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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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5
모슬렘 선교를 생각하십니까
유병국 선교사(WEC한국대표)
「최근까지만 해도 카자흐스탄은 구 소련 연방 국가 중에서 가장 선교에 대해 열려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은 그 지역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더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데 갑자기 그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들 중 아무 문제없이 사역해 오던 동료 선교사 몇 명이 지난 달 비자를 거부 당해 추방을 당한 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아래와 같은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년 1월부터 발효를 하게 될 새로운 외국인 체류 비자에 관한 법률입니다. 정부는 외국인들이 받게 될 새로운 타입 의 비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외국인들은 그 어떤 예외도 없이 노동허가를 받아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받 게 될 노동허가는 정부가 인정할 수 있는 업체에 고용된 자들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그전에 우리는 이미 정부가 외국인 비자 쿼 터를 9,000개 가지고 있는데 그 중 7,500개는 오직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할당한 것이 고 나머지는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정보도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모든 불법 체 류 외국인들을 전원 추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교에 이용되던 작은 회사들은 비자를 받는 일이 쉽지 않게 될 것 같습니 다. 그 뉴스 프로그램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체류 비자를 얻고 종교 활동(선교 활동)을 하는지 소상히 설명하고 있었습 니다. 이 프로에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모슬렘 지도자의 말은 이 법령의 의도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새로운 비자법은 모든 종교단체들의 사역자(선교사)들을 카자흐스탄에서 추방하게 만들 것이다.”」
이 글은 지난 10월 말, 이 나라에서 선교 초기부터 사역해 오던 어느 서양 선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입니 다. 우리는 이 상황을 대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왜 이런 나라들이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하 는 것입니다. 어쩌면 선교가 진행되는 모슬렘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중앙 아시아 몇 개 국가에서 는 이미 선교사들을 전원 추방한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여러 국가들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고 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있 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타지크스탄의 두산배에서는 한국 선교사가 개척한 고려인 교회에 모슬렘 교도에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서 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모슬렘 선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몇 가지 의 지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모슬렘 선교는 속전속결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슬렘이야말로 그렇게 쉽게 자기들의 종교를 포기하 고 기독교로 개종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조상 대대로 받아온 모슬렘 신앙이 그렇게 허술하지가 않다는 것이고, 기독 교로의 개종은 곧바로 저주요, 죽음이라는 인식의 사회 문화적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 간 이들 속에 들어가 이들의 문화를 삶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들의 언어를 내 언어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이들이 잘못 알고 이해하 고 있는 성경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고 알게 해 주는 일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조용히 자라 고 그 가지에 새들을 깃들이게 하는 겨자씨 운동 같은 것입니다. 토착인들이 성경과 복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리고 그들을 자기들 사회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진리를 가슴으로 전해 주는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모슬렘 선교는 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슬렘 선교가 전도 특공대에 의하여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 나눠주고 노방 전도를 통해서 단시간에 되어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친구로 만들고 난 후에 복음을 전하는 우정전도 (Friendship Evangelism)라는 말이 가장 적절히 쓰여져야 할 선교 대상이 바로 모슬렘들입니다.
