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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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하시는 복”(엡 1:7-12)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주시는 풍성한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을 얻기 위해 힘쓰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복(福)을 감사(感謝)하고 찬양하면서 받은 복을 누리고, 다른 이들과 도 함께 그 복을 나누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3-6절의 말씀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에 대한 말씀이라면 오늘 본문 7-12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주시는 풍성한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거저주신 복으로서 '선택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자기의 아들 딸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이 과거적으로 주시는 '선택의 복'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현재적으로 주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아들로 선택 된 복(福)”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창세(創世)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의 수준”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뜻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대상인 우리들을 붙들고 계심을 깨닫고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말씀은 7절 상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in christ)라는 말씀으로서 이 말은 에베소서에서 30회 정도 기록되어 있는데, 1장에서만 11회나 기록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에베소서의 별명(別名)]을 「그리스도 안」의 서신(書信)이라고 부를 정도 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철저하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새사람으로 변화되었고, 바울은 「예수」의 멸시와 핍박의 포악한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에」들어 왔을 때 회개와 복종의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 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의 13개의 서신서 중 9개의 서신 서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이신 예수님을 먼저 체험하였지만 바울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먼저 체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예수 그리스도」 이건 「그리스도 예수」이건 표현의 자유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하늘 높은 보좌에서 선택의 축복을 계획하셨다면, 성자 하나님은 그 축복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낮고 낮은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양팔을 벌리고 그리스도의 품안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때가 찬 경륜 속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가 찼다'는 동사는 중요한 말입니다. 헬라어의 [때]라는 시간의 동사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양적인 시간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카이로스]라는 '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하나님의 시간, 바로 그 때가 찼다고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드디어', '바야흐로', '마침내' 이루어지고야마는 그러한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이 예정한 때가 되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례 요한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촉구했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그야말로 때가 찬, 하나님의 경륜의 때에 에베소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우리가 발견하고, 깨닫고, 그리고 풍성히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1. 「풍성한 은혜(恩惠)」의 축복입니다.(7절)
사도 바울이 7절 중반 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도들에게는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恩惠)를 풍성히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은혜](恩惠)란 말은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즉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죄인들을 대신하여 흘리신 피 입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죄(罪) 사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의 은혜는 풍성합니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함의 능력과 범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신약 시대의 이방인들이나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씻었습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사형장에 강도도, 세리도, 창녀도 그 누구의 죄도 다 씻어 버렸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지고 영원한 속죄,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참으로 풍성하신 은혜(恩惠)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께 오기만 하면 이 풍성하신 죄 씻음의 은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어떤 효력(效力)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두 가지 효력을 동시에 갖게 합니다.(7절 하반)
첫째는 구속(救贖)입니다. 즉 「죄 값을 대신 지불하므로 된 석방」입니다. 구속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가 현재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구원의 현재성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여야 합니다. 구원은 나중에 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은 구원받으셨습니까?" 하는 질문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임한 현재적 사건입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는 의미는 이미 현재에 완료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속량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노예를 속량하여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구속]이라는 말을 세분하면 다음 세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① "노예를 사려는 생각을 가지고 노예시장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며,
② "아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그 노예를 산다"는 뜻이며,
③ "노예시장 밖으로 그 노예를 끌고 나와서 [너는 자유다]라고 말해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마치 노예시장과도 같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요한복음 8:34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분명히 믿는 것이 바로 구속의 축복,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종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이미 현재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와 감격함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하신 은혜를 따라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3절 말씀과 같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것"을 말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사 대속의 길을 가게하심을 말합니다. 우리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죄에서 사망에서 택하여 주신 것도 은혜요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심이 은혜의 풍성함입니다.
