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회관



종교개혁자들의 말을 빌리면 교회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며 둘째, 성례전이 올바르게 집행 되는 곳이다.

복음이 순수하게 집행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나라 운동에 교회가 적극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하 며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례전을 통한 사죄의 확신과 구원에의 감사를 가지고 교회 구성원들이 살아있 는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1. 행함이 있는 주체
인간의 역사를 가치 추구라는 면으로 크게 세 구분하면 신화(mythos)와 종교(religion) 그리고 학문 (science)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시대는 자신들이 갖는 각기의 특색이 있다. 생각과 사고와 행동이 각기 전 혀 다르다는 것이다. 

신화적 시대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매우 관념적이다. 그래서 그 언어는 신비적이며 주관적이다. 학문적인 시대의 언어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그리고 실험 실증적이다. 모든 것이 이곳에서는 통계에 의한 수치로 나타난다.
종교적인 시대에서는 양자를 다 수용한다. 어느 때는 양자의 언어를 다 거부 할 때도 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인 언어에서 중 요한 것은 절대자 신의 뜻을 찾기 위한 신앙생활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신의 뜻을 찾기 위해 신비적인 요소가 필요하며 어느 때는 남 을 인식시키기 위해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의 시대에서 인식의 주체와 대상을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신화적인 시대에서는 인간이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객체화 시켜서 신들의 소리를 들으려한다. 위엄을 가진 높은 산, 바 다, 강, 맹수 그리고 모든 자연이 신이다. 신화적인 순간이 되는 그때 주체인 인간과 객체인 사물이 전도된다는 말이다. 이것 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객체화된 주체가 주체화된 객체의 말을 들으며 심지어 자신을 비하 시켜 굴종하는 모습까지 보이는 현상 이 나타난다. 오늘날도 원시 종교는 이러한 형태를 갖고 있다. 

학문적인 시대에서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사고와 합리적인 판단이다. 이곳에서의 주체인 인간은 주체로서 머물며 객체인 사물 은 대상일 뿐 이다. 모든 것이 실험 실증적이며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실적인 것이다. 주체와 객체의 전이는 오직 주체가 허 용 할 때 만 일시적으로 가능하다.

종교적인 시대에서의 주체는 신이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주체이시다. 그리고 객체는 모든 피조물이다. 그분의 섭리 와 뜻 안에서 피조물들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서의 인간은 하나의 위임을 받은 주체로서 그 역할을 감당한 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은 하나님과 인간의 간섭과 보호를 받으며 움직이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 자연의 중간 매체로서 그 역할 을 감당한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전달자요 자연의 편에서 보면 자연을 대변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자이 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인간의 전반적인 삶 속에 나타나는 각 시대적인 특색들이 갖는 주체의 역할이 그 특색을 잊어가고 있다 는 데 있다. 내속에 들어있는 신화적인 시대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고 학문적인 목소리를 주장하게 되면 각기 다른 결과를 얻 게 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기독교적으로 말할 때 신의 뜻을 추구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연결고리를 끊고 사고와 행동을 한다면 그 결과 를 행함이 있는 주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반문이 나오게 된다. 

2. 열려진 교회 
교회가 교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도록 그 기능을 다 하게 될 때 열려진 교회 (the&nbspopened&nbspchurch)가 되는 것이다. 이때 교회는 주님이 원하시고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 는 교회에로의 방향 전환이 될 것이다.  이상적인 교회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속해있는 조직사회의 경제와 정치와도 유기적인 관 계를 가지고 상호 보완적인 입장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조직체로서 교회는 기업과 국가와 함께 인간 삶에 필요한 물건들을 생산하 고 분배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조직사회에서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사안은 교회가 폐쇄적 이어서 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교회 안에서 "나만, 우리만" 이라는 이기적이며 닫힌 사고로 교회가 스스로 사회와 담 을 쌓고 이 사회와 상관없는 분리된 조직과 폐쇄적인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성스러움만을 드러 내려하며 밖에서는 교 회를 향하여 담을 쌓게 된다. 교회는 일반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갖도록 교회 스스로가 자신의 문 을 스스로 열어 가야하는 것이다.

