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예배신학
성경자료
구약에 있어서의 예배
필 자 : 정 규 남 교 수
아 세 아 연 합 신 학 대 학 구 약 학
Ⅰ. 서론
1. 어원
예배를 뜻하는 제일 중요한 구약의 단어는 '히쉬타하바'( )이다. 이 단어는 원래 '절하다, 엎드리다' 혹은 '부
복하다'를 의미한다. 또 다른 중요한 단어는 '아바드'( )이다. 이것은 '일하다, 봉사하다, 섬기다'를 뜻한다. 그러나 영
어 성경에서는 히쉬타하바를 자주 문맥의 내용을 고려하여 예배하다(worship)로 번역하며, 아바드도 종종 예배한다로 번역한
다. 우리 한글판 개역 성경은 '예배하다'란 번역보다는 원래의 의미인 '절하다'나 '섬기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어원적 고찰을 통해서 서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예배하다'란 말이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거나 섬기
는 행위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하러 가는 것은 어원적으로 '무엇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
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섬기는 것'이다.
2. 정의
어원적 고찰과 함께 구약 사람들의 예배 행위들을 살펴볼 때 구약에서 예배가 무엇을 뜻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제
일 처음 구약에서 언급되는 예배 행위는 창세기 4장에서 볼 수 있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이다. 가인은 농사를 지어 땅
에서 수확한 것으로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목축하는 자로서 양의 첫새끼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다. 그 후 홍수가 끝났을 때, 노아
는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를 드렸다(창8:20, 21). 아브라함이 하
나님의 부름을 받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곁에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으며(창12:7), 거기서 다
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해 단을 쌓았다(창12:8). 이삭이 그랄의 목자들과 다투는 것을 피하여 브엘세바
에 왔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
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이삭은 그 하나님에게 단을 쌓고 그의 이름을 부
르며 예배드렸다(창26:23-25). 야곱이 형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가다가 밤이 되어 돌베개하고 자던 중, 꿈 속에서 하늘에 닿
아 있는 사닥다리와 그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와 그 사닥다리 위에 서 있는 여호와를 보았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
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지키며, 그를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야곱은 아침에 일어나 자기가 베
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웠다. 그리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다(창28:10-22). 그리고 출
애굽 때에 모세는 바로에게 자기들이 광야에 가서 여호와께 희생과 번제물을 드리며 여호와를 섬기게 해달라고 했다(출
8:26, 27 10:25f.). 이렇게 하나님께 희생과 번제물을 드리는 예배의 행위가 보다 구체적으
로 레위기에서 제시된다. 모세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죄, 속건제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것들을 어떻게 드릴 것인가를 설명한다
(레1-7장). 이러한 모세의 율법에 따라 사사 시대나 왕조 시대에 드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는 주로 제사의 예배였다.
그러나 나중 선지자들과 시편 기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식적인 제사를 책망하며 참된 회개와 감사와 찬송과 기도의 예배
가 중요함을 가르치고 있다(호14:2 시50:14 5116, 17 69:30 삼상
15:22-23 사1:10, 20 렘7:21-26 암5:21-24 미6:6-8 등).
구약에서 제시되는 이와 같은 예배의 행위들을 볼 때 예배는 단순히 제사로만 드려지지 않았고, 때로는 기도와 찬송과 감사
와 진실된 마음과 입술로 드리는 예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구약에 있어서의 예배는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과 보
호에 대하여 믿음과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하는 인간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Ⅱ. 제사의 예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약의 예배는 주로 제사의 형태로 나타났다. 때때로 하나님께 제사드렸다는 말이 간략하게 여호와
께 '단을 쌓았다'( )고 표현되며, 구체적으로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레위기1-7장 가운데는 다섯 가지의 제사 형태에 대
한 기록이 있다.
