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성경적 제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신적인 기관(Divine&nbspInstitution)이 있다면 그것은 가정과 교회이다. 교회 는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이 땅에 보내 주심으로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었지만 가정은 구약시대 하나님께 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에덴 동산에서 인간에게 최초로 허락하신 것이다. 교회는 가정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가정은 우리의 신앙 생활의 근본적 모체가 되는 축복의 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가정들이 갖가지 이유들 때문에 깨어져 가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때로는 가계에 흐르는 죄의 유 전 때문일 수도 있고(출20:5), 자라난 환경 속에서 받은 상처 때문일 수도 있고, 실망되고 불만스러운 결혼 생활 때문일 수 도 있고, 요즘처럼&nbspIMF 시대를 맞아 경제적인 요인 때문에 불화를 겪는 경우도 있고, 자녀들의 문제나 시가나 처 가 등 주위 친척들과의 갈등 때문일 수도 있고, 갖가지 주위의 시험과 유혹 때문에 가정이 불행에 빠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래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느 작가는 결혼 생활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20대에는 행복의 꿈에 부풀어서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에 대해 실망을 느끼며 환멸을 참으며 살고
40대에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지못해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되니까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고
60대에는 서로 안 됐다 생각되어 가엾어서 살고
70대에는 지금까지 참고 살아준 것만 해도 고마워서 산다.

과연 우리의 부부 생활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우리는 불행했던 부부의 행복을 회복하기 위해 정신(심리) 치료나 가족 치료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가정의 문제 해결 을 위해 갖가지 노력을 다 기울여 왔다. 물론 이러한 치유의 과정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 가정의 보 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성경적 부부 관계의 회복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 부부 관계의 회복이 없이는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 과 같기 때문이다(마7:24-27). 

▶ 그러면 본 소고를 통하여 성경에서 말하는 결혼생활과 부부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제목에 대한 바른 해답을 찾기를 원한다.

I. 그리스도인의 결혼관
죤 스토트 목사는 "현대 사회 문제와 기독교 답변"이라는 책 중에 제14장에서 하나님께서 결혼 제도(結婚制度), 국가 제 도, 교회 제도를 주셨다. 결혼제도(結婚制度)는 결코 우연의 소산물이 아니다. 또한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창시 하신 것이다.  최초의 결혼식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에덴 동산에서 거행되었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을 거 듭 거듭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결혼하신 적이 없으셨지만 분명히 결혼을 인정하셨으며, 최초의 기적을 행하신 것도 혼인 잔치에서 였다.(요2:1-11) 그리고 후에는 두 사람이 부모를 떠나 평생 한 몸을 이루는 성경적인 결혼의 이상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막 10:5-9)  

성경은 결혼을 복되고 귀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이러한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重要性)을 인식하고 성경적인 가정관을 갖아야 한다.  
첫째, 결혼과 가정의 근원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창세기의 처음 몇 장은 결혼의 기준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남자와 여자의 본질에 근거한 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 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라고 기록되어 있다.
"형상"(the&nbspimage)은 더 깊고 영적인 본질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것은 인격을 가리키며 인격은 의 사 소통을 필요로 한다. 남자와 여자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자기 성취를 발 견하며 인간적인 수준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남편과 아내로서 서로 가장 깊고 완전한 의사 소통을 발견한다. 또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 안에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평등성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 이 될 때 더 깊어지고 의미 있어 진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  여자의 창 조만이 남자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남자와 여자는 육체적인 친밀과 종족번식을 위해 또한 정서적 심리적 인 면에 있어서 서로 적합하다. 남편과 아내는 가치와 존엄성에 있어서는 같으나 매우 중요한 면에 있어서는 다르다.  그들은 서 로 보완하고 보충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교제를 갖고 남녀 서로가 교제를 갖게 하기 위해 자신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또한 결혼 의 독특성이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여자와 남자를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가정을 갖게 하신 것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결 혼 준비교육의 핵심적인 목표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결혼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분명히 알아야 한다. 
결혼제도(結婚制度)를 주신 목적은 ① 종족 번성이다. 즉 생육하고 번성케 하기 위함에 있다. (창&nbsp1:28)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후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창 1:28)고 하셨다. ②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주신 것이다. (창&nbsp220) 즉 결혼의 목적은 이해와 사랑과 동반의 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창&nbsp2:18은 "사람 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예수와 바울은 특정되게 창1:27에서&nbsp28절을 언급하 고 있지 않으나 창2:24을 인용하고 있다.(마19:5,막10:7,고전6:16,엡5:31) 종족번식이 분명하게 가정되고 있으나 강 조점은 결혼과 가정의 관계적인 측면이다.  
부부는 하나됨 가운데서 성장해야 하며,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 남편은 종-인도자(Servent-Leader)가 되어 야 하며, 아내는 동반자-열애자(Follower-Lover)가 되어야 한다.  ③ 서로 한 몸 되게 하심으로 자기 헌신적 사랑 의 호혜적(互惠的) 위탁을 하신 것이다.(창&nbsp224)고 말하고 있는데, 이에 구체적이다. 즉 결혼의 기능 또는 목적 은 성적충동의 합법적 표현이다.(고전7:8-9) 결혼에 있어서 성(sex)은 자녀 출산을 위할 뿐만 아니라 결혼 관계를 풍성하 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셋째로, 결혼의 본질이 무엇임을 알아야 한다. 
[마스톤](Maston)은 결혼 또는 가정은 독특하게 기독교 질서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질서에 속해 있다고 말한 다. 즉 결혼과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법칙은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의 결혼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결혼의 본질에 대한 하나님 의 생각은 창2:24에 잘 드러나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어다." 이 말씀 에서 우리는 결혼의 본질적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①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 될 것을 명료하게 이야기한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가장 깊은 육체적 영적 연합을 제공한 다. ②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배타성(exclusiveness)을 내포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 나&nbsp..."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부부관계는 다른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일생동안 결합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육체적으로 하나될 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 가되며, 이 하나됨은 깨어져서는 아니 되며, 이 결합은 결혼 전이나 후에 어떤 다른 사람과의 유사한 관계를 배제하는 것이다.

