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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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復活)과 영생(永生)”(요 11:25-26)
오늘은 사도 신경의 마지막 부분인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내가 믿사옵나이다 ”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이루어진 사역 가운데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무덤에서의 부활이 우리들에게 사죄와 영생 의 근거가 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은 십자가 보혈로 사죄(赦 罪) 받은 사람에게 장차 보장되어 있는 엄청난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죽음에서 다시 사는 부활이 있고 하늘나라에 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영생 복락(永生 福樂)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성도에게 이루어지는 최상의 소망입니다.
1. 사람이 죽은 후에 되어지는 일
인간의 사후(死後) 문제에 대한 궁금증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그 렇지만 어느 누구도 거기 따르는 명확한 대답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명(生命)에 관한 문제나 죽음에 관한 문제도 스 스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들인데 죽은 후에 관한 일이야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하나님께서 계시로 통하여 나타내 주신 성경이 아니고는 그 어디에서도 바른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⑴ 부활 자체를 부정하는 것
고대 희랍의 철학은 영혼(靈魂)의 불멸(不滅)을 주장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을 거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희랍의 수도 아테네에서 부활에 관한 도리를 가지고 전도하였으나 많은 무리들이 그의 말을 우습게 여겼습니다(행17:32)
“죽은 자는 다시 살지 못한다”고 한 이들의 사상은 현대에까지도 계승되어 일부 신학자들 중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근거 로 삼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의 도리가 인간의 상 식(常識)이나 과학적인 지식만으로 설명되게 곤란합니다. 부활은 그 자체가 하나님에 의하여 되어지는 신적인 것이며 신비로운 일이 기 때문입니다.
⑵ 다른 것으로 윤회(輪廻)된다는 것
사람의 영혼은 불멸(不滅)이나 육체는 죽어지면 다시 다른 것으로 태어난다는 이론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평소 행하던 말이 나 행동이나 생각했던 것들에 따라 죽은 다음 각종 동물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 전생(輪廻 轉生)을 반복하게 된다는 말합니 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⑶ 현세(現世)와 같은 모습으로 부활(復活)
고대 사람들 중에는 인간이 죽은 다음 부활하게 될 때 현재와 꼭 같은 모습으로 살아나서 지금 누리는 그 환경이 재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애굽인들은 자기 나라의 국왕 바로를 신격화하고 죽은 다음 그의 시체를 미아로 만들어서 썩지 않게 보존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가 다시 살아나서 지금과 같은 왕의 통치권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수많은 궁녀와 노예를 같이 묻어 주기도 하였 고 심지어 시체를 담은 금관 속에는 죽음에서 깨어난 후 왕궁까지 오는 동안 먹을 음식물까지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 상은 애굽뿐 아니라 근동 지방이나 우리 나라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일로서 최근 발굴되는 왕릉 속에 같이 묻어 둔 많은 부장품들 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상과 위에서 언급한 이런 내용들은 성경 계시와 상관없이 사후 문제에 대한 인간들의 관심을 표현해 놓은 여러 가지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⑷ 변화된 부활의 모습 - 신령체
기독교 부활의 논증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전서 15장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논란이 되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하는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 증거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시하였습니다(고전15:12)
두 번째 질문은 “죽은 자가 어떤 몸으로 살아나는가?”하는 문제인데 여기에 대하여 그는 신비로운 몸으로 다시 산다고 하였습니다.
장차 있게 될 성도의 부활은 지금과 같은 불완전한 상태의 몸이 아니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 수님처럼 시간과 공간이 제약을 받지 아니하고 죄에 오염되거나 병들지 아니하며 죽음 앞에 굴복하지 아니하는 완전한 모습으로 다시 살 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2. 성도의 부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하고 고백하는 것처럼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것을 최고의 소망으로 여깁니다.
