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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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하기를 원하거든”(시 1:1-6)
시편은 150편으로 되어 있는데, 구약에서 가장 귀한 책으로 사랑을 받는 성경입니다. 시편을 명상하므로 참된 신자의 기쁨과 감사와 승리를 체험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참되고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마음속 깊이 묻어있는 나의 모든 죄를 속속들이 들려다 볼 수 있는 영적으로 눈이 밝아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은 우리의 영혼의 책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닙니다. 밤낮으로 묵상할 말씀이며, 묵상할 뿐 아니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노래할 책입니다. 때로는 울면서 부를 노래이며, 땀흘리면서 부를 노래입니다. 승리의 순간이나 뼈아픈 실패의 순간에도 부를 노래입니다. 억울해도 부르고, 천대와 멸시 속에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도,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도 위로와 힘을 주는 노래가 바로 시편입니다.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한 위기에서도 부를 노래이며,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전쟁터에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시편을 우리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했습니다. 「루터」도 "시편을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중에 구약을 인용한 성경귀절이 283번인데 그중에 116번은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1000년 전에 쓰여 진 시편은 인류의 메시야에 대한 말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시편을 명상하고 강해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높여 주며 견고하게 해 줄뿐 아니라 우리 삶의 뿌리를 말씀과 진리에 묻히게 하고 생명과 능력과 은혜를 충만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편 1편은 150편이나 되는 시편 전체의 내용과 중심사상을 나타내는 「서시」(프롤로그,prologue)로 시편에 들어가는 출입문과 같습니다. 즉 시편 1편에서의 사상이 시편 전체의 사상입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행복과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멸망이란 말이 처음과 마지막에 나왔다는 것은 시편 1편 속에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형통하고 번영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칼빈 콜리지」는 “형통은 사용되어야 할 도구이지 숭배 받아야 할 신격은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형통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형통한 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하고, 불통할 때에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처럼, 역경을 맛보지 않은 형통은 그리 환영받지 못합니다.
▶ 그렇다면 시편 1편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죄인은 반드시 멸망하지만, 경건하게 사는 자는 반드시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통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소극적인 측면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1절)
본문 1절 상반 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의 꾀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의 음모나 계획, 속임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은 악한 목적으로 사람을 유인하거나,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을 속여서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형통한 복을 받는 사람은 믿음이 없고 불경건한 사람의 악한 말을 듣고 따라가지 않고, 교활하고 악한 계략을 따라가거나, 악한 꾀에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결국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도로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1절 중)
본문 1절 중반 절에서 “...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은 불의하고 탐욕스럽고 부도덕합니다. 죄인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죄로 알지 않고 살아갑니다. 어둡고, 사납고, 위험하게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서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은 “머물지 말아야 한다. 남아있지 말라야 한다.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죄인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성도이며 심령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 짖는 죄인과 어울려 살지 않고 의를 따라 선하게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인생관의 문제로서 그리스도인은 결코 불의하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1절 하)
본문 1절 하반 절에서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오만한 자」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 하나님을 비웃는 자입니다. 오만한 자의 특징은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여 냉소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않는 불신자입니다. 예를 들어 벧엘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대머리여 올라가라' 고 함부로 놀리며 비웃었다가 저주를 받아 곰에게 42명이 물려 죽었습니다.(왕하 2:23-24 ) 또한 여기에서 「앉다」라는 것은 단순하게 앉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자신을 신앙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조심해서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성도는 악한 자, 하나님을 조롱하고 거역하는 자와 결코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라면 신앙관이 다른 자, 복음을 비웃고 교회를 비난하는 무례한 무신론자와는 교제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적극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율법을 즐거워해야 합니다.(2절 상)
본문 2절 상반 절에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는 즐거움은 여호와의 율법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의 「율법」이란 모세 오경과 모든 성경을 일컫는 말이고,「즐거워한다」라는 것은 「몰두한다」,「열렬히 사모한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좋아합니다.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항상 지속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하고, 하나님을 열렬히 사모합니다. 이 사람은 날마다 말씀을 양식으로 먹습니다. 말씀이 달고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속에 인생의 길이 있고 문제의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율법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2절 하)
본문 2절 하반 절에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깊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빛나려면 낮에나 밤에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의 「묵상(黙想)」이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의하고 말씀의 지도를 받고 말씀을 준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묵상(黙想)」은 감미로운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성도, 형통한 성도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때를 만났을 때에 말씀의 깊은 뜻을 연구하고 음미하며 그 뜻대로 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말씀의 조언을 받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3. 그러면 형통한 자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첫째로 물가에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3절 상)
본문 3절 상반 절에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물가와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물가에 심은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복된 나무가 물가에 심겨졌기 때문에 충분한 물과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성도는 물가와 심기운 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을 받습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의 잎이 안제나 무성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복된 성도는 언제나 꽃을 피우고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렘 17:7-8에서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강에 뿌리를 내린 성도는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어 형통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뿌리가 생명의 강수 곁에 내리게 될 때 생명력이 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6절)
본문 6절 상반 절에서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의인은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여기의 「인정하신다」라는 것은 「아신다, 이해(理解)하신다」라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성도, 이해해 주시는 성도는 참으로 복 받은 성도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경건한 성도를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며 형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결국 망하게 됩니다.
