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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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본을 보이자
현대인들은 목자를 잃은 양과 같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감각을 상실했고 몸과 마음은 안식처를 찾지 못해 갈급해 있다. 내 몸을 편히 쉬게 할 풀밭을 찾지 못했고 내 마음을 맑게 씻어줄 잔잔한 물가를 잃어 버렸다.
젊은이들은 순수한 맘으로 진실을 사랑하고 거짓을 미워하며 정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열정적인 기백이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 들은 어떤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직장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수없이 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안타깝 다 못해 서글프다.
보험금을 노리고 아이들의 엄마이며 자신의 아내인 사람을 교통사고로 위장살해 하는 남편, 아이들을 이 차가운 계절에 물속으로 던지는 비정의 아버지, 차라리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행동들이 난무하는 갈급한 시대다.
상대방의 부정이 나의 부정보다 크다고 자기의 부정을 합리화 하거나 희석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소위 정치지도자들의 변명도 이제는 지칠 지경이다.
앞을 보면 가시 덩쿨이요, 옆을 보니 바위덩이요, 뒤를 보니 유혹의 손짓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지는 몰라 도 마음의 여유가 없고 정신적 정서는 빈곤해 있다. 흡사 목자를 잃고 헤매는 양과 같다. 그런데도 그들을 이끌어 줄 정신적 리더 가 없다.
그 일을 이제 교회가 해야 한다. 정신적 빈곤에 처한 이들을 교회는 밝고 옳은데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각박한 사회 와 갈급한 사람들에게 충실한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 허우적거리는 손을 잡아 일으키고 안식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목회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먼저 변화해야 한다. 목회자가 변화될 때 교인들은 따를 것이며 그 힘은 주변 사회로 번져나갈 것이다. 근래 교회의 풍토 도 예전 같지 않다. 목회자에 대한 의식도 많이 변했다. 갈등과 분란을 겪는 교회들을 보면 잘못된 교인들로부터 비롯된 경우도 있지 만 일부는 목회자가 교인들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말씀 하나만으로 목회를 하기도 어렵고 조직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가기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 다. 거기에다 목회자의 노력하고 연구하는 자세와 말씀과 행동이 근접하는 생활 등 목회자의 진실한 모습이 더 신앙의 표본이 될 것이 란 얘기도 나온다.
체코의 정신적 지주가 된 ‘후스’는 신념과 용기와 진실의 상징처럼 되었다. 총과 칼로 짓밟고 마침내 죽음으로 그의 진실성 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그의 진실은 후대에 고귀한 가르침으로 승화되어 체코인들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 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 광장에 서있는 그의 동상 아래 “진실을 배우며 진실을 사랑하며 진실을 말하며 진실을 양보하지 않으며 죽 을 때까지 진실을 지키라”고 새겨진 글은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고 외친 도산 안창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가식과 허 울, 아부와 타협으로 일관된 이 시대에 진실이 필요함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불러오게 되 고 결국은 후퇴할 수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부정부패는 우리 모두의 적이요 사회적 질병으로 반드시 척결하고 나가야 할 문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풍요로운 사회보다 정의로운 사고와 진실된 사상이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세상에는 참과 거짓이 있다. 긍정해야 할 것이 있고, 부정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구분 할 수 있어야 한 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진리와 허위가 공존한다. 불의와 정의의 싸움에서 진리가 승리하는 사회, 진실한 자만이 인정받고 성공 하는 사회로 변화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말과 행동이 진실하고 물질에 대해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 가슴에 정의를 품고 거짓을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으 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방관하지도 말아야 한다. 먼저 지도자가 진실되게 변화되고 신뢰받을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진실 된 사람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숙지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진실 된 본을 보일 때 시대를 살아가는 각박한 심령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고 새로운 기대와 변화를 창출하려는 의욕과 긍정적인 사고가 만연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평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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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목자를 잃은 양과 같다.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감각을 상실했고 몸과 마음은 안식처를 찾지 못해 갈급해 있다. 내 몸을 편히 쉬게 할 풀밭을 찾지 못했고 내 마음을 맑게 씻어줄 잔잔한 물가를 잃어 버렸다.
