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바른 용어 사용하기&nbsp- 정장복교수


기독교 용어 연구위원회 

기도와 관련된 용어 

1. 당신→하나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은총으로…" 
"하나님 아버지, 당신께서 세우신 이 교회를…" 
와 같이 하나님을 '당신'이라 부르는 것을 종종 보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만일 어느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 당신이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말은 의당 다음과 같이 고쳐서 말해야 한다. 
"아버지,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이것을 샀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직접 들으시는 분으로서&nbsp2인칭이다. 우리말&nbsp2인칭 '당신' 은 결코 존대어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다만&nbsp3인칭에서는 극존대어로 쓰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 나님은&nbsp3인칭이 될 수 없고 우리 간구를 들으시는 분으로서&nbsp2인칭에 해당되므로 '당신'이란 호칭 은 안 된다. 

2. 기도 드렸습니다(기도하였습니다)→기도 드립니다(기도합니다) 

기도를 끝낼 때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와 같이 동사 '기도하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써야 하는데 요즈음 이를 '기도 하였습니다', '기도 드렸습니다'와 같이 과거형을 쓰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하 다.&nbsp5분이나&nbsp10분전에 기도를 시작했으므로 간구한 모든 말들은 문법적으로는 이미 과거 또는 현재완료 가 되므로 동사 '기도하다'의 과거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각도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기도 (祈禱)는 글자 그대로 그 핵심이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의 간구다. 간구의 내용은 소원이며 소원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러한 미래 지 향적인 소원을, 즉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였습니다'로 끝낼 수는 없다. 기도의 핵심인 간구의 내용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영원 한 현재성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기도의 마무리는 과거가 아닌, 현재로 끝내는 것이 옳다. 

3. 주여. 하나님 아버지시여→주님. 하나님 아버지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해 '주여', '주님이시여',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 라 부르는 것을 많이 볼 수 있 는데 이것은 어법상의 문제가 있다. 즉&nbsp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 국어에서 는&nbsp2인칭 존칭 명사에 호격 조사가 붙지 못한다.&nbsp2인칭에는 존칭이 아닌 경우에 한하여 호격 조 사 '-아'나 '-야'가 붙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친구 사이나 아랫사람에게는 
"복동아." 
"철수야." 
와 같이 부를 수 있지만 손윗사람에게는 호격 조사를 붙일 수 없기 때문에 
"아버님이시여." 
"할아버님이시여." 
라 부르는 것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존칭의&nbsp2인칭이 되기 때문에 이미 사어가 된 '-이여', '-이시여'를 붙여서는 안되고 그저 '주님',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로 해야 옳다. 

4. 우리 성도님들이→ 저희들이, 교회의 권속들이… 등등 

국어 존대법에서는 청자(聽者)가 최상위자일 경우 다른 어떤 인물에게도 존대를 쓸 수 없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은 바른 표현이 못된다. 
"할아버지. 형님이 가셨어요." 
"아버지. 누님이 오셨어요." 
첫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할아버지'와 주어인 '형님' 및 화자(話者)인 손자 '나'다. 여기서 청자인 '할아버지'가 최상위자이므로 '형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 없다. 
둘째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은 청자인 '아버지'와 주어인 '누님'과 화자인 '나'다. 여기서도 청자인 '아버지'가 최상위자이기 때문에 '누님'과 '나'는 존대를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위의 문장들은 다음과 같이 고쳐야 한다. 
"할아버지. 형이 갔어요." 
"아버지. 누나가 왔어요." 
공중기도에서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일한 입장, 동일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즉 기도 인도자는 회중과 동격이다. 그러므 로 지존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회중을 가리켜 '우리 성도님들'이라 존대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단순히 '저희들', '교 회의 권속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5. 대표 기도→기도 인도 

예배 순서 가운데 기도 시간이 되면 예배 인도자가 
"우리를 대표해서&nbsp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를 대신해서&nbspooo님이 기도하시겠습니다" 
"ooo님이 대표 기도를 하시겠습니다" 
와 같은 안내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적절한 표현이 못된다. 온 회중이 머리를 숙여 무언의 기도를 할 때 한 사 람이 소리를 내어 기도를 할 경우 우리는 이를 '기도 인도'라 부르는 것이 좋다. 기도 인도자는 기도의 대표자가 아니다. 이 기 도 인도자는 그와 함께 머리를 숙인 다른 사람들과 분리될 수 없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또는 생각까지도 그들과 결코 분리 될 수 없다. 기도 인도자는 대표로 뽑힌 어느 운동 선수와는 다르다. 그는 대표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며 그와 함 께 머리를 숙인 온 회중의 생각을, 즉 그들의 소원을 보다 깊게, 보다 하나님 뜻에 맞게 아울러 그 절차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맡 은 사람이다. 기도 인도자가 기도할 때 회중은 결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어 떤 경우에도 하나님에게는 대표성이 인정될 수 없다. 만인제사장의 사상은 하나님 앞에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사상이다. 이러 한 관점에서도 기도에 있어서 '대표', '대신'은 불가하다. 그러므로 '대표기도', '대신하여 기도…'는 '기도 인도'로 바꾸 는 것이 바람직하다. 

