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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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울을 이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이 말씀은 정말 로마서 전체를 대표하는 복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의'를 가리켜 우리는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16절에서 언급한 것이 복음의 출발점과 구원의 섭리를 설명한 것이라며 17절은 복음의 값과 그 결과를 설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결과를 언급하며 먼저 '하나님의 의의 나타나심'을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으며 또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의'란 헬라어로 '디카이오스'로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인격적 성품을 말합니다. 사랑이 도적 성품이라 할 때 '의'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택하신 백성과의 언약적 관계 속에 나타난 책임과 의무를 통괄한 인격적 기준을 말합니다.
구약의 시대에 있어는 '의'는 오직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인격으로 그의 백성들의 삶 속에 지켜져야 하는 율법적 의무와 책임이었으며, 공의(판단)을 이루는 토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부터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과 관련하여 이 땅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로서 종말론적인 판결과 관련된 법정용어로 언급되었습니다(마21:32, 벧후2:21). 따라서 '의'는 그리스도인를 기준이며, '거룩한 품성', '의의 열매', '의로운 행동' 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도덕적 용어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고전1:30)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의'의 속성을 언급하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은 정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어휘입니다. 영어성경은 'FAITH FORM FIRST TO LAST"(NIV)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또 현대어 성경은 17절을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쪽도 우리의 이해를 풀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오랜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실 로마서 1장17절의 강해는 5개월이 지난 오늘에서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부분에서 막혀서 2장부터 5장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하여는 확실한 해석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믿음을 위한 적용을 할까 합니다.
나는 여기서 '믿음에서 믿음메 이른다"는 말씀을 인간의 속성 속에서 해석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먼저 이해하고 신적 성품인 '하나님의 의' 의가 믿는 사람들 속에서 성취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아직 세상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며 죄의 속성을 가진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믿음'이란 일반적으로 'faith' 와 'trust' 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기록은 'faith'입니다. 그 이유는 'faith' (믿음)상태가 않되면 'trust'(신뢰)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faith'가 믿음의 대상과의 언약적 관계라면 'trust'는 믿음의 대상과의 관계적 신뢰상태를 의미합니다. 사실 'FAITH' 는 종교적 언어로서 신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인격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믿음(FAITH)은 그 신적 대상으로부터 허락된 상태가 아니면 믿음(FAITH)의 실체는 물론 '믿음'이란 단어의 의미 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내 앞에 올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출발선이며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 위한 통로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주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은 믿음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말할 때 그의 믿음의 지식의 정도에 따라 그의 말은 믿음의 출발의 주체가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내 앞에 올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는 출발점입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을 말할 때 'TRUST'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인격적 관계에서 형성된 언어로서 그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심임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그를 'TRUST'한다 하면 나는 그에게 나에 속한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faith가 단번에 얻어진 것이라 할 때 trust는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경륜을 따라 점진적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칭찬하신 믿음의 사람 로마 백부장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그 하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청을 받고 집 근처에 오신 예수께 하인들을 보내어 '나는 당신이 내집에 들어 오심을 감당치 못합니다.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인지, 또 어떤 분이신 지를 알고 있었으며 주의 말씀의 권위를 신뢰하였던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러한 믿음은 이미 그가 'faith'안에 들어 와 있었기 때문에 'trust'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어 의인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을 함깨 수용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구태어 구분하여 말하자면 첫번째 언급한 '믿음'(FATH)을 신적세계의 의식적 입문이라할 때, 뒤에 언급한 믿음'은 TRUST'의 관계 즉,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서, ~까지"란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의 시작과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17절 끝에서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기록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기록한 예언서는 로마서와 많은 의미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당시 악한 왕 여호야김의 치세에서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비해 악한 자들은 형통하고 있음을 기히여겨 하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하시며,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합2:4)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노래했습니다(합3:17).
