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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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이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
우리는 텔레비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 1985년 미국의 닐슨 조사에 따르면 한 가정에 텔레비전이 켜있는 시간 이 하루 평균 7시간 7분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통계는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 다. 텔레비전이라는 정보매체는 시청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방송국에서 만든 정보 즉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보내진다. 시청자에게 주어 진 것은 권리는 단지 채널을 바꾸고 마지막에는 텔레비전을 꺼버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시청자는 멀티미디어를 가지고 자신이 관심있 는 분야에 선택하여 시청하게 된다. 결국 멀티 미디어를 소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다양한 정보를 보다 주체적으로 활 용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리 텔레비전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우리 자신의 위로로 불과한 것이고 어쩌 면 시청자는 바보 상자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것인가? 아니면 주인인가?
텔레비전이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텔레비전이 있었 지만 1970년대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는 천만대가 넘어 섰고,오늘날에는 그 통계가 무의미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가구당 한 대 이상 소유한 가정이 많고 병원,식당,터니널,공항 등 중요 한 공공장소에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방송산업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처음 흑백 화면에 어설픈 대사와 설익 은 동작을 선보이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이것의 실례로 1992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각 가정의 거의 한 대 이상의 텔레비전이 보급되어 있다 고 한다. 그런데 각 가정 하루당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주중에는 4시간 30분,주말에는 하루 종일 텔 레비전을 켜 놓고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텔레비전을 더 많이 본다 고 한다. 왜 이렇게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여가 활용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휴식공간도 적고 또 아이들 이 있으면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1992년 일본의 통계에 의하면 일본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 지 2만 2천 시간의 텔레비전을 시청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동안 학교에 보내는 시간 은 1만 2천 시간입니다. 따라서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보 다 약 2배 정도 더 많은 것이다. 텔레비전을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귀로 듣고 입으로도 말을 한다. 피부조차 반 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본다면 아이들이 혹은 청소년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코미디언의 말을 그대로 흉내를 내고 이것을 하지 못하 면 친구들의 교우관계 속에서 도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실례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은 실제적인 우리들의 상 황이라는 점에서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텔레비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짧은 시간에 그토록 널리 보급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접근 을 위하여 텔레비전의 정체 및 문제제기,텔레비전의 위력,텔레비전의 양면성,텔레비전의 역기능에 폐해에 대한 대처 방안을 함께 생각 해 보고자 한다.
1. 텔레비전의 정체 및 문제 제기
대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문명의 이기(利器)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필요로 하는 정보와 지식을 신속하게 전해주고,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고,무료한 시간에도 불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미디어 평론가인 제리 맨더 같은 이는 텔레비전을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마비시키고 파괴시키는 마성(魔性)을 지닌 존 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혹은 '눈으로 씹는 껌'이 '눈으로 들어오는 마약'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이는 텔레비젼의 강 한 충동성을 지적하는 단면적인 실례입니다. 또한 오늘날 텔레비젼의 막강한 영향력을 빗대어 '제2의 신(神)이니 '제3의 부모'라 고 명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의 정체에 대하여 기독교의 목회자로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아니할 수 없는데, 기독교의 세계관에서는 '텔레 비전'을 하나의 '대중문화'의 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본래 '대중'이란 말은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가셋 (Ortega Y Gasset)에 의하면 널리 알렸는데,그는 그의 {대중의 붕기}라는 책에서 대중 을 {익명의 인간},{평준화되어 있는 인간},{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인간},{감정에 민감하고 지성에 둔화된 인간},{평범한 인 간},{다른 사람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고 다른 사람에 의존하는 사람} 등으로 측징지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하여 볼 때에 이 와같은 대중을 만들어 내고,대중이 즐기는 의 문화'가 바로 대중 문화이며,'대중의 문화'는 분명히 현대사회의 중요한 문화형태임 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 심리학자 [리스만]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은 다른 사람중심의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대중은 책임 을 지지 않는다. 아니 책임을 질 수 있는 확고한 자아가 없습니다. 때문에 '피상적이고 향락주의적인 대중문화'의 한 형태인 '텔레 비전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전체를 총괄적으 로 볼 수 있는 의욕과 능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매우 왜소하게 느껴서 멀리 내다보거나 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을 전부하게 생각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대중 문화가 본격적으로 우리들의 피부를 자극하게 된 시기는 7,80년대에 {우민 정책의 전형적인 방법}인 3S 정책과 연결 고리를 갖는데, 3S 정책이라고 함은 ① 스크린 ② 스포 츠 ③ 섹스를 통하여 국민들의 관심사를 다른 것으로 집중케 하는 전형적인 독재정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짧은 시기이지만 중남미 에 위치한 '볼리비아'(Bolivia)라는 나라에 선교 유학를 가서 공부할 기회가 있는데, 멕시코,페루,칠레,에콰도르,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대부분의 나라의 대부분의 문제가 바로 이러한 3S 정책으로 말미암아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의 정책 혹 은 독재 정치에 관심을 갖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점인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의 정책을 통하여 아주 지능적으 로 사탄이 '대중 문화' 속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① 가요(눈물과 한의 체념,허무주의 -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
② 영화(폭력,외설,황당무계,강시,영혼과 사랑,미녀와 야수,E.T :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이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표현)
③ 비디오(무방비,급속 확산,모든 사람에게 노출)
④ 문학(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생각케 하고 고상한 정서를 창출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나 삶의 깊이를 보게하는 문학작품보다 는 인간에게 이미 주어진 본능이나 자극하고 이미 대중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에 호소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음)
⑤ 잡지(폭로성 기사,외설)
⑥ 신문(세스포츠 신문의 선정적인 음란,폭력 만화 연재,이것은 매스 미디어의 잘못 사용,정보의 통제,왜곡,과장,편향보도)
⑦ 텔레비전(연속극 속에서의 위화감 조장)
⑧ 연극(지나친 사업,나체 연극,전통적 문화전승이라는 미명 하에 우상과 미신숭배 조작케 하는 살풀이,씻김굿 등)
⑨ 광고(소비성,청소년의 섹스은어,표준말 부재,외래어 범람,광고모델의 연기,선정적인 속옷 선전,섹스 심벌을 교묘히 사용,중 독적인 말인 '한꺼번에 벗겨먹는 아이스크림','타는 가슴 까밀어요','흔들어주세요',진화적론 사단이즘 주입(테크노피아,인간과 기술 과의 만남,파라다이스 등),과학 만능주의 등)
⑩ 팝송(내용:난잡한 성행위,폭력성 - 헤비메탈,닙송,록뮤직 - 팝송을 듣지 아니하면 잠이 안 와요,우울증과 신경이 날카로와진다 고2 여고생,92년도 뉴키즈 언더블럭 내한공연 - 중학생 사망)
⑪ 컴퓨터(행복한 미래 보장하지만 사고력 말살,기술,기계의존케 하고 과학과 기술에 의한 숭배,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합니 다. 이것과 함께 요즘에 부각되는 있는 사실은 컴퓨터를 통한 {가상현실 게임}인데, 이것이 국내업계와 KIST의 공 동개발로 인하여 용인 자연농원에 배치된다고 하는데, 이것에 시시비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⑫ 직업관(양극단 - 철저한 성공위주,게으름 무사안일주의,황금,권력에 의한 몰이 우상화 내지는 물질의 풍요가 행복은 것은 아니다고 극단적으로 반응함...)
