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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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 김정서목사/ 제주영락교회
역대상 29 : 10~13
성경이 열 왕들을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왕은 다윗과 여로보암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 왕처럼 정직하게 행했는가? 아니면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한 왕들은 다윗 왕처럼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악한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밧세바의 아내를 얻는 과정에서 속임수로 충직한 자신의 수하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대로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적도 있습니다. 이런 다윗을 왜 하나님은 정직하다고 평가했을까요? 또 여로보암은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정직하지 않게 행한 것으로 대비시켜 설명할까요?
다윗은 자신의 왕권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권력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고 압살롬의 반란에도 법궤를 가지고 도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싶다고 해서, 사울을 죽이는 것이 왕위를 가지는 데 더 빠른 길이었다고 해서 사울을 죽였더라면 다윗은 훨씬 더 많은 내부의 적들로 둘러싸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극렬한 대립과 분열로 치달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에서, 자신의 왕권에 대한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사장그룹을 데리고 법궤를 가지고 도망했더라면 오히려 얼마가지 못해서 붙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있든 없든, 제사장이 함께하든, 법궤가 있든 없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달린 것들이지 그런 외부적인 조건에 달린 것이 아님을 다윗은 너무도 정확히 알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아도 다윗의 선택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그 지혜로운 선택은 단지 정치적인 술수로만 생각해서는 나올 수 있는 판단이 아닙니다.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굳건히 믿고 기다리는 그 신앙 안에 있을 때, 세상적인 조건이 아니라 생의 성패가 하나님께 달렸다는 그 믿음을 놓지 않을 때만이 생기는 믿음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안목과 비판과 조급함에서 자유롭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 부귀의 주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매일을 살아간 다윗은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셔서 왕이 되었던 사울이나 여로보암은 자신들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잊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전전긍긍하며, 인기를 좇습니다. 또한 우상숭배세력의 정치적 힘을 얻기 위하여 우상숭배를 허용합니다. 왕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빼앗아 가면 붙잡을 수 없는 그 당연한 이치를,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세상의 참새조차 땅에 떨어지지 않는 그 간단한 이치를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신의 왕권과 그리고 자신의 필생의 소원이었던 성전건축을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주는 총회가 배경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을 위하여 매우 강하게 격려하면서 성전건축을 하나님의 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솔선하여 이제까지 준비해 온 것 외에 자신의 많은 재산을 성전건축 비용으로 내어놓고 백성과 방백들에게 도움을 호소합니다. 이에 모든 방백과 백성들이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자 다윗은 큰 기쁨으로 기도하며 고백한 부분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1. 권능과 영광과 이김이 다 주님께 속했습니다.
권능과 영광과 승리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과 이김을 구할 때 인간은 타락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구한다고 해서 붙좇는다고 해서 잡아지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시고 인간은 낮은 곳에 거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며 삽니다. 그러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것입니다.
권능과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것을 탐내지 마십시오. 오직 이김이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애쓰십시오. 진정한 승리란 세상에서 성공하고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승리는 고단함과 외로움, 그리고 썩어짐 외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권능도, 영광도, 승리도 없습니다.
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그렇습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삶을 한 구절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가진 부와 귀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다윗이 어린 목동에서 만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전쟁에서 이기게 된 것은, 왕이 된 것은 주권자의 주권을 인정한 그 섬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이것을 다윗은 잊지 않았습니다. 내 삶에, 내 소유의, 내 시간,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높이 올라가면, 귀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하시고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세상의 부와 귀와 온갖 승리는 다 바람과 같아서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다윗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다윗의 왕국이 영원할 거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언제나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늘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무엇을 잘해서 내가 열심히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은 모든 교만으로부터, 헛된 자랑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공포로부터, 세상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3.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는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우리의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하는 14절의 하반절의 고백은 이것을 너무도 뚜렷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심은 고백하면서도 언제나 내 시간, 내 소유, 내 자녀, 내 가정, 내 인생, 내 직장과 장래, 내 교회라는 ‘나의’라는 소유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것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것을 내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세상에 대하여 지체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이는 나이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건강을 자랑하고 어떤 이는 경험과 학식과 지위를 자랑합니다.
내가 이러하니 ‘나를 따르라’라고 강박합니다. 자신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들입니다. 순간이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교회와 지체를 섬기기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은 비로소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의 재산이 됩니다. 내게 속한 것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삶의 첩경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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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서목사/ 제주영락교회
역대상 29 : 10~13
성경이 열 왕들을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왕은 다윗과 여로보암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 왕처럼 정직하게 행했는가? 아니면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한 왕들은 다윗 왕처럼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다는 평가를 받고 악한 왕들은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밧세바의 아내를 얻는 과정에서 속임수로 충직한 자신의 수하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대로 인구조사를 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산 적도 있습니다. 이런 다윗을 왜 하나님은 정직하다고 평가했을까요? 또 여로보암은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정직하지 않게 행한 것으로 대비시켜 설명할까요?
