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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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로 가신 예수님
주연도목사/ 동성교회
마가복음 16:1~7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장사되었고 죽은 지 3일 만에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40여 일간 10여 차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이시고 부활승천하셨다. 지금까지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죽고 말았다. 예컨대 사렙다 과부의 아들, 수넵 여인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 등등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은 부활로써 다시 죽는 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의 부활은 아니다. 분명히 몸의 부활이다. 신령한 몸으로서의 부활이다. 영혼은 살과 뼈가 없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물론 있거니와 제자들과 식사도 함께 하시었다. 그리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첫 열매이다. 이는 앞으로 계속해서 부활의 열매가 있다는 의미이며 바로 성도들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다 일어나 신령한 몸(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사 갈릴리에 오셔서 절망한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신 이야기이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함으로 승리한 줄 알았다. 그러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다. 그 증거는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거듭 예고한 대로(마 16:21, 26:32, 막 9:9, 요 2:19)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아담의 범죄 이래 끊임없이 인류를 속박하던 죄와 사망의 올무를 단번에 깨뜨려 버리셨다. 예수 그리스도 주변에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겠노라고 고백했던 제자들도 있었고 그리스도의 이적 행하심을 바라고 좇아다녔던 군중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모함했던 종교지도자들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좇았지만 신앙의 절개를 지키거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중에도 가장 나약한 여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후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세상에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예수님을 평소 사랑하고 따랐던 여인들이(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새벽에 손에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이유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도 제대로 바르지 못하고 빨리 서둘러 장례를 치렀기에 이제라도 향품을 바르고자 함이었다. 아마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기야 인류 역사에 인간의 경험에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부활이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믿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 주리요’ 하며 염려했다. 당시 무덤 입구를 막아 놓았던 돌을 연약한 여자들 몇으로는 굴러 낼 수 없는 큰 돌이었다. 저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주님의 일에 헌신적이었음에도 주님의 하신 말씀은 온전히 신뢰하지는 못 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분명하게 밝히었음에도 그들은 누가 자신들을 위해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 줄 것인가를 걱정했던 것이다. 우리도 그들 중 한 사람일지 모른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며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 신자는 주님의 말씀 주님의 약속이 무엇이든지 의심하지 말고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 앞에 갔을 때에는 이미 무덤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누가 무덤의 돌을 옮겼을까? 부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지 못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설들을 말하고 있지만 무덤 문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열려진 것이다.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혹시나 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도적질하여 부활을 조작하지나 않을까 하여 무덤 문을 봉인하고 파수꾼들로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부활의 사실을 입증해 주기만 하였다. 오늘날에도 악인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막으려고 하나 자신들의 어리석음만 드러날 뿐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막을 수 없다. 여인들은 무덤에 들어가서 흰옷 입은 청년을 보고 놀랐다. 여인들은 그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렸다. 그러나 청년은 주님이 아니라 천사였다. 천사는 결코 우리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골 2:18). 천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리는 영에 지나지 않는다(히 1:14). 그런고로 천사를 숭배함은 죄이다.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 甄? 천사는 장차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할 때 성도들을 시중드는 자들이다. 천사는 무덤에서 예수를 찾는 여인들에게 살아나셨고 거기(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누워 있는 무덤에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으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는 자들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비었다. 그러나 모든 종교의 교주들은 저들의 무덤이 있으며 신성시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은 죽어 부활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기독교가 부활의 종교요,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임도 바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요 여전히 죄악에서 멸망을 받고 말았을 것이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였으니 거기서 뵈라고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로 가기 전 실패한 제자,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만나시고(눅 24:34), 저녁에는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 만나셨다(눅 24:36). 주님은 불안에 떠는 제자들, 실의에 빠져 낙담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위로해 주시고,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힘을 얻고 복음을 전하여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였다. 오늘도 주님은 낙심한 자에게 가까이 오셔서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성도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좌절할 이유가 없다.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로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었다. 주님은 말씀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었다.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도 장차 부활할 것을 굳게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고 하셨다. 여기에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담대할 수 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과거)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오신다(재림). 주님이 오시는 날 우리는 부활하여 주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이는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미래적 신앙이다. 이 신앙이 현재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즉, 주님의 역사적인 과거의 부활과 미래의 우리의 부활을 현재 소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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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도목사/ 동성교회
