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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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 중에서도 해야 할 일”(시 4:1-8)
시편 4편은 다윗의 시로서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자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시편 4편을 읽을 때마다 성령의 감동을 느낀다.”고 고백하면서 “이 시는 다윗의 시이자 자신의 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3편과 4편은 서로 짝을 이루는 시로서 3편은 아침의 노래로, 4편은 저녁의 노래로 불리웁니다. 이 시들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다니면서 하나님께 간구했던 기도요, 감사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본문의 말씀은 다윗의 고백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곤란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곤란한 일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사는 한 늘 곤란을 당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곤란(困難) 중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곤란'이란 말은 「distress」(디스트레스)라는 말로 “사람의 고뇌나 비통한 일, 비탄스럽고 고민스러우며, 걱정거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자신으로서는 처리하기가 어려운 일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때때로 재물의 곤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건강의 곤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사업의 곤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곤란, 자식의 곤란, 이성의 곤란, 지식의 곤란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곤란을 수시로 당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러한 곤란 가운데서도 너그러운 생활을 하고, 마치 곡식과 새 포도주로 풍성할 때의 생활보다 더 기쁨을 그 마음에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풍성한 은혜와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차고 흘러넘치는 신앙의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풍성함으로 인하여 누리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곤란 중에서도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 곤란 중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1절)
본문 1절에서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아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기도(祈禱)」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태필라'라는 말인데,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해서 신자들이 취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한 형태(形態)”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아무데도 갈 데가 없이 막막할 때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큰 곤란을 당했을 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 기도로 그는 곤란 가운데서 큰 기쁨을 얻어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곤란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주시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곤란 중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요, 축복인지 모릅니다. 사무엘상 7장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미스바 광장에서 금식하며 성회로 모였습니다. 블레셋은 이 호기를 틈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왔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나아가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고, 잃어버렸던 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이 전쟁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우고 이를 에벤에셀(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비석을 어찌 사무엘만 세워야 하겠습니까? 여호와를 의뢰하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응답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위기를 만날 때만 기도합니다. 평안할 때는 기도할 제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쁘면 시간이 없어서, 슬프면 괴로워서, 기쁘면 너무 좋아서, 한가하면 즐기다보니 기도할 틈이 없어 기도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이 앞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일은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고 어떻게 영적인 성숙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교회에 모여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또는 가족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고 함께 기도함으로써 기도응답의 기쁨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 곤란 중에서도 경건해야 합니다.(2-3절)
본문 2-3절에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을 당할 때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고, 헛된 것을 경영하고, 거짓된 것을 추구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곤란 중에서도 경건했습니다. 경건함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경건한 중에서 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敬虔)'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드씨'라는 말인데,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경배심이나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허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문 2절의 '허사(虛事)'라는 말은 「리크」라는 말인데, “그릇에 든 것을 비워버리는 행위, 어떤 일 망치게 하는 해방 행위”를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궤휼' 곧 거짓된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든 곤란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경건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경건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속히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3. 곤란 중에서도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4절)
본문 4절에서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곤란 중에 「범죄(犯罪)」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곤란을 당했을 때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살다가 곤란을 당하면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돌일 수 없는 실수를 범하거나 일을 더 크게 만들어서 더욱 곤란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입술로 범죄 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생각하기를 잠잠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혀를 제어하여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성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4. 곤란 중에서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5절)
본문 5절에서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 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곤란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의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의 제사'란 「형식적이거나 습관적인 예배가 아니라, 마음을 찢고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진실된 예배(禮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그를 의뢰하고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배에 실패한 사람은 그 인생 모두를 실패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예배에 성공한 사람은 그 인생 모두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예배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5.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결코 우리는 곤란을 이길 수 없습니다.
곤란 중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다윗의 이러한 간곡한 기도는 민수기에 나타난 제사장 아론의 축복기도를 연상케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5-26) 여기서 말하는 "얼굴을 들어 비추어 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사 구원의 은총과 축복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7. 그렇다면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한 성도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곤란을 이길 수 있도록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본문 7절에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성도들에게는 곤란을 이길 수 있도록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 합니다.