②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이란 하나님께서 죄악 속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범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근거요 테두리요 선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란 것입니다. 믿는 자만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우리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고, 위로와 평안,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4:12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천하 모든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단 한 사람에게도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구원은 나의 노력으로도 아니요, 석가모니도 아니고, 공자나 마호멭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왜 우리들의 구원이 예수님 만으로만 됩니까? 우리들을 위하여서 고난을 받으신 분이 있습니까? 나를 사랑하사 내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아주신 분이 있습니까?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아주신 분이 있습니까? 석가모니가 그렇게 했습니까? 마호멭이, 공자가.... 아닙니다. 누가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까? 처음부터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사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이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을, 고통을, 심판을, 죽음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7절 중) 구약의 희생제사는 반복해서 드려야 했지만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한번 흘리신 보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뜻을 따라 택하신 모든 백성들의 죄를 씻음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히9:22에서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성령의 역사로 태어나셨기에 유일하게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들이 그 피로 인하여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공자나, 석가모니나,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죄를 없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도 우리들과 똑 같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들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죄 사함입니다. 즉 용서(容恕)로 인한 자유와 해방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바라바]는 열심당원으로서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체포되어 사형 날짜 만 기다리는 사형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라바 대신 예수님을 처형해 달라고 했습니다. 바라바는 예수님께서 대신 죄 값을 치루고 십자가에 처형되므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바라바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누렸고 그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바라바만을 위하여 피 흘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온 인류를 위하여 피 흘려 구속과 사함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의 풍성한 은혜」에 모든 죄를 씻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까? 아직도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 중에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영접하지 못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인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보혈의 피로 무거운 죄책감과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2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다]라는 분들 중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하고 놀라운 사랑의 은혜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감각한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의 삶은 늘 자기 행위 중심적이고 죄책감에 지치고 무력하고 활력이 없고 우울합니다. 이렇게 크고 풍성한 선물인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은혜를 받고도 그 기쁨을 모른다는 사실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치 목욕탕에 갔으나 탈의실만 구경하다가 돌아가는 사람과 같고, 요리 집에서 굶어 죽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뛰어드십시오. 그리스도의 피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죄로부터 자유 하는 기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넘치는 지혜와 총명의 축복입니다.(8절)
사도 바울이 8절에서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넘치는 지혜와 총명이 있습니다.
여기의 “하나님의 지혜”(소피아)란 하늘과 땅의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완벽한 통치, 다스림, 선택, 인도, 분별 등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총명”(프로네시스)이란 이해력, 통찰력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知慧)가 아는 것이라면, 총명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넘치는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지혜와 총명은 인생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을 통하여, 학문을 통하여 지혜와 총명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지혜와 총명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릅니다. 서울대학을 나오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땄어도 예수님과 천국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머물렀을 때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 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더냐?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이윽고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는 그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복이 있구나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4-18) 다시 말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지혜와 총명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그리스도로 알고 이해 할 수 있습니까?
전도 받을 때 겸손하게 성경이 선포하는 말씀을 믿어야만 합니다. 예수에 대하여 사람들이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공부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21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학으로도 철학으로도 공학으로도 풀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축복입니다.(고전 1:22-24)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최신 기종의 신제품을 선물로 받았어도 그 컴퓨터에 대한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컴퓨터를 바라볼 때마다 화가 나고 답답할 것입니다. 컴퓨터는 그에게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컴퓨터 학원에 가서 열심히 배워 지혜와 총명을 터득하면 그 놀라운 기계의 능력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 화가 나고 신경질을 부리는 이유가 그들에겐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장 많이 공개되었으나 철저히 가리워진 비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9절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골 1:27에서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비밀을 깨닫는 열쇠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총명입니다. 이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 주시는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고, 평안과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바보입니까? 돌았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을 풍성히 누리고 있는 분들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배」와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마13:44).지혜와 총명을 누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이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려면 주님께서 주시는 넘치는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로 통일됨의 축복입니다.(10절)
사도 바울이 10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로 통일됨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속성 가운데 [통일성]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 4:6에서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배경에 흐르는 커다란 두개의 줄기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 안]이라는 개념, 즉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통일, 일치, 하나 됨]을 시종일관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에는 이 두 개념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일"은 성령의 사역으로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미래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에베소서에 의하면 하나 됨의 나라입니다. 조화와 화해의 나라이며 평화와 공존의 나라입니다. 화해와 일치의 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교회를, 그리고 우리의 민족을 통일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하나로 교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하나 됨을 시기한 사탄에 의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등지는 어둠의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하나 됨을 잃고 영원한 죄와 사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하늘과 땅이 분리되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땅위에 분열과 다툼과 갈등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로 비어진 것입니다. 인종 간에 갈등, 국가간에 전쟁의 포화가 멈출 날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열되어 54년을 지내 왔습니다.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이루려고 정부는 백방 노력하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노사간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부부의 이혼율이 갈수록 심각합니다. 형제간에 부모자식간에 이 시대는 분열과 분쟁의 아귀다툼에 고통 하는 시대입니다. 교회에서 조차 분열합니다. 어떤 교단은 70여개 총회로 갈라졌습니다. 이 모두 사탄의 계략에 빠진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자 애통하는 마음으로 분열된 하늘과 땅을, 그리고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모으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함께 되기를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경륜입니다(9절 하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 계획인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때를 정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4:4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는 다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요 14:6) 이제 때가 차서 그리스도께서 오시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서 「교회의 하나님」으로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통일시켜 교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하나로 통일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수 있습니다. 별거하는 부부 사이에도, 다투는 형제간에도, 불화하는 이웃간에도, 갈등하는 이 사회에도,시기하는 성도들 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축복이 풍성히 하기를 원합니다.
