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전국 목사장로기도회둘째날(26일) 오전 강의는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의 "개혁주의 경제"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요약된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기도문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장 기본적인 경제관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것 같다. 주기도문의 인간성의 첫 과제는 일용할 양식의 문제이다. 그런데 일용한 양식에 대한 이야기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기도를 우리한테 지시하고 계신다.
▲ 김영우 목사가 개혁주의 경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 리폼드뉴스 |
| 하나님의 일이 거룩히 되게 해 달라고,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우리 하나님나라 앞뒤로 나오는 이름의 문제와 뜻의 문제는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부가적인 설명이라고 하는 것이 주기도문 해석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래서 이 하나님 나라에 있어 가장 중심적인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시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첫째로 초월적으로 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은혜로 오는 것이라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노력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또 하나님 나라는 크리스찬들의 열심으로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하게 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사실 신앙에는 위배되는 기도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확장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총체적인 작용으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를 은혜로 받는 것이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동사는 ‘준다’ 또는 ‘들어간다’ 이런 동사로 또는 ‘받는다’ 이런 동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기도문을 가르쳐달라고 할 때에 예수님이 제일 먼저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이다. 아는 것처럼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뜻합니다. 이것을 전재로 해서 그다음 인간 청원의 첫 번째가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 경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양식의 문제 즉, 식량의 문제이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공자도 정치의 첫 번째는 ‘족식-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설움 중에 가장 큰 설움이 있다면 그것은 굶주림이다. 인간이 먹고사는 식량문제가 해결되어야 그 다음 삶의 질 즉 문화적 삶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경제의 가장 기본은 식량의 문제이다. 그런데 성경은 육적 양식은 영적 양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집트로 이주하는 직접적 문제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다. 유월절 어린양과 광야의 만나는 양식의 문제였다. 신학자들은 예수님 공동체를 밥상 공동체라 표현 할 정도로 예수님은 많은 식탁을 가지셨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함께 장사는 하지만 그러나 식사를 같이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유대인의 순수성을 져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하고 버림받은 병든 자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나누셨다. 그것은 유대인의 경계선을 예수님께서 타파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나라의 속성을 상징화 하고 있다. 교회의 성찬 역시 먹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양식문제는 단순히 육적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의미와 목적을 이루는 하나님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는 거룩한 행위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육적 양식은 영적 양식과 직결되어 있으며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다시 말하여 그 하나님 나라의 실현으로 인하여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용할 양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각이셨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었다. 주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의미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부분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데 약간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은 ‘오늘 우리에게 양식을 주옵소서’ 누가복음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이렇게 되어 있다. 마태는 이 ‘주신다’는 말이 부정 과거로 누가는 ‘주시다’는 말이 현재형으로 되어 있다. 마태판은 일용한 양식을 주시는 것이 확실하고 분명한 두 번 다시 말할 수 없는 것을 누가판에 제시된 그런 하나님이 날마다 날마다 계속 주신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마태판은 ‘오늘’이란 표현을 쓰고 누가판은 날마다 누가가 즐겨 쓰는 숙어 가운데 하나로 쓰여 졌다.
이 본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양식의 문제이다. 이 양식이라는 단어는 기독교분석 외에는 어디에도 나오지도 않는 독특한 낱말이다. 이것은 헬라어 일반 용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독교와 복음 문서에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낱말이다. 그래서 이 말의 뜻을 가지고 의견이 3가지로 분분하다.
첫 번째는 ‘삶에 필요한’, ‘삶을 가능케 하는’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두 번째는 ‘당일을 위한’, ‘당일에 필요한’ 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세 번째 ‘오늘날’ 또는 ‘다음날’ 이렇게 해석 가능하다.
여기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견해는 첫 번째와 세 번째이다.
그렇다면 이 기도는 ‘다가오는 하루에 대한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만일에 이 기도를 아침에 했다면 ‘다가오는 하루의 양식을 주시라’는 이야기고 이 기도를 저녁에 드렸다면 ‘내일 다가오는 하루에 대한 양식을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 주석가들은 세 번째 견해를 많이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출애굽기 16장 4절에 맛나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출애굽 16장 4절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은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먹을 것이다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 시험 하리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일용할 것을 날마다’ 이 낱말이 중복되어야 된다는 것은 이것은 맛나가 필요할 때마다 날마다 주시겠다는 뜻이다.
출애굽 16장에 의하면 만나는 아침에, 메추라기는 저녁에 주셨다. 그렇다면 만나는 당일의 양식일 것이요 메추라기는 다음날의 양식일 것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의 오늘날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그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의미라고 봐야한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그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즉 ‘내일 생명을 보존하게 해 주십시오’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필요한 것을 주시는데 마태식으로 하면 ‘오늘 하루를 위해 달라’는 것이고 누가식으로 하면 ‘날마다 달라’그런 뜻이 되겠다.
일용한 양식을 달라고 하는 이런 본문의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출애굽기 16장에 만나 거두는 사람 이르기를 우리는 욕심 부려서 만나를 너무 많이 거두면 그 다음날 벌레가 나고 부패하였다라고 하는 것을 볼 수 가 있다. 한 호멜만 거둘 수 있게 하였다. 이는 음식 즉 양식을 탐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필요한 양만 거두라는 의미에서 ‘일용한 양식’이라 이렇게 번역 한 것이다.
두 번째 이 본문의 의미는 아담의 실존에 빠지지 말라는 것을 의미를 담고 있다. 아담의 실존이 뭘까요? 아담은 자기 삶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하나님과 관련된 삶이 아니라 것이다, 나를 좌지우지하는 왕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이다. 사단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이 열매를 따 먹는 날에는 하나님 같이 되리라. 하나님의 위임자가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여서 하나님 같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존 주체가 아니라 주권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자기 주장 위기로 표현하고 있다. 자기의 땀 흘리는 열매로 자기의 삶을 지탱하겠다는 아담적 실존은 결과적으로 부하로서의 지위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서 상실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결핍을 느끼게 되었고 다른 사람을 처치 할 수밖에 없다.
마태복음 6장 4절은 우리가 ‘맘몬’ 즉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아담적 실존에 빠지게 되면 물질을 숭배하게 된다.
세 번째는 누가복음 18장에 어느 부자와 19장에 삭개오를 통하여서 보여준다. 영생을 위하여 부자가 돈을 번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말 앞에 시험 걸려서 돌아갔지만 삭개오는 회개하고 자기재산을 더해 네배나 더 나눠준다는 것으로 예수님으로부터 그는 이런 선언을 받게 된다.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양식충원은 아담적 삶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신뢰의 삶을 살겠다는 신앙적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 나라를 주신 그분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양식 청원에 들어있는 신앙적 고백은 바로 아담적 삶을 중지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고 양육문제 또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탕자의 비유처럼 언제든지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에게 아버지 노릇 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약속을 우리가 근거로 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일용한 양식은 인간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인데 이 일용한 양식은 하나님 나라와 불과분의 관계에 있고 이 일용한 양식에 대한 우리의 기도는 당연한 것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하나님 통치 아래 살겠다는 서원이 포함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문제도 궁극적인 해결은 하나님 안에서 가능한 것이 예수님의 견해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 이런 건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경제문제가 하나님과 관련되나?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어떤 것인가?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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