젊은이들은 순수한 맘으로 진실을 사랑하고 거짓을 미워하며 정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열정적인 기백이 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 들은 어떤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직장 구하기 위해 이력서를 수없이 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안타깝 다 못해 서글프다.
보험금을 노리고 아이들의 엄마이며 자신의 아내인 사람을 교통사고로 위장살해 하는 남편, 아이들을 이 차가운 계절에 물속으로 던지는 비정의 아버지, 차라리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한 행동들이 난무하는 갈급한 시대다.
상대방의 부정이 나의 부정보다 크다고 자기의 부정을 합리화 하거나 희석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소위 정치지도자들의 변명도 이제는 지칠 지경이다.
앞을 보면 가시 덩쿨이요, 옆을 보니 바위덩이요, 뒤를 보니 유혹의 손짓이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지는 몰라 도 마음의 여유가 없고 정신적 정서는 빈곤해 있다. 흡사 목자를 잃고 헤매는 양과 같다. 그런데도 그들을 이끌어 줄 정신적 리더 가 없다.
그 일을 이제 교회가 해야 한다. 정신적 빈곤에 처한 이들을 교회는 밝고 옳은데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각박한 사회 와 갈급한 사람들에게 충실한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해줘야 한다. 허우적거리는 손을 잡아 일으키고 안식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목회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먼저 변화해야 한다. 목회자가 변화될 때 교인들은 따를 것이며 그 힘은 주변 사회로 번져나갈 것이다. 근래 교회의 풍토 도 예전 같지 않다. 목회자에 대한 의식도 많이 변했다. 갈등과 분란을 겪는 교회들을 보면 잘못된 교인들로부터 비롯된 경우도 있지 만 일부는 목회자가 교인들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말씀 하나만으로 목회를 하기도 어렵고 조직으로 교회를 이끌어 나가기도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 다. 거기에다 목회자의 노력하고 연구하는 자세와 말씀과 행동이 근접하는 생활 등 목회자의 진실한 모습이 더 신앙의 표본이 될 것이 란 얘기도 나온다.
체코의 정신적 지주가 된 ‘후스’는 신념과 용기와 진실의 상징처럼 되었다. 총과 칼로 짓밟고 마침내 죽음으로 그의 진실성 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그의 진실은 후대에 고귀한 가르침으로 승화되어 체코인들의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 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 광장에 서있는 그의 동상 아래 “진실을 배우며 진실을 사랑하며 진실을 말하며 진실을 양보하지 않으며 죽 을 때까지 진실을 지키라”고 새겨진 글은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고 외친 도산 안창호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아울러 가식과 허 울, 아부와 타협으로 일관된 이 시대에 진실이 필요함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불러오게 되 고 결국은 후퇴할 수밖에 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래서 부정부패는 우리 모두의 적이요 사회적 질병으로 반드시 척결하고 나가야 할 문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풍요로운 사회보다 정의로운 사고와 진실된 사상이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세상에는 참과 거짓이 있다. 긍정해야 할 것이 있고, 부정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구분 할 수 있어야 한 다.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진리와 허위가 공존한다. 불의와 정의의 싸움에서 진리가 승리하는 사회, 진실한 자만이 인정받고 성공 하는 사회로 변화되어야 한다.
목회자는 말과 행동이 진실하고 물질에 대해 깨끗한 양심을 가져야 한다. 가슴에 정의를 품고 거짓을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으 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방관하지도 말아야 한다. 먼저 지도자가 진실되게 변화되고 신뢰받을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진실 된 사람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숙지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진실 된 본을 보일 때 시대를 살아가는 각박한 심령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주고 새로운 기대와 변화를 창출하려는 의욕과 긍정적인 사고가 만연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평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