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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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아침,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성탄절은 교회의 가장 크고 기쁜 절기이다. 부활절도 기쁘고 감사절도 기쁘지만 성탄절은 더 기쁘다. 왜냐하면 이 성탄절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부활절은 그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절기이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절은 그 주님이 늘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에 기쁘지만, 그런 모든 일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성탄절은 우리 교회의 기쁨의 원조이다. 성탄절이 있기에 모든 기쁨과 감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여러 가지 행사들을 갖는다. 아기 예수께 드리는 예배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가지 찬양행사, 문화행사, 그리고 자선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서구 사회에는 이런 성탄절 행사들이 이제는 고유의 문화행사로까지 발전해서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이 계절에 다 같이 기뻐하고 축하하고 즐겁게 지낸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교회 안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이 성탄절을 조용히 보내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공감을 얻는 것 같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요즈음 교회가 너무 시끄럽다는 것이다. 성탄절이 너무 타락했다는 말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간소화 내지는 축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교회에서도 좀 그래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 말에 나는 정면으로 반대하고 싶다. 나는 오히려 성탄절만큼은 좀 떠들썩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 만왕의 왕이 오신 날을 기념하는 이 절기를 어찌 조용히만 보낼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들이 이런 시대적인 조류에 밀려 조용히 지낸다면 교회는 마귀의 계략이 빠지는 것이다. 특별히 요즈음 우리나라는 이 계절에 다른 여러 행사들이 겹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대통령 선거로 이 계절에 있어서 만왕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이야기가 더 화제가 된 경우도 있었다. 또 대학입시가 앞에 있어서 입시생과 그 가족들의 마음이 온통 입시에 묶여 있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때 더욱 힘써 성탄의 소식을 전하고 성탄하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며 또 그 분의 정신을 살려 이웃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다른 때도 해야 하지만 이때에 더욱 힘써야 한다.
요즘 성탄절이 되면 교회보다 교회 밖의 다른 단체들이 더 떠들썩거리는 것을 본다. 이때를 맞추어 각종 자선 행사를 펼치고 모금에 힘쓰고 있다. 또 며칠 전에는 어떤 사찰에까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성탄을 축하하는 글을 써 놓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성탄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하는 것인지 묻고 싶지만 어쨌든 교회 밖에서도 이렇게 성탄절을 맞아 나름대로 활발한 행사들을 하는데 우리 교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성탄절과 연말이 속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농담 속에 진담이라고 우리 목회자들이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가 직업적이 되어 가고 있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 주님이 오신 이 성탄절은 세상에 빼앗겨 급기야는 세속적이고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1998년 12월 초, 영국의 한 시의회가 정부에 건의를 하나 했다. 크리스마스의 명칭을 winterval(winter+ festival)로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크리스마스가 종교를 초월하여 세계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어버렸는데, 굳이 기독교적인 색채를 가진 크리스마스라는 명칭을 사용해 비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을 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답은 “NO!”였다. 그래서 하나의 뉴스거리로 끝나고 말았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요청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성탄절은 교회의 절기다. 성탄절이 세속화 상업화 되는 것을 막고 적극적으로 성탄의 진정한 뜻과 의미를 이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 교회에 있다.
이철 목사 /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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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은 교회의 가장 크고 기쁜 절기이다. 부활절도 기쁘고 감사절도 기쁘지만 성탄절은 더 기쁘다. 왜냐하면 이 성탄절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부활절은 그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절기이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절은 그 주님이 늘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에 기쁘지만, 그런 모든 일이 주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성탄절은 우리 교회의 기쁨의 원조이다. 성탄절이 있기에 모든 기쁨과 감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여러 가지 행사들을 갖는다. 아기 예수께 드리는 예배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가지 찬양행사, 문화행사, 그리고 자선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서구 사회에는 이런 성탄절 행사들이 이제는 고유의 문화행사로까지 발전해서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이 계절에 다 같이 기뻐하고 축하하고 즐겁게 지낸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교회 안에서는 오히려 거꾸로 이 성탄절을 조용히 보내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공감을 얻는 것 같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요즈음 교회가 너무 시끄럽다는 것이다. 성탄절이 너무 타락했다는 말도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간소화 내지는 축소하는 경향이 있는데, 교회에서도 좀 그래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 말에 나는 정면으로 반대하고 싶다. 나는 오히려 성탄절만큼은 좀 떠들썩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온 나라가 떠들썩한데, 만왕의 왕이 오신 날을 기념하는 이 절기를 어찌 조용히만 보낼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들이 이런 시대적인 조류에 밀려 조용히 지낸다면 교회는 마귀의 계략이 빠지는 것이다. 특별히 요즈음 우리나라는 이 계절에 다른 여러 행사들이 겹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대통령 선거로 이 계절에 있어서 만왕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보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이야기가 더 화제가 된 경우도 있었다. 또 대학입시가 앞에 있어서 입시생과 그 가족들의 마음이 온통 입시에 묶여 있기도 하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때 더욱 힘써 성탄의 소식을 전하고 성탄하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고 경배하며 또 그 분의 정신을 살려 이웃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다른 때도 해야 하지만 이때에 더욱 힘써야 한다.
요즘 성탄절이 되면 교회보다 교회 밖의 다른 단체들이 더 떠들썩거리는 것을 본다. 이때를 맞추어 각종 자선 행사를 펼치고 모금에 힘쓰고 있다. 또 며칠 전에는 어떤 사찰에까지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성탄을 축하하는 글을 써 놓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성탄의 진정한 뜻을 알고 하는 것인지 묻고 싶지만 어쨌든 교회 밖에서도 이렇게 성탄절을 맞아 나름대로 활발한 행사들을 하는데 우리 교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성탄절과 연말이 속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농담 속에 진담이라고 우리 목회자들이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가 직업적이 되어 가고 있고 그러는 동안에 우리 주님이 오신 이 성탄절은 세상에 빼앗겨 급기야는 세속적이고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본다.
1998년 12월 초, 영국의 한 시의회가 정부에 건의를 하나 했다. 크리스마스의 명칭을 winterval(winter+ festival)로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크리스마스가 종교를 초월하여 세계 모든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어버렸는데, 굳이 기독교적인 색채를 가진 크리스마스라는 명칭을 사용해 비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을 줄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답은 “NO!”였다. 그래서 하나의 뉴스거리로 끝나고 말았지만 언젠가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요청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성탄절은 교회의 절기다. 성탄절이 세속화 상업화 되는 것을 막고 적극적으로 성탄의 진정한 뜻과 의미를 이 세상에 널리 전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 교회에 있다.
이철 목사 /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