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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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5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마1:18-25)
신앙 고백에 있어서 세 번째 고백은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 마리아 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말씀입니 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경로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중 예수님 의 생애를 소개하는 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사건을 기록하고 그의 성장하신 일까지 역사적 인 사실로 전하였습니다. 두 복음서에는 역사 속에 실존하신 예수님의 족보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나시게 된 탄생의 배경 을 자세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종으로 묘사한 마가복음에는 족보나 탄생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는 요한 복음 에도 족보의 이야기나 탄생의 기사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을 영원부터 계신 말씀(로고스,Logos)으로 묘사하였고, 예수님 의 탄생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요 114)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신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肉身)을 입고 오신 성육신(成肉身)의 사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두고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 고백문은 기독론(基督論) 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도리이지만 다른 한편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생물학적으로 문제 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남녀의 성(性) 관계없이 태어날 수 있을까?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하급 동물에게 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생물체의 세포 하나를 잘 배양시키면 암수의 결합 없이도 그 생물체를 그대로 복제 할 수 있는 이론이 실제화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서도 다음 세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합니 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결혼 관계 없이 도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고 과학이 증명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을 만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성경의 근본적인 의도 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에는 단순히 마리아 혼자서 예수님을 탄생시켰다고 말하지 않고 성령(聖靈)으로 잉태되어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도무지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연구의 대상 도 결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생물학적인 것과 전혀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생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 도 이 사실은 끝까지 신비로 남아 있고, 끝까지 예외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인 법칙은 반복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합 니다만, 예수님의 탄생은 반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우리의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신경은 믿음의 대상이 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며, 이러한 고백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이 해하려고 하는 것은 인본주의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학과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서 접근할 수도 없 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에 대하여 사도 신경에 나타난 신앙고백의 본질적인 의미를 함 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방법이 자연인(自然人)의 출생과 다른 것은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신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혈육의 관계 와 방법을 완전히 벗어나서 성령의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성령으로 나게 하신 것 입니다. 롬 1:3-4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으나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 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⑴ 성경적 증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되어 성령께서 역사 하신 일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탄생뿐만 아니라 세례 받으 실 때 성령께서 강림하셨고(마316) 시험받으실 때도 성령께서 이끌림을 받았으며(마4:1) 그의 공생애 3년 간 성 령께서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그의 사역을 뒷받침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당사자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의 증언은 하나처럼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는 사실을 증 거하고 있습니다. 마 1:20에는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사실을 알고 고민하고 있을 때 에 천사가 일러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 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눅 1:35에는 마리에게 천사 의 증언이 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 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께 서 구약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언하신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사야 7:14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 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이 땅위 오실 때에 남자를 알지 못했 던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영혼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에 의하여 시작된 것입니다(창 2:7) 그러나 하나님의 독 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심은 인간의 생명과 영혼의 창조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은 1:1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증거하 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원히 계신 그 말씀이 이제는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 입니다.
이런 뜻에서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곧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본 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즉 성육신 하시 기 전의 성자는 이미 성삼위의 영원한 상호 관계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 1:26과 “우리의 형상을 따 라....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말씀과 창 11:7에서“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 여...”라는 말씀은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사역과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자의 말씀은 [창조 기사]에 대한 말씀으로서 성부 는 의지를 발하시고, 성자는 말씀하시고 성령은 조명(照明)하심에 대한 말씀이고, 후자의 말씀은 성부는 의지(意志)를, 성자는 말씀 하시며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정신을 혼돈케 하시는 일을 하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삼위 하나님은 함께 태초 에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잠 8:22-3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시고”라는 말씀 은 삼위일체의 사역과 관계 속에서 근본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도 바울은 빌 2:6에서 “그는 근본 하 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라고 말씀하면서 예수님의 비하(卑下)의 신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님의 탄생은 예수님의 비하(卑下)의 신분에 대한 것이며, 예수님의 본체(本體)에 대한 말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⑵ 성령 잉태(孕胎)의 방법(方法)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신비로운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그의 완전한 인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육신의 몸으 로 입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인간의 방법이나 인간의 협조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이요 그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이루어지 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 나라의 원수인 왕이나 대통령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게 되 면 일반 시민들처럼 버스나 기차 같은 보통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특별 비행기나 특별 열차와 같은 교통 수단 이 동원되고 특별한 임무를 띄고 수행하는 요원들이 따르게 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서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시는 데는 초자연적인 특별한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으로 잉 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육신(肉身)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사도 요한은 1:14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오신 사실을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였 습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몸을 입었다(성육신)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했으 며,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묘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제시하신 것입니까?”하는 질문을 던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⑴ 성육신(成肉身)의 뜻
성육신(incarnation)이란 말은 라틴어로 「육신 안에 형성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 이는 영원하신 하나 님이 사람의 육신 안에 오셔서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요 1:14에서 소개된 것처럼 육신이 되신 말씀은 참 하나 님이요, 참 사람으로서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 재림 등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사역에 유감 없이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 습니다.