⑬ 매직 아이(입체 영상) : 시력 장애를 유발시킨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묘사한 '성인용 매직아이'가 등장하여 많은 청소년을 자극하는 등 문제점이 제기 되고 있습니다.
①④ 게임 : 게임에 대한 악영향에
이러한 일련의 잘못된 대중문화의 결과로 인하여 ① 반항심을 갖게 하고 ② 성격을 난폭하게 하고 ③ 허무주의자로 만들 고 ④ 무분별한 성적문란을 조장하고 ⑤가출 그리고 살인할 것을 권고하고 ⑥ 자살 등을 시도하게 참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 니다. 이것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몇날 몇일을 다 말씀드려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제약과 본 강의의 주제에 충실하고자 본 주 제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2. 텔레비전의 위력
텔레비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이것은 허구를 현실처럼 착각케 합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아주 현실적인 매체'라고 인식하 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은 단지 내가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환상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 다.
그런데 문제는 텔레비전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실 가운데 아주 관심을 끌만한 것을 소재로 택해서 다시 구성을 합니다. 그리고 구성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잘 전달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각색을 합니다.
어떤 부분은 아주 선정적으로 보이게 하고 어떤 부분은 동정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 부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서 볼 때에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현실이 아니라 허구입니다. 텔레비전은 현실 매체이지만 그 내용 은 현실보다 허구쪽에 가깝게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텔레비전 앞에서 모두가 웃고,울고 함께 드라마 속의 인물이 되어서 괜실 히 등장인물을 향하여 자기 나름대로 평가를 합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하여 쉽게 배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생 각하지만 사실 자신의 세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닫아야 합니다. 남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행동을 검토하고 배 우게 됩니다. 여대생들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본다면,많은 여대생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텔레 비전을 시청합니다. 텔레비전은 매우 화려하고 아주 예쁜 아이들이 나오고 공부도 잘합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올바 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의 내용이 아무리 아름답고 잘난 모습만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자신 의 모습을 비판하고 불필요한 열등감과 불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방 시대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텔레비전이 미치는 영향은 대 단하지만 그것은 핵심적인 문제점은 허구를 현실처럼 시청자들을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3. 텔레비젼의 양면성
텔레비전은 야누스적인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텔레비전이 악한 것이고,텔레비젼의 시청 행위가 악에 가담하는 것이라 면 우리들은 전국민적ㅇ로 아니 세계적으로 텔레비젼 제거 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제리 맨더와 같이 텔레 비젼을 제거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지만,전반적으로 유해한 측면과 유익한 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견해 가 우세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텔레비전을 사용하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있지 텔레비전이라는 '기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텔레비젼 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인간에게 많은 유익과 가능성을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가 될 수 있고,잘못 사용한 경우에는 인간과 사회를 해치 는 흉기가 될 수 있는 야누스적인 이중성을 지녔다고 할 것입니다.
(1) 텔레비전의 이기적(利器的) 측면
텔레비전을 잘 사용하면 얻는 것이 많이 있다. 텔레비젼이란 물리적으로 나무나 플라스틱 상자에 전선과 유리조각을 끼워 만 든 것에 불과하지만 사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여기에 메시지를 집어넣어 매스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문제 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여러가지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사용한다면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매우 유익한 존재 일 수 있는 그것들을 잘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텔레비전의 사회화 기능입니다.
이것는 텔레비젼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규범,가치,관습 등을 습득시키는 기능인데,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관계나 인간 관계를 위해 필요한 소재나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는 역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텔레비젼의 교육적 기능입니다.
이것은 텔레비젼을 통하여 직접적인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입니다.
세째,텔레비젼의 각종 정보를 제공해 주고 환경을 감지해 주는 보도 매개체로서 의 기능입니다.
텔레비젼은 다양한 뉴스 관련 프로그램 및 사회 고발 프로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넷째,텔레비젼의 오락적 기능입니다.
텔레비젼은 여가를 편안히 즐기고 유쾌한 웃음을 주는 등의 오락 기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텔레비젼은 쇼,코미디,드라마,스포 츠 프로들이 기본적으로는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프로그램들인 셈인데,텔레비젼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것들이 두는 것들이 이들 이라는 데서 오락 기능의 중요성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텔레비젼의 광고적 기능입니다.
