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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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으로 인한 변화”(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중세의 탁월한 여성 영성가인 귀용 부인((Madame Guyon)이 “고통의 불이 거룩한 금을 만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연단입니다.(욥 23:10)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모든 문제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개발시키시려고 ‘상황’을 이용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상황(狀況)’속에서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진리의 기초 위에 상황 속에서 말씀의 실천으로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상황 속에서의 나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삶은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내 삶의 문제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 4:12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 문제를 사용하십니다. 문제를 통해서 그들이 가까이 오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솔직히 우리는 언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갑니까?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에서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껴질 때,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을 때에 얼굴을 하나님께 향하고, 가장 진실한 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습니까?
우리는 고통 속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웁니다. 하나님은 충분한 능력자이시지만, 요셉의 생애를 다니엘과 세 친구의 삶에 문제가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 자신보다 그분을 더 의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을 당해, 삶의 소망조차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고후 1:8-9, 쉬운 성경)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구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내 삶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 풀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향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그들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즉 하나님의 삶의 목적을 알고 목적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입니다. 모든 환경입니다. 질병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 부도 등 모든 것이 ‘합력하여’ 각각의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이 무엇입니까? 내가 느끼는 행복감입니까? 아니면 성공의 느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은 이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렀다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하나님 안에서 존재의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 존귀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기쁨이던 슬픔이던 간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 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특별히 ‘고난(苦難)’을 통해서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보석과 같아서, 역경이라는 망치와 끌로 깎여서 모양을 갖춥니다. 그분은 필요한 모든 것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인격을 쌓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귀하게 만들기 위해서 문제를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때때로 시험을 불순물을 태워 없애는 정제소의 불에 비유합니다.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로 연단되어질 때에 우리는 더 아름다워 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연단을 통해서 자신을 만들어 갔음을 보여줍니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히 5:8-9)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함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것 같이 외로움, 유혹, 비난, 거절 등의 많은 문제를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이겨나가야 할 것인가?
우리가 겪는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아지기보다는 비통해하며 성장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통해서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대처하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문제를 허락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선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요셉은 그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히스기야는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고통이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고 우리는 그분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니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의 초점이 감정을 결정합니다. 모세가 여러 삶의 문제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히 11:26) 단기적인 생각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둘째로 예수님은 문제 앞에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우리도 고통의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만드실 하나님의 목표를 바라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고통을 기뻐하는 것은 자기 학대입니다. 멀리 바라보고 오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눅 6:23) 또한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또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상투적인 말로 격려하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문제 앞에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문제 앞에서 인내하며 끝까지 버티어야 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3-4) 인격이 자라는 것은 길고 느린 과정입니다. 우리가 도망가려고만 한다면 그 시간은 더욱 길어집니다. 만일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왜 나입니까?” 라고 질문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부정과 회피는 오히려 고통의 기간을 길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 위에 놀라운 성장으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結論) 하나님은 문제를 통하여 나를 성장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외로움, 유혹, 스트레스, 비난, 거절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문제들을 통하여 내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어려움을 피하고 벗어나는 데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말고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문제를 회피한다면 우리는 성장을 지연시키며, 결국 더 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제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통하여 성장되어 더욱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나는 어떤 문제로 인해 가장 많이 성장하였는가?
2. 지금 나에게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 문제를 통하여 나의 어떤 점이 성장되기를 원하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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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
중세의 탁월한 여성 영성가인 귀용 부인((Madame Guyon)이 “고통의 불이 거룩한 금을 만든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금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연단입니다.(욥 23:10)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모든 문제 뒤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품을 개발시키시려고 ‘상황’을 이용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상황(狀況)’속에서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얻게 되는 진리의 기초 위에 상황 속에서 말씀의 실천으로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상황 속에서의 나의 모습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삶은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내 삶의 문제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 4:12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 문제를 사용하십니다. 문제를 통해서 그들이 가까이 오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솔직히 우리는 언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갑니까?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세상에서 홀로 버려진 것처럼 느껴질 때,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을 때에 얼굴을 하나님께 향하고, 가장 진실한 기도를 드리지 않고 있습니까?
우리는 고통 속에서 다른 방법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웁니다. 하나님은 충분한 능력자이시지만, 요셉의 생애를 다니엘과 세 친구의 삶에 문제가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 자신보다 그분을 더 의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환난을 당해, 삶의 소망조차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서는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고후 1:8-9, 쉬운 성경)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영적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구절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내 삶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잘 풀린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향한 약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약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그들은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즉 하나님의 삶의 목적을 알고 목적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입니다. 모든 환경입니다. 질병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 부도 등 모든 것이 ‘합력하여’ 각각의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선’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이 무엇입니까? 내가 느끼는 행복감입니까? 아니면 성공의 느낌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은 이것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렀다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하나님 안에서 존재의 목적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삶의 모든 것이 존귀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기쁨이던 슬픔이던 간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 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특별히 ‘고난(苦難)’을 통해서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보석과 같아서, 역경이라는 망치와 끌로 깎여서 모양을 갖춥니다. 그분은 필요한 모든 것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인격을 쌓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귀하게 만들기 위해서 문제를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때때로 시험을 불순물을 태워 없애는 정제소의 불에 비유합니다. 베드로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1:7)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로 연단되어질 때에 우리는 더 아름다워 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연단을 통해서 자신을 만들어 갔음을 보여줍니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히 5:8-9)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함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경험하신 것 같이 외로움, 유혹, 비난, 거절 등의 많은 문제를 겪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이겨나가야 할 것인가?
우리가 겪는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아지기보다는 비통해하며 성장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통해서 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대처하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문제를 허락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선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면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요셉은 그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 히스기야는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
그렇습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고통이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셨고 우리는 그분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니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우리의 초점이 감정을 결정합니다. 모세가 여러 삶의 문제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히 11:26) 단기적인 생각에 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둘째로 예수님은 문제 앞에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우리도 고통의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통해서 만드실 하나님의 목표를 바라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고통을 기뻐하는 것은 자기 학대입니다. 멀리 바라보고 오늘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눅 6:23) 또한 하나님께서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또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상투적인 말로 격려하시는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 속에서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홀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문제 앞에서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문제 앞에서 인내하며 끝까지 버티어야 합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3-4) 인격이 자라는 것은 길고 느린 과정입니다. 우리가 도망가려고만 한다면 그 시간은 더욱 길어집니다. 만일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왜 나입니까?” 라고 질문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부정과 회피는 오히려 고통의 기간을 길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 위에 놀라운 성장으로 축복하실 것입니다.
(結論) 하나님은 문제를 통하여 나를 성장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외로움, 유혹, 스트레스, 비난, 거절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문제들을 통하여 내가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어려움을 피하고 벗어나는 데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말고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문제를 회피한다면 우리는 성장을 지연시키며, 결국 더 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제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를 통하여 성장되어 더욱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1. 나는 어떤 문제로 인해 가장 많이 성장하였는가?
2. 지금 나에게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그 문제를 통하여 나의 어떤 점이 성장되기를 원하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