넷째로, 가정의 본질적 기능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볼 때 가정의 기능이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기능의 변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본질적인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결혼 준비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레이스 부쉬넬] (Horace&nbspBushnell)은 가정을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언약관 계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총의 매개" (a&nbspmeans&nbspof&nbspGod's&nbspgrace)로 보았다. 즉 하나님의 은총 이 가정의 개체들에게, 특별히 자녀들에게 전달되는 매개로서 가정을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하나님의 은총의 매개 역할을 하 기 때문에 가정은 언약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에밀 부르너](Emil&nbspBrunner)의 정의이다.  부르너 는 가정을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주어지며, 하나님의 창조역사 안에 동참하는 신비적 연합이며 그 연합 속에서 사랑의 질이 경험되 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the&nbspDivine&nbsporder&nbspof&nbspcreation)로 보았 다.  즉 가정은 곧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서 움직여져야 함을 의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가정(家庭)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는 가정을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이루어지는 언약공동체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동참함으로 신 비적 연합을 체험하는 자리요, 용서와 화해로 치유가 경험되고 복음의 경험과 재현이 일어나는 구속적 세포로 보고 있다는 것이 다.  그리고 가정은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파이퍼](Otto&nbspA.&nbspPiper)는 결혼에 대하여&nbsp5가지로 말하고 있다.  
① 평생의 지속&nbsp- 결혼을 통한 성적 결합은 두 사람의 생활에 끼치는 독특하고도 파괴될 수 없는 효과 때문에 평생을 통하여 지속하게 된다.
② 친교의 생활&nbsp- 결혼은 가정과 함께 속해 있다.  부부의 완전한 결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부부 자신들의 공동생활인 가정이다.
③ 상호 관계성&nbsp- 육의 결합은 배우자에 대한 책임과 의무와 관계되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이해된다.
④ 일부일처주의(一夫一妻主義)&nbsp- 결혼은 평생 일부일처주의 에서만 충분한 의미를 달성한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결혼상과 교회와 그리스도의 결혼 상에 비친 사상에서 일부일처의 우월한 존엄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⑤ 근친결혼의 금지&nbsp- 일정한 촌수와 혈족, 친족의 결혼이 금지된다.

따라서 결혼은 곧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며 평생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꽃 피어나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또한 결혼의 중요하고 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부부의 친밀한 관계가 육과 정신적인 관계 속에서 긴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 의 관계처럼 부부의 관계도 신뢰와 충성을 전제로 한 일부일처의 관계로서 그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 그러면 결혼에 대한 성경은 무 엇이라고 가르치고 있는가?
 