⑵ 성육신의 필요(必要)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의 성경은 한결같 이 성자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시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7:14)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 의 글 등은 다 예수님의 성육신에다 그 메시지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시 복음(原始福音)을 통하 여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창 3:15)
① 범죄한 인생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모든 인류는 죽음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에게 육신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범죄한 인생에게 죽음이 선고되었음을 일러줍니다(창2:17)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범죄의 대가는 다른 생명체 의 죽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대신 속죄(贖罪)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아래 있는 인생을 구속하기 위해서 천사나 동물 로 대신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책임을 맡기려 하신 것입니다. 롬 5:17에서 “한 사람 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2:14-15에서 “자녀들은 혈육 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 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전자(電 子) 인간도 아니시며 알 수 없는 이상한 인물도 아니신 것입니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 려 하심”(히 9:22)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방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계시를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육신을 입고 성자 예수님은 인간에게 나타내어 보일 수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정확한 수단입니다. 원래 계시(啓示)란 하 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에 관하여 나타내 보여 주시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본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합리적인 지식이나 감 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육체를 가지신 하나님 곧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 고 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요 1:18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4:9)
③ 예수님을 통하여 이상적인 인간성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과 그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엡 4130 예수님은 참 사람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간성의 표본이 되는 분이십니다. 첫 사람 아담은 타락한 인간성의 표본이었으나 둘 째 아담 예수님은 회복하는 참 인간성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간혹 인간을 추겨 올려서 신으로 만드는 일들이 있습니다. 가 령 일본에서는 천황을 현인 신(神)으로 불린 적이 있었고, 애굽의 바로나 로마의 가이사 등을 모두 신성의 현현(顯現)으로 취급하기 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리는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 인간의 모습으로 비하 (卑下)시킨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신화나 인간 숭배는 사람을 신격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되지만 숭배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이 자기 를 낮추시고 다른 사람을 섬겨 주는 것은 우리에게 희생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막 1045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참 인간의 모습과 이상적인 그리스도 의 가치관을 구현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3.동정녀의 몸에 나신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참 하나님께서 신성을 가진 신체로 인성을 덧입으신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성을 입으 시는 방법으로는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반드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셔야 했 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위해서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나게 하실 때 마리아의 몸을 빌리지 않고도 다른 이적으로 성육신이 되게 하실 수 있습 니다. 그렇지만 여인의 몸을 통하여 나게 하심으로서 그의 인성에 완전함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그 가 보통 인간들과 같은 육신의 성황을 가지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배고프심(마21:18),목마르심(요4:7),눈물 흘리심(요 11:35), 아픔과 고통(마21:18) 등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이 당하시는 모든 일들이 인간고(人間苦)의 현장에서 세상 죄를 지 고 가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 모습을 들어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무죄(無罪) 성결(聖潔)하신 분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히 415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 다. 만일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몸에 나시지 아니하시고 자연법에 따르는 정상적인 부부 생활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셨다고 한다면 그 도 똑같이 아담의 자손으로서 원죄를 지니고 나신 분이 됩니다. 따라서 만약 예수님께서 자연법에 의해서 출생하셨다면 예수님 자신 이 죄인 인고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 7:26-27에는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예수님 의 무죄성을 다른 제사장들과 같지 아니하여 단번에 우리의 속죄를 완성시켜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 성경에는 원래 「젊은 여자」라고 되어 있는데, 마태가 이것을 동정녀 (처녀)로 잘못 인용했 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이 「젊은 여자」란 말은 「처녀」이지 「결혼한 여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물 론 그저 나이가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약 구약 성경을 신약 성경과 관계없이 읽는다면, 그냥 「젊은 여자가 결혼을 해 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7:14에서는 분명히 이것이 하나의 징조 가 될 수 없음을 분명해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 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은 부인」이 아들을 낳는 것이 징조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삿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처녀가 아들 을 낳는다면 이는 보통이 아닐 수 없기에 하나의 징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사 7:14의 ꡔ젊은 여자ꡕ 는 처녀임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주장하기를 마리아가 처녀였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독특한 방법으 로 탄생했고 또 특별하신 것만 믿으면 됐지 마리아가 동정녀였는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의 의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중요하지 않 는다면 구태여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 1:16이 말씀의 보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게에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 가 나시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동정녀 탄생의 의미가 참으로 중요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 보면 예수님의 앞까지는 낳은 사람은 「요셉」이 아니고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쓸 때 예수님의 동정 녀 탄생을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음을 말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에 게도 이상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에게도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신앙고백에 들어오지도 않았 을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고백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철 학에 매우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헬랄 철학에 의하면 인간의 육체는 천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 를 입는다는 것은 그 당시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양성에 관한 문제를 일으켰습니 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가?