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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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 새 빛이 필요하다
17대 첫 정기국회의 회기 마지막 날인 12월 9일(목) 오후에 나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덕룡 의원과 열린우리당 수석부대표 김영춘 의원을 각각 별도로 만나는 시간을 비교적 충분히 가졌다.
최근 기독교 NGO로 출발한 ‘기독교사회책임’의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양당의 수뇌부에 성실한 대화와 합리적 타 협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국회에서 양쪽을 오고가며 비교적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발견한 분명한 사실은 양쪽의 불신이 지나칠 정 도로 극심하다는 점과 누군가는 또는 두 쪽이 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여와 야의 대화 상대가 아니라 선과 악의 타도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보인 마지막 본회의 는 내년 예산안도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못하는 등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정도를 넘어 분노케 하는 것이었다. 이런 파행적 결과를 초래하 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정치를 놓고 정론을 펴는 집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름대로 정치권에 대해 어느 정도 진실을 말한다고 국민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언론 도 시민단체도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나칠 정도의 당파성 속에 객관적 사실을 곡해하고 있고 보도 조차 왜 곡되이 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 정국에는 합리적이고 서로 경청하는 대화가 존재할 수 없다. 양극단의 매도와 감정대립만이 난무할 뿐 이다. 이것 이 나라의 향배를 쥐고 있는 정치집단의 모습이니 대한민국호는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고 자칫 잘못하면 침몰할 위기에 처할 지도 모 를 일이다. 만약 한 교회의 당회나 제직회가 이런 모습이라면 그 교회는 어떻게 쇠퇴하고 파국을 맞게 될 것인지 조금만 상상해 보 면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그러면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제 3 의 중재적인 목소리이다. 이른바 양 편이 귀담아 듣게하는 피스 메이커가 있어야 한다. 이 때의 피스 메이커란 양비론에 빠져 결정적 인 때에 침묵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어떤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당파적으로 편들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객관적인 입장에 서 시시비비를 가려 지속적으로 용기있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처음 일정한 기간은 양 편에서 욕 먹기를 각오하거 나 어느 편이 아니냐고 매도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맷집 좋은 거룩한 샌드위치맨이 되어야 한다. 이른바 급진적인 중도 (RADICAL MIDDLE)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급진(RADICAL)’이란 그 단어가 유래한 라틴어의 의미 ‘뿌리’라는 의미에 입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 떤 과격한 방법을 불사하는 중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문제의 뿌리에 해당되는 근본적인 이슈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나아가는 중도라 는 의미이다. 이런 역할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크리스찬이나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다.
세상의 언론과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그들을 NEW RIGHT이라고 환호하거나 매도하 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그들은 꾸준히 용기있게 교회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 는 NEW LIGHT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 영역에 는 NEW RIGHT보다는 왼쪽(LEFT)과 오른쪽(RIGHT)의 합성어이기 도 한 LIGHT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예수의 참 빛, ‘NEW LIGHT’이 더욱 더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그 부르심에 용기있게 임해서 ‘중심 잡기’를 해주어야 한다.
고직한 선교사 /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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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첫 정기국회의 회기 마지막 날인 12월 9일(목) 오후에 나는 한나라당 원내대표 김덕룡 의원과 열린우리당 수석부대표 김영춘 의원을 각각 별도로 만나는 시간을 비교적 충분히 가졌다.
최근 기독교 NGO로 출발한 ‘기독교사회책임’의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양당의 수뇌부에 성실한 대화와 합리적 타 협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국회에서 양쪽을 오고가며 비교적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발견한 분명한 사실은 양쪽의 불신이 지나칠 정 도로 극심하다는 점과 누군가는 또는 두 쪽이 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여와 야의 대화 상대가 아니라 선과 악의 타도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보인 마지막 본회의 는 내년 예산안도 본회의에 상정시키지 못하는 등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정도를 넘어 분노케 하는 것이었다. 이런 파행적 결과를 초래하 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 정치를 놓고 정론을 펴는 집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언론과 시민단체가 나름대로 정치권에 대해 어느 정도 진실을 말한다고 국민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는 언론 도 시민단체도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나칠 정도의 당파성 속에 객관적 사실을 곡해하고 있고 보도 조차 왜 곡되이 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 정국에는 합리적이고 서로 경청하는 대화가 존재할 수 없다. 양극단의 매도와 감정대립만이 난무할 뿐 이다. 이것 이 나라의 향배를 쥐고 있는 정치집단의 모습이니 대한민국호는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고 자칫 잘못하면 침몰할 위기에 처할 지도 모 를 일이다. 만약 한 교회의 당회나 제직회가 이런 모습이라면 그 교회는 어떻게 쇠퇴하고 파국을 맞게 될 것인지 조금만 상상해 보 면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좌,우로 치우침이 없는 그러면서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제 3 의 중재적인 목소리이다. 이른바 양 편이 귀담아 듣게하는 피스 메이커가 있어야 한다. 이 때의 피스 메이커란 양비론에 빠져 결정적 인 때에 침묵하는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어떤 이데올로기에 치우쳐 당파적으로 편들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객관적인 입장에 서 시시비비를 가려 지속적으로 용기있게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처음 일정한 기간은 양 편에서 욕 먹기를 각오하거 나 어느 편이 아니냐고 매도하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맷집 좋은 거룩한 샌드위치맨이 되어야 한다. 이른바 급진적인 중도 (RADICAL MIDDLE)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급진(RADICAL)’이란 그 단어가 유래한 라틴어의 의미 ‘뿌리’라는 의미에 입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어 떤 과격한 방법을 불사하는 중도라는 의미가 아니라 문제의 뿌리에 해당되는 근본적인 이슈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나아가는 중도라 는 의미이다. 이런 역할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크리스찬이나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감당할 수 없다.
세상의 언론과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그들을 NEW RIGHT이라고 환호하거나 매도하 는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그들은 꾸준히 용기있게 교회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 는 NEW LIGHT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 영역에 는 NEW RIGHT보다는 왼쪽(LEFT)과 오른쪽(RIGHT)의 합성어이기 도 한 LIGHT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예수의 참 빛, ‘NEW LIGHT’이 더욱 더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그 부르심에 용기있게 임해서 ‘중심 잡기’를 해주어야 한다.
고직한 선교사 /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