⑴ 구약의 가르침(창&nbsp2:24)
성경 창&nbsp2장&nbsp24절은 결혼(結婚) 생활은  ① 배타적인 것이며(남 자&nbsp.... 그의 아내),②  공적으로 인정되는 것이고(부모를 떠나.....),③ 영구한 것이다(아내와 연합하 여......). ④ 또한 성적 관계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 한 몸을 이룰지어다)임을 말씀하고 있다.  즉 결혼이라는 것은 한 남 자와 여자간의 ① 배타적(排他的)인 이성적 언약으로  하나님에 의해 인정되고 재가된 것이며, ② 양친들을 공공연하게 떠나는 일 이 선행되고, ③ 성적 결합 속에서 성취되며, ④ 영구적인 상호 부양적 동반 관계를 수반하고 ⑤ 정상적으로 자녀의 선물에 의해 절 정에 이르는 것이다.
                                                  ① 떠나라 (공적, 법률적인 면, 혼인)
떠나지 않는 결혼은 없는데, 이것은 결혼을 성립시키기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공적인, 법률적인 행동을 표시하는 것이 다. 오늘날에는 떠나는 법적인 행동을 결혼식장에서의 공적인 발표와 혼인 신고서에 의해 대치되고 있다. 결혼식(結婚式)이 없이는 결 혼이 있을 수 없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결혼은 결혼하는 당사자 두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족을 대표하 는데, 그가 속한 사회와 국가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결혼식은 큰 잔치로써 축하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현실적이고, 진지합니다. [떠나라]는 것은 행복을 위해 치러야 할 지불금이다. 탯줄이 끊어지지 않는 갓난아이가 자 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혼은 실제로 떠나지 않을 때에, 곧 그 가족으로부터의 분명한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자랄 수도 없 고, 발전할 수도 없다. 그러나 [떠난다]는 것은 [부모를 버린다]라는 뜻이 아니다. [떠난다]라는 것은 의존 관계에서 떠나는 것 이지, 노(老)부모님을 부양하고 효도하는 일까지 중단하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부모 공경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 는데, 그 약속은 축복과 장수이기 때문이다.(엡&nbsp6:1-3)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되 친부모와 처부모, 시부모를 차별 없이 공경해야 한다. 여기에 차별이 있으면 부부사이에 섭섭한 생각 이 들게 되며, 신앙생활에도 은혜롭지 못한 일이 생겨 상처를 입게 된다. 또한 떠남으로 인하여 부모와 자녀 사이에 사랑이 싹트 고 자라서 풍성한 안식처를 낳게 될 것이다. [떠난다]라는 것은 외적, 내적인 떠남을 의미한다. 이것을 통하여 여자의 권리를 보호 받게 된다. 그것을 통하여 공동 협력을 공동 목표로 하게 만들어 준다.  

② 연합하라(개인적인 면, 사랑)
이것은 개인적인 면을 뜻한다. 그런데 [떠나라]는 것과 [연합하라]는 것은 히브리어로 [딱 붙이다(Stick),풀로 붙이다 (paste), 교착시키다(Glue)]라는 뜻이다. 즉 남편과 아내는 마치 두 장의 종이를 아교로 붙여 한 장으로 만드는 것과 같 이 결합되어 있다.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운 사이이다&nbsp.
예) 서구인의 사고방식: 출장 갔다가 돌아오면 제일 먼저 아내에게 뽀뽀해 주고, 그리고 나서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여 준 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거리를 가면,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거리를 활보하지만, 서구인들은 부부가 손을 잡 고, 아이들은 사이드에 놓고 걸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연합한다]라는 것은 [사랑한다]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 사람에게 충실한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남편의 장점이 아 내의 약점을 보완하고, 아내의 장점이 남편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즉 연합한다는 것은 상호보완적 사랑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 다. 

그런데 모든 연합의 기초는 [십자가]라야 한다. 십자가는 +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되게 하였고, 나와 너 특히 남 자와 여자가 하나되게 하였고, 둘이 연합하여 하나되게 하였다.&nbsp1+1=&nbsp2 의 수학적인 공식이 아니 라,&nbsp1+1= 새로운 하나가 되는 것이다.

③ 한 몸을 이루라(육체적인 면 ,Sex)
이 육체적인 면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고, 부정한 심지어 음란한 것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부모도 육체적인 면을 가르치기 를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고, 이야기해야만 된다 고 말하고 있다. [육체적인 결합]은 결혼의 합법적인 만큼 소중하며, 하나님과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몸을 이루라]는 것은 육체적인 결합 이상을 뜻하고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이 그들의 몸이나 물질적인 소 유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 사상, 감정, 즐거움과 교회, 소망과 두려움, 성공과 실패까지도 함께 나누는 것 을 뜻하는 것이다.(고전&nbsp7:4)
부부의 성(性) 생활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이 원리들을 통하여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였으 며, 땅에 충만케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스스로 고자된 자도 있으나 (마&nbsp19:12) 그 외의 모든 사람은 이 원리에서 예외일 수 없다.
결혼한 부부는 성교를 통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믿음에 기초하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지만, 성적 결합으로 하나되는 역사 가 완성되는 것이다. 부부는 피차 자기 침소를 깨끗이 하며 ( 히13:4) 성(性)생활을 즐겨야  한다. 성교도 부부간의 사랑 의 봉사이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결합과 봉사를 통하여 부부가 한 몸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 은 이상과 같이 세 가지 중 하나가 결핍되어 있어도  결혼은 완전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 부부의 성(性)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① 부부의 성(性)생활은 출산을 위한 것이다.  창세기&nbsp1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그것은 그들의 성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② 결혼에 있어서의 부부의 성생활은 정체감을 강하게 해준다. 즉 결혼 생활에 있어 성적인 충족감은 남성됨 혹은 여성됨에 대 한 개인적인 느낌을 강화시키며 자신에 대한 건전한 생각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의 성생활은 만족이 있어야 한다.  만 약 성행위에 좌절감을 느낀다면 개인의 정체감은 도전을 받게 됨으로 이에 대한 지식과 치유법들을 알아야 한다.
③ 부부의 성생활은 하나됨을 가져온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친밀한 대화의 한 형태이며, 성교는 독특한 대화이다.  따라서 풍요로운 성생활은 남녀간의 깊은 하나됨을 만들어 준다.
④ 부부의 성생활은 즐거움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성적 포옹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부부의 성관계를 통해 나 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성적 즐거움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부부관계에 있어 필요하다. 지루함을 막기 위해 환경을 바꾼다든지, 다양 한 기교를 개발한다든지, 성교를 하는 중에 다른 형태의 친숙함을 표현하는 등 풍요로운 성 관계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⑤ 부부의 성관계는 음행을 예방하는 목적이 있다.  배우자에게 성적 만족을 주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기 때문에 서로 합의 하 에 그것도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제외하고는 성을 절제하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성(性)이란 한쪽 배우자가 거부할 수 있는 호의 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며, 좋은 행동에 대한 보상도 아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육체에 대 해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거저 성적 만족을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책임적인 관계를 잘 이행 할 때 예방적인 목적을 성취케 된다.