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고 계시는가?” 아니면 “인성 을 가지고 계시는가?”에 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구절은 교회 사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고 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논리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신성 은 조금도 없다고 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은 완전히 하나님이시며, 인성은 조금도 없다고 하든지 이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사람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이라고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편으로는 음식도 잡수시고 고통 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음식도 잡수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또 한편으 로는 기적도 행하시고 병도 고치시고 물위로 걸어 다니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 다. 그러기에 주후 4세기경에 라오디게아의 「아폴리나리스」는 “성자 예수님은 몸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고 영혼 도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정신은 말씀 곧 로고스이다 즉 예수님은 몸과 영혼은 사람이지만 정신은 하나님이라”고 하였습 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주후 428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 한 논쟁은 끝나지 않고 「네스토리우스」라는 이단자는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도, 완전한 하나님도 아닌 병존하는 괴물 같은 존재라고 말 하고 있는 반면에, 「유티케스」라는 이단자는 “예수님은 보기에는 사람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일 뿐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 여 주후 451년 「칼케돈 종교회의」에 약 600명의 주교들이 모여서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성도 완전하고 인성도 완전하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고 또 완전한 인성을 가지고 계셔서 진정 한 하나님이시요, 또한 진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두 성격이 서로 혼동되어 있지 않고 하나가 다른 것으로 들 어가서 잠입하지도 않고, 그 기능에 따라서 서로 대조되어 있지도 않고 그리고 그 특성이 연합함으로써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것은 개신교는 물론이고 구교(천주교)도 정통 교리로 받아져서 그 후 1600년 동안 기독교의 공식 교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을 통하여 인류의 역사가 바뀌고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을 대할 때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기독교는 뒤죽반죽이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바보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반응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겸손하게 엎드려 ‘당신의 신비와 지혜와 능력과 본체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당신을 경배할 뿐입니다. 당신을 찬 양할 뿐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 모두 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력과 우리의 지능을 초월하시는 그리스도의 본체는 우리가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고백하고 찬양해 야 할 분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100%의 인성과 100%의 신성을 지니고 계신 분이셨고, 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징조 혹은 신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은 신앙의 대상이시지 논리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 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 1600년 이후 동안 지켜졌던 정통 교리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그분을 찬양할 뿐만 아 니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좁은 이성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 가두어 놓지 말고 성령으 로 잉태 하사 동정녀의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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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고백에 있어서 세 번째 고백은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 마리아 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말씀입니 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경로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중 예수님 의 생애를 소개하는 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사건을 기록하고 그의 성장하신 일까지 역사적 인 사실로 전하였습니다. 두 복음서에는 역사 속에 실존하신 예수님의 족보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나시게 된 탄생의 배경 을 자세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한편 예수님을 종으로 묘사한 마가복음에는 족보나 탄생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는 요한 복음 에도 족보의 이야기나 탄생의 기사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예수님을 영원부터 계신 말씀(로고스,Logos)으로 묘사하였고, 예수님 의 탄생을 가리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요 114)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 신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肉身)을 입고 오신 성육신(成肉身)의 사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두고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신앙 고백문은 기독론(基督論) 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도리이지만 다른 한편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적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생물학적으로 문제 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남녀의 성(性) 관계없이 태어날 수 있을까?