6. 사랑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 대신에 '사랑의 예수님', '고마우신 예수님' 등으로 하나님 아버지가 아닌 예수님을 호칭하는 것 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끝낼 때 반드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에게 우 리의 소원을 아뢴 후 다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도는 일차적으로 성 부 되신 하나님 아버지께 성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아뢰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 게 하려 함이니라'(요&nbsp1516)고 하신 말씀에 근거를 둔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 서두에 '하 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되어 있다. 역시 이 속에도 성부 하나님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우리 기 도의 본임을 알아야 한다. 

7. 참 좋으신 하나님→거룩하신, 은혜로우신, 전능하신, 진실하신, 자비로우신…하나님 

기도 서두에 하나님을 부르면서 그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하나님 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요즈음 '참 좋으신'과 같은 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재고를 요하는 말이라 하겠 다. 즉 성경에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쓰인 말들을 보면 '거룩하신', '만유의', '생명의', '신실하신', '의로우 신', '자비하신', '영원하신', '위에 계신', '능력이신', '진실하신', '구원하시는', '하늘에 계신', '사유하시는 ', '은혜로우신', '보수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홀로 하나이신', '천지를 지으신'… 등과 같이 대부분 객관적으로 하나 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말들이 수식어로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참 좋으신'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 수식어가 된 다. 즉 '참 좋으신'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의 주관적인 감정, 정서로 느끼는 바대로 표현한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얄팍 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그 속성을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과장하여 발전시킨다면 '사랑스러운 하나님'('사랑의 하나님'과 는 판이한 뜻이 된다.), '미운 하나님', '야속한 하나님', '귀찮은 하나님'… 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배. 예식 분야 

8. 사회자&nbsp---> 인도자(예배시)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사회(司會)라는 말은 회의나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사회자라고 하면 마땅히 일 반 회의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예배가 아닌 결혼예식이나 임직식 같은 인간 중심의 의식에서는 진행 을 맡은 사람을 사회자라 부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현장에서 사회자라는 명칭은 경건성의 결여를 느끼게 하므로 단 순한 사회자(presider)의 개념을 넘어 예배 인도자(Worship&nbspLeader)로 부름이 타당하다. 인도(引 導)의 사전적 의미는 "알려주며 이끄는 일"이므로 예배 인도라는 말을 회의에서의 사회와 구분지음이 타당하다고 본다. 
본 교단&nbsp1998년 총회에서 통과된 표준 예식서에는 모든 예배의 진행자는 인도자(引導者)로, 성례전과 같은 예전의 경우는 집례자로 표기하였음을 밝힌다. 

9. 성가대&nbsp---> 찬양대 

우리 한국 교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최근에 '성가대'로 많이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출판사들이 흑인 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 부르는데서 보편화되었다. 실제로&nbsp1960년대까지 우리 한국 교회 는 찬양대라는 이름이 통용되었고 성가대라는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세이카다이--성가대(聖歌隊)'가 그대로 직수입되면서 성 경에도 없는 '성가대'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성가라는 말은 불교를 비롯하여 모든 종교에서 부르는 노래이며, 우리의 ' 찬양'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행위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성가대'라는 용어는 성경의 정신과 우리의 고유한 이름 인 '찬양대'로 바꾸어 부름이 타당하다. 

10.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용불가(설교시)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는 한 인간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하여 어떤 사실이나 바람을 주님의 이름으로 빌고 원하 는 뜻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표현이 설교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연구 검토시킨 바 있는 본 교단 총회 는&nbsp1981년&nbsp65회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먼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기에 설교에 인간의 기도식 기원이나 기도 등의 형식을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설교는 설교대로, 기도는 기도대로, 축도는 축도대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의 사용은 회중에게 자극을 주고 흥분시켜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고는 안 되게 만들어 설교의 질서를 문란케 하고 미신적 기복 사상을 키워 줄 우려가 있다. 
넷째, 설교의 근본 목적이 흐려지고 회중들에게는 설교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아멘"을 하게 하는 식으로 유혹되기 쉽다. 
연구위원회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보고하면서 설교시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를 하지 않도록 건의하였고 총회는 이 를 아무 이의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서 한국교회의 설교 사역을 바로잡는 일이라 보아 설교시 에 이 말의 사용을 억제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11. 대예배-->주일 예배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감사함으로 응답하 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데 있어서 큰 예배가 있고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가 예배일진대, 거 기에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지칭하여 대예배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많은 교회들 이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 때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대 예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대예배가 있다면 소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어떠한 예배도 하나님 앞에서 소예배일 수가 없 다.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한에 있어서, 어떤 예배도 소예배일 수가 없다. 다만 예배일 뿐이다. 
물론 시간별로 예배를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라든지, 주일 저녁(오후) 찬양 예배라든지, 혹은 시간 에 따라&nbsp1부 예배,&nbsp2부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예배"라는 용어는 합당 한 말이 아니다. 



/기독교 용어 연구위원회- 위원장 정장복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