광고를 통한 경제의 원활한 기능도 방송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광고가 차지하는 중요한 비중을 감안할 때 방송의 광고 기능은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마지막으로,텔레비젼의 여론 조성 및 상관관계의 조정 기능입니다.
이것은 텔레비젼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얻을 수 효과적인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텔레비젼의 이러한 기 능을 통해 민주사회 실현에도 중요한 역활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각종 선거방송을 통해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정치 감각을 훈련시키 고 정치적 선택의 합리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2) 텔레비젼의 역기능적 폐해와 한계의 측면
반면에 텔레비젼을 통한 그 폐해와 한계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텔레비젼의 기능 적 역활들은 방송 관계자가 이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느냐에 따라,또 시민들이 제대로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성과가 가변적으로 나타 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능들이 역기능적 폐해로 뒤바뀔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텔레비젼 의 역기능적 폐해와 한계는 어떠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첫째,과다한 텔레비젼의 시청이나 바르지 못한 시청 자세에서 비롯되는 신체적 폐해를 들 수 있습니다.
시력의 감퇴,창의성 저하,소극적 성격으로 변화 등이 좋은 예들입니다.
둘째,텔레비젼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거리감을 상실하여 잘못된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을 부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세째,무분별한 언어,행동,가치의 모방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치관이 채 정립되지 못한 청소년들이 시청자들을 잘못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텔레비전의 문제는 폭력이나 성(性)보다는 가치관의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한 살 이전에 텔레비전 보기를 시작하는데 그 시간이 하루 1시간 4분 정도라고 합니 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 많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매일 한 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본다고 한다 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의 광고 속에 담겨 전달되는 어떤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 다.
예를 들어 요즘 고등학생들이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대학생 사회를 아주 낭만적으로 그려놓은 프로그램이 있습니 다. 대학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진짜 대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나중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추구하게 되 는 것입니다.
고등학생 뿐 아니라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주부들은 텔레비전 을 볼 때 어떤 가구가 놓여 있는가?,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부부들은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는가? 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 다. 이런 것들 가운데는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가치관이 녹아 있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됩니다. 그 대표적으로 낙태문제를 둘 수 있 습니다. 한국의 드라마에는 '아이를 지우겠다'는 생각과 대화가 별스스럼없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낙태 국가입니다. 일년에 백만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한 이것은 기독교인들도 별 생각없이 낙 태를 합니다. 외국의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사람이 그것 을 어떻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60년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산하제한 정책을 적극 실시하게 됨에 따라 낙태가 묵과 혹 은 장려되고 왔고,텔레비전 속에도 태아를 지우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주 쉽게 태아를 지우기로 결정하고, 돈 을 주면서 낙태를 권유하고, 의사들도 별 생각없이 낙태를 하는 일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이번에는 딸이니 다음 에 낳자' 등의 이야기를 스슬럼없이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사라들은 무의식적으로 낙태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 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죄의식도 없습니다.
넷째,성차별을 비롯한 직업,계층,지역,연령 등 각종 사회적 관계의 차별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역기능적인 폐해 중에 심각한 문제는 성(性)의 문제입니다. 성서적으로 볼 때에 성(性)은 아름다운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가정에서의 부부의 관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가운데 인기 프로는 '남자의 외도'에 대한 '여성의 갈등' 내지는 '여 성의 도전'에 대하여 선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얼마전에 방영되었던 '여자의 남자'라는 드라마 는 참으로 비윤리적이고 비정상적인 드라마의 전개임에도 이것을 '여성의 자기 표현'내지는 '자기 삶의 권리 주장'으로 촛점을 맞추려 는 부분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성(性)에 대한 표출의 장면들이 사실 텔레비전 속에서는 많이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폭력도 마찬가지지만 텔레비전 과 영화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텔레비전 속의 폭력은 영화와는 또 다릅니다. 섹스(Sex)는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의 문제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 모니터를 할 때는 주로 노출이 어느 정조 심했다든지 출연자들이 야한 이야기를 했다든가 하 는 것을 모니터합니다. 그러나 시청하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케 하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하고 싶은 욕망과 충동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매 우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문에 얼마전의 고등학생이 비디오의 내용을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그대로 재연하는 어 처구니 없는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다섯째,프로그램의 흥미를 강조한 나머지 폭력성,선정성 등의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여러 유형의 인격 침해 사례를 초래하곤 합니다.
이 외에도 텔레비젼의 폐해와 기능적 한계들을 더 많이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심각한 문제는 일본의 조 사 결과에 따르면 교등학교 졸업 이전까지 텔레비전을 목격하는 살인 장면이 1만 5천건,미국의 경우에 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약 3만건,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5만건이라는 통계는 참으 로 우리들을 놀라게 만듭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회 심리학자들은 텔레비전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살인 장면을 목격하면 그것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중에 남 게 되어서 실제로 살인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놀라지 않게 될 것이고,또 어떤 아이들에게서는 동일한 행동으로 유발될 것이라고 주장하 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4. 텔레비전의 역기능에 대한 대처방안
텔레비전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관한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유익보다는 손실을 가져다 주기가 쉽다는 인식 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말초신경을 자극해서라도 시청률을 높이려는 제작자들의 얄퍅한 상혼,텔레비전의 막강 한 사회적 영향력에 비하여 그렇게 높지 않은 프로그램 제작들의 윤리의식,시청자의 이중적 태도,시간의 낭비 등 텔레비전에 대한 비판 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앞에서 언급한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하여 시청자들이 대처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세상사를 사사건건 시시콜콜하게 따지면 어떻게 사느냐?,잘못된 것이 어디 텔레비전 뿐이냐 또 텔레비전이 잘못되면 얼마나 잘못 되었느냐,나는 그런 것 신경쓰지 않고 나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사료됩니다. 왜냐하면 그 본인은 아 무 생각없이 보지만 텔레비전은 그 사람 속에 많은 것을 집어 넣기 때문입니다.