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하급 동물에게 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생물체의 세포 하나를 잘 배양시키면 암수의 결합 없이도 그 생물체를 그대로 복제 할 수 있는 이론이 실제화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서도 다음 세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합니 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만약에 결혼 관계 없이 도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고 과학이 증명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믿을 만하다고 말한다면, 이는 성경의 근본적인 의도 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성경에는 단순히 마리아 혼자서 예수님을 탄생시켰다고 말하지 않고 성령(聖靈)으로 잉태되어 마리아가 아기를 낳았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도무지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연구의 대상 도 결코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생물학적인 것과 전혀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생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하더라 도 이 사실은 끝까지 신비로 남아 있고, 끝까지 예외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생물학적인 법칙은 반복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합 니다만, 예수님의 탄생은 반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우리의 신앙고백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신경은 믿음의 대상이 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며, 이러한 고백은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거나 이 해하려고 하는 것은 인본주의적인 신앙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과학과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신비에 대해서 접근할 수도 없 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에 대하여 사도 신경에 나타난 신앙고백의 본질적인 의미를 함 께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으로 잉태하신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방법이 자연인(自然人)의 출생과 다른 것은 그가 성령으로 잉태하신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혈육의 관계 와 방법을 완전히 벗어나서 성령의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성령으로 나게 하신 것 입니다. 롬 1:3-4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으나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 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신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⑴ 성경적 증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와 관련되어 성령께서 역사 하신 일이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탄생뿐만 아니라 세례 받으 실 때 성령께서 강림하셨고(마316) 시험받으실 때도 성령께서 이끌림을 받았으며(마4:1) 그의 공생애 3년 간 성 령께서 언제나 주님과 동행하며 그의 사역을 뒷받침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당사자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나타난 천사의 증언은 하나처럼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는 사실을 증 거하고 있습니다. 마 1:20에는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처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사실을 알고 고민하고 있을 때 에 천사가 일러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 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눅 1:35에는 마리에게 천사 의 증언이 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으로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 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께 서 구약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예언하신 것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사야 7:14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 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이 땅위 오실 때에 남자를 알지 못했 던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영혼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에 의하여 시작된 것입니다(창 2:7) 그러나 하나님의 독 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심은 인간의 생명과 영혼의 창조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은 1:1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증거하 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원히 계신 그 말씀이 이제는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 입니다.
이런 뜻에서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곧 하나님을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본 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즉 성육신 하시 기 전의 성자는 이미 성삼위의 영원한 상호 관계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창 1:26과 “우리의 형상을 따 라.... 우리의 모양대로...”라는 말씀과 창 11:7에서“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 여...”라는 말씀은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사역과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전자의 말씀은 [창조 기사]에 대한 말씀으로서 성부 는 의지를 발하시고, 성자는 말씀하시고 성령은 조명(照明)하심에 대한 말씀이고, 후자의 말씀은 성부는 의지(意志)를, 성자는 말씀 하시며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정신을 혼돈케 하시는 일을 하시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삼위 하나님은 함께 태초 에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앞으로도 계실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잠 8:22-3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셔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시고”라는 말씀 은 삼위일체의 사역과 관계 속에서 근본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도 바울은 빌 2:6에서 “그는 근본 하 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라고 말씀하면서 예수님의 비하(卑下)의 신분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 님의 탄생은 예수님의 비하(卑下)의 신분에 대한 것이며, 예수님의 본체(本體)에 대한 말씀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⑵ 성령 잉태(孕胎)의 방법(方法)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신 신비로운 방법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이 그의 완전한 인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에 육신의 몸으 로 입으셨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은 인간의 방법이나 인간의 협조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방법이요 그의 신비로운 능력으로 이루어지 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잉태하게 하신 것입니다. 한 나라의 원수인 왕이나 대통령이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하게 되 면 일반 시민들처럼 버스나 기차 같은 보통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특별 비행기나 특별 열차와 같은 교통 수단 이 동원되고 특별한 임무를 띄고 수행하는 요원들이 따르게 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서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시는 데는 초자연적인 특별한 방법이 다 동원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으로 잉 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육신(肉身)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사도 요한은 1:14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오신 사실을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하였 습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몸을 입었다(성육신)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오셔야만 했으 며, 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묘한 방법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제시하신 것입니까?”하는 질문을 던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⑴ 성육신(成肉身)의 뜻
성육신(incarnation)이란 말은 라틴어로 「육신 안에 형성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 이는 영원하신 하나 님이 사람의 육신 안에 오셔서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요 1:14에서 소개된 것처럼 육신이 되신 말씀은 참 하나 님이요, 참 사람으로서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 재림 등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사역에 유감 없이 그 능력을 행사할 수 있었 습니다.