⑵ 예수님의 가르침(마&nbsp19:3-12)
마&nbsp19:&nbsp3-&nbsp12 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결혼 과 이혼에 대하여 한 질문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예수님의 답변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있는데, 예수님은 결혼에의 영구성 을 확실히 하셨다. 즉 예수님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 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 지 못할지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⑶ 행복한 결혼 생활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① 사랑이다 (엡5:22-33, 마&nbsp22:36-40, 요일&nbsp4:7-21)
남녀간 결혼의 당사자들이 얼마동안 교제하고 탐문을 하다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할 때 첫 고백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 고 고백한다. 사랑 없는 남녀의 결합은 성립될 수가 없고 타의에 의하여 강요된 사랑 없는 결혼, 이는 생지옥이요 이별이 있을 뿐이 다. 사랑은 결혼의 기본 요소이며 굳게 매는 줄이다. 이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 십자가의 사 랑,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이라 부른다. 사람의 사랑은 범죄 타락한 인간이기에 마귀적이요 정욕적이요, 이기적인 사랑이다.
이름만 사랑이지 사랑의 포장지를 벗기고 보면 이상과 같은 추잡한 뱀이요 용이요 사단마귀의 위장이다. 마시는 날, 먹는 날 에 멸망하기 마련이다. 현대인들의 대부분의 결혼생활이 오래가지 못하고 파경을 가져오며 심하면 신혼여행도 끝나기 전에 결혼생활이 먼 저 끝장나는 이유는 세속화되어 버린 인간사랑으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요 이타적이요 불변적인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구속의 사랑, 섬기는 사랑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고백하고 결혼한 부부는 행복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축복 을 받을 수밖에 없다.

② 정절이다. 
사랑의 고백으로서 이루어진 결혼은 하나님의 불변적인 사랑이 계속 될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으며 결혼 생활의 둘째 요소 는 정절인 것이다. 이 정절은 남녀가 동등한 의무이며 권리이다. 유교적인 가족제도에서나 일부 다처주의 하에서는 정절은 여자에게 만 요구되어 왔고 일처다부주의 제도 하에서도 반대로 남자에게만 정절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가족 제도 하에서는 엄격한 일부일 처의 부부일체이기에 정절도  남녀가 동등하게 지키고 존중하는 것이다. 더욱이 신앙과 정절을 동일시하기까지 하면서 정절을 강조한 다. 성도, 교회를 신부로 주님을 신랑으로 비유하여 교훈 하시는 성경 말씀은 수없이 많이 교훈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호세아, 아가 서,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에서 선민 이스라엘을 처녀 시온 처녀예루살렘으로 비유하시고 정절을 가르치셨고 신약에서는 고 후&nbsp11:2에서 바울 사도는 전도하는 일을 중매하는 일로 비유해서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서 드 리려고 중매함이라]고 하셨고 계14:4에서는 "시온성 산에 구속받은&nbsp14만&nbsp4천의 성도들은 정절이 있 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 가는자라"고 했다.
오늘의 사회는 사회주의 유물론 공산주의 진화론자들의 성에 대한 주장에 감염되어 성(性) 개방 시대가 되어 가는 것과 이러 한 사조가 교회 안에서까지 침투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탄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 개방사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교 훈 하시는 성경교훈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성에 대한 자유개방사상은 말세지말의 죄악의 산물이다. 지금도 행복한 결혼생활이란 정절 순 결 없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결혼 생활의 정절이란 다른 뜻도 있지만 주된 뜻은 성생활의 순결을 의미한다. 성경말씀은 남녀의 성(性) 문제에 대하여 양면 을 교훈한다. 첫째는&nbsp7계명의 간음하지 말라는 금령이요, 둘째는 성생활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니 성생활을 하라 고 명하는 것이다. 정당한 결혼이외의 성행위는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용납될 수 없는 죄이니 해서는 안된다는&nbsp7계명 의 엄한 명령이다.

