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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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딤후 2:1-4)
1990년 초 미국이 이라크와의 걸프전에서 승리한 주된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보통 미국의 최첨단 무기라고 생각하실 것 입니다. 그러나 사실상은 미국의 특수부대의 맹활약이 승리의 주된 이유라고 합니다. 1991년 6월 17일자 뉴스위크지는 ‘비밀의 전사들(secret warrior)’이란 제하의 커버스토리 기사에서 ‘걸프전 당시 특수전 요원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군 피해가 엄청났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병대가 있습니다. 해병대의 역할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해병대를 제대한 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고 자원 봉사를 하는 것을 볼 때에 참 멋있게 보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현대에 들어와도 세계 각국이 특수 전 부대를 강화육성 하는 이유는 경제적 비용으로 정확하고 강력한 타격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사일개발이나 함정 한 척 건조비 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특수 전 요원을 훈련시키면 그보다 몇 백배의 정확성과 타격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특수 전 부대를 육성 강화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전쟁에서 군사가 중요한 것처럼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좋은 군사와 같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제2차 로마 옥중 생활 중에 고요히 최후를 기다리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편지로서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로마 군사들의 모습을 관찰(觀察)하고 이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시켰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그리스도인을 군사로 비유한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후 10:4에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엡 6:11에서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고 권면하였고(딤전 1:18), 빌립보 교회의 교역자였던 에바브로 디도를 가리켜 "나와 함께 군사된 자"로 부르고 있고(빌 2:25),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제공한 아킵보를 "우리들의 전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몬 2)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군사는 군사로되 사탄과 싸우는 신령한 군사요, 창이나 검이나 총으로 무장한 군사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소유한 군사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군사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군사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군사"요, 선한 싸움을 싸운 군사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강건해야 합니다(1절).
본문 1절에서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강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강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디모데는 성품이 온화하고 진실되고 충성된 자였습니다. 또한 눈물이 많은 자로서 목사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반면 내면이 연약하고 속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는 현재 에베소 교회의 책임 목사로 있었지만 연소하고(딤전4:12), 몸이 허약하며(딤전5:23), 성격은 소심하여 많은 고전을 겪고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에베소의 타락한 문화와 싸워야 했고 안으로는 유대 율법주의, 영지주의와 같은 각종 이단 사상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가 의지하고 존경하던 사도 바울은 네로의 박해로 인해 재 투옥되어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언제 순교 당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박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복음을 저버리고 바울을 떠나갔습니다(딤후1:15). 이 소식은 디모데를 더욱 연약하게 하고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에게 “강하라”(be strong)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강건해야 합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강해야 살아 남듯이 영적으로도 강해야 합니다. 강해야 복음의 외적 내적 원수와 싸울 수 있고 제자 훈련을 시킬 수 있습니다. 강해야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고 세상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해야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강해야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몸이 강하면 병균이 몸에 침입해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하여 저항력을 상실하게 되면 병에 걸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불신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영적으로 건강한 인생을 살려면 내면이 강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열심히 운동을 하고 먹는 것을 조절하여야 합니까? 물론 운동을 하고 먹는 것을 조절할 때 육신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육신이 강하다 할지라고 영적으로 약하면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이기고 내면이 강해지려면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란 죄 사함의 은혜요 부르심의 은혜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은 엡 6:10-11에서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건하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엡 6:12-18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절)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충성스러워야 합니다.(2절).
본문 2절에서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디모데는 딤후 1:13,14절에서 복음 진리를 지키라는 사명을 부탁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 진리를 수호할 뿐 아니라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4단계로 설명하였습니다.