둘째, 용어의 사용입니다. 모슬렘들은 역사적으로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복음화시켜야 할 대상들이지 만 힘이나 숫자로 정복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복음으로 안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공격해야 할 적(敵)이 아니라 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하여 ‘적’이라든지, ‘승리’라든지 하는 용어의 사용은 자제를 하는 것입니다. 모슬렘들 이 ‘친구’나 ‘형제’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모슬렘들은 어떤 면에서 ‘평화’라는 말을 가장 많 이 사용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호전적이고 과격한 모슬렘 단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모슬렘들은 평화를 사랑하 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종교보다 ‘평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종 교보다 ‘평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듯이 그들은 그들의 대화 서두 를 ‘평화’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평화’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모슬렘들은 자기 들 이외의 종교에 대해 ‘이방종교’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이방종교’로 취급을 받는 것은 도무지 용납을 하 지 못하는 독선적인 사람들입니다. 용어 사용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이슬람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이슬람 선교를 위한 ‘대회’입니다. 모슬렘들은 그 어떤 모 양이든지 자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대회’나 대중집회에 대해서는 너무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모슬렘 선교를 오 래 한 단체들이 소위 ‘모슬렘 선교 대회’를 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모슬렘들은 역사적으로 자기들이 기독교 연합군에 의 해 처절한 피해를 본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8세기(732년) 유럽을 향해 질풍노도 같이 진군하 던 모슬렘의 선교행진이 찰스 마르텔이 이끄는 기독교 연합군에 의해 프랑스의 뚜루(Tours)에서 격퇴를 당했던 참담한 패배를 역사 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슬람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1세기말부터 13세기초까지 무 려 100여 년동안 네 차례에 걸쳐 십자가 기를 앞세운 기독교와 십자군 전쟁을 통해 당시 성지에 살고 있었던 사라 센 이슬람들이 당했던 잔혹한 살육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모슬렘들에게 기독교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영원한 적이 된 것입니다. 기 독교는 그들이 치루어야 할 ‘지하드(聖戰)’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 이처럼 적대감을 표현하 는 종교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1948년 조상 대대로 이어온 자기들의 본토(本土)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팔레스 타인 토착민들에게 그 땅은 하나님이 자기 조상들에게 준 본토라는 시오니즘을 앞세운 이스라엘이 서방 기독교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팔 레스타인 원주민들을 그 땅에서 추방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일을 주변에서 지켜본 본 모슬렘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던 말은 ‘지하 드’였습니다. 많은 모슬렘들에게 기독교와 유대주의의 차별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기들을 개 종시키겠다는 취지의 선교 대회에 대해 저들이 성전으로 대항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여름 바로 이곳 카자흐 스탄에서 한국이 주축이 되고 세계에서 모여 온 수 천 여명의 기독교도들이 대규모 선교 축제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 한 한 ‘선교 대회’라는 용어대신 ‘평화의 행진’, ‘문화 축제’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우리 자신이 그 행사가 선교를 위 한 행사임을 알고 했듯이 온 세상의 모슬렘들 역시 그것이 기독교 선교 단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행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 다. 그 행사가 끝나자마자 모슬렘들이 보였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성전(聖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행사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 다고는 하지만 그곳에 있는 모슬렘 현지인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 라 중 복음에 대해 가장 열려있었던 카자흐스탄 정부가 최근 갑자기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서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비자법을 개정하려 는 저변에는 카자흐 본토인들인 모슬렘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넷째, 사실 이런 일은 언제고 일어날 일이기는 합니다. 어차피 기독교의 전파를 순순히 받아들일 모슬렘들은 결코 아니기 때문 입니다. 선교가 시작되는 지역마다 이런 조직적인 저항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처음 들어간 지역 치고 순교의 피를 흘 리게 하는 저항이 없는 곳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보고 있는 이 세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슬람의 벽은 높고도 험한 장벽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장벽이라 할 지라도 우리가 넘지 못할 장벽은 없습니다. 단지 시간과 지혜 가 필요할 뿐입니다. 모슬렘 선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것 보다 지혜롭고 강력하 며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슬렘 복음화의 중요성을 알고, 참여할 마음을 가진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의 힘을 모으 는 일입니다. 