1. 번제( , the burnt offering)
번제는 제물의 멱통과 더러운 것, 그리고 가죽(레7:8)을 제외하고는 전부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다. 제물로는 수송아지, 숫
양, 숫염소, 혹은 비둘기로서 새(鳥)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수컷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그 드리는 과정은 ① 제사드리는 자
가 제물을 회막에 가져오고(레1:5, 11), ②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며(레1:4), ③ 제물을 죽이고(레
1:5, 11), ④ 제물의 가죽을 벗겨 잘게 각을 떠서 자르고(레1:6, 12), ⑤ 내장과 정갱이
를 씻는다(레1:9, 13). 한편 제사장은 ① 제물의 피를 가져다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리고(레
1:5, 11), ②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으며(레1:7), ③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
을 단 윗불 위에 놓고(레1:8, 12), ④ 내장과 정갱이 모두를 단 위에 불사른다(레
1:9, 13).
번제를 드리는 목적은 성경에서 자세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략 다음의 네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
이 제사드리는 자를 '열납하시도록'(레1:3) 하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번제의 일반적인 목적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하나님이 제
물 바치는 자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도록 번제물을 드렸다는 뜻이다. 히브리 원문 성경에서 '라차
( , . . . 을 즐기
다, . . . 을 은혜로 받아들이다)'란 동사의 명사형인 '라촌( )'이, 하나
님께서 예배드리는 자를 은혜로 받아들이시도록 하기 위해 예배드렸음을 가르쳐 준다.
둘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번제를 드렸다(레1:9, 13, 17). 제물을 불살라 하
나님께 드릴 때 그것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곧 번제물이 타오를 때 그 냄새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하나님과 죄인
인 인간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보았다. 세째는 제사드리는 자의 죄가 용서받도록 번제가 드려졌다(레
1:4). 이 목적은 레위기에서 분명히 제시되고 있으나, 죄의 용서를 위해서는 따로 속죄제와 속건제가 있기 때문에 이 것이 대체
로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카일(Keil)은 번제가 '여호와께 완전히 복종하거나 혹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길을 걷겠다
'는 약속의 제사라 한다. 또한 드보(de Vaux)는 '예물에 의해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레
위기는 번제가 열납될 때 '속죄가 된 것이라'했다(레1:4 14:20). 또한 하나님은 아론에게 번제를 드려 아론
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말씀하셨다(레16:24). 이 구절들을 볼 때, 번제는 속죄제나 속건제처럼 어떤 특정한 죄를 속죄하
기 위해 드린 것이 아니라, 죄에 물든 인간의 성향을 용서받기 위해서, 혹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드리
는 제사인 것으로 생각된다.
네째, 번제는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뜻에서, 또는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드려진다. 창세기 22장에서 하
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쳐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다. 출애굽기 24:3-8에서는 백성이 시내산 계약을 받아들
인 후 모세가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드린다.
번제를 드릴 때 제사드리는 자가 제물에 안수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상징적인 행동이 아니라, 제물을 바치는 자가 안수와 함
께 죄를 회개하는 기도의 시간으로 생각된다. 레위기 16:21에 보면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
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낸
다.' 곧 안수는 기도가 동반되는 순서이며, 동시에 제물을 바치는 자의 죄를 제물에 전가하는 것을 상징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서, 안수하는 자의 권위나 임무가 안수를 통해 안수받는 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레위인에게 안수하며 이스라
엘 중 처음 난 자를 대신하여 여호와를 섬기게 했고(민8:10 참조, 민30:40-51),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서 그
의 권위가 여호수아에 전달되어 모세의 계승자가 되게 한다(민27:18, 23 34:9).
번제는 이스라엘의 제사 가운데 가장 자주 드려지는 제사로서 아침, 저녁에 드려지며, 성일(聖日)에는 보다 자주 드리는 제사
였다(민28:3 이하). 또한 번제물은 반드시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한다. 이는 다소간 흠 있는 제물이 허용되는 낙헌제
(the free will offering)나, 값이 싼 암염소를 바칠 수 있도록 허용
하는 속죄제와 비교된다. 그러므로 번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제사였음을 알 수 있다.