이 세상에는 괴롭고 슬픈 일들도 많지만 반면에 기쁘고 즐거운 일들도 있습니다. 곡식을 추수하는 일, 새 포도주를 대하는 일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결혼이나 취업, 자녀들의 건강과 형통 등은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은 이처럼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향락이나 즐거움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다윗은 괴롭고 슬프고 비통한 일을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주신 그 기쁨은 빼앗아갈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이야말로 사막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할 때 이런 기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직 기뻐할 수 있는 여건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아가 어떤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도 그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마음에 두신 기쁨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쁨은 새 포도주를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도 더한 기쁨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함으로써 성령의 은사인 희락의 열매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곤란을 이길 수 있도록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본문 8절에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안이 눕고 자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분이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군대에 쫓겨나 경호원들만 데리고 도망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평안히 누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평안히 잠이 들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 평안히 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으로 하여금 안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여호와를 의뢰하기에 원수들의 무시무시한 위협과 부끄럽고 비통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평안히 눕고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잠을 자려고 해도 잠들지 못하는 고통을 경험해보셨습니까? 잠못드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하실 때 우리는 평안히 눕고 잠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여호와를 의뢰해야할 이유입니다.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안전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단은 이런 안전을 계속 방해하고 파괴하지만 여호와는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거기 눕게 해 주십니다. 환난을 당해도 편히 쉴 수 있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쌓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 안에 계신이가 세상보다 크다"고 선언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네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삶은 곤고함이나 곤란의 연속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는 당연한 것입니다. '평화'는 사람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내부, 즉 심령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가 확고하고 순종적이면, 가장 격심한 고통이나, 곤란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비를 달라고 기도한 후에 물통 뚜껑을 열어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받질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곤란을 당했을 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물통의 뚜껑을 열어두십시오. 주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 큰 기쁨과 끊임없는 평안으로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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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편은 다윗의 시로서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자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서 “시편 4편을 읽을 때마다 성령의 감동을 느낀다.”고 고백하면서 “이 시는 다윗의 시이자 자신의 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3편과 4편은 서로 짝을 이루는 시로서 3편은 아침의 노래로, 4편은 저녁의 노래로 불리웁니다. 이 시들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다니면서 하나님께 간구했던 기도요, 감사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본문의 말씀은 다윗의 고백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곤란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곤란한 일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이 땅에서 사는 한 늘 곤란을 당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곤란(困難) 중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곤란'이란 말은 「distress」(디스트레스)라는 말로 “사람의 고뇌나 비통한 일, 비탄스럽고 고민스러우며, 걱정거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자신으로서는 처리하기가 어려운 일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때때로 재물의 곤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건강의 곤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사업의 곤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가정의 곤란, 자식의 곤란, 이성의 곤란, 지식의 곤란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곤란을 수시로 당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러한 곤란 가운데서도 너그러운 생활을 하고, 마치 곡식과 새 포도주로 풍성할 때의 생활보다 더 기쁨을 그 마음에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풍성한 은혜와 기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다.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차고 흘러넘치는 신앙의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쁨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풍성함으로 인하여 누리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곤란 중에서도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 곤란 중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1절)
본문 1절에서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아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기에서 「기도(祈禱)」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태필라'라는 말인데, “생활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처해서 신자들이 취하는 하나님과의 교제의 한 형태(形態)”을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아무데도 갈 데가 없이 막막할 때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큰 곤란을 당했을 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 기도로 그는 곤란 가운데서 큰 기쁨을 얻어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곤란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주시는 신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곤란 중에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요, 축복인지 모릅니다. 사무엘상 7장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미스바 광장에서 금식하며 성회로 모였습니다. 블레셋은 이 호기를 틈타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왔습니다. 그 때 사무엘은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나아가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고, 잃어버렸던 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이 전쟁을 기념하여 비석을 세우고 이를 에벤에셀(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비석을 어찌 사무엘만 세워야 하겠습니까? 여호와를 의뢰하면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에게 응답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위기를 만날 때만 기도합니다. 평안할 때는 기도할 제목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쁘면 시간이 없어서, 슬프면 괴로워서, 기쁘면 너무 좋아서, 한가하면 즐기다보니 기도할 틈이 없어 기도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이 앞서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일은 뒤로 미루게 됩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지 못하고 어떻게 영적인 성숙과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 모두 기도의 중요성과 기도의 능력을 체험하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교회에 모여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또는 가족과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고 함께 기도함으로써 기도응답의 기쁨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 곤란 중에서도 경건해야 합니다.(2-3절)
