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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안수의 시비
글 : 서철원 교수
이 글은 서철원 박사가 「신학지남」에 기고한 것으로 여성안수 문제에 대한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요약 소개해 본다.
여성 해방운동이 전세계적인 조류가 되어 사회전반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사회는 여성운동의 주장과 언어들을 대부분 미국언어에 수용하였다. 가령 남자를 표기하는 man을 person으로 바꾸고 남자 3인칭 대명사 he로 표기했던 것을 he/she로 바꾸었다. 그리고 성차별을 나타내는 모든 표현들을 다 공동표현으로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성을 표기하는 말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가령 he 대신에 she로 바꾸어 쓰는 경향이 강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사회의 갈등 요인을 제거하고 시빗거리를 없애 버렸다.
여성해방운동이 한국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통적이 가족 구성법인 호주제를 폐지하였고 자녀들의 성도 여자의 성을 따라서 할 수 있게 법을 바꾸었다. 그전부터서도 한국의 부인들이 가정의 경제권을 다 장악하고 있었다. 서양의 관습을 따라 한국의 호주제를 폐지했겠지만 서양에서는 여자가 결혼 전까지는 아버지의 성을 따랐다가 결혼하면 남자의 성을 따르고 비록 이혼하더라도 그 성만은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호주제를 폐지한 국회의원들이 왜 그 성에 관한 법은 바꾸지 않았는지 의아심이 많다.
여성해방운동은 교회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개신교회의 대부분의 대교단들이 여성을 목사로 안수하였다. 대교파인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직은 여성 사제를 세우지 않고 있다. 작은 교단으로서 보수신학을 지키는 교회는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심지어 여집사도 세우지 않고 있다.
한국에도 많은 교단들이 여성을 목사로 안수하였다. 한국교외에서 여자 목사안수를 비교적으로 늦게 시작한 통합측 교회는 한국교회에서 가장 많은 여자 목사들을 안수한 교회가 되었다. 소수의 보수교회들만이 여성안수의 강한 조류에 맞서있다.
세계 교회상황이 이러하더라도 우리 합동측 교회는 여성목사안수와는 무관할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목회자들 중에서 유력한 분들이 비록 소수이기는 하나 여성안수의 당연성을 제기하였고 신학교에서도 여성안수 지지가 나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 총신을 졸업한 여전도사들의 상당수와 재학생들의 상당수가 여성안수를 강력하게 희망하였다.
이런 와중에 K교수가 기독신문에 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이라는 제하에 글을 실어 여성안수가 성경적인 근거가 있는 것같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여성안수를 하지 않는 것은 복음에 반하여 결국은 그 길로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암시를 강하게 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 교회도 신학적으로 넓은 길로 가기로 하면 세계의 대교단들이 하는 여성안수를 하게 될지 모른다. 또 교회에서 남성지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여자를 굴종시키고 비하시키고 있다고 책망하였다. 이런 주장과 책망이 성경적 근거를 갖는가?
K교수는 갈라디아서 3:28절의 남녀동등성을 가르치는 바울의 본문에 근거해서 여성안수의 성경적 근거를 설명하고 제시하기 위해 고린도전서 14:34-35절이 1세기 말엽에 첨가된 것으로 단정하다. 거의 같은 명령을 담고 있는 디모데전서 2:11-15절도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 1세기 말엽에 편집한 것으로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여 평소 그가 취하고 있는 편집비평의 입장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 두 본문은 바울의 율법주의적 본문인데 이것을 복음의 핵심을 담는 본문보다 더 금과옥조로 여겨 남성들의 지도권 독점을 정당화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성의 굴종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한다고 강조한다. 바울의 복음의 국면과 율법주의의 단계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일이다.
우리가 여기서 K교수의 제시에 어리둥절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은 두 본문 고전 14:34-35와 딤전 2:11-15절은 1세기 말에 추가되거나 기록되었다고 하여 바울의 글이 아니라고 단정하고서는 바울의 율법주의적인 언명이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이로써 자기 스스로 자기 해석과 설명이 모순임을 드러낸다.