맨 먼저 복음은 그리스도에 의해 바울에게 맡겨졌습니다(딤전1:12). 다음으로 바울에게 맡겨졌던 복음은 디모데에게 맡겨졌습니다.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 전달된 복음은 사적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증인 앞에서 공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 디모데는 이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 복음을 맡기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계승되고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것을 복음의 사도적 계승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에게는 사도적 사명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올림픽 성화의 횃불이 성화 주자의 손과 손을 통해 전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복음의 횃불을 들고 달리는 성화 주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복음의 횃불을 꺼뜨리지 아니하고 온전하게 보존하였다가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다른 세대에 전달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 전달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충성된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충성이란 말은 “변함이 없는 신실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뢰한 만한, 믿을만한 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충성에는 책임성과 신뢰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습니다. 충성된 자는 좋으나 싫으나 꾸준히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합니다. 충성된 자는 책임성이 강하고 성실합니다. 일을 맡으면 상황을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책임성 있게 해냅니다. 이런 자는 신뢰할 만합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귀히 쓰십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배교치 않은 충성된 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계승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의 일꾼이 되려면 주님께서 나를 충성할 자로 여겨서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딤전 112-13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의 모습으로 충성할 때에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창 39:1-6)
3.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고난을 견디어야 합니다.(3절)
본문 3절에서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고난을 견디이어야 합니다. 고난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 딤전 4:5에서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군사가 된다는 것은 그 군사가 세속적이든 영적이든 고난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 자연인이 늠름한 군인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피나는 훈련이 요구됩니다. 혹 이 훈련기간 동안 심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인간이하의 모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두려워 훈련을 거부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국토방위와 국민의 생명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세속적 군사도 국가로부터 모집되어 훈련소에 들어가면 그 고난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난 후에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 가는 과정상에 숱한 고초와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한 육체적 훈련과 정신적 고통, 잠이 모자라고 배가 고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때로는 멀리 도망하고 싶고, 탈출하고 싶고, 죽은 싶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끝까지 견뎌야 훌륭한 군인이 되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현역 근무의 군사들은 안전하거나 편안한 시간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 곤경, 위험과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편안한 때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난과 핍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가정으로 불화(不和)가 일어날 수있고, 재산(財産)상으로 피해가 닥칠 수도 있으며, 혹은 인격적인 수모나 심하게는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마19:29, 행14:1-7) 그러기에 신자로서 충성된 주의 일꾼 되기를 열망(熱望)하는 분이 계시다면우선 그는 자신의 소유와 소망과 자유를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위해 모두 희생(犧牲)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마26: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영적 싸움을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고난을 두려워 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고난을 견디고 참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① 타협주의 ② 회피주의 ③ 대세주의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이 공로는 아니지만 ① 인간은 고난을 받아야 겸손해 집니다. 사람은 우선 겸손해야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말하기를 "천국은 높지만 내려가면서 배운다"라고 했습니다. ② 고난을 받아야 그의 신앙 인격이 연단을 받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 1:2에서 모든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고, 약 1:3에서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단 없는 자는 믿을 수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갖게 합니다(롬 5:3,4) 인내하는 자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특히 우리는 선을 행할 때도 인내해야 합니다(갈 6:9) "우리가 선(善)을 행하되 낙심하지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이르매 거두리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마땅히 인내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히 6:15), 이삭도(창 2618,20-22), 모세(출 16:7,8),다윗(시40:1), 욥도(약5:11), 바울도(고후 6:4-6) 인내하면 좋은 군사의 모습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把握)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읽고 이해하여 어떻게 하면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연구(硏究)해야 합니다. 어떠한 환난과 역경도 참도 견디어 내야 합니다.
욥은 자식과 재산과 건강을 하루아침에 잃었어도 신앙의 연단 과정에서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런 연단 과정은 우리를 영적 사람으로 성장시킵니다. 사도 바울이 엡 6:12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을 성숙한 군사, 훌륭한 군사, 좋은 군사로 훈련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배후에 숨겨져 있는 줄로 믿고 결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고난을 견디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세상이 너무 편리한 세상이라 컴퓨터에 한번 접속으로 앉아서 모든 정보를 수고하지 않고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편리하다 보니 안일해지고 연약합니다. 머리는 잘 돌아가지만 적용이 안되고 절제력, 투쟁심, 끈기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 보완이 될 때 비로소 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훈련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4.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4절).