4.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신 축복입니다.(11절)
사도 바울이 11절에서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기업이라고 쓰인 말은 '에클레로세멘'(ejklhrwvqhmen)이란 말인데, 이 말은 영어로 인헤리턴스(inheritance)는 일반적으로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란 뜻도 있고,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체질과 성격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도록 특권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을 기도함으로 얻을 수 있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귀한 것을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결정하시고 만드셨습니다. 그냥 말씀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흙으로 손수 만드시고 그 코에 생령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생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났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이 되었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 1:12에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벧전 1:4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쉬하지 않는 기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교회를 그리고 우리의 민족을 통일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 모든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나누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리함으로 ① 「풍성한 은혜」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② [풍성한 지혜와 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③ 「풍성한 사랑」으로 하나로 통일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④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왜 하나님께서 이와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그것은 본문 1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시기 위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떠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라도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① 「죄 사함의 확신」 ② 「지혜와 총명」 ③ 「하나되어 화목」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온전히 돌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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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주시는 풍성한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아름다운 교회의 성도들은 복을 얻기 위해 힘쓰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신 복(福)을 감사(感謝)하고 찬양하면서 받은 복을 누리고, 다른 이들과 도 함께 그 복을 나누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3-6절의 말씀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에 대한 말씀이라면 오늘 본문 7-12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 주시는 풍성한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거저주신 복으로서 '선택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하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고, 자기의 아들 딸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이 과거적으로 주시는 '선택의 복'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현재적으로 주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아들로 선택 된 복(福)”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창세(創世)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의 수준”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뜻대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대상인 우리들을 붙들고 계심을 깨닫고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말씀은 7절 상반 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in christ)라는 말씀으로서 이 말은 에베소서에서 30회 정도 기록되어 있는데, 1장에서만 11회나 기록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에베소서의 별명(別名)]을 「그리스도 안」의 서신(書信)이라고 부를 정도 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철저하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새사람으로 변화되었고, 바울은 「예수」의 멸시와 핍박의 포악한 죄인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에」들어 왔을 때 회개와 복종의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서신서 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의 13개의 서신서 중 9개의 서신 서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이신 예수님을 먼저 체험하였지만 바울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먼저 체험하였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예수 그리스도」 이건 「그리스도 예수」이건 표현의 자유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입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하늘 높은 보좌에서 선택의 축복을 계획하셨다면, 성자 하나님은 그 축복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 낮고 낮은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이제 양팔을 벌리고 그리스도의 품안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 있는 자들아 다 이리로 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때가 찬 경륜 속에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가 찼다'는 동사는 중요한 말입니다. 헬라어의 [때]라는 시간의 동사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양적인 시간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카이로스]라는 '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하나님의 시간, 바로 그 때가 찼다고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하나님의 특별한 경륜이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드디어', '바야흐로', '마침내' 이루어지고야마는 그러한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이 예정한 때가 되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세례 요한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촉구했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그야말로 때가 찬, 하나님의 경륜의 때에 에베소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을 우리가 발견하고, 깨닫고, 그리고 풍성히 받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1. 「풍성한 은혜(恩惠)」의 축복입니다.(7절)
사도 바울이 7절 중반 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도들에게는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恩惠)를 풍성히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서 [은혜](恩惠)란 말은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즉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가 죄인들을 대신하여 흘리신 피 입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죄(罪) 사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의 은혜는 풍성합니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함의 능력과 범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여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신약 시대의 이방인들이나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다 씻었습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사형장에 강도도, 세리도, 창녀도 그 누구의 죄도 다 씻어 버렸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지고 영원한 속죄,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참으로 풍성하신 은혜(恩惠)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께 오기만 하면 이 풍성하신 죄 씻음의 은혜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어떤 효력(效力)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은 두 가지 효력을 동시에 갖게 합니다.(7절 하반)
첫째는 구속(救贖)입니다. 즉 「죄 값을 대신 지불하므로 된 석방」입니다. 구속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가 현재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구원의 현재성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여야 합니다. 구원은 나중에 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은 구원받으셨습니까?" 하는 질문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임한 현재적 사건입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는 의미는 이미 현재에 완료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값을 지불하고 속량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노예를 속량하여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구속]이라는 말을 세분하면 다음 세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① "노예를 사려는 생각을 가지고 노예시장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며,
② "아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그 노예를 산다"는 뜻이며,
③ "노예시장 밖으로 그 노예를 끌고 나와서 [너는 자유다]라고 말해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마치 노예시장과도 같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요한복음 8:34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분명히 믿는 것이 바로 구속의 축복,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종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이미 현재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쁨과 감사와 감격함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① 하나님 아버지의 풍성하신 은혜를 따라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3절 말씀과 같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것"을 말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사 대속의 길을 가게하심을 말합니다. 우리들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죄에서 사망에서 택하여 주신 것도 은혜요 끝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심이 은혜의 풍성함입니다.