이일을 구체적으로 시행하기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사회가 무엇이며 교회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재확인하고 기독교가 교회라고 하 는 조직 안에 머물지 않고  한 지역사회와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예를 통해 이해를 돕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경제와 정치 그리고 교회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사회는 경제와 정치 그리고 종교로 구분되어 그 기능을 다 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생산과 이윤을 추 구하며 부를 축적 하여 국가가 부강 해질 수 있도록 국민의 총생산액(GNP)을 높여야 한다. 정치는 국민의 평화와 안전의 문제 를 전담하는 것이 주요 사안이다. 공권력을 사용하여 기업이 독점하지 못 하도록 하며 국민들의 경제생활에서 빈부의 격차를 조절 하 는 것이 그 주요과제이다. 동시에 국민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 여러 가지의 법들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은 정치 가 해야 할일이다. 종교는 가치와 윤리의 문제를 조절해야 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 세 조직이 기능을 다 할 때 상호 유기적이 고 건강한 사회가 형성되어 간다. 

경제가 정경유착이라는 먹이 사슬을 통해 정치에 간섭을 한다든지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주어진 공권력을 남용하거나 제대로 행사하 지 못함으로 인하여 독재적으로 변형된다거나 무능한 정부가 된다면 국민의 주권이 짓밟혀 지고 흐려지는 것은 명약관하한 일이다. 특 히 종교가 이윤을 추구 한다거나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곳이 된다면 교회 구성원들의 신앙의 문제는 전혀 다루어지지 못하고 세속적 인 단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교회가 교인들의 신앙적 문제와 삶을 전담하는 기관이 될 때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성스러움을 스스 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와 경제는 인간의 외적인 면을 지배하며 종교는 인간의 내적인 면을 지키는 것이 라 고 말 할 수 있다.  

기독교 국가들인 유럽 사회는 기독교라고 하는 한 조직이 국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생활 문화적 인 면과 국민적 정서에 기독적인 것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들은 구성원들의 개인주의적 신앙 태도와 교회라 는 울타리를 뛰어 넘어 사회에서 신앙적 일들을 잘 하고 있다. 현재 독일의 대통령인 요한네스 라우 (Johannes&nbspRau)는 평신도로서 기독청년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경건한 신앙인이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면 독일의 통일에 교회가 했던 일들은 매우 많다. 평신도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독일의 통일을 대비한 구체적 인 기도의 모임이 전 교회적으로 있었으며 교회가 바자회나 헌금을 하여 독일 교회의 보수와 재건에 막대한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 았다. 또한 교회를 중심으로 동독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서적을 보냈으며 평신도들을 초청하여 통일을 위한 의견을 교환하고 상호방문 을 했으며 청소년 교류를 확대하는 것을 보았다. 다양한 신앙적 노력과 접촉 그리고 교류를 통해 독일교회는 통일을 앞당겼다고 보 여 진다.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 동독 라이프찌히 교회에서의 화요 예배와 촛불 평화 행진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매주 평화스럽게 진행되었 으며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베를린의 두터운 장벽이일시에 무너졌다는 말을 독일 친구로부터 들었다. 한국의 통일도 이러한 노력이 있 을 때 그 시간이 단축되리라 생각한다.      

현재 독일은 국민의&nbsp90% 이상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친 교회적인 국가이다. 국가의 모든 공휴일이 노동 절과(5월1일) 독일이 통일된 날(10월&nbsp3일)을 제외하고 기독교와 연관 되어있다. 물론 교회를 정기적으로 이용하 는 사람들의 수는 약&nbsp10% 미만이지만 교회는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 정치, 경제 이상으로 이들의 삶을 풍요하 게 하고 있다. 주일날 국영방송에서 방영되는 기독교의 예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회의 예식을 안방에 까지 전파를 통해 전달되고 있 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기독교적인 즉 기독교를 상징하는 것이 교회 안의 울타리 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를 뛰어 넘어 사회와 연관되어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기독교적인 문화가 형성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기독교는 정 치 경제 사회 등의 여러 분야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 우호적인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교회 가 있는 자리에서 더 지역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역으로 사회의 영향을 받아 가고 있다는 점이 우리 한국 교 회가 반성해야 될 것들이다. 이것이 독일 교회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차이가 아닌 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도 사회의 한 조직체로서 교회가 처한 사회와 국가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종교와 정치와 경제 이 세 가지가 긴밀 한 연관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될 것이다. 교회가 정치와 경제가 하는 일에 협조하고 정신적으로 도움 을 주며 경제와 정치는 종교를 보호하고 가르침을 받는 가운데에서 그 기능을 잘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교회와 사회 가 분리되는 괴리 현상을 방지 하고 열려진 교회로서 이상적인 교회 상을 이 사회에 보여 주며 교회는 영적인 지도력을 발 휘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