③ 믿음이다.
결혼생활이란 일생동안 순풍만은 아닌 것이다. 갈릴리 바다에 날마다 풍랑이 일어난다. 험한 준령을 넘을 때도 있고 칠야 삼경 을 헤치고 나갈 때도 있다. 이럴 때마다 사람은 자신 무력함과 비참함과 나약함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 무엇이 필요한가. 신앙이 다. 만세 반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정의 주인이 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 생명 길로서 부부를 인도하는 것이다. 신앙 없 는 부부, 그리스도 없는 가정은 바람에 흔들리는 상한 갈대요 절망에 빠져버릴 쓰레기인생이 되어 버릴 것이다.  사랑, 정절, 믿 음, 이 세 가지는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할 절대불가결의 혼수품이다.

⑷ 남편의 책임과 아내의 역할 
① 남편의 책임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 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13)]
범죄의 출발은 하와에게서 비롯되었지만 그 책임은 아담에게 물으신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먹지 말라한 나무실과를 먹었은즉 땅 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아담은 하와의 보호자로서 머리의 지위 를  갖는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으니 그러므 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고전11:8-10) 따라서 남자는 가족부양의 책임을 지도 록  저주받은 땅위에서 종신토록 수고해야할  노동의 책임이 주어졌다(창3:17).  인류의 범죄로 땅의  생산량은 극히 축소되었 고 남자가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아니하면 생계의 위협을 받도록 그에게 책임이  따른다.  일하지 않는 남자는 타락과 방종의 길 로 흐를 위험부담을 가지고 있다.  남성의 가정 큰 위기는  실직상태와 불노소득을 가지게 되는 때이다. 남성이 가장 남성다운 때 는 근면하게 일할 때와 가족의 보호자로서 그 위치를 지키는 때이다.  남성의 모든  일터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  학 교, 회사, 사무실, 사업장 모두가 얽히고 설킨 가시덤불이다. 모든 문제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데 남성의 고민과 땀흘리는 수 고가 따른다. 이 모든 일들은 남성이 탈선의  길을 걷지 않도록 정해주신  고난의 방부제다.  이런  사랑의 통제 속에서도 구원 의  길을 택하지 않을 때 인간은 필경 흙으로 돌아간다.

② 아내의 역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 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3:16) 인간 타락후  인간이 더 이상 죄의 깊은 심연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고난이란 항생제 를 주셨다.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타락의 현실을 받아드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모색할 구속의 시간을 제시하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떨어진 인류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해도 인간본성 깊게 뿌리박은 죄의 생명이 확산되어 나가는 한 건 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패한 인간본성이 더 이상 부패하지 못하도록  안전대책을 세우셨는데 이 대책은 인간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었 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구속받기 싫어한다.  그러나 자유를 통제하면 방종과 타락의 길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자식은 부 모에게 제자는 스승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권위를 부여하여 통제와 제한을  명하신 것이다.  남편의 다스림을 받도록  제한하신 것이다 (창3:16). 아내가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모욕이 아니고, 아내의 참된 안전대책이다(딤전2:11-12). 진정한 아내의 행 복은 남편을 참으로 존경스러워 하고 남편의 지위를 기쁨으로 돕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하와에게 해산의 고통을 주셨다(창 3:16).   여성은 자녀를 낳고 키우고 염려하는 모성에 일생을 묶여 산다. 여성이  또 하나의 죄에서 보호받는 방법은 온전 히 모성에 묶이는 것이다(딤전&nbsp5:14). 즉 어머니라는 직책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다할 때 모든 시험을 이 길 수 있다.

II.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엡&nbsp5:22, 골&nbsp3:18. 벧전&nbsp3:1)
주님께서는 아내들에게 권면하실 때 다른 무엇보다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명령하신다. 그것은 아내들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 고 또한 아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 내조 잘 해라, 자녀를 잘 길러라, 시부모님 잘 모셔라, 집 안 살림 잘 해라, 몸단장 잘 하라는 말씀보다도 이 말씀을 강조하신 것이다. 

▶ 그런데도 왜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이 안 되는가?
① 많은 아내들이 남편이 이해되지 않거나 존경스럽지 못해서 순종이 안 된다고 말한다. 
② 유교의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너무 굴욕적인 맹종을 강요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복종이란 단어 자체에 거부감부터 느낀다.  
③ 심리적으로 볼 때 여자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존심이 순종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④ 궁극적으로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남편에게 복종이 안 되는 것이다(엡5:21).
그러나 성경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고 권면한다. 여기서 ‘복종하라'라는 단어 는 남편을 사랑함으로써 기쁨으로 섬기는 의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성령 충만한 성숙한 아내는 주님께 복종하듯이 남편에게도 복종하 게 되는 것이다.(벧전3:5-6)