본문 4절 상반 절에서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군사 훈련의 인간의 이기심을 없애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갯벌훈련을 통해 수치심, 자존심, 이기심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새로 태어나게 하는 훈련과정이라고 합니다. 군사가 국가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시민으로서 일생생활을 합니다. 시민에게는 개인의 인격과 자유와 권리가 보장됩니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가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인격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군인은 국가의 안위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최우선시해야 해야 합니다. 군인은 입대와 함께 이와 같은 군인의 존재의미와 목적에 바쳐진 자라고 할 수 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꿈과 이상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일단 민간인이 군(軍)에 복무하게 되면 민간인으로서의 생활을 모두 포기(泡起)하고 오직 군(軍) 생활에만 전념(專念)해야 합니다. 군인은 고난을 받아야 될 뿐만 아니라 기꺼이 군인(軍人) 생활에 전력투구해야 됩니다. 훈련 잘 받고 의무에 충실한 군인은 절대로 군의 규율을 어기면서 함부로 외출, 휴가 등을 하지 않습니다. 탈영하지 않습니다. 또한 군인이 되면 가정을 떠나서 국가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현역 복무 중일 때 군인은 개인 사업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집안의 문제를 걱정한다거나 개인의 사생활에 연연할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국가는 군인의 먹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비용을 책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의 일꾼이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성도의 길에 들어선 자는 무엇보다 경건(敬虔) 생활에 전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마땅히 영적 전투에서 강력한 싸움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잘 받은 성도라면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가면서 자기 뜻대로 편한 대로하고, 자기 기분대로 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예수 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기 이치(理致)대로 사사로이 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자기의 일을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많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에녹이 자기의 일에 얽매였다면 하나님과 300년동안 동행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군사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자기의 일에 얽매여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군사로 부르심을 받는 성도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고난 핍박 시험 환난(患難)이 걷잡을 수 없도록 몰아쳐도 참고 견디며 자기 뜻 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신본주의 곧 믿음 본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히 11:6)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적 싸움에서 강력한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서 온전히 성령께 사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성령께 사로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 성도들에게 적용됩니다. 일반 성도라고 해서 생활에 얽매여 주님의 일을 게을리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든지, 농사를 하든지, 장사와 사업을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가정생활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이든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좋은 군사가 되려면 결코 우리의 생활에 얽매여서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불가능한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개인 생활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현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가정, 직장 및 사회 등에서의 통상적인 의무 들고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으로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지는 의무들을 실행하고 양심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딤전 4:4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딤전 6:17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셨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에게 금지된 것은 모든 세속적인 활동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일생에 주어지는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삶을 사는데 완전히 무해(無害)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영적 싸움에서 사탄에게 강력하게 대적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의 삶을 살게 하는데 얽매이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본문 4절 상반절에서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권면은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무엇을 우선 순위에 정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삶의 우선 순위가 주님을 위한 것에 집중되지 않는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얽매이게 하고 미혹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간에 피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얽매이지 않고 만족할 만한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4절 하)
본문 4절 하반 절에서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군사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군인은 자신을 군사로 세운 지휘관에게 순종과 충성을 다함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군사를 모집한 자는 군사에게 모든 생활비를 지원(志願)해야 하고, 또한 군사는 그 모집한 자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고대의 좋은 군사들은 국왕이나 지휘관에게 충성을 다하여 생명까지 흔히 내어 바쳤습니다. 군인의 생명(生命)은 바로 지휘 체계에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함으로서 그 주어진 임무를 충성스럽게 완수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군인(軍人)들에게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개인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에 충동할 때는 서슴없이 국가의 이익에 복종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더라도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삼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그분께서 분부하신 명령이 비록 힘들지라도 기쁨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계 2:10에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녕 이것이 주님의 군사된 자의 최고의 덕목(德目)이요, 최상의 영예(榮譽)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좋은 군사로 모집한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를 가리켜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를 부름을 받은 성도들은 우리를 좋은 군사로 불러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순교자적 자세로 충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 1:10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후사를 기다렸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좋은 군사로서 모집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으되 정말 우리 자신을 모집하신 하나님께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하는 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다른 사람을 언급하기 전에 지금 우리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만세 전에 선택하여 주시고, 시궁창 같은 죄악의 자리에서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에게 귀한 직분과 사명을 주신 주님께 얼마만큼 기쁨을 드리고 있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소요리 문답 제 1문답에 보면 "사람의 제일 목적이 무엇이뇨?라고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기본적인 일들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는 명령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는 절대적인 명령이요, 우리의 최대의 과제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0:31)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부름 받는 저와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강한 모습으로 충성스럽게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인내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생활의 얽매이지 말고 오직 우리 자신을 모집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합시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면의 측면보다 더 강력한 명령의 측면에서 순종해야 할 것임을 명심합시다. 그리함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범사에 능력의 삶을 사는 남전도회원과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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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초 미국이 이라크와의 걸프전에서 승리한 주된 이유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보통 미국의 최첨단 무기라고 생각하실 것 입니다. 그러나 사실상은 미국의 특수부대의 맹활약이 승리의 주된 이유라고 합니다. 1991년 6월 17일자 뉴스위크지는 ‘비밀의 전사들(secret warrior)’이란 제하의 커버스토리 기사에서 ‘걸프전 당시 특수전 요원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아군 피해가 엄청났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병대가 있습니다. 해병대의 역할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해병대를 제대한 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고 자원 봉사를 하는 것을 볼 때에 참 멋있게 보입니다.