⑵ 성육신의 필요(必要)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의 성경은 한결같 이 성자 예수님이 육신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시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사 7:14)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 의 글 등은 다 예수님의 성육신에다 그 메시지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원시 복음(原始福音)을 통하 여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창 3:15)
① 범죄한 인생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모든 인류는 죽음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에게 육신의 몸을 입혀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범죄한 인생에게 죽음이 선고되었음을 일러줍니다(창2:17)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범죄의 대가는 다른 생명체 의 죽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대신 속죄(贖罪)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아래 있는 인생을 구속하기 위해서 천사나 동물 로 대신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책임을 맡기려 하신 것입니다. 롬 5:17에서 “한 사람 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는 2:14-15에서 “자녀들은 혈육 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 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전자(電 子) 인간도 아니시며 알 수 없는 이상한 인물도 아니신 것입니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은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 려 하심”(히 9:22)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방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② 하나님의 계시를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육신을 입고 성자 예수님은 인간에게 나타내어 보일 수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정확한 수단입니다. 원래 계시(啓示)란 하 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에 관하여 나타내 보여 주시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본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합리적인 지식이나 감 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육체를 가지신 하나님 곧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 고 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요 1:18에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4:9)
③ 예수님을 통하여 이상적인 인간성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과 그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엡 4130 예수님은 참 사람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간성의 표본이 되는 분이십니다. 첫 사람 아담은 타락한 인간성의 표본이었으나 둘 째 아담 예수님은 회복하는 참 인간성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간혹 인간을 추겨 올려서 신으로 만드는 일들이 있습니다. 가 령 일본에서는 천황을 현인 신(神)으로 불린 적이 있었고, 애굽의 바로나 로마의 가이사 등을 모두 신성의 현현(顯現)으로 취급하기 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교리는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 인간의 모습으로 비하 (卑下)시킨 것입니다. 사람이 만든 신화나 인간 숭배는 사람을 신격화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되지만 숭배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이 자기 를 낮추시고 다른 사람을 섬겨 주는 것은 우리에게 희생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막 1045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참 인간의 모습과 이상적인 그리스도 의 가치관을 구현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3.동정녀의 몸에 나신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참 하나님께서 신성을 가진 신체로 인성을 덧입으신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성을 입으 시는 방법으로는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반드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셔야 했 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위해서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나게 하실 때 마리아의 몸을 빌리지 않고도 다른 이적으로 성육신이 되게 하실 수 있습 니다. 그렇지만 여인의 몸을 통하여 나게 하심으로서 그의 인성에 완전함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그 가 보통 인간들과 같은 육신의 성황을 가지고 계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배고프심(마21:18),목마르심(요4:7),눈물 흘리심(요 11:35), 아픔과 고통(마21:18) 등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이 당하시는 모든 일들이 인간고(人間苦)의 현장에서 세상 죄를 지 고 가신 하나님의 아들로 그 모습을 들어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무죄(無罪) 성결(聖潔)하신 분이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히 415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였습니 다. 만일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몸에 나시지 아니하시고 자연법에 따르는 정상적인 부부 생활로 말미암아 세상에 나셨다고 한다면 그 도 똑같이 아담의 자손으로서 원죄를 지니고 나신 분이 됩니다. 따라서 만약 예수님께서 자연법에 의해서 출생하셨다면 예수님 자신 이 죄인 인고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히 7:26-27에는 동정녀의 몸에서 나신 예수님 의 무죄성을 다른 제사장들과 같지 아니하여 단번에 우리의 속죄를 완성시켜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구약 성경에는 원래 「젊은 여자」라고 되어 있는데, 마태가 이것을 동정녀 (처녀)로 잘못 인용했 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이 「젊은 여자」란 말은 「처녀」이지 「결혼한 여자」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물 론 그저 나이가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만약 구약 성경을 신약 성경과 관계없이 읽는다면, 그냥 「젊은 여자가 결혼을 해 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7:14에서는 분명히 이것이 하나의 징조 가 될 수 없음을 분명해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 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젊은 부인」이 아들을 낳는 것이 징조가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삿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처녀가 아들 을 낳는다면 이는 보통이 아닐 수 없기에 하나의 징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사 7:14의 ꡔ젊은 여자ꡕ 는 처녀임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주장하기를 마리아가 처녀였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독특한 방법으 로 탄생했고 또 특별하신 것만 믿으면 됐지 마리아가 동정녀였는가? 