둘째는,격렬한 대처 방안으로 텔레비전 같은 몹쓸 기계는 우리 집안에ㅔㅔ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의 시청자는 텔레비전을 소유하지 않거나 있어도 광에 쳐박아 두고 시청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과 자신 의 자녀들은 텔레비전의 해독으로부터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 가운데는 그리스도인 중 상당수 이런 방식을 취하 고 있거나 혹은 언젠가는 나도 텔레비전을 없애버리고 말리라고 벼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째로,온건한 대처방안으로 텔레비전을 가려서 보는 것입니다.
좋은 프로그램과 나쁜 프로그램을 조사해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것,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될만한 것,어른들만 보아 야 할 것 등을 판단하여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아이들과의 약간의 마찰 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이 원칙을 충실하게 지켜감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은 텔레비전의 해독에서 면제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천거할 만한 대안인지는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대처 방안이 모두 간과한 요소가 있습니 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혹은 지각이 있는 사람일 경우에 둘째의 대처 방안을 택할지 모릅니다. 물론 텔레비전을 집에 두지 않으니 까 신물을 많이 읽게되고 저녁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유익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음으 로 텔레비전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 이 집에서는 제한될 수 있을 지 모르나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것을 전부 배우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면 혹은 자기 집에서만 텔레비전을 가려서 보게 하면 아이가 텔레비전의 나쁜 영향에서 벗어나리라 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점을 잊고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열거 한 것과 같은 개인 차원의 혹은 가정 차원의 대책만을 세우지,그런 대책을 세우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로 인하여 자기 자녀가 당할 일 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이들을 아무리 잘 단속하여도 텔레비전을 통하여 폭력에 길들여진 다른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혹 은 꼬여서 함께 폭력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자기 아이들을 아무리 잘 단속하여도 텔레비전에서 섹스와 폭 력에 길들어진 아이들에 의하여 자기 딸이 폭행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이즈를 개인적인 차원 으로만 대처하다가 수혈을 잘못 받아서 영문도 모르게 갓난 아이가 에이즈에 걸리는 것을 목격할 때의 부모의 황당함을 상상할 필요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모든 시청자가 텔레비전에 대하여 항의 혹은 격려을 하여야 한다고 필자는 사료하는 바입니다. 이것 이 우리 아이와 다른 집 아이들의 안전을 함께 위하는 가장 유효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필자의 의견으로는 보다 체계적으로 조직적인 활동 가운데 좋은 프로그램을 가려내는 텔레비전 시청자 운동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사료합니다. 요즘 신세대의 문화가 개성인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방의 문화입니다. 물론 모방은 창조 의 첫 걸음이라는 형이상학적인 해석도 있지만 옷차림 뿐 아니라 생각,가치관까지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도 한 참 잘못된 것입니다. 어른들은 자신이 없어서 새로운 가치관에 대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에 게 나타난 이상적 부모상(父母像)과는 상이한 가치관을 지닌 부모님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들 이 자신이 없어지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을 없애고 보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사회와 자신 의 삶에 대한 분명한 을 가지고 모니터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니터의 방향도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내서 살리려 는 쪽에 좀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맺은 말
결론적으로 말해서 텔레비전의 존재가치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마약일 수도 있고,사탄의 유혹일 수도 있지만 또 한 일상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정보원(情報源)이자 세계를 향한 창(窓)이기도 합니다. 날로 발전 변모하는 과학기술에서 앞서 열거 한 텔레비전의 여러 페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지만,지금 당장 우리들로서는 현재의 텔레비전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주목하여 그 역기능 을 최소화하는데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피력합니다. 한권의 책으로 사람의 일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인간 은 보고 듣는 것에서부터 배우고 행동하는 존재인데,오늘날의 매스컴은 사회도덕을 파괴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 여학생이 공포괴 기 영화를 보다가 귀신 들려 귀신과 대화를 합니다. 이러한 매스 미디어를 통한 폭력,음란,괴기물은 단순히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 라, 귀신이 영적인 지배를 한다는데 더 큰 위험이 있습니다. 많은이가 본다는 것,읽는다는 것을 대단찮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 나 상업적인 윤리때문에 국민정서를 헤치는 매체때문에 한 개인의 정신 썩어가면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면 나라가 망하는 것 은 필연입니다. 그 한 예로 일본의 위선방송이 우리 가정에까지 침투하는 것은 명백한 문화침략입니다. 총칼로 점령당하는 것이라는 사 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텔레비전의 영향에 대하여 너무 무조건적으로 수용 혹은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여러 사회단체들을 통하 여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이것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시청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시청자들이 바보가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역활 적 기능을 다소이나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한다. 그러나 이러한 텔레비전 문화를 비롯한 대중 문화에 따른 역기능을 폐해 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이 회복되어야 하는데,도덕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며,잃어버린 본래 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땅을 정복하고,땅을 다스리고,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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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텔레비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 1985년 미국의 닐슨 조사에 따르면 한 가정에 텔레비전이 켜있는 시간 이 하루 평균 7시간 7분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통계는 우리의 현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 다. 텔레비전이라는 정보매체는 시청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방송국에서 만든 정보 즉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보내진다. 시청자에게 주어 진 것은 권리는 단지 채널을 바꾸고 마지막에는 텔레비전을 꺼버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시청자는 멀티미디어를 가지고 자신이 관심있 는 분야에 선택하여 시청하게 된다. 결국 멀티 미디어를 소유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다양한 정보를 보다 주체적으로 활 용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리 텔레비전 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우리 자신의 위로로 불과한 것이고 어쩌 면 시청자는 바보 상자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것인가? 아니면 주인인가?