⑴ 부활 신앙의 근거
성경은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게 되는 부활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요 11:25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의 도리가 인간이 가진 지식이나 권력 이나 재물에 의해서 얻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창2:7에 보면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을 만드실 때 진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명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대행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가 있었습니다(왕 상 17:22,왕하 4:34) 에스겔 37:1-10에 보면 에스골 골짜기를 가득 메 운 해골 떼들에게 생기 곧 바람을 불게 하여 다시 소생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신약의 경우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은 셋이나 살려 내신 일이 있고(막5:42,눅715,요11:44) 사도들도 기도하여 죽은 자를 살게 하였습니다.(행9:41,20:10)
이와 같은 일들은 장차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될 성도의 부활을 실증(實證)하는 그림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 활을 통하여 장차 있게 될 성도의 부활을 설명하였습니다. 고전 15:20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도의 부활에 대 한 첫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밭에 있는 곡식 중 첫 이삭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연 이어 다른 이삭들이 피어날 것을 알 수 있는 것 과 같은 뜻입니다.
⑵ 부활의 양상
① 예수님의 재림 때 되는 것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때는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님으로 재림하실 때에 되어지는 사건입니다. 살 전 416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 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먼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참여하게 된다고 하였습니 다. 이것을 가리켜 「첫째 부활」이라고 말했습니다(계20:5)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하게 되는데 이들은 곧 바로 심판을 받게 되므로 이를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계20:14) 결국 불신자들도 다시 살아나게 되지만 그 부활 은 곧 사망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② 신령한 몸으로 됩니다.
다시 살아나는 성도의 몸은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현세에서의 몸은 모두 병들거나 상처가 난 흔적을 가진 것으로 매우 불완전하지만 죽음에서 다시 살게 되는 부활의 몸은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몸이요 영광스러운 몸이 됩니다.
고전 15:52-54에 보면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 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 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3. 영원히 사는 것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땅위에서는 나그네로 살지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마13:44) 따라서 얼마 안되 는 세상에다 미련을 두지 말고 하늘나라 영원한 곳을 위하여 준비하는 삶을 살도록 당부하셨습니다(마6:19-20)
사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그네 생활이 불가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영원한 나라 곧 하늘 아버지의 집이 있습니 다. 요 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 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제한된 이 세상보다 완전하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가 있음을 믿습니다.
⑴ 영원에 대하여
「영원(永遠)」이란 시간적인 개념에서 하는 말입니다. 요 1:1-5에는 하나님이 천지창조 이전에 영원한 세계 가 있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요 17:5에도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 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시간」이란 하나님의 창조 때부터 시작됩니다. 이 「시간」의 연속을 「역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창조(創 造)가 시간의 시작이요 현세의 종말이 역사의 종식입니다. 「영원(永遠)」이란 역사의 이전과 이후를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주장하시 는 시간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란 제한 속에 살기 때문에 영원에 대한 개념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⑵ 생명에 대하여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고 할 때 이것은 「무한히 오래 사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 신앙고백이 무조건 오래도록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저주받은 생명의 처소인 지옥에도 죽지 않고 영원히 계속 된다고 말했습니다(막9:48) 오히려 「영원한 멸망」 또는 「영원한 사망」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현세에서 「생명」이라 고 할 때 이는 「영과 육이 합한 것」이라고 하며 또한 「죽음」을 말할 때는 「영과 육이 분리된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세계에서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말할 때 이는 사람이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된 상태에서 의 생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요14,146) 「영생(永生)」은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 도와 연합되어 영원한 시간 속에서 복된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영원」은 「하나님의 시간」이요,「생명」은 하나님의 본 질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뜻입 니다. 이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되어지는 축복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몸이 다시 살게 되었고, 이제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깨닫고 부활과 영생 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시작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시작되는 것처 럼 인생의 마지막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 복락」(永生 福樂)이 소 중하고 값진 것임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바라기는 지금까지의 신앙고백에 대한 의미를 고찰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엄청나고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진심으로 깨닫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신앙 고백적인 삶의 몸부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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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도 신경의 마지막 부분인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내가 믿사옵나이다 ”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이루어진 사역 가운데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무덤에서의 부활이 우리들에게 사죄와 영생 의 근거가 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은 십자가 보혈로 사죄(赦 罪) 받은 사람에게 장차 보장되어 있는 엄청난 특권이요 은혜입니다. 성도들에게는 분명히 죽음에서 다시 사는 부활이 있고 하늘나라에 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영생 복락(永生 福樂)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장차 성도에게 이루어지는 최상의 소망입니다.