다윗은 자신의 왕권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권력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고 압살롬의 반란에도 법궤를 가지고 도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고 싶다고 해서, 사울을 죽이는 것이 왕위를 가지는 데 더 빠른 길이었다고 해서 사울을 죽였더라면 다윗은 훨씬 더 많은 내부의 적들로 둘러싸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극렬한 대립과 분열로 치달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에서, 자신의 왕권에 대한 종교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제사장그룹을 데리고 법궤를 가지고 도망했더라면 오히려 얼마가지 못해서 붙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이 있든 없든, 제사장이 함께하든, 법궤가 있든 없든,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에 달린 것들이지 그런 외부적인 조건에 달린 것이 아님을 다윗은 너무도 정확히 알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아도 다윗의 선택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그 지혜로운 선택은 단지 정치적인 술수로만 생각해서는 나올 수 있는 판단이 아닙니다.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굳건히 믿고 기다리는 그 신앙 안에 있을 때, 세상적인 조건이 아니라 생의 성패가 하나님께 달렸다는 그 믿음을 놓지 않을 때만이 생기는 믿음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안목과 비판과 조급함에서 자유롭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 부귀의 주권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매일을 살아간 다윗은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셔서 왕이 되었던 사울이나 여로보암은 자신들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잊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전전긍긍하며, 인기를 좇습니다. 또한 우상숭배세력의 정치적 힘을 얻기 위하여 우상숭배를 허용합니다. 왕위에 있었지만 그들은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빼앗아 가면 붙잡을 수 없는 그 당연한 이치를,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세상의 참새조차 땅에 떨어지지 않는 그 간단한 이치를 이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자신의 왕권과 그리고 자신의 필생의 소원이었던 성전건축을 아들 솔로몬에게 물려주는 총회가 배경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을 위하여 매우 강하게 격려하면서 성전건축을 하나님의 일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솔선하여 이제까지 준비해 온 것 외에 자신의 많은 재산을 성전건축 비용으로 내어놓고 백성과 방백들에게 도움을 호소합니다. 이에 모든 방백과 백성들이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자 다윗은 큰 기쁨으로 기도하며 고백한 부분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1. 권능과 영광과 이김이 다 주님께 속했습니다.
권능과 영광과 승리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과 이김을 구할 때 인간은 타락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구한다고 해서 붙좇는다고 해서 잡아지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 계시고 인간은 낮은 곳에 거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스스로의 힘으로 여기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의 인생을 낭비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며 삽니다. 그러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천지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것입니다.
권능과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이것을 탐내지 마십시오. 오직 이김이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애쓰십시오. 진정한 승리란 세상에서 성공하고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승리는 고단함과 외로움, 그리고 썩어짐 외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권능도, 영광도, 승리도 없습니다.
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그렇습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삶을 한 구절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가진 부와 귀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습니다. 다윗이 어린 목동에서 만만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전쟁에서 이기게 된 것은, 왕이 된 것은 주권자의 주권을 인정한 그 섬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를 높이셨습니다.
이것을 다윗은 잊지 않았습니다. 내 삶에, 내 소유의, 내 시간,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높이 올라가면, 귀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허락하시고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세상의 부와 귀와 온갖 승리는 다 바람과 같아서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다윗이 받은 가장 큰 축복은 다윗의 왕국이 영원할 거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언제나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늘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잘나서, 내가 무엇을 잘해서 내가 열심히 있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은 모든 교만으로부터, 헛된 자랑과, 빼앗길까봐 두려워하는 공포로부터, 세상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
3.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는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우리의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하는 14절의 하반절의 고백은 이것을 너무도 뚜렷하게 보여 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물의 주인이심은 고백하면서도 언제나 내 시간, 내 소유, 내 자녀, 내 가정, 내 인생, 내 직장과 장래, 내 교회라는 ‘나의’라는 소유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 것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것을 내어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세상에 대하여 지체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이는 나이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건강을 자랑하고 어떤 이는 경험과 학식과 지위를 자랑합니다.
내가 이러하니 ‘나를 따르라’라고 강박합니다. 자신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었는데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들입니다. 순간이면 한꺼번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교회와 지체를 섬기기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은 비로소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기업의 재산이 됩니다. 내게 속한 것의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삶의 첩경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