텔레비전이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의 일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텔레비전이 있었 지만 1970년대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에는 천만대가 넘어 섰고,오늘날에는 그 통계가 무의미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가구당 한 대 이상 소유한 가정이 많고 병원,식당,터니널,공항 등 중요 한 공공장소에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방송산업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처음 흑백 화면에 어설픈 대사와 설익 은 동작을 선보이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실감케 한다.
이것의 실례로 1992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각 가정의 거의 한 대 이상의 텔레비전이 보급되어 있다 고 한다. 그런데 각 가정 하루당 텔레비전 시청 시간이 주중에는 4시간 30분,주말에는 하루 종일 텔 레비전을 켜 놓고 산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텔레비전을 더 많이 본다 고 한다. 왜 이렇게 텔레비전을 많이 보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여가 활용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휴식공간도 적고 또 아이들 이 있으면 집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사실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탓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1992년 일본의 통계에 의하면 일본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 지 2만 2천 시간의 텔레비전을 시청한다고 한다. 같은 기간 동안 학교에 보내는 시간 은 1만 2천 시간입니다. 따라서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보 다 약 2배 정도 더 많은 것이다. 텔레비전을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귀로 듣고 입으로도 말을 한다. 피부조차 반 응을 보인다. 예를 들어 본다면 아이들이 혹은 청소년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코미디언의 말을 그대로 흉내를 내고 이것을 하지 못하 면 친구들의 교우관계 속에서 도태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실례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은 실제적인 우리들의 상 황이라는 점에서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텔레비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짧은 시간에 그토록 널리 보급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접근 을 위하여 텔레비전의 정체 및 문제제기,텔레비전의 위력,텔레비전의 양면성,텔레비전의 역기능에 폐해에 대한 대처 방안을 함께 생각 해 보고자 한다.
1. 텔레비전의 정체 및 문제 제기
대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문명의 이기(利器)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필요로 하는 정보와 지식을 신속하게 전해주고,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고,무료한 시간에도 불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미디어 평론가인 제리 맨더 같은 이는 텔레비전을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마비시키고 파괴시키는 마성(魔性)을 지닌 존 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혹은 '눈으로 씹는 껌'이 '눈으로 들어오는 마약'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이는 텔레비젼의 강 한 충동성을 지적하는 단면적인 실례입니다. 또한 오늘날 텔레비젼의 막강한 영향력을 빗대어 '제2의 신(神)이니 '제3의 부모'라 고 명명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의 정체에 대하여 기독교의 목회자로서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아니할 수 없는데, 기독교의 세계관에서는 '텔레 비전'을 하나의 '대중문화'의 부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본래 '대중'이란 말은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이가셋 (Ortega Y Gasset)에 의하면 널리 알렸는데,그는 그의 {대중의 붕기}라는 책에서 대중 을 {익명의 인간},{평준화되어 있는 인간},{책임을 지려하지 않는 인간},{감정에 민감하고 지성에 둔화된 인간},{평범한 인 간},{다른 사람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고 다른 사람에 의존하는 사람} 등으로 측징지웠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하여 볼 때에 이 와같은 대중을 만들어 내고,대중이 즐기는 의 문화'가 바로 대중 문화이며,'대중의 문화'는 분명히 현대사회의 중요한 문화형태임 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 심리학자 [리스만]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은 다른 사람중심의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대중은 책임 을 지지 않는다. 아니 책임을 질 수 있는 확고한 자아가 없습니다. 때문에 '피상적이고 향락주의적인 대중문화'의 한 형태인 '텔레 비전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전체를 총괄적으 로 볼 수 있는 의욕과 능력을 상실하고 스스로 매우 왜소하게 느껴서 멀리 내다보거나 전체를 생각하기 보다는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 을 전부하게 생각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흥미로운 것은 대중 문화가 본격적으로 우리들의 피부를 자극하게 된 시기는 7,80년대에 {우민 정책의 전형적인 방법}인 3S 정책과 연결 고리를 갖는데, 3S 정책이라고 함은 ① 스크린 ② 스포 츠 ③ 섹스를 통하여 국민들의 관심사를 다른 것으로 집중케 하는 전형적인 독재정책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록 짧은 시기이지만 중남미 에 위치한 '볼리비아'(Bolivia)라는 나라에 선교 유학를 가서 공부할 기회가 있는데, 멕시코,페루,칠레,에콰도르,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대부분의 나라의 대부분의 문제가 바로 이러한 3S 정책으로 말미암아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의 정책 혹 은 독재 정치에 관심을 갖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점인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들의 정책을 통하여 아주 지능적으 로 사탄이 '대중 문화' 속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① 가요(눈물과 한의 체념,허무주의 - 사랑은 눈물의 씨앗 등)
② 영화(폭력,외설,황당무계,강시,영혼과 사랑,미녀와 야수,E.T :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이 우리들에게 친근하게 표현)
③ 비디오(무방비,급속 확산,모든 사람에게 노출)
④ 문학(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생각케 하고 고상한 정서를 창출할 수 있는 예술 작품이나 삶의 깊이를 보게하는 문학작품보다 는 인간에게 이미 주어진 본능이나 자극하고 이미 대중이 가지고 있는 호기심에 호소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음)
⑤ 잡지(폭로성 기사,외설)
⑥ 신문(세스포츠 신문의 선정적인 음란,폭력 만화 연재,이것은 매스 미디어의 잘못 사용,정보의 통제,왜곡,과장,편향보도)
⑦ 텔레비전(연속극 속에서의 위화감 조장)
⑧ 연극(지나친 사업,나체 연극,전통적 문화전승이라는 미명 하에 우상과 미신숭배 조작케 하는 살풀이,씻김굿 등)
⑨ 광고(소비성,청소년의 섹스은어,표준말 부재,외래어 범람,광고모델의 연기,선정적인 속옷 선전,섹스 심벌을 교묘히 사용,중 독적인 말인 '한꺼번에 벗겨먹는 아이스크림','타는 가슴 까밀어요','흔들어주세요',진화적론 사단이즘 주입(테크노피아,인간과 기술 과의 만남,파라다이스 등),과학 만능주의 등)
⑩ 팝송(내용:난잡한 성행위,폭력성 - 헤비메탈,닙송,록뮤직 - 팝송을 듣지 아니하면 잠이 안 와요,우울증과 신경이 날카로와진다 고2 여고생,92년도 뉴키즈 언더블럭 내한공연 - 중학생 사망)
⑪ 컴퓨터(행복한 미래 보장하지만 사고력 말살,기술,기계의존케 하고 과학과 기술에 의한 숭배,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합니 다. 이것과 함께 요즘에 부각되는 있는 사실은 컴퓨터를 통한 {가상현실 게임}인데, 이것이 국내업계와 KIST의 공 동개발로 인하여 용인 자연농원에 배치된다고 하는데, 이것에 시시비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⑫ 직업관(양극단 - 철저한 성공위주,게으름 무사안일주의,황금,권력에 의한 몰이 우상화 내지는 물질의 풍요가 행복은 것은 아니다고 극단적으로 반응함...)