1. 사람이 죽은 후에 되어지는 일
인간의 사후(死後) 문제에 대한 궁금증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그 렇지만 어느 누구도 거기 따르는 명확한 대답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생명(生命)에 관한 문제나 죽음에 관한 문제도 스 스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들인데 죽은 후에 관한 일이야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하나님께서 계시로 통하여 나타내 주신 성경이 아니고는 그 어디에서도 바른 대답을 찾을 수 없습니다.
⑴ 부활 자체를 부정하는 것
고대 희랍의 철학은 영혼(靈魂)의 불멸(不滅)을 주장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을 거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희랍의 수도 아테네에서 부활에 관한 도리를 가지고 전도하였으나 많은 무리들이 그의 말을 우습게 여겼습니다(행17:32)
“죽은 자는 다시 살지 못한다”고 한 이들의 사상은 현대에까지도 계승되어 일부 신학자들 중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근거 로 삼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을 부정하는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의 도리가 인간의 상 식(常識)이나 과학적인 지식만으로 설명되게 곤란합니다. 부활은 그 자체가 하나님에 의하여 되어지는 신적인 것이며 신비로운 일이 기 때문입니다.
⑵ 다른 것으로 윤회(輪廻)된다는 것
사람의 영혼은 불멸(不滅)이나 육체는 죽어지면 다시 다른 것으로 태어난다는 이론입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평소 행하던 말이 나 행동이나 생각했던 것들에 따라 죽은 다음 각종 동물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윤회 전생(輪廻 轉生)을 반복하게 된다는 말합니 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이론에 불과합니다.
⑶ 현세(現世)와 같은 모습으로 부활(復活)
고대 사람들 중에는 인간이 죽은 다음 부활하게 될 때 현재와 꼭 같은 모습으로 살아나서 지금 누리는 그 환경이 재현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애굽인들은 자기 나라의 국왕 바로를 신격화하고 죽은 다음 그의 시체를 미아로 만들어서 썩지 않게 보존하였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가 다시 살아나서 지금과 같은 왕의 통치권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수많은 궁녀와 노예를 같이 묻어 주기도 하였 고 심지어 시체를 담은 금관 속에는 죽음에서 깨어난 후 왕궁까지 오는 동안 먹을 음식물까지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 상은 애굽뿐 아니라 근동 지방이나 우리 나라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일로서 최근 발굴되는 왕릉 속에 같이 묻어 둔 많은 부장품들 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상과 위에서 언급한 이런 내용들은 성경 계시와 상관없이 사후 문제에 대한 인간들의 관심을 표현해 놓은 여러 가지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⑷ 변화된 부활의 모습 - 신령체
기독교 부활의 논증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전서 15장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논란이 되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고 하는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 증거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제시하였습니다(고전15:12)
두 번째 질문은 “죽은 자가 어떤 몸으로 살아나는가?”하는 문제인데 여기에 대하여 그는 신비로운 몸으로 다시 산다고 하였습니다.
장차 있게 될 성도의 부활은 지금과 같은 불완전한 상태의 몸이 아니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 수님처럼 시간과 공간이 제약을 받지 아니하고 죄에 오염되거나 병들지 아니하며 죽음 앞에 굴복하지 아니하는 완전한 모습으로 다시 살 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2. 성도의 부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하고 고백하는 것처럼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사는 것을 최고의 소망으로 여깁니다.
⑴ 부활 신앙의 근거
성경은 사람이 죽어도 다시 살게 되는 부활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요 11:25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사는 부활의 도리가 인간이 가진 지식이나 권력 이나 재물에 의해서 얻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합니다.