2. 소제( , the cereal offering)
소제는 번제나 화목제와는 달리 곡물로 제사를 드린다. 성소에서 공식적으로 매일 드리는 번제 후에 소제를 드렸다(민
28:3-5). 그러나 언제나 번제와 같이 드려지는 것은 아니다. 소산의 첫열매를 드리는 소제나(레2:15 신26), 의심의 소제
(민5:11-31)가 꼭 번제와 같이 드려진 것은 아니다.
소제의 주요 제물 중의 하나는 가루인데, 이 가루를 요리해서 바치든지 혹은 그냥 바칠 수도 있다. 요리를 할 때는 화덕
에 구워서 드리거나(레2:4), 번철에 부쳐서 드리거나(레2:5), 솥에 끓여서 드릴 수 있다(레2:7). 그리고 첫이삭을 제물
로 드릴 때는 첫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소제를 드리라 했다(레2:14). 그런데 모든 소제에 소금을 넣으라고 한다(레
2:13). 또한 소제에 보통 기름과 유향을 넣지만(레12:1, 2, 15), 누룩과 꿀은 넣지 말라
고 했다(출23:18 34:25 레2:11).
소제드리는 절차를 보면 ① 제물 드리는 자가 가루나 요리된 소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온다(레
2:1, 2, 15). ②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 가져와 소제물 중에 기념할 것을 취하여 단 위에
서 불사른다(레2:8, 9). ③ 소제물의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어 성전에서 먹게 한다(레
2:3, 10). 이러한 절차는 번제보다는 간소하며, 번제처럼 제물을 모두 하나님께 불태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다
만 한줌의 기념할 것을 조금 단에 태우고 나머지 전부를 제사장에게 주어 먹게 했다. 그러므로 소제물은 실제적으로 제사장들에게 먹
을 음식을 공급하는 제사였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돌아가는 이 소제물의 남은 것이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
라 하여, 하나님께 태워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거룩한 제사라고 강조한다(레2:2, 9).
소제를 드리는 목적은 분명히 성경에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소제를 가리키는 히브리 단어 '민하( )'가 의미하
는 '선물'이란 뜻이 소제의 목적을 암시해 준다. 즉 소제는 믿음의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일종의 선물로서 하나님께 충성심을 나타
내고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으려는 것이다. 신명기 26장을 보면, 소제에 의해 제사드리는 자가 약속의 땅 가나안
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며 수확의 첫열매를 드리고 있다(5-11). 또한 의심의 소제가 있는데(민
5:11-31), 이것은 아내의 부정을 의심한 남편이 보리가루 에바 십분지 일의 예물로 소제를 드려 아내의 간음 여부를 판단받도
록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였다.
이렇게 소제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께 선물을 드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고, 또한 예외적으로 아내
의 부정 여부를 알기 위해 드렸던 제사이다. 공식적으로 성소에서 매일 드리는 번제 후에는 항상 소제를 드렸고(민
28:3-5), 이 소제의 대부분은 제사장에게 주어 먹게 하는 제사장의 응식(應食)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성소에서 일했던 구약
의 제사장들이 먹을 음식을 공급받는 것처럼, 신약의 복음 사역자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받아야 함을 가르쳤다(고전9:13). 바울
은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다고 한다(고전9:14). 여기서 아마 바울은 누가복
음 10장의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킨 줄 안다: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리라(10:7).
3. 화목제( , the peace offering)
번제와 소제는 성전에서 매일 드리는 제사였으나 화목제는 사람이 그 제사를 드리고 싶을 때 드리는 선택적인 제사였다. 화목제
를 드리는 경우는 서원(to fulfill a vow)이나, 자원
(a freewill)이나, 감사할 때에 드리는 제사이다(레7:12). 화목제의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이며, 번
제 때와는 달리 수컷과 함께 암컷도 드릴 수 있다(레3:1, 6).