그 어떤 전략보다도 확실한 이 전략을 제쳐두고는 쉽게 얻어지는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슬람의 장벽을 무너뜨리 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역사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여리고 성안으로 돌진해 들어가서 되어진 일이 아니라 조용히 외곽을 돌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골방에서의 기도가 온 세상의 이슬람 장벽을 무너뜨리는 강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한 모슬렘 선교는 여전히 변죽만 울리는 일이 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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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선교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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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국 선교사(WEC한국대표)
「최근까지만 해도 카자흐스탄은 구 소련 연방 국가 중에서 가장 선교에 대해 열려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은 그 지역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더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데 갑자기 그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들 중 아무 문제없이 사역해 오던 동료 선교사 몇 명이 지난 달 비자를 거부 당해 추방을 당한 상태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며칠 동안 우리는 아래와 같은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 년 1월부터 발효를 하게 될 새로운 외국인 체류 비자에 관한 법률입니다. 정부는 외국인들이 받게 될 새로운 타입 의 비자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외국인들은 그 어떤 예외도 없이 노동허가를 받아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받 게 될 노동허가는 정부가 인정할 수 있는 업체에 고용된 자들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그전에 우리는 이미 정부가 외국인 비자 쿼 터를 9,000개 가지고 있는데 그 중 7,500개는 오직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할당한 것이 고 나머지는 최대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정보도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모든 불법 체 류 외국인들을 전원 추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교에 이용되던 작은 회사들은 비자를 받는 일이 쉽지 않게 될 것 같습니 다. 그 뉴스 프로그램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체류 비자를 얻고 종교 활동(선교 활동)을 하는지 소상히 설명하고 있었습 니다. 이 프로에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 모슬렘 지도자의 말은 이 법령의 의도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새로운 비자법은 모든 종교단체들의 사역자(선교사)들을 카자흐스탄에서 추방하게 만들 것이다.”」
이 글은 지난 10월 말, 이 나라에서 선교 초기부터 사역해 오던 어느 서양 선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입니 다. 우리는 이 상황을 대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왜 이런 나라들이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하 는 것입니다. 어쩌면 선교가 진행되는 모슬렘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중앙 아시아 몇 개 국가에서 는 이미 선교사들을 전원 추방한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여러 국가들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고 비슷한 계획을 세우고 있 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타지크스탄의 두산배에서는 한국 선교사가 개척한 고려인 교회에 모슬렘 교도에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서 8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모슬렘 선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몇 가지 의 지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모슬렘 선교는 속전속결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슬렘이야말로 그렇게 쉽게 자기들의 종교를 포기하 고 기독교로 개종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조상 대대로 받아온 모슬렘 신앙이 그렇게 허술하지가 않다는 것이고, 기독 교로의 개종은 곧바로 저주요, 죽음이라는 인식의 사회 문화적 현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얻기 위해서는 오랜 시 간 이들 속에 들어가 이들의 문화를 삶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들의 언어를 내 언어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이들이 잘못 알고 이해하 고 있는 성경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고 알게 해 주는 일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마치 작은 겨자씨가 땅에 떨어져 조용히 자라 고 그 가지에 새들을 깃들이게 하는 겨자씨 운동 같은 것입니다. 토착인들이 성경과 복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리고 그들을 자기들 사회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여주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진리를 가슴으로 전해 주는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모슬렘 선교는 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슬렘 선교가 전도 특공대에 의하여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 나눠주고 노방 전도를 통해서 단시간에 되어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친구로 만들고 난 후에 복음을 전하는 우정전도 (Friendship Evangelism)라는 말이 가장 적절히 쓰여져야 할 선교 대상이 바로 모슬렘들입니다.