창2:7에 보면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을 만드실 때 진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명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대행한 사람들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가 있었습니다(왕 상 17:22,왕하 4:34) 에스겔 37:1-10에 보면 에스골 골짜기를 가득 메 운 해골 떼들에게 생기 곧 바람을 불게 하여 다시 소생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신약의 경우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은 셋이나 살려 내신 일이 있고(막5:42,눅715,요11:44) 사도들도 기도하여 죽은 자를 살게 하였습니다.(행9:41,20:10)
이와 같은 일들은 장차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될 성도의 부활을 실증(實證)하는 그림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 활을 통하여 장차 있게 될 성도의 부활을 설명하였습니다. 고전 15:20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도의 부활에 대 한 첫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밭에 있는 곡식 중 첫 이삭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연 이어 다른 이삭들이 피어날 것을 알 수 있는 것 과 같은 뜻입니다.
⑵ 부활의 양상
① 예수님의 재림 때 되는 것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때는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님으로 재림하실 때에 되어지는 사건입니다. 살 전 416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 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먼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참여하게 된다고 하였습니 다. 이것을 가리켜 「첫째 부활」이라고 말했습니다(계20:5) 그리고 그 다음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하게 되는데 이들은 곧 바로 심판을 받게 되므로 이를 가리켜 「둘째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계20:14) 결국 불신자들도 다시 살아나게 되지만 그 부활 은 곧 사망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② 신령한 몸으로 됩니다.
다시 살아나는 성도의 몸은 신령한 몸인 것입니다. 현세에서의 몸은 모두 병들거나 상처가 난 흔적을 가진 것으로 매우 불완전하지만 죽음에서 다시 살게 되는 부활의 몸은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몸이요 영광스러운 몸이 됩니다.
고전 15:52-54에 보면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 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 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3. 영원히 사는 것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땅위에서는 나그네로 살지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마13:44) 따라서 얼마 안되 는 세상에다 미련을 두지 말고 하늘나라 영원한 곳을 위하여 준비하는 삶을 살도록 당부하셨습니다(마6:19-20)
사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그네 생활이 불가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영원한 나라 곧 하늘 아버지의 집이 있습니 다. 요 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 를 예비하러 가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제한된 이 세상보다 완전하고 영원한 아버지의 나라가 있음을 믿습니다.
⑴ 영원에 대하여
「영원(永遠)」이란 시간적인 개념에서 하는 말입니다. 요 1:1-5에는 하나님이 천지창조 이전에 영원한 세계 가 있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요 17:5에도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 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말하는 「시간」이란 하나님의 창조 때부터 시작됩니다. 이 「시간」의 연속을 「역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창조(創 造)가 시간의 시작이요 현세의 종말이 역사의 종식입니다. 「영원(永遠)」이란 역사의 이전과 이후를 포함해서 하나님께서 주장하시 는 시간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란 제한 속에 살기 때문에 영원에 대한 개념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⑵ 생명에 대하여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고 할 때 이것은 「무한히 오래 사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의 신앙고백이 무조건 오래도록 사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이 저주받은 생명의 처소인 지옥에도 죽지 않고 영원히 계속 된다고 말했습니다(막9:48) 오히려 「영원한 멸망」 또는 「영원한 사망」이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가 현세에서 「생명」이라 고 할 때 이는 「영과 육이 합한 것」이라고 하며 또한 「죽음」을 말할 때는 「영과 육이 분리된 상태」라고 정의합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세계에서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말할 때 이는 사람이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된 상태에서 의 생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요14,146) 「영생(永生)」은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 도와 연합되어 영원한 시간 속에서 복된 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영원」은 「하나님의 시간」이요,「생명」은 하나님의 본 질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한다는 뜻입 니다. 이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되어지는 축복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몸이 다시 살게 되었고, 이제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살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깨닫고 부활과 영생 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시작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 시작되는 것처 럼 인생의 마지막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합니다. 그리할 때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 복락」(永生 福樂)이 소 중하고 값진 것임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바라기는 지금까지의 신앙고백에 대한 의미를 고찰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엄청나고 감히 측량할 수 없는 은혜에 진심으로 깨닫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신앙 고백적인 삶의 몸부림들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