▶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성경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올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을 가르치시면서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 임을 말씀하고 있는데(고전&nbsp11:3), 남자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여자는 남자의 영광(고전&nbsp11:7) 으로 주권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께 최종적인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질서의 원 리에서 볼 때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고전&nbsp14:34, 엡&nbsp5:22-23, 딤 전&nbsp2:11, 딛&nbsp2:5, 벧전&nbsp3:1,5,6) 
그렇다고 남편(男便)이 아내를 통치하는 원리가 "아내를 사흘마다 구타하는 폭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남편은 "뼈 중 에 뼈요, 살 중에 살"(창&nbsp2:23)로 지음을 받은 연약한 그릇(벧전&nbsp3:7)인 아내를 아가페적 인 사랑으로 통치하되(엡&nbsp5:25,28,33) 절대적인 희생 정신을 가지고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또한 아내는 남편 에 대한 절대적인 겸손으로 복종하며 남편을 사모해야 할 것이다.(창&nbsp2:24)  그러나 이와 같은 이상적인 부부관계 는 하루아침에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남편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내는 한 남편의 아내로서' 끊임없는 자기 개발 을 통하여 서로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첫째, 정숙한 내조(內助)  
☞ 대부분의 남편들이 자기 나름대로 갖고 있는  이상적인 가정상(家庭象)의 하나가 자신의 아내에게서 안식을 얻기를 원하 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대부분의 남편들은 아내가 귀가하는 자신을 미소로 맞이할 뿐 아니라, 깔금한 아내의 몸매 (에&nbsp1:10-14),잘 정돈된 집안, 예의 바른 아이들, 저녁을 들기 전에 잠시 앉아서 긴장감을 풀 수 있도록 마 실 것을 내오고, 구미(口未)를 당기는 요리 냄새(창&nbsp18:6),저녁 식사 중에는 가벼운 대화, 식후에는 가족들 과 함께 산보, 아이들을 잠자리에 일찍 들이고 부부가 함께 쉬고 나누는 조용한 대화, 때로는 함께&nbspT.V를 좀 보거 나 음악을 듣는 일}등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 
① 남편들의 대부분은 전투장인 직장생활을 통해서 얻은 과로와 스트레스(stress)를 자신의 집에서 풀고자 하기 때문에 퇴 근하여 가정에 돌아온 이후에는 자신의 아내가 정숙한 내조로서 자신에게 안식을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남편은 가정 에 와서는 말이 적게 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성공적인 남편이라고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만약 그렇게 보이지 아니할지라 도 그것은 빙산의 일각처럼 그 내면에는 많은 걱정과 불안을 갖고 있는 상태이다. 
②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들의 가족 곧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충실하게 감당하려고 밖의 일들에 대해 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힘들게 버티어 가고 있기 때문에, 집안의 일은 자신의 아내가 지혜롭게 잘 처리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 고 남편이 부부생활(夫婦生活)에 나태하거나 아내의 갈등에 대해 무감각해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③ 남편의 대부분은 자신의 아내가 직업을 갖고 있을지라도 안식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 편에 대한 자신의 불만과 함께 가정의 일에 역할 분담에 대하여 남편과 진지하게 의논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바가지는 짧게, 봉사 는 길게, 요구는 적절한 시기와 분위기 속에서 하는 것이 효과적임을 기억하면서..(딛&nbsp2:5)