이처럼 오늘날 현대에 들어와도 세계 각국이 특수 전 부대를 강화육성 하는 이유는 경제적 비용으로 정확하고 강력한 타격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사일개발이나 함정 한 척 건조비 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특수 전 요원을 훈련시키면 그보다 몇 백배의 정확성과 타격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특수 전 부대를 육성 강화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전쟁에서 군사가 중요한 것처럼 영적 전쟁에서 성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좋은 군사와 같은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제2차 로마 옥중 생활 중에 고요히 최후를 기다리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편지로서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로마 군사들의 모습을 관찰(觀察)하고 이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시켰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그리스도인을 군사로 비유한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후 10:4에서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엡 6:11에서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라고 권면하였고(딤전 1:18), 빌립보 교회의 교역자였던 에바브로 디도를 가리켜 "나와 함께 군사된 자"로 부르고 있고(빌 2:25),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하도록 제공한 아킵보를 "우리들의 전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몬 2)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군사는 군사로되 사탄과 싸우는 신령한 군사요, 창이나 검이나 총으로 무장한 군사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소유한 군사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는 사람을 죽이기 위한 군사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군사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군사"요, 선한 싸움을 싸운 군사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문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강건해야 합니다(1절).
본문 1절에서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강건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강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디모데는 성품이 온화하고 진실되고 충성된 자였습니다. 또한 눈물이 많은 자로서 목사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반면 내면이 연약하고 속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는 현재 에베소 교회의 책임 목사로 있었지만 연소하고(딤전4:12), 몸이 허약하며(딤전5:23), 성격은 소심하여 많은 고전을 겪고 있었습니다. 밖으로는 에베소의 타락한 문화와 싸워야 했고 안으로는 유대 율법주의, 영지주의와 같은 각종 이단 사상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그가 의지하고 존경하던 사도 바울은 네로의 박해로 인해 재 투옥되어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언제 순교 당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신자들이 박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복음을 저버리고 바울을 떠나갔습니다(딤후1:15). 이 소식은 디모데를 더욱 연약하게 하고 위축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에게 “강하라”(be strong)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의 일꾼은 강건해야 합니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강해야 살아 남듯이 영적으로도 강해야 합니다. 강해야 복음의 외적 내적 원수와 싸울 수 있고 제자 훈련을 시킬 수 있습니다. 강해야 죄의 소욕을 이길 수 있고 세상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강해야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강해야 세상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몸이 강하면 병균이 몸에 침입해도 물리칠 수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몸이 약하여 저항력을 상실하게 되면 병에 걸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불신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영적으로 건강한 인생을 살려면 내면이 강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습니까? 열심히 운동을 하고 먹는 것을 조절하여야 합니까? 물론 운동을 하고 먹는 것을 조절할 때 육신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육신이 강하다 할지라고 영적으로 약하면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이기고 내면이 강해지려면 예수님과 깊은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란 죄 사함의 은혜요 부르심의 은혜 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도 바울은 엡 6:10-11에서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건하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엡 6:12-18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3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15절)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절)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충성스러워야 합니다.(2절).
본문 2절에서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충성스러워야 합니다.
디모데는 딤후 1:13,14절에서 복음 진리를 지키라는 사명을 부탁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 진리를 수호할 뿐 아니라 전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4단계로 설명하였습니다.
