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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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참 모습을 보여주자
얼마 전 강원도 문막에 있는 '포도마을교회'의 임직식에 간 일이 있다. 이 교회는 왕십리 교회가 오랫동안 연관을 갖고 상 호 협력하는 곳으로 정신적 육체적 장애우들을 돌보는 시설안에 얼마전 세워진 교회이다. 이 시설의 원장이 장로장립을 받은 것이다.
나는 이곳을 방문 할 때마다 가족들도 돌보지 않는 불우하고 소외된 인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 곳 식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며 몇 가지 질문을 새롭게 던지곤 한다.
‘과연 나는 소외된 이웃을 향해 본격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이웃사랑은 본격적인가?’
선행을 실천해야할 목회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계절이 오거나 프로그램에 의해서 어쩔 수 없 이 형식만 갖추어 오지는 않았는가 하는 질문인 것이다. 그 질문 끝에 ‘아! 본격적이지 못했구나’라는 반성이 뒤따랐다. 만일 본격 적으로 추진하고 진행하였다면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이웃사랑의 열매들을 맺었을 터이고 사회는 우리와 교회를 향해 큰 박수를 보내 고 좀 더 마음을 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번은 교회에서 경로잔치를 하고 선물을 나눠주는데 그 선물을 보면서 한 분이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참, 정말 왕십리 수준이네!” 왕십리가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낙후했던 것을 비유로 한 말이지만 그 말이 큰 충격으로 되돌 아 왔다. 그리고 시작한게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를 좀더 실속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교회는 바자를 하면서 불우이웃을 돕는다 고 했지만 규모도 작고 형식적인 연례행사처럼 진행돼 왔다. 그래서 ‘소외자 돕기’ 바자로 목표를 분명히 하고 혁신을 도모했다. 물 건도 백화점에 입점되는 질 좋고 수준 있는 물품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품목으로 구비했다. 자연히 규모도 커졌다. 그러자 치밀한 계획 도 세우고 교인들도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수입도 많아져 더 많은 소외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됐다.
필자는 단지 규모가 크고 많은 수입으로 소외자를 돕는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이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과 뜻 이 모이면 적극성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보람이 생기고 신앙이 깊어지며 교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다. ‘본격적’ 이란 말과 ‘큰 그릇’ 의 의미는 요란하거나 또는 큰 규모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교회가 사명을 찾아 적극적으 로 임하고 형편과 처지에 맞게 넉넉하게 할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다. 이라크 파병문제와 정치자금 파동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렵다. 금년에는 태풍피 해도 심했고 수십년 만의 흉년으로 그 어느 해 보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차 겁게 느껴진다. 이럴 때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춥고 배고픔은 더욱 클 것이다. 본격적인 돌봄이 필요하고 큰 그릇의 온정이 필요하 다.
12월은 1년을 마무리하는 달이다. 년말 정산이다 망년회다, 여러모로 바쁘기도 하고 씀씀이가 많은 달이기도 하다. 교회적으로는 성탄절이 있고 새로운 예산을 세우며 내년을 준비하는 달이다.
국가가 어렵고 사회가 침체됐을 때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 성경적으로 보면 어렵고 힘들 때 교회가 나섰다. 교회가 앞장서 신 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자. 국가를 위해 특별기도를 하고 사회에 훈훈한 인정이 돌게 하자. 바람몰이식 집단적인 행사보다도 교회를 중 심으로 기도주간을 선포하고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자. 특히 금년에는 연례적이거나 형식적이지 말고 뜻과 맘을 다하여 보다 열 린 맘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보자. 그렇게 한국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주면 분명한 응답이 있을 것이다.
기독신문 / 오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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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원도 문막에 있는 '포도마을교회'의 임직식에 간 일이 있다. 이 교회는 왕십리 교회가 오랫동안 연관을 갖고 상 호 협력하는 곳으로 정신적 육체적 장애우들을 돌보는 시설안에 얼마전 세워진 교회이다. 이 시설의 원장이 장로장립을 받은 것이다.
나는 이곳을 방문 할 때마다 가족들도 돌보지 않는 불우하고 소외된 인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 곳 식구들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며 몇 가지 질문을 새롭게 던지곤 한다.
‘과연 나는 소외된 이웃을 향해 본격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이웃사랑은 본격적인가?’
선행을 실천해야할 목회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계절이 오거나 프로그램에 의해서 어쩔 수 없 이 형식만 갖추어 오지는 않았는가 하는 질문인 것이다. 그 질문 끝에 ‘아! 본격적이지 못했구나’라는 반성이 뒤따랐다. 만일 본격 적으로 추진하고 진행하였다면 지금과는 현저히 다른 이웃사랑의 열매들을 맺었을 터이고 사회는 우리와 교회를 향해 큰 박수를 보내 고 좀 더 마음을 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번은 교회에서 경로잔치를 하고 선물을 나눠주는데 그 선물을 보면서 한 분이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참, 정말 왕십리 수준이네!” 왕십리가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낙후했던 것을 비유로 한 말이지만 그 말이 큰 충격으로 되돌 아 왔다. 그리고 시작한게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를 좀더 실속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교회는 바자를 하면서 불우이웃을 돕는다 고 했지만 규모도 작고 형식적인 연례행사처럼 진행돼 왔다. 그래서 ‘소외자 돕기’ 바자로 목표를 분명히 하고 혁신을 도모했다. 물 건도 백화점에 입점되는 질 좋고 수준 있는 물품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품목으로 구비했다. 자연히 규모도 커졌다. 그러자 치밀한 계획 도 세우고 교인들도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물론 수입도 많아져 더 많은 소외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됐다.
필자는 단지 규모가 크고 많은 수입으로 소외자를 돕는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이 사례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과 뜻 이 모이면 적극성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보람이 생기고 신앙이 깊어지며 교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다. ‘본격적’ 이란 말과 ‘큰 그릇’ 의 의미는 요란하거나 또는 큰 규모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교회가 사명을 찾아 적극적으 로 임하고 형편과 처지에 맞게 넉넉하게 할 때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연말이 다가왔다. 이라크 파병문제와 정치자금 파동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렵다. 금년에는 태풍피 해도 심했고 수십년 만의 흉년으로 그 어느 해 보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차 겁게 느껴진다. 이럴 때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춥고 배고픔은 더욱 클 것이다. 본격적인 돌봄이 필요하고 큰 그릇의 온정이 필요하 다.
12월은 1년을 마무리하는 달이다. 년말 정산이다 망년회다, 여러모로 바쁘기도 하고 씀씀이가 많은 달이기도 하다. 교회적으로는 성탄절이 있고 새로운 예산을 세우며 내년을 준비하는 달이다.
국가가 어렵고 사회가 침체됐을 때 뭔가 전환이 필요하다. 성경적으로 보면 어렵고 힘들 때 교회가 나섰다. 교회가 앞장서 신 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자. 국가를 위해 특별기도를 하고 사회에 훈훈한 인정이 돌게 하자. 바람몰이식 집단적인 행사보다도 교회를 중 심으로 기도주간을 선포하고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자. 특히 금년에는 연례적이거나 형식적이지 말고 뜻과 맘을 다하여 보다 열 린 맘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보자. 그렇게 한국 교회의 참모습을 보여주면 분명한 응답이 있을 것이다.
기독신문 / 오치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