또 갈 3:28은 남녀동등성을 가르치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 본문에 대한 K의 관점과 주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갈 3:28은 남녀동등성을 가르치면서 그 동등성에 근거해서 여성안수의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도 않고 암시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이해나 주입과는 본문은 천리도 멀다. 갈 3:28은 남녀동등성과 상호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구원 얻음에는 유대인이나 자유인이나 심지어 노예나 자유인에게 아무런 차이나 차별이 없음을 말한다. 남자나 여자도 아무 차이가 없어서 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의에 이름을 강조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는 구원얻고 완전해지기 위해 꼭 해야 한다고 율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율법준수를 예수 믿음에 더해야 한다는 것을 바울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남녀간의 인격적 동등성에서 남녀의 목회직임의 동등성에 대해 결코 암시도 없고 그런 것에는 아무런 의도도 없었다. 갈라디아서의 어느 한 본문이나 전체 본문에서 바울이 남녀의 동등성에서 남녀직분의 동등성에로 나아가야 함을 마음에라도 담고 있음을 암시라도 하는가?
또 고전 7:2-16도 남녀의 동등성을 말하므로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K는 주장한다. 이 본문의 내용이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는가? 고전 7:2-16은 결혼한 부부가 서로의 몸을 나누는 것에 한쪽에 독점되어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인가?
또 고전 11:2-11도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남녀동등이 복음의 핵심인가? 이 본문은 교회가 기도할 때 여자가 머리를 어찌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오히려 이 본문은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오히려 바울이 남녀동등성을 스스로 깨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11절에 가정에서 남녀가 함께 있고 함께 생활하며 남녀가 동등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엡 5:21-31에는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이 있으므로 남녀동등성과 상호주의 원칙을 담고 있다고 K는 보는데 이것이 바른 독법인가? 이 본문은 교회의 성도들이 상호복종하는 것을 말하지 남녀간 피차 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오히려 22-28절에 나와 있다. 여자가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남녀동등성과 상호주의 원칙을 끌어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여성안수의 정당을 도출할 수 있는가? 그런 해석은 너무 견강부회이고 자기 의도로 성경을 먹칠하는 행위이다. 성경을 본문대로 이해하고 지키는 것이 복음을 훼손하고 서로 모순되게 하는 것이라고 힐난하는데 이 힐난이 누구에게 적용되어야 하는가?
보수주의자들은 혹은 보수주의 칼빈주의자들은 성경을 임의로 선정하여 편향되게 읽고 남자들의 권위독점을 위해 복음에 배치되는 구약적 율법주의의 여성비하에 호소한다고 K는 힐난한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고 가르치면 안된다고 한 말을 살리기 위해 바울이 정죄한 율법주의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정죄한다.
이런 율법주의적 태도를 고수함으로 보수주의자들은 부활을 처음 전한 막달라 마리아와 여성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그들이 설교한 복음을 무효화하며 심지어 주 예수까지 교회에서 여자의 잠잠함을 어기도록 교사한 분으로 만들고 있다고 정죄한다. 도대체 이런 해석과 주장은 바른 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인가?
K의 주장과 진술을 종합하면 신약성경은 여성 안수에 대한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래서 나온 변명이 성경을 글자적으로 이해하지 말고 정신을 따라 이해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또 남성지도권 주창자들의 주장을 타도해야 복음을 더욱 잘 전하고 여성들이 안수를 받아 복음을 전하므로 여성을 노예화하는 이슬람과 힌두교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고 권고한다. 오히려 여성안수를 한 대교단들의 신학이 너무 넓고 현대신학이 되어서 기독교서의 존립이 어렵게 되어 있는 상황을 K의 눈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K 교수는 복음의 내용을 제시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함으로 인종적 차별, 신분적 차별, 성적 차별을 철폐하여 만인에게 자유와 정의와 평화를 확대해야 하는 것으로 제시하였다.
복음이 선포되므로 인종적 차별과 신분적 차별과 성적 차별을 다 제거하였고 또 제거하고 있다. 복음선포로 이루어진 결과를 복음으로 결코 혼동하면 안된다. 복음은 주 예수께서 피 흘려 죽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와 사망에서 구출하신 것을 말한다. 이 복음선포가 인류의 역사에 기적들을 산출하였다. 기적들을 복음의 핵심으로 혼동하면 안된다. 우리는 복음선포자의 자격에다 성별간의 차이를 결코 부과하지 않는다. 남녀가 다 복음의 전사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단지 여자들이 목사가 되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성경에서 아무런 근거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갈 3:28을 아무리 강조해도 거기에는 남녀동등성에서 여성안수에로 나아가도록 하는 제시나 당위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본문에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신분에 있든지 간에 다 동일하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구원을 입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안수를 지상의 목표로 삼으면 이 본문을 여성안수의 근거로 볼 수 있게 되는가? 그런 해석법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보수주의자들에게 향했던 권고와 힐난은 오히려 K에게로 향해야 한다. 성경본문을 읽을 때 안경을 벗고 성경본문대로 읽기를 권고한다.