주께서 우리가 믿을 때 우리를 의인이라 칭하셨습니다. 이것이 신학적 용어로 '이신칭의'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단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적용어와 인격적 관계의 의미가 포함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의 결실은 계시의 말씀 즉 복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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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바울을 이제 복음의 진리를 선포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 이 말씀은 정말 로마서 전체를 대표하는 복음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언급한 '의'를 가리켜 우리는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16절에서 언급한 것이 복음의 출발점과 구원의 섭리를 설명한 것이라며 17절은 복음의 값과 그 결과를 설명한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결과를 언급하며 먼저 '하나님의 의의 나타나심'을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으며 또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의'란 헬라어로 '디카이오스'로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인격적 성품을 말합니다. 사랑이 도적 성품이라 할 때 '의'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택하신 백성과의 언약적 관계 속에 나타난 책임과 의무를 통괄한 인격적 기준을 말합니다.
구약의 시대에 있어는 '의'는 오직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인격으로 그의 백성들의 삶 속에 지켜져야 하는 율법적 의무와 책임이었으며, 공의(판단)을 이루는 토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부터 '하나님의 의'는 그리스도를 믿음과 관련하여 이 땅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로서 종말론적인 판결과 관련된 법정용어로 언급되었습니다(마21:32, 벧후2:21). 따라서 '의'는 그리스도인를 기준이며, '거룩한 품성', '의의 열매', '의로운 행동' 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도덕적 용어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고전1:30)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의'의 속성을 언급하여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믿음에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은 정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어휘입니다. 영어성경은 'FAITH FORM FIRST TO LAST"(NIV)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또 현대어 성경은 17절을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쪽도 우리의 이해를 풀어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오랜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실 로마서 1장17절의 강해는 5개월이 지난 오늘에서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부분에서 막혀서 2장부터 5장에 이르기까지 기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하여는 확실한 해석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믿음을 위한 적용을 할까 합니다.
나는 여기서 '믿음에서 믿음메 이른다"는 말씀을 인간의 속성 속에서 해석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을 먼저 이해하고 신적 성품인 '하나님의 의' 의가 믿는 사람들 속에서 성취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아직 세상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며 죄의 속성을 가진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믿음'이란 일반적으로 'faith' 와 'trust' 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물론 성경의 기록은 'faith'입니다. 그 이유는 'faith' (믿음)상태가 않되면 'trust'(신뢰)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faith'가 믿음의 대상과의 언약적 관계라면 'trust'는 믿음의 대상과의 관계적 신뢰상태를 의미합니다. 사실 'FAITH' 는 종교적 언어로서 신적 대상에 대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인격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믿음(FAITH)은 그 신적 대상으로부터 허락된 상태가 아니면 믿음(FAITH)의 실체는 물론 '믿음'이란 단어의 의미 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내 앞에 올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출발선이며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 위한 통로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주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말은 믿음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말할 때 그의 믿음의 지식의 정도에 따라 그의 말은 믿음의 출발의 주체가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부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내 앞에 올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는 출발점입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을 말할 때 'TRUST'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인격적 관계에서 형성된 언어로서 그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심임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그를 'TRUST'한다 하면 나는 그에게 나에 속한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faith가 단번에 얻어진 것이라 할 때 trust는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경륜을 따라 점진적일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칭찬하신 믿음의 사람 로마 백부장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그 하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청을 받고 집 근처에 오신 예수께 하인들을 보내어 '나는 당신이 내집에 들어 오심을 감당치 못합니다.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인지, 또 어떤 분이신 지를 알고 있었으며 주의 말씀의 권위를 신뢰하였던 것입니다. 백부장의 이러한 믿음은 이미 그가 'faith'안에 들어 와 있었기 때문에 'trust'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어 의인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말씀을 함깨 수용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구태어 구분하여 말하자면 첫번째 언급한 '믿음'(FATH)을 신적세계의 의식적 입문이라할 때, 뒤에 언급한 믿음'은 TRUST'의 관계 즉,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에서, ~까지"란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복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의 시작과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17절 끝에서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기록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기록한 예언서는 로마서와 많은 의미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그 당시 악한 왕 여호야김의 치세에서 온전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비해 악한 자들은 형통하고 있음을 기히여겨 하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하시며,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 (합2:4)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고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노래했습니다(합3:17).
주께서 우리가 믿을 때 우리를 의인이라 칭하셨습니다. 이것이 신학적 용어로 '이신칭의'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단어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적용어와 인격적 관계의 의미가 포함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믿음의 결실은 계시의 말씀 즉 복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