⑬ 매직 아이(입체 영상) : 시력 장애를 유발시킨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노골적인 성애장면을 묘사한 '성인용 매직아이'가 등장하여 많은 청소년을 자극하는 등 문제점이 제기 되고 있습니다.
①④ 게임 : 게임에 대한 악영향에
이러한 일련의 잘못된 대중문화의 결과로 인하여 ① 반항심을 갖게 하고 ② 성격을 난폭하게 하고 ③ 허무주의자로 만들 고 ④ 무분별한 성적문란을 조장하고 ⑤가출 그리고 살인할 것을 권고하고 ⑥ 자살 등을 시도하게 참으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 니다. 이것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몇날 몇일을 다 말씀드려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시간의 제약과 본 강의의 주제에 충실하고자 본 주 제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2. 텔레비전의 위력
텔레비전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이것은 허구를 현실처럼 착각케 합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은 아주 현실적인 매체'라고 인식하 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은 단지 내가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환상의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 다.
그런데 문제는 텔레비전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실 가운데 아주 관심을 끌만한 것을 소재로 택해서 다시 구성을 합니다. 그리고 구성하는 과정에서 내용을 잘 전달하고 강조하기 위해서 각색을 합니다.
어떤 부분은 아주 선정적으로 보이게 하고 어떤 부분은 동정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어쩌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 부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서 볼 때에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은 현실이 아니라 허구입니다. 텔레비전은 현실 매체이지만 그 내용 은 현실보다 허구쪽에 가깝게 전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텔레비전 앞에서 모두가 웃고,울고 함께 드라마 속의 인물이 되어서 괜실 히 등장인물을 향하여 자기 나름대로 평가를 합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하여 쉽게 배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보는 것처럼 생 각하지만 사실 자신의 세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닫아야 합니다. 남의 삶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행동을 검토하고 배 우게 됩니다. 여대생들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본다면,많은 여대생들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을 자신에게 적용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텔레 비전을 시청합니다. 텔레비전은 매우 화려하고 아주 예쁜 아이들이 나오고 공부도 잘합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것은 올바 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의 내용이 아무리 아름답고 잘난 모습만을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자신 의 모습을 비판하고 불필요한 열등감과 불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방 시대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텔레비전이 미치는 영향은 대 단하지만 그것은 핵심적인 문제점은 허구를 현실처럼 시청자들을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3. 텔레비젼의 양면성
텔레비전은 야누스적인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텔레비전이 악한 것이고,텔레비젼의 시청 행위가 악에 가담하는 것이라 면 우리들은 전국민적ㅇ로 아니 세계적으로 텔레비젼 제거 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제리 맨더와 같이 텔레 비젼을 제거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지만,전반적으로 유해한 측면과 유익한 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견해 가 우세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텔레비전을 사용하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있지 텔레비전이라는 '기계'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결국 텔레비젼 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인간에게 많은 유익과 가능성을 제공하는 문명의 이기가 될 수 있고,잘못 사용한 경우에는 인간과 사회를 해치 는 흉기가 될 수 있는 야누스적인 이중성을 지녔다고 할 것입니다.
(1) 텔레비전의 이기적(利器的) 측면
텔레비전을 잘 사용하면 얻는 것이 많이 있다. 텔레비젼이란 물리적으로 나무나 플라스틱 상자에 전선과 유리조각을 끼워 만 든 것에 불과하지만 사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여기에 메시지를 집어넣어 매스 미디어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문제 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한 여러가지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만 사용한다면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매우 유익한 존재 일 수 있는 그것들을 잘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텔레비전의 사회화 기능입니다.
이것는 텔레비젼의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규범,가치,관습 등을 습득시키는 기능인데,구체적으로는 사회적 관계나 인간 관계를 위해 필요한 소재나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는 역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텔레비젼의 교육적 기능입니다.
이것은 텔레비젼을 통하여 직접적인 교양,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사람들은 지식을 습득하기 때문입니다.
세째,텔레비젼의 각종 정보를 제공해 주고 환경을 감지해 주는 보도 매개체로서 의 기능입니다.
텔레비젼은 다양한 뉴스 관련 프로그램 및 사회 고발 프로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넷째,텔레비젼의 오락적 기능입니다.
텔레비젼은 여가를 편안히 즐기고 유쾌한 웃음을 주는 등의 오락 기능이 있습니다. 따라서 텔레비젼은 쇼,코미디,드라마,스포 츠 프로들이 기본적으로는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프로그램들인 셈인데,텔레비젼이 가장 역점을 두는 것들이 두는 것들이 이들 이라는 데서 오락 기능의 중요성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텔레비젼의 광고적 기능입니다.
