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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한글성경 완역 100년의 의미와 과제 | |||||||||
한글 가치 재발견으로 사회 변화에도 큰 역할 … 언어환경 적극 대응 과제 | |||||||||
“한국교회 부흥 이끈 불쏘시개였다” 1911년 3월은 한글성경이 완역된 역사적인 해이다. 대한성서공회는 4월 4일 성경 완역 100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개최, 성경 완역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과 과제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한글성경의 완역 이전에도 성경은 한글의 대중화에 영향을 미쳐왔지만 신구약 합본이 나온 이후로 성경은 한국사회의 변화에 지대한 공을 끼치게 됐다. 무엇보다 성경이 끼친 영향은 개종의 역사와 교회의 한글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만열 교수는 “교회에서는 성경공부 모임, 즉 사경회를 자주 개최해 한국교회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게 해 주었으며 한글운동은 교인과 학도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도록 훈련시키는 과정으로 발전했다”고 되짚었다. 또 이전까지 천대 받던 한글을 민족의 문자로 자리잡게 하는데 성경은 지대한 역할을 감당했다. 한자문화와 한문숭상의 몰주체적 전통에 짓눌려 천시되어 오던 한글의 가치를 재발견해 그것을 민중의 문자로 만들었고 문맹퇴치율을 급격하게 줄여 민중들의 인간적 가치를 상승시키는데 기여한 것이었다. 또 성경번역은 한국교회를 성경 중심으로 자리잡게 했다. 이덕주 교수는 “신구약 성경 전체를 읽으며 공부하게 된 교인들은 신앙이 한층 더 성숙해졌고 이렇게 형성된 교인들의 성경 중심적 삶은 교회와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성경 암송, 사경회, 사회참여 등은 성경중심의 한국교회가 지녔던 초기의 두드러진 특성이었다. 한국문화와 문학에 끼친 공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현길언 교수(전 한양대)는 “성경이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 중에 중요한 것은 성경적 세계관이 인류 구원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데 의미 있게 작용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현교수는 “일제 강점기 상황에서나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적 세계관은 어둡고 고통스러운 역사를 극복하는 보편적 의미로 자리잡았다는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향후 과제도 만만치 않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유지하면서도 급변하는 언어 환경에 맞는 번역을 계속해야 한다는 점과 약화되고 있는 성경의 권위를 강단과 교회 생활 가운데 회복시켜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또 한국어 인구의 감소로 한국어 소멸의 위기가 경고되고 있는 등 외적인 변화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한국교회의 성경번역사는 1937년 <개역성경>을 펴낸 것으로 사실상 끝났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해방직후 새로 제정된 한글맞춤법에 의해 표기법만 바꾼 한글개역판 성경이 현재까지 70년 넘게 한국교회 강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례로 한국교회는 1967년의 <새번역 신약전서>, 1977년 <공동번역 성서>, 1993년 <표준새번역 성경전서> 등을 거듭 내기도 했으나 교회 강단에서는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이러다보니 1998년 <개역개정판 성경전서>가 오늘날 주류 성경으로 강단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내용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또 다른 성경번역을 강단용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계속하고 있다. 이덕주 교수는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바뀐 언어 환경에 맞는 새로운 번역과 출판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함으로 현대 한국교회 안에 성경 언어와 생활 언어가 불일치하고, 구어와 문어가 불일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는 진보적 가치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소통문화를 창출하는 청소년 세대에게 성경을 매력 있게 다가가지 못하는 결과로 나타나, 향후 다음세대 복음화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한국교회가 사회와 소통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도 손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낮은 출산율로 인해 한국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한국어 보전과 진흥을 위한 정책이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에도 당면해 있다. 따라서 한글성경과 한국교회의 앞날은 내적으로 지속적인 갱신을 추구하는 동시에, 한글을 둘러싼 국내외적 환경에도 교회가 관심을 가질 때 희망적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