제사 드리는 과정을 보면, ① 제물 드리는 자가 여호와 앞에 제물을 가져오고, ②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며, ③ 제물을 죽이
고 ④ 제물 중에 기름과 두 콩팥을 하나님께 바치도록 떼어낸다. 한편 제사장은 ① 제물의 피를 단 사면에 뿌리고, ② 제물 중
에 기름과 두 콩팥을 화제로 하나님께 불살라 드린다. 이런 과정을 살펴 볼 때, 대부분의 절차가 번제와 비슷하지만 제물의 내용에
서 차이가 난다. 번제를 드릴 때, 멱통과 더러운 것과 가죽을 제외하고 전부를 태웠으나, 화목제의 경우는 주로 제물의 기름
( , fat, best part)과 두 콩팥만을 화제로 드리고 제물의 가슴은 아론
과 그 자손에게 주었으며, 우편 뒷다리는 당일 제사를 집례한 제사장에게 돌렸으며, 남은 제물은 제사드리는 자가 그의 가족이나 노비
나 레위 사람들과 함께 성전에서 먹었다(참조, 레7:15-21 신12:17, 18).
화목제를 드릴 때 특별히 기름과 두 콩팥만 화제로 불사르게 한 이유가 분명히 밝혀지지 않지만, 이는 기름이 구약에서 '가
장 좋은 것'과 동의어로 사용되며 또한 기름은 동물의 힘을 공급하는 원천이기 때문에 제사드리는 자가 기름을 드림으로써 그 제물
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이 된다. 제물이 제사드리는 자를 대신한다고 생각할 때, 기름을 드림으로써 제사드리는 자는 자기 생명
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특별히 하나님께 화제로 드리게 한 것은 구약에서 콩팥이 감정과 생각과 양
심이 있는 곳으로서 지칭되었기 때문이다. 한글판 개역 성경은 콩팥을 '마음'(렘12:2, 욥19:27)이나 '심장'(시
16:7 73:21)으로 자주 번역하였다. 그러므로 콩팥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가장 깊은 순수한 감정이나 생각
을 하나님께 바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화목제는 서원한 것을 갚을 때 드리거나 스스로 자원하여 드리거나, 감사하기 위해 드린다. 오늘날 우
리의 감사헌금은 비록 축제의 음식은 없으나, 하나님의 도움이나 은혜나 사랑 등에 감사하며 자진해서 드리는 헌물이기 때문에 구약
의 화목제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4. 속죄제(  the tresspass offering)
속죄제는 동물이나 곡물로 드려지는 제사로서 부지 중에 혹은 실수로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린 제사이다(레
4:13, 22, 27). 이 제사는 번제나 소제나 화목제와는 달리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드려
야 할 제사이다.
속죄제의 제물은 범죄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리 요구되는데, ①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 범죄했을 때는 흠 없는 숫송아지
를 드리라 했고(레4:3), ② 온 회중이 범죄했을 때는 숫송아지를 드리라 했으며(레4:13), ③ 족장이 범죄했을 때는 흠 없
는 염소를 드리라 했고(레4:23 이하), ④ 평민이 범죄했을 때는 흠 없는 암염소나(레4:28) 흠 없는 어린 암양(레4:32)
을 드리라고 한다. 그리고 가난하여 어린양을 제물로 바칠 수 없는 자는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둘로 드리라고 했으며(레
5:7), 더 가난한 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제물로 드릴 수 있다(레5:11).
속죄제를 드리는 절차는 범죄자가 기름부음받은 제사장일 경우 ① 그는 흠없는 수송아지를 여호와 앞으로 데려오고, ② 그 제물
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③ 그 제물을 죽이고, ④ 그 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자기의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
와 앞 성소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⑤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남은 피 전부를 회
막문 앞에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⑥ 두 콩팥과 모든 기름을 번제단 위에 불사르고, ⑦ 그 제물의 가죽과 모든 고기와 머리
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 사른다.