둘째, 성적인 만족감(滿足感)  
☞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통한 부부의 성(性) 생활은 아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신성하고 거룩한 일이 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에게 결혼제도를 주신 목적인 하나님의 원리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실현 하는 중요한 위임 명령에 부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창&nbsp1:27,28)  그러므로 부부의 성(Sex) 관계는 절대적 으로 신성시되어야 할 것이며, 누구든지 간에 자신의 침소를 더럽히는 행위가 있어서는 결단코 안된다.(히&nbsp13:4, 레&nbsp20:18, 신&nbsp22:22,29)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결혼제도의 기본원리를 파괴하는 행 위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기가 어려운 엄청난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nbsp5장&nbsp18절은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 하라"고 말씀하고 있고(참고 잠&nbsp5:15&nbsp-&nbsp23), 사도 바울은 고 전&nbsp7장&nbsp3절로부터&nbsp5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성(性) 생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부부(夫 婦)는 서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3절), 부부는 서로의 요구를 들어주고 협력하며(4절), 부부는 기도의 기회를 얻기 위한 목적 으로 협의상 분방하되(4절), 분방의 시간을 너무 오래 갖지 말고,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다시 합해야 할 것}을 말씀한다. 왜냐 하면 분방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갖으면 사단의 시험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5절)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타의든, 자의든 간 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성(性)에 대하여 지나치게, 무지(無知)함으로 남편에게 외도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어서는 안된다. 반면에 너 무 지나치게 개방적으로 말미암아 외설적인 분위기를 유도해서는 결코 아니될 것이다.
① 하나님께서 부부가 서로 "연합하고, 한 몸을 이루는 것"(창&nbsp2:24)을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정신적 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관계에서 서로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② 성(性) 관계에 대한 서로에 대한 생각 과 만족 여부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계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③ 부부는 특별한 경우 를 제외하고서는 피차에 대한 성적(性的)요구를 거부해서는 안된다.(고전&nbsp7:3-4), 그런데 만약 아내가 특별한 경 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필요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거부 할 때, 남편은 직접적인 불만을 표시하지 않을지라도 자기의 샘에서 흐 르는 물이 아닌 다른 샘물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려고 시도할 수 있다.30대(代) 중반부터&nbsp40대(代) 후반 사이 에 있는 부부(夫婦)의 이혼에서 비중 있게 차지하고 있는 주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성 트러블] (a&nbspsex&nbsptrouble)에 의한 것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으로 하여 금 성적인 만족감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남편 외도의 원인 제공을 해서는 안된다. 남편을 사랑하 되 주님을 사랑하듯 사랑하며, 사모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취미 활동의 짝 
☞ 남편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아내가 취미 활동에서도 좋은 반려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때문에 ① 아내는 남편이 결 혼 전에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은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가?}, 연애 시절에 함께 즐기던 활동들은 어떤 것이 있었는 가? 등에 대하여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② 남편의 취미 활동이 성경적이고, 건전한 것이다라고 생각되어지면 아내는 취미 활 동 짝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해 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③ 남편의 취미 활동이 성경적이고, 건전한 것에 한해서는 남편 의 짝이 되지는 못할 망정 남편의 취미 활동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아니된다.
그런데 때때로 남편은 아내로 하여금 자신과의 취미활동 짝으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아내가 좋아하는 취미들을 줄이 거나 혹은 포기하기를 요구하고, 심지어는 주일성수까지 포기하기를 원하는 불신자의 남편이 있을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나름대 로 갖고 있는 대안을 통하여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겠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어떠한 경우라고 할지라도 신앙적인 문제를 담보로 삼고 서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어서는 결코 안된다. 예를 들어서 '이번 한번만 나의 요구대로 한다면, 다음주 일요일부터는 당신이 요구하 는 대로 교회에 나갈게!,...' 등과 같은 타협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이러한 남편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남편과의 대화 채널이 단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내는 이것에 지혜롭게 반응할 필요 가 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남편이 좋아하는 취미에 대하여 나름대로 개괄적으로 공부하고, 그것에 대한 정보 (information)를 수집하여 남편으로 대화의 빗장문을 열게 하는 매개체로 사용한다면 남편과의 대화에서 주도권을 잡을 뿐 아 니라 남편과의 대화의 채널은 결코 단절되지 아니할 것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남편의 취미 활동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현명한 자 세일 것이다.

넷째로, 매력적인 몸매
☞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신의 아내가 아름답게 보일 때 큰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아내가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 하기를 원한다. 때문에 ① 남편은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아내가 매력적으로 보이기를 원하고 있다. ② 보편적으 로 남성은 시각적이고 후각적인 자극과 반응에 민감하다. ③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적 아름다움만으로 만족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 내의 일반적인 희망사항일 뿐이다. ④ 이것은 공석에서는 물론 단 둘 만이 있을 때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결혼 전의 매력 과 맵시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몸 무게, 화장, 머리 스타일, 옷차림, 목소리, 교양 있는 말씨, 잠자리 옷, 색 감, 향수 등이 본인이 좋아할 뿐 아니라 남편의 반응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를 관찰하고, 아직도 남편을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느끼 고 있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영화 배우처럼은 아니질 지라도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자신을 보고 반했 던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내의 매력은 결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 의 개발로 얻는 아름다움임을 기억하면서, 인위적인 방법으로 지나치게 자신을 꾸미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자신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 포인 트를 찾아내어 계발해야 할 것이다.&nbsp.

다섯째로, 존경심과 칭찬
☞ 대부분의 남편들은 온 세상이 자신을 칭찬해 주어도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 왜냐하면 필자를 포함하여 모든 남편들은 철이든 큰아기들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남편이 누구에게보다도 아내에게 인정 받기를 원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남편에 대한 존경심과 칭찬에 인색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참 훌륭해요. 당신 은 나의 남편이지만 참 자랑스러워요. 이해심이 깊어요. 믿음직스러워요. 잘 했어요. 힘든 것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지 도력이 놀라워요. 정말 감격했어요. 존경스러워요. 멋있어요. 당신의 팬(Fan)입니다. 솜씨가 놀라워요... ' 등과 같은 말 은 남편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남편의 사기를 높이는 일이며, 아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하는 신비적 힘인 것 을 간과하지 말자. 때문에 남편을 자신의 선입관을 가지고 쉽사리 판단하지 말자. 그것은 오히려 남편으로 하여금 소극적이고 수동적 인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모든 아내는 모든 남편이 아내가 자기에게 있어서 가장 열렬한 팬 (Fan)이기를 바라고 있는 기본적인 필요에 대해서 이해하고 언제나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로써 남편으로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게 하 고, 큰 비전(great&nbspvision)을 품을 수 있도록 함이 아내의 지혜일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남편을 격려하 고, 칭찬하되 무조건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그러면 남편에게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
 ① 온유하고 안정된 마음(벧전3:3-4) ② 따스한 사랑의 말(약3:2-12) ③ 몸으로 섬김(요 13:15,&nbsp17) ④ 만족스런 성생활(고전7:3-5) ⑤ 말씀의 은혜 나눔(골3:16-17) ⑥ 남편을 위한 기도 와 돌봄(고전7:14) 
아내의 남편을 향한 이러한 헌신적 사랑의 섬김은 어떠한 남편이라도 기필코 변화시키고 가정을 행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III. 아내를 사랑하는 삶(엡&nbsp5:25, 골3:19, 벧전&nbsp3:7)
남편들의 경우는 여러 가지 사회 생활을 통해 복종에 익숙해져 있으나 사랑이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기 때문에 사랑 을 베풀 것을 명령하신다. 남편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돌보는 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에 게 건강 관리 잘하라, 밖의 활동 잘하라, 밖의 사람들에게 잘하라는 말씀보다도 가정에서 아내를 먼저 사랑하고 가정에 충실할 것 을 권면한다(딤전3:5,&nbsp12).