②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이란 하나님께서 죄악 속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범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근거요 테두리요 선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자란 것입니다. 믿는 자만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우리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고, 위로와 평안,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행4:12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천하 모든 인간에게 뿐만 아니라 단 한 사람에게도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구원은 나의 노력으로도 아니요, 석가모니도 아니고, 공자나 마호멭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왜 우리들의 구원이 예수님 만으로만 됩니까? 우리들을 위하여서 고난을 받으신 분이 있습니까? 나를 사랑하사 내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아주신 분이 있습니까? 내가 받아야 할 심판을 대신 받아주신 분이 있습니까? 석가모니가 그렇게 했습니까? 마호멭이, 공자가.... 아닙니다. 누가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까? 처음부터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사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이 내가 받아야 할 고난을, 고통을, 심판을, 죽음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③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7절 중) 구약의 희생제사는 반복해서 드려야 했지만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한번 흘리신 보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뜻을 따라 택하신 모든 백성들의 죄를 씻음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히9:22에서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성령의 역사로 태어나셨기에 유일하게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들이 그 피로 인하여 죄 씻음을 받았습니다. 공자나, 석가모니나, 어떤 사람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다 할지라도 우리들의 죄를 없게 하지 못합니다. 그들도 우리들과 똑 같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구원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들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죄 사함입니다. 즉 용서(容恕)로 인한 자유와 해방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바라바]는 열심당원으로서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체포되어 사형 날짜 만 기다리는 사형수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라바 대신 예수님을 처형해 달라고 했습니다. 바라바는 예수님께서 대신 죄 값을 치루고 십자가에 처형되므로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바라바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누렸고 그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바라바만을 위하여 피 흘린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온 인류를 위하여 피 흘려 구속과 사함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의 풍성한 은혜」에 모든 죄를 씻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까? 아직도 그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만약 여러분 중에 이러한 풍성한 은혜를 영접하지 못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주인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보혈의 피로 무거운 죄책감과 죄의 형벌로부터 해방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2에서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셨다]라는 분들 중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하고 놀라운 사랑의 은혜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감각한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의 삶은 늘 자기 행위 중심적이고 죄책감에 지치고 무력하고 활력이 없고 우울합니다. 이렇게 크고 풍성한 선물인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은혜를 받고도 그 기쁨을 모른다는 사실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마치 목욕탕에 갔으나 탈의실만 구경하다가 돌아가는 사람과 같고, 요리 집에서 굶어 죽은 사람과도 같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뛰어드십시오. 그리스도의 피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죄로부터 자유 하는 기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넘치는 지혜와 총명의 축복입니다.(8절)
사도 바울이 8절에서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넘치는 지혜와 총명이 있습니다.
여기의 “하나님의 지혜”(소피아)란 하늘과 땅의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완벽한 통치, 다스림, 선택, 인도, 분별 등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어 가시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총명”(프로네시스)이란 이해력, 통찰력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知慧)가 아는 것이라면, 총명은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넘치는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지혜와 총명은 인생을 풍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을 통하여, 학문을 통하여 지혜와 총명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지혜와 총명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릅니다. 서울대학을 나오고 하버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땄어도 예수님과 천국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빌립보 가이샤라 지방에 머물렀을 때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 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더냐?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이윽고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는 그 위대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복이 있구나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4-18) 다시 말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이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놀라운 지혜와 총명의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그리스도로 알고 이해 할 수 있습니까?