광고를 통한 경제의 원활한 기능도 방송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광고가 차지하는 중요한 비중을 감안할 때 방송의 광고 기능은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마지막으로,텔레비젼의 여론 조성 및 상관관계의 조정 기능입니다.
이것은 텔레비젼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얻을 수 효과적인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텔레비젼의 이러한 기 능을 통해 민주사회 실현에도 중요한 역활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각종 선거방송을 통해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정치 감각을 훈련시키 고 정치적 선택의 합리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2) 텔레비젼의 역기능적 폐해와 한계의 측면
반면에 텔레비젼을 통한 그 폐해와 한계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텔레비젼의 기능 적 역활들은 방송 관계자가 이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하느냐에 따라,또 시민들이 제대로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성과가 가변적으로 나타 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능들이 역기능적 폐해로 뒤바뀔 수도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텔레비젼 의 역기능적 폐해와 한계는 어떠한 것들이 있겠습니까?
첫째,과다한 텔레비젼의 시청이나 바르지 못한 시청 자세에서 비롯되는 신체적 폐해를 들 수 있습니다.
시력의 감퇴,창의성 저하,소극적 성격으로 변화 등이 좋은 예들입니다.
둘째,텔레비젼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거리감을 상실하여 잘못된 세계관이나 가치관 등을 부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세째,무분별한 언어,행동,가치의 모방이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치관이 채 정립되지 못한 청소년들이 시청자들을 잘못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텔레비전의 문제는 폭력이나 성(性)보다는 가치관의 문제가 참으로 심각하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한 살 이전에 텔레비전 보기를 시작하는데 그 시간이 하루 1시간 4분 정도라고 합니 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더 많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매일 한 시간 이상 텔레비전을 본다고 한다 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의 광고 속에 담겨 전달되는 어떤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 다.
예를 들어 요즘 고등학생들이 가장 즐겨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대학생 사회를 아주 낭만적으로 그려놓은 프로그램이 있습니 다. 대학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진짜 대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나중엔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추구하게 되 는 것입니다.
고등학생 뿐 아니라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찾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주부들은 텔레비전 을 볼 때 어떤 가구가 놓여 있는가?,텔레비전에 등장하는 부부들은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는가? 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 다. 이런 것들 가운데는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가치관이 녹아 있어서 시청자들에게 전달됩니다. 그 대표적으로 낙태문제를 둘 수 있 습니다. 한국의 드라마에는 '아이를 지우겠다'는 생각과 대화가 별스스럼없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세계 제일의 낙태 국가입니다. 일년에 백만건이 넘는다고 합니다. 또한 이것은 기독교인들도 별 생각없이 낙 태를 합니다. 외국의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인데 사람이 그것 을 어떻게 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60년대 박정희 정권 때부터 산하제한 정책을 적극 실시하게 됨에 따라 낙태가 묵과 혹 은 장려되고 왔고,텔레비전 속에도 태아를 지우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주 쉽게 태아를 지우기로 결정하고, 돈 을 주면서 낙태를 권유하고, 의사들도 별 생각없이 낙태를 하는 일들이 텔레비전에 등장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이번에는 딸이니 다음 에 낳자' 등의 이야기를 스슬럼없이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사라들은 무의식적으로 낙태를 아무 것도 아닌 것으 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죄의식도 없습니다.
넷째,성차별을 비롯한 직업,계층,지역,연령 등 각종 사회적 관계의 차별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역기능적인 폐해 중에 심각한 문제는 성(性)의 문제입니다. 성서적으로 볼 때에 성(性)은 아름다운 것으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가정에서의 부부의 관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가운데 인기 프로는 '남자의 외도'에 대한 '여성의 갈등' 내지는 '여 성의 도전'에 대하여 선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으니까 얼마전에 방영되었던 '여자의 남자'라는 드라마 는 참으로 비윤리적이고 비정상적인 드라마의 전개임에도 이것을 '여성의 자기 표현'내지는 '자기 삶의 권리 주장'으로 촛점을 맞추려 는 부분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성(性)에 대한 표출의 장면들이 사실 텔레비전 속에서는 많이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폭력도 마찬가지지만 텔레비전 과 영화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텔레비전 속의 폭력은 영화와는 또 다릅니다. 섹스(Sex)는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의 문제라 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텔레비전 모니터를 할 때는 주로 노출이 어느 정조 심했다든지 출연자들이 야한 이야기를 했다든가 하 는 것을 모니터합니다. 그러나 시청하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케 하고 그것을 실제적으로 하고 싶은 욕망과 충동을 제공한다는 사실은 매 우 심각한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때문에 얼마전의 고등학생이 비디오의 내용을 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그대로 재연하는 어 처구니 없는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다섯째,프로그램의 흥미를 강조한 나머지 폭력성,선정성 등의 문제를 야기할 뿐 아니라 여러 유형의 인격 침해 사례를 초래하곤 합니다.
이 외에도 텔레비젼의 폐해와 기능적 한계들을 더 많이 열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심각한 문제는 일본의 조 사 결과에 따르면 교등학교 졸업 이전까지 텔레비전을 목격하는 살인 장면이 1만 5천건,미국의 경우에 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약 3만건,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5만건이라는 통계는 참으 로 우리들을 놀라게 만듭니다.
이것에 대해서 사회 심리학자들은 텔레비전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살인 장면을 목격하면 그것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중에 남 게 되어서 실제로 살인 장면을 목격하더라도 놀라지 않게 될 것이고,또 어떤 아이들에게서는 동일한 행동으로 유발될 것이라고 주장하 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4. 텔레비전의 역기능에 대한 대처방안
텔레비전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관한 논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유익보다는 손실을 가져다 주기가 쉽다는 인식 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흥미 위주의 프로그램,말초신경을 자극해서라도 시청률을 높이려는 제작자들의 얄퍅한 상혼,텔레비전의 막강 한 사회적 영향력에 비하여 그렇게 높지 않은 프로그램 제작들의 윤리의식,시청자의 이중적 태도,시간의 낭비 등 텔레비전에 대한 비판 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앞에서 언급한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하여 시청자들이 대처하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세상사를 사사건건 시시콜콜하게 따지면 어떻게 사느냐?,잘못된 것이 어디 텔레비전 뿐이냐 또 텔레비전이 잘못되면 얼마나 잘못 되었느냐,나는 그런 것 신경쓰지 않고 나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사료됩니다. 왜냐하면 그 본인은 아 무 생각없이 보지만 텔레비전은 그 사람 속에 많은 것을 집어 넣기 때문입니다.