맨 먼저 복음은 그리스도에 의해 바울에게 맡겨졌습니다(딤전1:12). 다음으로 바울에게 맡겨졌던 복음은 디모데에게 맡겨졌습니다. 바울에게서 디모데에게 전달된 복음은 사적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증인 앞에서 공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 이제 디모데는 이 복음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그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 복음을 맡기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계승되고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나가는 것을 복음의 사도적 계승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에게는 사도적 사명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올림픽 성화의 횃불이 성화 주자의 손과 손을 통해 전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복음의 횃불을 들고 달리는 성화 주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복음의 횃불을 꺼뜨리지 아니하고 온전하게 보존하였다가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다른 세대에 전달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이 전달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충성된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충성이란 말은 “변함이 없는 신실성”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뢰한 만한, 믿을만한 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충성에는 책임성과 신뢰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습니다. 충성된 자는 좋으나 싫으나 꾸준히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합니다. 충성된 자는 책임성이 강하고 성실합니다. 일을 맡으면 상황을 핑계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책임성 있게 해냅니다. 이런 자는 신뢰할 만합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자를 귀히 쓰십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어떤 시련 가운데서도 배교치 않은 충성된 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계승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의 일꾼이 되려면 주님께서 나를 충성할 자로 여겨서 내게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딤전 112-13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의 모습으로 충성할 때에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창 39:1-6)
3.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고난을 견디어야 합니다.(3절)
본문 3절에서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고난을 견디이어야 합니다. 고난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 딤전 4:5에서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군사가 된다는 것은 그 군사가 세속적이든 영적이든 고난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 자연인이 늠름한 군인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피나는 훈련이 요구됩니다. 혹 이 훈련기간 동안 심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고, 인간이하의 모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두려워 훈련을 거부한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국토방위와 국민의 생명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세속적 군사도 국가로부터 모집되어 훈련소에 들어가면 그 고난이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난 후에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 가는 과정상에 숱한 고초와 시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심한 육체적 훈련과 정신적 고통, 잠이 모자라고 배가 고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때로는 멀리 도망하고 싶고, 탈출하고 싶고, 죽은 싶은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끝까지 견뎌야 훌륭한 군인이 되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현역 근무의 군사들은 안전하거나 편안한 시간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제에 있어서 곤경, 위험과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편안한 때를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난과 핍박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가정으로 불화(不和)가 일어날 수있고, 재산(財産)상으로 피해가 닥칠 수도 있으며, 혹은 인격적인 수모나 심하게는 생명의 위협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마19:29, 행14:1-7) 그러기에 신자로서 충성된 주의 일꾼 되기를 열망(熱望)하는 분이 계시다면우선 그는 자신의 소유와 소망과 자유를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위해 모두 희생(犧牲)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마26: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탄과 영적 싸움을 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고난을 두려워 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고난을 견디고 참으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① 타협주의 ② 회피주의 ③ 대세주의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이 공로는 아니지만 ① 인간은 고난을 받아야 겸손해 집니다. 사람은 우선 겸손해야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말하기를 "천국은 높지만 내려가면서 배운다"라고 했습니다. ② 고난을 받아야 그의 신앙 인격이 연단을 받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 1:2에서 모든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고, 약 1:3에서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단 없는 자는 믿을 수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갖게 합니다(롬 5:3,4) 인내하는 자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특히 우리는 선을 행할 때도 인내해야 합니다(갈 6:9) "우리가 선(善)을 행하되 낙심하지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이르매 거두리라"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마땅히 인내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히 6:15), 이삭도(창 2618,20-22), 모세(출 16:7,8),다윗(시40:1), 욥도(약5:11), 바울도(고후 6:4-6) 인내하면 좋은 군사의 모습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영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파악(把握)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읽고 이해하여 어떻게 하면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연구(硏究)해야 합니다. 어떠한 환난과 역경도 참도 견디어 내야 합니다.
욥은 자식과 재산과 건강을 하루아침에 잃었어도 신앙의 연단 과정에서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런 연단 과정은 우리를 영적 사람으로 성장시킵니다. 사도 바울이 엡 6:12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자신을 성숙한 군사, 훌륭한 군사, 좋은 군사로 훈련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배후에 숨겨져 있는 줄로 믿고 결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고난을 극복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고난을 견디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세상이 너무 편리한 세상이라 컴퓨터에 한번 접속으로 앉아서 모든 정보를 수고하지 않고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편리하다 보니 안일해지고 연약합니다. 머리는 잘 돌아가지만 적용이 안되고 절제력, 투쟁심, 끈기 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 보완이 될 때 비로소 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습니다. 훈련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4.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4절).