위의 속죄제를 드리는 절차를 보면 ①부터 ③까지는 번제나 화목제와 같은 것을 알 수 있지만 ④⑤⑦은 속죄제 특유의 절차이
다. 번제나 화목제의 경우에는 제물의 피를 회막문 앞 단 사면에 뿌리라고 했는데,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물 드리는 자의 신분에 따
라 제물의 피를 처리하는 과정이 다르다. 앞에서 본대로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릴 때는 그 제물의 피를 자신이 직
접 회막에 갖고 가서 자기의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성소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고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향단 뿔에 바른
다. 이렇게 피를 회막 안에 가지고 가서 성소 휘장에 뿌리며 여호와 향단 뿔에 바르게 한 것은 기름 부음받은 제사장의 죄는 일
개 족장이나 평민의 죄보다는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레4:3) 용서를 받는 데도 더욱 심각한 절차를 행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
나 왜 특별히 회막 안의 성소 휘장에 피를 뿌리며 향단 뿔에 피를 바르게 했는지 그 이유가 분명치 않다. 아마도 기름부음 받은 제
사장이 그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행할 중보의 역할을 할 수 없도록 죄의 휘장이 가로 놓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
시는 지성소로 통하는 휘장에 피를 일곱 번 뿌림으로써 죄 용서를 받고 죄의 휘장이 걷혀져서 다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중개 역할
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때 피를 일곱 번 뿌린 것은 일곱이란 숫자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완전수이기 때문에 완전히 죄 용서를 받도록 피를 뿌
린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또한 향단의 뿔에 피를 바르게 한 것은 향단이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의 죄로 인해 영적으로 더럽혀졌
기 때문에, 이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이다(참조, 레16:18, 19). 향단이 더러워졌을때 그것 위에 태운 향이 결
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속죄제를 드리는 절차에서 제물의 모든 기름과 두 콩팥을 번제단 위에서 태우
고, 그 나머지 제물의 가죽과 모든 고기와 머리와 다리와 내장과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 바깥 재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불
로 나무 위에서 살랐다. 그리하여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의 속죄제의 고기가 제사장이나 제사를 드리는 자의 음식이 되지 못하게 했
다. 이렇게 제물을 제사장들이 먹지 못하게 하고 진 밖에 나가 태우게 한 것은 속죄제 가운데서도 특별히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
과 온 회중이 드리는 속죄제에 제한되어 있다. 아마 그 이유는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나 온 회중의 죄는 중대해서 그들이 제물의 머
리에 안수 할 때 그 제물이 너무 크게 오염되기 때문인 줄 안다. 그러므로 이 제물은 먹지도 못하게 하고,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
로 태우지도 못하게 하고, 진 밖에서 불살라 태우게 한 것으로 이해된다.
회중이 범죄했을 때에 드리는 속죄제의 절차는 기름부음 받은 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릴 때와 거의 같다. 단지 안수할 때 회중
의 장로들이 제물의 머리에 안수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제물의 피를 회막 안으로 가져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
어 여호와 앞 휘장에 일곱 번 뿌리고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른다. 이는 온 회중의 죄도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의 죄와 같이 회
막 안의 휘장과 향단을 더럽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족장과 평민이 속죄제를 드릴 때는 제사장이 그 제물의 피를 손가락에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나머지 피를 번제단 밑
에 쏟았다(레4:25, 30). 이렇게 회막 안에 들어가서 피를 휘장에 뿌리지 않고, 향단 뿔에 바르지 않은 것
은 족장과 평민의 죄가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나 온 회중의 죄보다 덜 중요시 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제물의 모든 기름
은 단 위에서 불살라졌고, 제물의 나머지 부분들을 어떻게 처치했는지 레위기 4장에는 분명히 기록되지 않았다. 그런
데 레위기 6장을 보면 족장과 평민이 드린 속죄제의 고기는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도록 했다(24-30절). 이
는 제사장이 그 제물 드리는 자의 죄를 담당하며 그가 여호와 앞에서 속죄함 받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먹도록 한 것이다
(레10:17). 제사장이 범죄한 자의 죄를 전가받은 제물의 고기를 먹음으로 제물과 동일화되지만 제사장은 그의 거룩함과 그의 직책
의 거룩케 하는 능력에 의해 죄를 없이 해 주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이 속죄제를 통해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볼 수 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는 제물의 피를 통해 속죄
함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죄책이 죄인에게 그대로 있음을 시사해 준다. 죄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 죄의 중대함
이 다르다. 특별히 성직자는 자기의 죄가 단순한 개인적인 죄가 아니라, 그 죄의 결과가 모든 회중에게 파급되는 죄임을 가르쳐 준
다. 이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도 훨씬 값비싼 것을 드려야 했다.