본문 2-3절에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을 당할 때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고, 헛된 것을 경영하고, 거짓된 것을 추구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곤란 중에서도 경건했습니다. 경건함을 유지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경건한 중에서 기도하는 성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敬虔)'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드씨'라는 말인데,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경배심이나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생활태도'를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허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본문 2절의 '허사(虛事)'라는 말은 「리크」라는 말인데, “그릇에 든 것을 비워버리는 행위, 어떤 일 망치게 하는 해방 행위”를 말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궤휼' 곧 거짓된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든 곤란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경건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경건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속히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3. 곤란 중에서도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4절)
본문 4절에서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곤란 중에 「범죄(犯罪)」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곤란을 당했을 때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살다가 곤란을 당하면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돌일 수 없는 실수를 범하거나 일을 더 크게 만들어서 더욱 곤란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입술로 범죄 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생각하기를 잠잠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혀를 제어하여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성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4. 곤란 중에서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5절)
본문 5절에서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 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곤란에 처하게 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다윗은 곤란 중에서도 의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의의 제사'란 「형식적이거나 습관적인 예배가 아니라, 마음을 찢고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진실된 예배(禮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은, 그를 의뢰하고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배에 실패한 사람은 그 인생 모두를 실패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예배에 성공한 사람은 그 인생 모두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예배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5.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6절)
본문 6절에서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결코 우리는 곤란을 이길 수 없습니다.
곤란 중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다윗의 이러한 간곡한 기도는 민수기에 나타난 제사장 아론의 축복기도를 연상케 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5-26) 여기서 말하는 "얼굴을 들어 비추어 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사 구원의 은총과 축복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7. 그렇다면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한 성도에게 주시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곤란을 이길 수 있도록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본문 7절에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성도들에게는 곤란을 이길 수 있도록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 합니다.
이 세상에는 괴롭고 슬픈 일들도 많지만 반면에 기쁘고 즐거운 일들도 있습니다. 곡식을 추수하는 일, 새 포도주를 대하는 일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결혼이나 취업, 자녀들의 건강과 형통 등은 우리를 즐겁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께서 내 마음에 주신 기쁨은 이처럼 세상이 줄 수 있는 어떤 향락이나 즐거움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노래합니다. 다윗은 괴롭고 슬프고 비통한 일을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주신 그 기쁨은 빼앗아갈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기쁨이야말로 사막에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할 때 이런 기쁨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아직 기뻐할 수 있는 여건이 회복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아가 어떤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도 그 조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마음에 두신 기쁨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기쁨은 새 포도주를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도 더한 기쁨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함으로써 성령의 은사인 희락의 열매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원합니다.
둘째로 곤란을 이길 수 있도록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본문 8절에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곤란 중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평안이 눕고 자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거하게 하시는 분이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의 군대에 쫓겨나 경호원들만 데리고 도망하는 상황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평안히 누울 수 있습니까? 어떻게 평안히 잠이 들 수 있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런 상황에서 평안히 누워 숙면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바로 다윗으로 하여금 안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여호와를 의뢰하기에 원수들의 무시무시한 위협과 부끄럽고 비통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평안히 눕고 잠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잠을 자려고 해도 잠들지 못하는 고통을 경험해보셨습니까? 잠못드는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하실 때 우리는 평안히 눕고 잠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여호와를 의뢰해야할 이유입니다. 개인은 물론, 사회와 국가의 안전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단은 이런 안전을 계속 방해하고 파괴하지만 여호와는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거기 눕게 해 주십니다. 환난을 당해도 편히 쉴 수 있고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쌓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너희 안에 계신이가 세상보다 크다"고 선언합니다. 주님은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네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삶은 곤고함이나 곤란의 연속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는 당연한 것입니다. '평화'는 사람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내부, 즉 심령에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의지가 확고하고 순종적이면, 가장 격심한 고통이나, 곤란 속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비를 달라고 기도한 후에 물통 뚜껑을 열어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받질 못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곤란을 당했을 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물통의 뚜껑을 열어두십시오. 주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 큰 기쁨과 끊임없는 평안으로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