마가복음 16:1~7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장사되었고 죽은 지 3일 만에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40여 일간 10여 차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이시고 부활승천하셨다. 지금까지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죽고 말았다. 예컨대 사렙다 과부의 아들, 수넵 여인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 나사로 등등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사심은 부활로써 다시 죽는 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의 부활은 아니다. 분명히 몸의 부활이다. 신령한 몸으로서의 부활이다. 영혼은 살과 뼈가 없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물론 있거니와 제자들과 식사도 함께 하시었다. 그리고 의심 많은 도마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첫 열매이다. 이는 앞으로 계속해서 부활의 열매가 있다는 의미이며 바로 성도들이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무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다 일어나 신령한 몸(그리스도와 같은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사 갈릴리에 오셔서 절망한 제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신 이야기이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함으로 승리한 줄 알았다. 그러나 승리가 아니라 패배였다. 그 증거는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거듭 예고한 대로(마 16:21, 26:32, 막 9:9, 요 2:19)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아담의 범죄 이래 끊임없이 인류를 속박하던 죄와 사망의 올무를 단번에 깨뜨려 버리셨다. 예수 그리스도 주변에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겠노라고 고백했던 제자들도 있었고 그리스도의 이적 행하심을 바라고 좇아다녔던 군중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시기하고 모함했던 종교지도자들도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좇았지만 신앙의 절개를 지키거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른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중에도 가장 나약한 여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후 안식일이 지날 때까지 세상에는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예수님을 평소 사랑하고 따랐던 여인들이(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새벽에 손에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이유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도 제대로 바르지 못하고 빨리 서둘러 장례를 치렀기에 이제라도 향품을 바르고자 함이었다. 아마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하기야 인류 역사에 인간의 경험에 죽은 자가 다시 사는, 부활이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믿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인들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 주리요’ 하며 염려했다. 당시 무덤 입구를 막아 놓았던 돌을 연약한 여자들 몇으로는 굴러 낼 수 없는 큰 돌이었다. 저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주님의 일에 헌신적이었음에도 주님의 하신 말씀은 온전히 신뢰하지는 못 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이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분명하게 밝히었음에도 그들은 누가 자신들을 위해 무덤 문에서 돌을 굴러 줄 것인가를 걱정했던 것이다. 우리도 그들 중 한 사람일지 모른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 하며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 신자는 주님의 말씀 주님의 약속이 무엇이든지 의심하지 말고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런데 여인들이 무덤 앞에 갔을 때에는 이미 무덤 문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누가 무덤의 돌을 옮겼을까? 부활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지 못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설들을 말하고 있지만 무덤 문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열려진 것이다.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혹시나 예수의 제자들이 시신을 도적질하여 부활을 조작하지나 않을까 하여 무덤 문을 봉인하고 파수꾼들로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막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부활의 사실을 입증해 주기만 하였다. 오늘날에도 악인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막으려고 하나 자신들의 어리석음만 드러날 뿐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막을 수 없다. 여인들은 무덤에 들어가서 흰옷 입은 청년을 보고 놀랐다. 여인들은 그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렸다. 그러나 청년은 주님이 아니라 천사였다. 천사는 결코 우리의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골 2:18). 천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부리는 영에 지나지 않는다(히 1:14). 그런고로 천사를 숭배함은 죄이다.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 甄? 천사는 장차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할 때 성도들을 시중드는 자들이다. 천사는 무덤에서 예수를 찾는 여인들에게 살아나셨고 거기(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이 누워 있는 무덤에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으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는 자들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비었다. 그러나 모든 종교의 교주들은 저들의 무덤이 있으며 신성시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은 죽어 부활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기독교가 부활의 종교요,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임도 바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요 여전히 죄악에서 멸망을 받고 말았을 것이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였으니 거기서 뵈라고 제자들에게 전하였다. 부활하신 주님은 갈릴리로 가기 전 실패한 제자,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 만나시고(눅 24:34), 저녁에는 다른 제자들을 찾아가 만나셨다(눅 24:36). 주님은 불안에 떠는 제자들, 실의에 빠져 낙담하는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위로해 주시고,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쳐 주셨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던 그들이 힘을 얻고 복음을 전하여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사역을 감당하였다. 오늘도 주님은 낙심한 자에게 가까이 오셔서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성도는 어떤 문제 앞에서도 좌절할 이유가 없다. 부활하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로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었다. 주님은 말씀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었다. 사망권세를 물리치고 승리하셨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우리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도 장차 부활할 것을 굳게 믿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고 하셨다. 여기에 “아멘”으로 화답해야 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부활의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일을 만나도 담대할 수 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과거)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오신다(재림). 주님이 오시는 날 우리는 부활하여 주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이는 부활에 대한 우리의 미래적 신앙이다. 이 신앙이 현재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즉, 주님의 역사적인 과거의 부활과 미래의 우리의 부활을 현재 소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