5. 속건제( , the guilt offering)
하나님과 사람에게 부지중에 혹은 실수하여 죄를 범한 후 용서받기 위해 드린 제사이다. 속죄제는 배상할 수 없는 그런 죄
를 용서받기 위해 드린 제사였다. 그러나 속건제는 배상할 수 잇는 죄를 범했을 때, 즉 하나님께 속한 것이나 동료 사람에게 속
한 것과 관련하여 죄를 범하였을때 드리는 제사이다. 즉 ① 거짓 맹세하여 물건을 취했을 때(레6:5), ② 해방되지 않은 여인
과 행음했을 때(레19:20-22), ③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범죄했을 때 드리는 제사이다(레5:15)
속건제를 드리는 절차가 레위기에서 간략히 기술되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대충 성경에 진술된 자료에 의하면 제물을 드리
는 자는 ① 도적이나, 늑봉(돈이나 물건을 억지로 받아냄)이나 유실물(遺失物)을 거짓말하여 소유했을 때 그 것들을 주인에게 보내
되 그 본물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보내고(레5:16 6:50), ② 제사장이 지정한 가치에 따라 흠 없는 숫양
을 떼 중에서 골라 제사장에게 끌어온다(레5:15, 18 6:6). 또한 레위기에는 분명히 명시되
지 않았으나, ③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참조, 레5:5, 6), ④ 제물을 죽이고, ⑤ 제물의 기름과 두 콩팥
을 떼어서 제사장에게 주었을 것이다. 한편 제사장은 ① 제물의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고, ② 제물의 기름과 두 콩팥을 단 위 불
에 태우고, ③ 제물의 고기를 가지고 속건제를 드리는 자를 위해 속죄하여 죄사함을 받게했을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속건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드린 다섯 제사 가운데 가장 간략히 설명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
지중이나 혹은 실수하여 범한 죄 가운데서 특별히 상대방에게 배상할 수 있는 죄들을 용서받기 위해 제정된 제사임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다섯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드린 주요 예배였다. 동물이
나 곡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감사하기 위해, 죄 용서함을 받기 위해, 서원을 갚기 위하는 등등 여러 가지 목적
을 위해 하나님께 예배드렸다. 이러한 물질적인 외형적 구약의 제사는 신약 시대의 예배보다 더 감각적으로 생생하고 예배드리는 자
가 적극적으로 제사 지내는 과정에 참여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가 형식화되고 예배드리는 참 목적을 상실하여 외형적
인 의식만 습관적으로 행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참된 영적 예배를 강조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신약과 비
슷한 구약의 영적 예배가 생기게 된다.
Ⅲ. 영적 예배
앞서 우리는 구약에서 주로 행해졌던 제사 형태의 예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구약 예배의 전부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
성이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고 그들의 진실된 마음이 제사에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사를 거절했다. 이런 상황
에서 하나님이 보다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기 위해 시편 기자나 선지자들은 영적인 제사를 주장한다. 이 영적인 예배는 내적인 바
른 자세를 가지고 드리는 찬송과 감사와 기도의 예배이다. 시편 69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69편의 전체 시를 통해 시편 기자는 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린다. 그는 자신의 이런 고통들이 원수들
의 모략과 훼방과 죽이려는 계획에서 생겼음을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주시길 바라며 가난하고 슬픔에 처한 그
를 높여 달라고 간구한다. 이런 간절한 기도 끝에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확신하며 외치기를 내가 하나
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그에게 감사드림으로 존귀케 하고 영화롭게 할 것이라 한다. 시편기자는 바로 이러한 찬송과 감사의 예배가 뿔
과 굽이 있는 황소로 제사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동물로 드리는 제사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
이 아니다. 오히려 예배자가 그러한 동물의 제사들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찬송과 감사를 그의 입술을 통하여 직접 드리는 영적예배
를 하나님이 더욱 마음에 들어 할 것이라는 뜻이다. 시편 기자는 동물의 제사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의 찬송의 예배
가 더 종요함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왜, 찬송과 감사의 영적 예배를 동물로 드리는 제사의 예배보
다 더 기뻐하실까를 밝히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 당시 제사 제도가 형식화되고 참된 의미를 상실하여 비판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
기 때문인 줄 안다. 이런 의미를 분명히 해주는 시편의 구절을 시편 50편에서 볼 수 있다. 시
편 50편은 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문체로 기록되어 있다.
