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
글 수 616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삶이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불화나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보다는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원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알려지기 원한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마 5:9)
그러므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영적 성숙도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배운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의 사랑이 너희의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다면, 그리고 성령님과 교통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너희에게 의미가 있다면, 서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영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빌 2:1-2) 관계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부르셨습니다.(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관계회복을 위한 일곱 가지 성경적인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먼저 그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거나, 상대방을 변화시켜주십니다. 관계를 놓고 기도한다면 반드시 그 관계는 원만해집니다. 막힌 담을 허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 우리의 삶의 관계는 더 쉽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온전치 못한 관계 (싸움, 다툼)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관계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1-2)
둘째로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항상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대하십니다. 깨어진 관계의 회복은 매우 중요해서 예수님은 이를 예배보다 우선순위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우리는 관계의 회복에 대해서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뒤로 미루면 분노만 깊어지며, 문제가 더 심각해질 뿐입니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곪습니다. 더 빠른 적극적인 행동으로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택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셋째로 그들의 감정에 공감해야 합니다.
입보다는 귀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서로의 일들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빌2:4) 사실보다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서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매듭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로 충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들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희생입니다. 그러나 이런 희생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은 열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롬 15:2)
감정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슬프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도 내가 어리석은 탓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 앞에서 마치 짐승과 같았습니다.”(시73:21-22, 쉬운 성경)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이성적 설득은 무의미합니다. 우선은 그의 분노가 누그러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넷째로 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의 마음에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모든 잘못을 돌릴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게 냉철하다 ) 그렇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소리가 났다면 분명히 나의 잘못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질수나 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이것이 더 상황을 명확하게 보는 방법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죄 없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고백은 화해의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실수를 겸손하게 인정한다면 상대방도 화를 풀고 공격을 늦춥니다. 화해는 시작된 것입니다.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직하게 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정도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다섯째로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해야 합니다.
사람보다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당신의 언어는 상당히 부드러워 질 것입니다. 우리가 큰소리를 내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위협과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5:1) 단어 선택을 현명하게 하며 부드럽게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시 돋친 말보다는 언제나 낫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려고 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는 ‘무슨 말을 하느냐’만큼 중요합니다. 귀에 거스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말을 잘 듣는다.”(잠 16:21 쉬운 성경)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목적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여섯 번째로 할 수 있는 한 협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고 말했습니다. 평화에는 항상 대가가 따릅니다. 때로는 그 대가가 우리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물질적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며, 상대방의 필요에 호의를 보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이며, 이 모습위에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경쟁이나 싸움이 아닌 협력하는 방법을 보여줄 때에 우리는 복을 받습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진정 누구이며,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때입니다.(마 5:9)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증거 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일곱 번째로 해결이 아닌 화해를 강조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동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문제는 풀었지만 관계를 놓쳐버렸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풀지 못했다고 해도 관계가 되살아났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입니다. 화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똑같은 다이아몬드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하여간 사람을 잃어버리진 말아야 합니다. 게임에선 승리했어도 원수를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승리 이전에 실패한 것입니다.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벧전 3:11)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평화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바라기는 금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금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붙여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서로 교제하면서 함께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여러분은 문제해결이 우선인가? 관계회복이 우선인가?
2. 일곱 가지 관계회복 방법 중 여러분이 가장 힘써야할 것은 무엇인가?