둘째는,격렬한 대처 방안으로 텔레비전 같은 몹쓸 기계는 우리 집안에ㅔㅔ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의 시청자는 텔레비전을 소유하지 않거나 있어도 광에 쳐박아 두고 시청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자신과 자신 의 자녀들은 텔레비전의 해독으로부터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형 가운데는 그리스도인 중 상당수 이런 방식을 취하 고 있거나 혹은 언젠가는 나도 텔레비전을 없애버리고 말리라고 벼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째로,온건한 대처방안으로 텔레비전을 가려서 보는 것입니다.
좋은 프로그램과 나쁜 프로그램을 조사해서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것,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될만한 것,어른들만 보아 야 할 것 등을 판단하여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사료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아이들과의 약간의 마찰 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이 원칙을 충실하게 지켜감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은 텔레비전의 해독에서 면제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중에서 어느 것이 천거할 만한 대안인지는 자명합니다. 그러나 이 세가지 대처 방안이 모두 간과한 요소가 있습니 다. 그리스도인의 경우 혹은 지각이 있는 사람일 경우에 둘째의 대처 방안을 택할지 모릅니다. 물론 텔레비전을 집에 두지 않으니 까 신물을 많이 읽게되고 저녁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유익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않음으 로 텔레비전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 이 집에서는 제한될 수 있을 지 모르나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것을 전부 배우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에 텔레비전이 없으면 혹은 자기 집에서만 텔레비전을 가려서 보게 하면 아이가 텔레비전의 나쁜 영향에서 벗어나리라 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바로 이점을 잊고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위에서 열거 한 것과 같은 개인 차원의 혹은 가정 차원의 대책만을 세우지,그런 대책을 세우지 않는 가정의 자녀들로 인하여 자기 자녀가 당할 일 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아이들을 아무리 잘 단속하여도 텔레비전을 통하여 폭력에 길들여진 다른 아이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혹 은 꼬여서 함께 폭력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자기 아이들을 아무리 잘 단속하여도 텔레비전에서 섹스와 폭 력에 길들어진 아이들에 의하여 자기 딸이 폭행을 당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이즈를 개인적인 차원 으로만 대처하다가 수혈을 잘못 받아서 영문도 모르게 갓난 아이가 에이즈에 걸리는 것을 목격할 때의 부모의 황당함을 상상할 필요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모든 시청자가 텔레비전에 대하여 항의 혹은 격려을 하여야 한다고 필자는 사료하는 바입니다. 이것 이 우리 아이와 다른 집 아이들의 안전을 함께 위하는 가장 유효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필자의 의견으로는 보다 체계적으로 조직적인 활동 가운데 좋은 프로그램을 가려내는 텔레비전 시청자 운동 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사료합니다. 요즘 신세대의 문화가 개성인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방의 문화입니다. 물론 모방은 창조 의 첫 걸음이라는 형이상학적인 해석도 있지만 옷차림 뿐 아니라 생각,가치관까지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도 한 참 잘못된 것입니다. 어른들은 자신이 없어서 새로운 가치관에 대하여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못하고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에 게 나타난 이상적 부모상(父母像)과는 상이한 가치관을 지닌 부모님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른들 이 자신이 없어지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그러므로 텔레비전을 없애고 보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사회와 자신 의 삶에 대한 분명한 을 가지고 모니터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니터의 방향도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내서 살리려 는 쪽에 좀 더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맺은 말
결론적으로 말해서 텔레비전의 존재가치를 규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마약일 수도 있고,사탄의 유혹일 수도 있지만 또 한 일상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정보원(情報源)이자 세계를 향한 창(窓)이기도 합니다. 날로 발전 변모하는 과학기술에서 앞서 열거 한 텔레비전의 여러 페해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지만,지금 당장 우리들로서는 현재의 텔레비전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주목하여 그 역기능 을 최소화하는데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피력합니다. 한권의 책으로 사람의 일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인간 은 보고 듣는 것에서부터 배우고 행동하는 존재인데,오늘날의 매스컴은 사회도덕을 파괴하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한 여학생이 공포괴 기 영화를 보다가 귀신 들려 귀신과 대화를 합니다. 이러한 매스 미디어를 통한 폭력,음란,괴기물은 단순히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 라, 귀신이 영적인 지배를 한다는데 더 큰 위험이 있습니다. 많은이가 본다는 것,읽는다는 것을 대단찮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 나 상업적인 윤리때문에 국민정서를 헤치는 매체때문에 한 개인의 정신 썩어가면 가정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면 나라가 망하는 것 은 필연입니다. 그 한 예로 일본의 위선방송이 우리 가정에까지 침투하는 것은 명백한 문화침략입니다. 총칼로 점령당하는 것이라는 사 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텔레비전의 영향에 대하여 너무 무조건적으로 수용 혹은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여러 사회단체들을 통하 여 끊임없이 모니터하고 이것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시청자 모두가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면 시청자들이 바보가 아니라 주인으로서의 역활 적 기능을 다소이나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한다. 그러나 이러한 텔레비전 문화를 비롯한 대중 문화에 따른 역기능을 폐해 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이 회복되어야 하는데,도덕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며,잃어버린 본래 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으로써 "땅을 정복하고,땅을 다스리고,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