 7 내 백성들아 들을찌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반대하여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내가 너희 제물을 인하여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수염소를 취치
아니하리니,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15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위의 7-1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동물 제사를 책망하시고 있다. 첫째, 7절
에서는 서론적인 말들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그들의 잘못을 증언하여 경고하려 한다. 그리고 이 경고를 하시
는 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한다. 둘째, 8-13절은 하나님이 무엇을 책망하시려는가를 밝혀준다. 그들이 책망받
은 것은 그들이 동물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제사가 보여주는 옳지 않은 태도들 때문이다. 하나님은 '네 번
제가 항상 네 앞에 있음이로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늘 제사를 드리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물
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은 제사를 필요로 하고, 제사에 의존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스라엘백성들의 가소로운 행동에 대
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수소나 숫염소가 필요없다고 하신다. 이는 삼림의 짐승과 수천의 산에 있는 생축이 다 하나님의 소
유이기 때문이다. 산의 새들도 들짐승도 하나님의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줌으로써 동물의 제물로 하
나님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하고 그의 뜻을 거스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시고 있다. 하나님께서 배고파 주린다
고 가정한다 할지라도 사람에게 제물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세계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제
물의 고기를 먹고 그 피를 마신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그리고 세째로, 14, 15절에서 하나님의 요구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혀 준다. 하나님은 바른 마음가짐이 없는 외적인 제물들의 제사가 아니라, 참된 마음으로 감사의 예
배를 드리라고 하신다.
감사의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의 제물에 의해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이 하나님께 의존함을 고백하고 우리의 인생이 하
나님의 은총으로 사는 것을 감사드리는 예배이다. 또한 우리가 서원한 것을 행하며, 어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라
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이와 같이 시편50편은 그릇된 태도와 마음
에서 드리는 제물들의 제사를 거절하고 바르고 참된 마음에서 드리는 영적인 예배를 강조해 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구약의 예배
가 신약에서 드리는 영적인 예배에 매우 접근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시편50편은 구약의 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부정하
지 않고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하지만, 제사드리는 자의 바른 마음이 수반되지 않은 제사의 가식됨을 책망한 것이다. 하나님께 제사
를 드리면, 하나님이 미워하는 도적질이나 간음을 해도 용서받는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악을 자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러므
로 잠언 기자는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고 말한다(21:3). 또한 '악인
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교훈한다(15:1). 이사야는 참된 마음이 수반되지 않
아 생활 속에 표현되지 않은 제사의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고(1:12), 오히려 하나님께 무거운 짐이며(1:14), 하나님
을 괴롭게 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1:14, 24). 이와 같은 맥락에서 미가 선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천
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이 아니라,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했다(미
6:6-8). 이런 사상은 일찌기 사무엘의 말에서 나타난다. 즉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과 양과 소
의 가장 좋은 것을 살려 주려는 사울왕을 책망하면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고 분
명히 선포한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얼마 전, 주전 8세기 후반에 호세아 선지는 그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와서 '모든 불의
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고(14:2, 히브리 성
경 14:3) 아뢰며,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죄들을 회개하라고 한다. 호세아가 볼 때 멸망 직전에 있는 나라가 살 길
은 외적으로 거창한 의식을 갖춘 제사 예배가 아니라, 속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영적 예배를 드리며, 여호와만 의지하는 것이