교회에서 여성을 굴종시키고 비하한다고 하는데 여성안수를 안 하는 것을 그렇게 보는 모양이다. 우리는 유교의 전통에서 살아왔으므로 여성하대의 관습이 남아 혹은 여성들을 남자이상으로 존중하지 모하는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면을 여성안수문제와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자의 인격을 존귀한 인격으로 존중한다. 여기에 무슨 남녀차별이 있을 수 있는가? 여성안수시비를 여성인격의 비하로 연결하는 우리를 범하지 말기를 권한다.
총신대 신학지남 특집호 '교회 내 여성의 역할'
지난해 가을 총신대학교에서 발간된 '신학지남'(통권 제248호) '교회와 여성'이라는 제목의 특집호는 교계를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 여성안수 문제와 관련해 총신대 교수들이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신학적 입장을 표명한 논문들에 대해 교계는 찬성과 반대가 분명하게 갈리면서 다양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총신교수들은 논문을 통해 '여성안수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여성안수를 반대만 했지 교회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과 사역을 긍정적으로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하는데는 소홀했다"는 주위의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교수들은 올해 '신학지남' 봄호(통권 제250호) '교회 내 여성의 역할'이란 제목의 특집호를 통해, 여성안수 반대를 전제로 하는 가운데 여성들의 교회 내 역할과 사역방안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애썼다. 김의환총장을 비롯해 5명의 교수들이 각자 전공분야와 관련해 교회 내 여성문제를 풀어나갔다.
황성철 교수(실천신학·총신 신대원 여학생들의 현주소와 그들의 사역을 위한 미래지향적 대안 모색)는 "21세기 목회환경의 변화에 맞게 여성사역이 개선돼야 한다"면서 △전도사 △교육사 △상담사 △복지사 등 네가지 영역을 여성사역의 미래지향적 대안으로 소개했다. 특히 기존 심방전도사의 활동영역을 넘어 "담임목사와 당회의 허락 하에 여전도사도 교훈권과 강도권을 발휘할 수 있다"는 대목과, "개교회의 장·단기적 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교육전문사역자로서의 '교육사 제도'를 교단적 차원에서 도입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조심스런 제안이 눈길을 끌었다.
이러한 제안은 정정숙 교수(기독교교육·한국교회에서의 여교역자의 역할에 관한 연구)에 의해서도 제기됐다. 즉 '교육사' '상담사' 등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의 정비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교수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여성들은 사실상 '종신토록' 사역을 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는 '임시직'으로 묶여 있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법 체제의 현실적인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들이 교육분야와 상담분야에서 남성보다 탁월하게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은사를 부여받았다고 하지만, 제도적 장치 뿐 아니라 여성사역의 전문성을 개발할 수 있는 신학교의 교육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현실적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제도적·교육적 여건이 미비한 탓에 여성사역이 소극적이고 보조적이며 비전문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교수는 "총신 신대원의 교과과정을 4년제로 해 3년의 교과과정을 끝낸 뒤 4년째에는 목회 인턴십을 겸해 전문사역을 염두에 둔 교과과정을 개설하거나, 3년 수료 후에 1년 과정으로 '교육사 준비학교' '상담사 준비학교' '특수목회 준비학교'와 같은 과정을 만드는 등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한편 한춘기 교수(기독교교육·교회 내에서의 여성교육 사역에 대한 고찰)는 "성경공부와 교육활동만 하는 미국교회의 주일학교와 달리 독자적인 예배를 드리는 한국교회 주일학교의 경우 여전도사가 설교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일시적 허용 내지 묵인 또는 방관된 상태"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밖에 김의환 총장(역사신학·교회 내 여성사역의 제한성과 중요성) 김성태 교수(선교학·교회 지도력에 있어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선교신학적 고찰) 등의 논문도 소개됐다.
이번에 발표된 논문들은, 교회 내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여성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전문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영역과 제도적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교수들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교회 지도자들의 의식 변화와 더불어 신학교 커리큘럼의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논의는 그야말로 '책상 위에서의 공론(空論)'에 그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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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