본문 4절 상반 절에서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군사 훈련의 인간의 이기심을 없애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갯벌훈련을 통해 수치심, 자존심, 이기심 등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버리고 국가를 위해 새로 태어나게 하는 훈련과정이라고 합니다. 군사가 국가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시민으로서 일생생활을 합니다. 시민에게는 개인의 인격과 자유와 권리가 보장됩니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들어가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인격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군인은 국가의 안위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최우선시해야 해야 합니다. 군인은 입대와 함께 이와 같은 군인의 존재의미와 목적에 바쳐진 자라고 할 수 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꿈과 이상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일단 민간인이 군(軍)에 복무하게 되면 민간인으로서의 생활을 모두 포기(泡起)하고 오직 군(軍) 생활에만 전념(專念)해야 합니다. 군인은 고난을 받아야 될 뿐만 아니라 기꺼이 군인(軍人) 생활에 전력투구해야 됩니다. 훈련 잘 받고 의무에 충실한 군인은 절대로 군의 규율을 어기면서 함부로 외출, 휴가 등을 하지 않습니다. 탈영하지 않습니다. 또한 군인이 되면 가정을 떠나서 국가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현역 복무 중일 때 군인은 개인 사업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집안의 문제를 걱정한다거나 개인의 사생활에 연연할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국가는 군인의 먹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비용을 책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의 일꾼이 되려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성도의 길에 들어선 자는 무엇보다 경건(敬虔) 생활에 전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라면 마땅히 영적 전투에서 강력한 싸움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을 잘 받은 성도라면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가면서 자기 뜻대로 편한 대로하고, 자기 기분대로 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예수 믿지 않습니다. 성경을 자기 이치(理致)대로 사사로이 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자기의 일을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많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에녹이 자기의 일에 얽매였다면 하나님과 300년동안 동행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좋은 군사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자기의 일에 얽매여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군사로 부르심을 받는 성도라면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고난 핍박 시험 환난(患難)이 걷잡을 수 없도록 몰아쳐도 참고 견디며 자기 뜻 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신본주의 곧 믿음 본위로 살아가는 것입니다(히 11:6)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적 싸움에서 강력한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서 온전히 성령께 사로잡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성령께 사로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 성도들에게 적용됩니다. 일반 성도라고 해서 생활에 얽매여 주님의 일을 게을리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든지, 농사를 하든지, 장사와 사업을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가정생활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들이든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좋은 군사가 되려면 결코 우리의 생활에 얽매여서 안됩니다. 우리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불가능한 일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개인 생활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현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가정, 직장 및 사회 등에서의 통상적인 의무 들고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으로서 우리 자신에게 주어지는 의무들을 실행하고 양심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딤전 4:4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딤전 6:17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셨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에게 금지된 것은 모든 세속적인 활동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일생에 주어지는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삶을 사는데 완전히 무해(無害)한 것들이라 할지라도 영적 싸움에서 사탄에게 강력하게 대적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의 삶을 살게 하는데 얽매이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본문 4절 상반절에서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라"는 권면은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무엇을 우선 순위에 정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삶의 우선 순위가 주님을 위한 것에 집중되지 않는 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얽매이게 하고 미혹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지 간에 피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의 얽매이지 않고 만족할 만한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4절 하)
본문 4절 하반 절에서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가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군사는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합니다. 군인은 자신을 군사로 세운 지휘관에게 순종과 충성을 다함으로써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군사를 모집한 자는 군사에게 모든 생활비를 지원(志願)해야 하고, 또한 군사는 그 모집한 자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해야 합니다.
고대의 좋은 군사들은 국왕이나 지휘관에게 충성을 다하여 생명까지 흔히 내어 바쳤습니다. 군인의 생명(生命)은 바로 지휘 체계에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순종함으로서 그 주어진 임무를 충성스럽게 완수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국가는 군인(軍人)들에게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또한 개인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에 충동할 때는 서슴없이 국가의 이익에 복종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명을 바치더라도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삼아 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그분께서 분부하신 명령이 비록 힘들지라도 기쁨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계 2:10에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녕 이것이 주님의 군사된 자의 최고의 덕목(德目)이요, 최상의 영예(榮譽)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좋은 군사로 모집한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를 가리켜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를 부름을 받은 성도들은 우리를 좋은 군사로 불러 주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순교자적 자세로 충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갈 1:10에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후사를 기다렸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좋은 군사로서 모집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으되 정말 우리 자신을 모집하신 하나님께 기쁘게 하는 생활을 하는 자들이 얼마나 됩니까? 다른 사람을 언급하기 전에 지금 우리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저와 여러분은 우리를 만세 전에 선택하여 주시고, 시궁창 같은 죄악의 자리에서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에게 귀한 직분과 사명을 주신 주님께 얼마만큼 기쁨을 드리고 있습니까? 이것은 반드시 사명을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소요리 문답 제 1문답에 보면 "사람의 제일 목적이 무엇이뇨?라고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기본적인 일들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라는 명령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즐거워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는 절대적인 명령이요, 우리의 최대의 과제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0:31)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본문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부름 받는 저와 여러분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강한 모습으로 충성스럽게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인내하여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생활의 얽매이지 말고 오직 우리 자신을 모집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합시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면의 측면보다 더 강력한 명령의 측면에서 순종해야 할 것임을 명심합시다. 그리함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범사에 능력의 삶을 사는 남전도회원과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