라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가식적인 제사를 거부하며 호세아는 말하기를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
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고 한다(호5:6).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제사의 예배가 거절되는 것은 그들
의 진실된 마음이 수반되지 않고 외적인 의식만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예배는 내용없는 껍데기만 난무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하
나님 앞에 속죄제를 바치러 왔다면 속죄 제물만 드릴 것이 아니라, 그 속죄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면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해
야 한다(참조, 레16:21, 5:5 이하 민5:6 이하).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만 바치고 참다운 회개의 마
음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속죄제사를 하나님은 거절한 것이다. 이제 타성에 젖어 형식화되고 내용없이 드려지는 제사의 예배 대
신, 이 제사의 예배가 원래 목적했던 바를 외적인 의식에 휩싸여 소홀히 됨이 없이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영적 예배를 드리도록 했
다. 곧 예배드리는 자가 참된 마음을 갖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며 경배하게 한 것이다. 이 영적 예배
는 선지자 시대 때로부터 강조되면서 이스라엘의 포로 시대 때에 예배의 중심 형태가 되었고, 회당과 신약 시대의 예배 형태가 된 것
이다. 한편 이스라엘의 제사 예배도 선지자들의 강한 도전을 받았으나,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성전이 로마 군대에 파
멸될 때까지 지속되었다(참조, 눅2:24).
결론
구약의 예배를 통해 우리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첫째,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그를 경배하기 위함이다. 하나
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영적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한 그에게 감사하며 기도드리는 것이다. 그냥 성전에 가만히 앉아
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받고자 하는 것은 구약의 예배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예배드리러 가면서 그냥 은혜받으러 간다
는 생각이나 자세는 예배의 목적에서 볼 때 결코 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나 기도나 찬송이나 감사를 드릴 때 그
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가 위로나 격려나 용서나 기쁨을 받을 수 있다.
둘째, 구약에서 예배드리는 자는 예배 순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특히 번제를 드릴 때면 제사드리는 자는 ① 제물을 가져오
고, ② 제물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③ 제물을 죽이고, ④ 제물의 가죽을 벗겨 잘게 각을 떠서 자르고, ⑤ 내장과 정갱이를 씻는
다. 이렇게 전체 제사 예배의 많은 순서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그냥 앉아서 제사장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그런 예
배가 아니다. 오늘의 개신교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지나치게 목사 중심의 에배 진행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세째, 예배드릴 때에 참된 마음이 수반되지 않으면 그 예배가 결코 열납되지 않는다. 곧 마음 속에는 악독한 생각이 가
득 차 있고 회개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제물만 가져와서 예배드릴 때, 그런 예배는 하나님께 무거운 짐이며,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
라 한다. 예배드리는 자가 외적인 제물을 드릴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 제물을 드려 예배하려는 목적에 합당한 마음을 가져야 함
을 가르쳐 준다.
네째, 예배가 생활에 연장되어야 한다. 예배드릴 때만 하나님의 자녀인 것 같고 예배 후에는 되는 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
이 아니다.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 것을 약속했으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전
혀 죄를 짓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약하고 불완전하여 죄를 짓고, 넘어지게 될지라도 곧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며, 고의적으로 지속적인 죄를 범하는 그런 악을 행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예배드릴 때는 선한 것 같고 생활 속에는 악으로 가
득 차 있을 때, 그러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경멸하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보다 공의
와 인자를 원하신다고 했고(미6:6-8), 악인의 제사를 미워하신다고 했다(잠언 15:8).
예배를 제물로 드리든지 입술의 열매로 드리든지 예배드리는 자는 그 예배에 합당한 마음을 수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예배
는 하나님이 싫어 하신다. 끝으로 예배가 생활 속에서 연장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악인의 예배는 하나님
께 무거운 짐이 되며 괴로움을 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