은 계 14:1-5에서 언급하고 있는 성도들의 교통에 있어서는 것처럼 “어린 양 되 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가 「바탕」이며 서로를 맺어 주는 「끈」이어야 합니다. 성도는 사람의 어떤 사업이나 이해관 계로써 맺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 자들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 시기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50)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 도가 「하나 되는 것」과 「교통」과 「사귐」은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진리」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희생시키면서 성도의 교제와 교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하나 님의 진리를 확실히 하여 그 진리를 전파하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나 교회라는 단체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 다. 현대 교인들이나 교회가 사회사업과 자선 사업에 치중하므로 교회가 참으로 지향해야 하는 진리와 원칙에서 탈선하게 되는 경우 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성도의 교통이 아니라 사탄의 장난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통은 같은 하나님과 같은 구원, 같은 사랑 가운데서 같은 소망을 기뻐하는 모습이요 생활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 도 교제의 특징은 구원의 은총을 감사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기뻐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빌4:4-5,벧 전 5:2,빌3:20,행2:42,행2:44-47) 이것은 성도의 서로 교통함에 있어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우리에 게 보여주는 표본이요, 원칙이라고 하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의 교통과 교제에 대하여 빌립보서에서 권유하고 있습니다 (빌 2:2-5)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화목함을 위하여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신령한 단체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부름 받아 하나님의 자녀 가 된 무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또 성도들끼리 서로 사귀며 교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은 엡 4:4에서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쁨도 같이하고 어려움도 나누어 가지는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 다. 롬 12:10-13에서 “형제를 사랑하며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리지 말고 열 심을 품고 주를 섬기되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 라”는 명령을 힘써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