본문 4-5절에서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 6절 하반 절에서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결국 망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이 형통하고 복 있는 인생을 사시려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번영하고, 번성하고, 성공하고, 강성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을 인정해주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않은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면 악인들과 같이 함께 망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 오늘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은헤와 축복을 경험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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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150편으로 되어 있는데, 구약에서 가장 귀한 책으로 사랑을 받는 성경입니다. 시편을 명상하므로 참된 신자의 기쁨과 감사와 승리를 체험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의 참되고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마음속 깊이 묻어있는 나의 모든 죄를 속속들이 들려다 볼 수 있는 영적으로 눈이 밝아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은 우리의 영혼의 책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닙니다. 밤낮으로 묵상할 말씀이며, 묵상할 뿐 아니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노래할 책입니다. 때로는 울면서 부를 노래이며, 땀흘리면서 부를 노래입니다. 승리의 순간이나 뼈아픈 실패의 순간에도 부를 노래입니다. 억울해도 부르고, 천대와 멸시 속에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도,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도 위로와 힘을 주는 노래가 바로 시편입니다. 사방에서 우겨쌈을 당한 위기에서도 부를 노래이며,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전쟁터에서도 부를 수 있는 노래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시편을 우리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했습니다. 「루터」도 "시편을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 중에 구약을 인용한 성경귀절이 283번인데 그중에 116번은 시편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1000년 전에 쓰여 진 시편은 인류의 메시야에 대한 말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중요한 시편을 명상하고 강해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높여 주며 견고하게 해 줄뿐 아니라 우리 삶의 뿌리를 말씀과 진리에 묻히게 하고 생명과 능력과 은혜를 충만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시편 1편은 150편이나 되는 시편 전체의 내용과 중심사상을 나타내는 「서시」(프롤로그,prologue)로 시편에 들어가는 출입문과 같습니다. 즉 시편 1편에서의 사상이 시편 전체의 사상입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행복과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멸망이란 말이 처음과 마지막에 나왔다는 것은 시편 1편 속에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형통하고 번영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칼빈 콜리지」는 “형통은 사용되어야 할 도구이지 숭배 받아야 할 신격은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형통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형통한 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하고, 불통할 때에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처럼, 역경을 맛보지 않은 형통은 그리 환영받지 못합니다.
▶ 그렇다면 시편 1편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죄인은 반드시 멸망하지만, 경건하게 사는 자는 반드시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형통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소극적인 측면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1절)
본문 1절 상반 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악인의 꾀를 좇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의 꾀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악인의 음모나 계획, 속임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인은 악한 목적으로 사람을 유인하거나,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을 속여서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기에 형통한 복을 받는 사람은 믿음이 없고 불경건한 사람의 악한 말을 듣고 따라가지 않고, 교활하고 악한 계략을 따라가거나, 악한 꾀에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결국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도로서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1절 중)
본문 1절 중반 절에서 “...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은 불의하고 탐욕스럽고 부도덕합니다. 죄인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죄로 알지 않고 살아갑니다. 어둡고, 사납고, 위험하게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서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은 “머물지 말아야 한다. 남아있지 말라야 한다.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죄인이긴 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성도이며 심령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 짖는 죄인과 어울려 살지 않고 의를 따라 선하게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인생관의 문제로서 그리스도인은 결코 불의하게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1절 하)
본문 1절 하반 절에서 “...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오만한 자」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 하나님을 비웃는 자입니다. 오만한 자의 특징은 하나님과 복음과 교회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여 냉소적이고 모욕적인 언행을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않는 불신자입니다. 예를 들어 벧엘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대머리여 올라가라' 고 함부로 놀리며 비웃었다가 저주를 받아 곰에게 42명이 물려 죽었습니다.(왕하 2:23-24 ) 또한 여기에서 「앉다」라는 것은 단순하게 앉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 있는 자는 자신을 신앙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조심해서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성도는 악한 자, 하나님을 조롱하고 거역하는 자와 결코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라면 신앙관이 다른 자, 복음을 비웃고 교회를 비난하는 무례한 무신론자와는 교제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적극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율법을 즐거워해야 합니다.(2절 상)
본문 2절 상반 절에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도는 즐거움은 여호와의 율법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의 「율법」이란 모세 오경과 모든 성경을 일컫는 말이고,「즐거워한다」라는 것은 「몰두한다」,「열렬히 사모한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좋아합니다. 일시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항상 지속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하고, 하나님을 열렬히 사모합니다. 이 사람은 날마다 말씀을 양식으로 먹습니다. 말씀이 달고 맛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속에 인생의 길이 있고 문제의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율법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2절 하)
본문 2절 하반 절에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깊이 생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빛나려면 낮에나 밤에나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의 「묵상(黙想)」이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상의하고 말씀의 지도를 받고 말씀을 준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묵상(黙想)」은 감미로운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성도, 형통한 성도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때를 만났을 때에 말씀의 깊은 뜻을 연구하고 음미하며 그 뜻대로 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말씀의 조언을 받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3. 그러면 형통한 자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첫째로 물가에 있는 나무와 같습니다.(3절 상)
본문 3절 상반 절에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물가와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물가에 심은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가뭄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복된 나무가 물가에 심겨졌기 때문에 충분한 물과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성도는 물가와 심기운 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을 받습니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의 잎이 안제나 무성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복된 성도는 언제나 꽃을 피우고 탐스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렘 17:7-8에서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강에 뿌리를 내린 성도는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어 형통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적 뿌리가 생명의 강수 곁에 내리게 될 때 생명력이 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6절)
본문 6절 상반 절에서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의인은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여기의 「인정하신다」라는 것은 「아신다, 이해(理解)하신다」라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성도, 이해해 주시는 성도는 참으로 복 받은 성도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경건한 성도를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이며 형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결국 망하게 됩니다.
본문 4-5절에서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 6절 하반 절에서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결국 망하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이 형통하고 복 있는 인생을 사시려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번영하고, 번성하고, 성공하고, 강성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의인의 길을 인정해주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않은 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되면 악인들과 같이 함께 망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된 삶을 살아 오늘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은헤와 축복을 경험하시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