아니었는가? 하는 것은 상관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 의 의도와는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이 중요하지 않 는다면 구태여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 1:16이 말씀의 보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게에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 가 나시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동정녀 탄생의 의미가 참으로 중요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 보면 예수님의 앞까지는 낳은 사람은 「요셉」이 아니고 「마리아」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쓸 때 예수님의 동정 녀 탄생을 대해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음을 말 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에 게도 이상했습니다. 그것은 요셉에게도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이 이상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신앙고백에 들어오지도 않았 을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고백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철 학에 매우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헬랄 철학에 의하면 인간의 육체는 천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 를 입는다는 것은 그 당시의 철학으로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의 양성에 관한 문제를 일으켰습니 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가?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은 신성을 가지고 계시는가?” 아니면 “인성 을 가지고 계시는가?”에 대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잉태 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구절은 교회 사적으로 볼 때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고 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논리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며, 신성 은 조금도 없다고 하든지 아니면 예수님은 완전히 하나님이시며, 인성은 조금도 없다고 하든지 이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가리켜 사람이라고도 하고 하나님이라고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편으로는 음식도 잡수시고 고통 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음식도 잡수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또 한편으 로는 기적도 행하시고 병도 고치시고 물위로 걸어 다니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 다. 그러기에 주후 4세기경에 라오디게아의 「아폴리나리스」는 “성자 예수님은 몸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고 영혼 도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정신은 말씀 곧 로고스이다 즉 예수님은 몸과 영혼은 사람이지만 정신은 하나님이라”고 하였습 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주후 428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 한 논쟁은 끝나지 않고 「네스토리우스」라는 이단자는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도, 완전한 하나님도 아닌 병존하는 괴물 같은 존재라고 말 하고 있는 반면에, 「유티케스」라는 이단자는 “예수님은 보기에는 사람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일 뿐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 여 주후 451년 「칼케돈 종교회의」에 약 600명의 주교들이 모여서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신성도 완전하고 인성도 완전하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성을 가지고 계시고 또 완전한 인성을 가지고 계셔서 진정 한 하나님이시요, 또한 진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두 성격이 서로 혼동되어 있지 않고 하나가 다른 것으로 들 어가서 잠입하지도 않고, 그 기능에 따라서 서로 대조되어 있지도 않고 그리고 그 특성이 연합함으로써 없어지지도 않는다”
이것은 개신교는 물론이고 구교(천주교)도 정통 교리로 받아져서 그 후 1600년 동안 기독교의 공식 교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것을 통하여 인류의 역사가 바뀌고 수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일을 대할 때 두 가지 반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기독교는 뒤죽반죽이며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바보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반응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 겸손하게 엎드려 ‘당신의 신비와 지혜와 능력과 본체는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당신을 경배할 뿐입니다. 당신을 찬 양할 뿐입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 모두 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력과 우리의 지능을 초월하시는 그리스도의 본체는 우리가 이해할 것이 아니라 고백하고 찬양해 야 할 분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100%의 인성과 100%의 신성을 지니고 계신 분이셨고, 그는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징조 혹은 신비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은 신앙의 대상이시지 논리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 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칼케돈 종교회의」 이후 1600년 이후 동안 지켜졌던 정통 교리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 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그분을 찬양할 뿐만 아 니라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좁은 이성과 지식 그리고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생각 속에 가두어 놓지 말고 성령으 로 잉태 하사 동정녀의 마리아에게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