둘째, 용어의 사용입니다. 모슬렘들은 역사적으로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복음화시켜야 할 대상들이지 만 힘이나 숫자로 정복해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복음으로 안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공격해야 할 적(敵)이 아니라 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이들에 대하여 ‘적’이라든지, ‘승리’라든지 하는 용어의 사용은 자제를 하는 것입니다. 모슬렘들 이 ‘친구’나 ‘형제’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모슬렘들은 어떤 면에서 ‘평화’라는 말을 가장 많 이 사용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호전적이고 과격한 모슬렘 단체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모슬렘들은 평화를 사랑하 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종교보다 ‘평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종 교보다 ‘평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듯이 그들은 그들의 대화 서두 를 ‘평화’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평화’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모슬렘들은 자기 들 이외의 종교에 대해 ‘이방종교’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이방종교’로 취급을 받는 것은 도무지 용납을 하 지 못하는 독선적인 사람들입니다. 용어 사용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셋째, 이슬람 선교를 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 중에 하나는 이슬람 선교를 위한 ‘대회’입니다. 모슬렘들은 그 어떤 모 양이든지 자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대회’나 대중집회에 대해서는 너무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모슬렘 선교를 오 래 한 단체들이 소위 ‘모슬렘 선교 대회’를 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모슬렘들은 역사적으로 자기들이 기독교 연합군에 의 해 처절한 피해를 본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8세기(732년) 유럽을 향해 질풍노도 같이 진군하 던 모슬렘의 선교행진이 찰스 마르텔이 이끄는 기독교 연합군에 의해 프랑스의 뚜루(Tours)에서 격퇴를 당했던 참담한 패배를 역사 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슬람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11세기말부터 13세기초까지 무 려 100여 년동안 네 차례에 걸쳐 십자가 기를 앞세운 기독교와 십자군 전쟁을 통해 당시 성지에 살고 있었던 사라 센 이슬람들이 당했던 잔혹한 살육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모슬렘들에게 기독교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영원한 적이 된 것입니다. 기 독교는 그들이 치루어야 할 ‘지하드(聖戰)’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기독교 이외의 종교에 대해서 이처럼 적대감을 표현하 는 종교는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1948년 조상 대대로 이어온 자기들의 본토(本土)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팔레스 타인 토착민들에게 그 땅은 하나님이 자기 조상들에게 준 본토라는 시오니즘을 앞세운 이스라엘이 서방 기독교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팔 레스타인 원주민들을 그 땅에서 추방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일을 주변에서 지켜본 본 모슬렘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던 말은 ‘지하 드’였습니다. 많은 모슬렘들에게 기독교와 유대주의의 차별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문에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기들을 개 종시키겠다는 취지의 선교 대회에 대해 저들이 성전으로 대항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지난 여름 바로 이곳 카자흐 스탄에서 한국이 주축이 되고 세계에서 모여 온 수 천 여명의 기독교도들이 대규모 선교 축제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 한 한 ‘선교 대회’라는 용어대신 ‘평화의 행진’, ‘문화 축제’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우리 자신이 그 행사가 선교를 위 한 행사임을 알고 했듯이 온 세상의 모슬렘들 역시 그것이 기독교 선교 단체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 행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 다. 그 행사가 끝나자마자 모슬렘들이 보였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성전(聖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행사가 좋은 결과를 가져왔 다고는 하지만 그곳에 있는 모슬렘 현지인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 라 중 복음에 대해 가장 열려있었던 카자흐스탄 정부가 최근 갑자기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서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비자법을 개정하려 는 저변에는 카자흐 본토인들인 모슬렘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넷째, 사실 이런 일은 언제고 일어날 일이기는 합니다. 어차피 기독교의 전파를 순순히 받아들일 모슬렘들은 결코 아니기 때문 입니다. 선교가 시작되는 지역마다 이런 조직적인 저항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처음 들어간 지역 치고 순교의 피를 흘 리게 하는 저항이 없는 곳은 없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보고 있는 이 세상의 그리스도의 교회들입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이 슬람의 벽은 높고도 험한 장벽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장벽이라 할 지라도 우리가 넘지 못할 장벽은 없습니다. 단지 시간과 지혜 가 필요할 뿐입니다. 모슬렘 선교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어떤 것 보다 지혜롭고 강력하 며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것은 바로 모슬렘 복음화의 중요성을 알고, 참여할 마음을 가진 온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의 힘을 모으 는 일입니다. 그 어떤 전략보다도 확실한 이 전략을 제쳐두고는 쉽게 얻어지는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슬람의 장벽을 무너뜨리 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역사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여리고 성안으로 돌진해 들어가서 되어진 일이 아니라 조용히 외곽을 돌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골방에서의 기도가 온 세상의 이슬람 장벽을 무너뜨리는 강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한 모슬렘 선교는 여전히 변죽만 울리는 일이 될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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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선교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