전도 받을 때 겸손하게 성경이 선포하는 말씀을 믿어야만 합니다. 예수에 대하여 사람들이 연구하고 논문을 쓰고 공부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21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학으로도 철학으로도 공학으로도 풀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만 주시는 축복입니다.(고전 1:22-24)
컴퓨터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최신 기종의 신제품을 선물로 받았어도 그 컴퓨터에 대한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컴퓨터를 바라볼 때마다 화가 나고 답답할 것입니다. 컴퓨터는 그에게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컴퓨터 학원에 가서 열심히 배워 지혜와 총명을 터득하면 그 놀라운 기계의 능력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 화가 나고 신경질을 부리는 이유가 그들에겐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이 없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가장 많이 공개되었으나 철저히 가리워진 비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9절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골 1:27에서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비밀을 깨닫는 열쇠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와 총명입니다. 이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 주시는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영생이 있고, 천국이 있고, 평안과 기쁨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한 분만으로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바치는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바보입니까? 돌았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을 풍성히 누리고 있는 분들입니다.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배」와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마13:44).지혜와 총명을 누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이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려면 주님께서 주시는 넘치는 지혜와 총명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로 통일됨의 축복입니다.(10절)
사도 바울이 10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로 통일됨의 축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속성 가운데 [통일성]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 4:6에서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배경에 흐르는 커다란 두개의 줄기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 안]이라는 개념, 즉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통일, 일치, 하나 됨]을 시종일관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절에는 이 두 개념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일"은 성령의 사역으로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미래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에베소서에 의하면 하나 됨의 나라입니다. 조화와 화해의 나라이며 평화와 공존의 나라입니다. 화해와 일치의 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교회를, 그리고 우리의 민족을 통일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함으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을 하나로 교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하나 됨을 시기한 사탄에 의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죄를 지은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을 등지는 어둠의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하나 됨을 잃고 영원한 죄와 사망 가운데 빠졌습니다. 하늘과 땅이 분리되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땅위에 분열과 다툼과 갈등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로 비어진 것입니다. 인종 간에 갈등, 국가간에 전쟁의 포화가 멈출 날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열되어 54년을 지내 왔습니다. 북한과의 평화통일을 이루려고 정부는 백방 노력하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노사간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부부의 이혼율이 갈수록 심각합니다. 형제간에 부모자식간에 이 시대는 분열과 분쟁의 아귀다툼에 고통 하는 시대입니다. 교회에서 조차 분열합니다. 어떤 교단은 70여개 총회로 갈라졌습니다. 이 모두 사탄의 계략에 빠진 결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자 애통하는 마음으로 분열된 하늘과 땅을, 그리고 분열된 세상을 하나로 모으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함께 되기를 계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경륜입니다(9절 하반).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 계획인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때를 정하셨습니다. 바로 이 때가 되자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4:4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 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하나로 연결하는 다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요 14:6) 이제 때가 차서 그리스도께서 오시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서 「교회의 하나님」으로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통일시켜 교회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하나로 통일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수 있습니다. 별거하는 부부 사이에도, 다투는 형제간에도, 불화하는 이웃간에도, 갈등하는 이 사회에도,시기하는 성도들 간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축복이 풍성히 하기를 원합니다.
4.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신 축복입니다.(11절)
사도 바울이 11절에서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기업이라고 쓰인 말은 '에클레로세멘'(ejklhrwvqhmen)이란 말인데, 이 말은 영어로 인헤리턴스(inheritance)는 일반적으로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이란 뜻도 있고,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체질과 성격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지으신 모든 만물을 다스리도록 특권을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을 기도함으로 얻을 수 있는 특권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귀한 것을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 즉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결정하시고 만드셨습니다. 그냥 말씀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흙으로 손수 만드시고 그 코에 생령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생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며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났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천하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이 되었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 1:12에서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벧전 1:4에서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신 기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쉬하지 않는 기업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가정을, 우리의 교회를 그리고 우리의 민족을 통일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이 모든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나누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리함으로 ① 「풍성한 은혜」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② [풍성한 지혜와 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게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③ 「풍성한 사랑」으로 하나로 통일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④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왜 하나님께서 이와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까? 그것은 본문 12절에서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시기 위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떠합니까?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영광과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이제라도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함으로 ① 「죄 사함의 확신」 ② 「지혜와 총명」 ③ 「하나되어 화목」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온전히 돌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