3. 내가 오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Tweet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삶이란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불화나 혹은 갈등이 있을 때마다 그 관계를 깨뜨리기보다는 유지하는 노력을 하기 원하십니다. 만약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알려지기 원한다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마 5:9)
그러므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은 영적 성숙도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배운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의 사랑이 너희의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켰다면, 그리고 성령님과 교통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너희에게 의미가 있다면, 서로 화합하고 사랑하며, 영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빌 2:1-2) 관계는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간의 관계 회복을 위해 부르셨습니다.(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까? 관계회복을 위한 일곱 가지 성경적인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먼저 그 문제에 대해서 의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거나, 상대방을 변화시켜주십니다. 관계를 놓고 기도한다면 반드시 그 관계는 원만해집니다. 막힌 담을 허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 우리의 삶의 관계는 더 쉽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온전치 못한 관계 (싸움, 다툼)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관계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1-2)
둘째로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항상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가 피해자이든 가해자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움직이기를 기대하십니다. 깨어진 관계의 회복은 매우 중요해서 예수님은 이를 예배보다 우선순위에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우리는 관계의 회복에 대해서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뒤로 미루면 분노만 깊어지며, 문제가 더 심각해질 뿐입니다. 갈등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곪습니다. 더 빠른 적극적인 행동으로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날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적절한 시간과 장소를 택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셋째로 그들의 감정에 공감해야 합니다.
입보다는 귀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신의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서로의 일들도 돌아보라고 말씀하십니다.(빌2:4) 사실보다는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서 잘잘못을 가리기보다는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매듭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그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말로 충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들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희생입니다. 그러나 이런 희생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은 열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과 두려움을 배려해주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롬 15:2)
감정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마음이 슬프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도 내가 어리석은 탓에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주 앞에서 마치 짐승과 같았습니다.”(시73:21-22, 쉬운 성경)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 이성적 설득은 무의미합니다. 우선은 그의 분노가 누그러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넷째로 나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물론 여러분의 마음에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모든 잘못을 돌릴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남에게 냉철하다 ) 그렇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소리가 났다면 분명히 나의 잘못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질수나 죄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이것이 더 상황을 명확하게 보는 방법입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 죄 없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고백은 화해의 아주 강력한 도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실수를 겸손하게 인정한다면 상대방도 화를 풀고 공격을 늦춥니다. 화해는 시작된 것입니다. 핑계를 대거나 책임을 전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직하게 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정도의 대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다섯째로 사람을 공격하지 말고 문제를 공격해야 합니다.
사람보다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당신의 언어는 상당히 부드러워 질 것입니다. 우리가 큰소리를 내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위협과 감정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5:1) 단어 선택을 현명하게 하며 부드럽게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시 돋친 말보다는 언제나 낫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려고 할 때 ‘어떻게 말하느냐’는 ‘무슨 말을 하느냐’만큼 중요합니다. 귀에 거스리는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부드러운 말을 잘 듣는다.”(잠 16:21 쉬운 성경)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와는 상관없이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목적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엡 4:29)
여섯 번째로 할 수 있는 한 협력해야 합니다.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고 말했습니다. 평화에는 항상 대가가 따릅니다. 때로는 그 대가가 우리의 자존심일 수도 있고, 물질적 손해일 수도 있습니다. 교제를 위해서 우리는 양보하고, 상대방에게 맞추며, 상대방의 필요에 호의를 보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모습이며, 이 모습위에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경쟁이나 싸움이 아닌 협력하는 방법을 보여줄 때에 우리는 복을 받습니다. 그때가 바로 우리가 진정 누구이며,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는 때입니다.(마 5:9) 이와 같은 모습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임을 증거 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일곱 번째로 해결이 아닌 화해를 강조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대해 동의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문제는 풀었지만 관계를 놓쳐버렸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풀지 못했다고 해도 관계가 되살아났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입니다. 화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똑같은 다이아몬드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르게 보입니다. 하여간 사람을 잃어버리진 말아야 합니다. 게임에선 승리했어도 원수를 만들었다면 여러분은 승리 이전에 실패한 것입니다. 해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관계를 회복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벧전 3:11)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넘치는 평화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바라기는 금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다시금 하나님께서 사랑하라고 붙여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서로 교제하면서 함께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여러분은 문제해결이 우선인가? 관계회복이 우선인가?
2. 일곱 가지 관계회복 방법 중 여러분이 가장 힘써야할 것은 무엇인가?
3. 내가 오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