그런데 왜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가?
첫째, 많은 남편들이 아내가 사랑스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사랑이 안 된다고 말한다. 
둘째, 유교의 문화 속에서 너무 어머니의 사랑을 받다 보니까 사랑을 베풀기보다는 오히려 사랑 받고 인정받길 원하는 의존성이 강하다. 
셋째, 심리학자 융(Carl&nbspJung)에 의하며 남자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원형(Archetype)이 ‘위대한 왕’이기 때문에 군림하려고만 한다. 
넷째, 심리적으로 볼 때 남자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이기심이 사랑을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 
다섯째, 궁극적으로 남편들이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5:25)고 말씀한 다. 여기서 ‘사랑하라’(아가파테)란 단어는 아내에 대해서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베풀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께 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듯이(롬5:8)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내에게 어떻게 사랑을 베풀 것인가? 
①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한 감사(살전5:18) ② 세심한 관심과 마음의 배려(벧전3:7) ③ 사랑이 담긴 카드나 선물 (잠&nbsp18:16) ④ 아내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딤전5:8): 결혼 기념일, 가족과의 시간 ⑤ 영적으로 아내 를 격려하고 인도함(딤전3:5,&nbsp12): 부부 기도회, 가정 예배 ⑥ 아내를 위한 기도와 돌봄(고전7:14)
남편의 아내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감동은 어떠한 아내라도 언젠가는 변화시키고 온 가정이 주님 앞에 굳게 서는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IV. 부부 회복의 길
우리 부부의 보다 심각한 문제는 성경에 증거된 이 복종과 사랑의 말씀을 내가 먼저 실천하려고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요구하 는 데 있다. 그래서 흔히 예수 믿는 가정에 이런 부부 싸움이 일어난다. 남편이 큰소리를 치면서 “원 세상에 당신처럼 신경질적이 고 재미없는 여자가 어디 있어? 나나 되니까 참고 사는 거지”하며 공격한다. 그러면 아내도 지지 않고 소리치길 “흥, 당신같이 자 기 주장만 옳다는 멋없는 남자도 세상에 드물걸요? 내가 어쩔 수 없으니까 죽어지내지” 한다. 그러자 남편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소리 치기를 “성경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는데 당신은 도대체 교회에 가서 뭘 배웠어?” 그 때 아내도 한다 는 말이 “아니, 그러면 당신 성경책은 그 다음은 찢어졌어요? 그 다음에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과 같 이 하라고 했잖아요?”소리친다. 이처럼 부부간에 복종과 사랑의 싸움은 일생토록 끝이 없는 불행의 연속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성경 어느 곳에도 남편이 아내에게 복종을 강요하라거나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요구하라 고 가르친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주께 복종하듯 복종하면 되고,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하 면 되는 것이다. 그리할 때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저런 사람을 나에게 허락하셨는가?”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는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저 사람을 인도 해 주셨구나!”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상대방을 들어 사용하신 사실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 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 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고전7:14) 하신 말씀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 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변화가 상대방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바 로 지금이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할 때이다. 바로 지금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남편으로서, 아내로 서의 삶을 돌이켜야 할 때이다. 내가 먼저 변화되는 삶을 통해 상대방도 변화된다. 그리하여 성경적 부부 관계의 회복을 통해 행복 한 가정을 분명히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나가는 말
가정의 가장(家長)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때문에 모든 신자의 가정은 그리스도의 주권을 높이고, 오직 하나님께로 만 영광을(Soli&nbspDoe&nbspGloria) 돌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의 창조 질 서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창&nbsp1:17,28)  따라서 모든 남편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모든 아내 는 한 남편의 아내로서 자신들에게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남편은 아내 에 대한 기본적인 필요를 살피고, 모든 아내는 남편의 기본적인 필요를 살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상기에서 전술한 남편들의 기본적 인 필요는 무시될만한 하찮은 주제가 아니라, 모든 아내들이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여야 할 실제적인 주제인 것이다. 아울러 예수님께 서 교훈하신 대접의 원리(原理)(눅&nbsp6:31)가 결혼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됨을 간과해서는 아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