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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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스리자”(잠16:32,4:23)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사는 동안에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도 지켜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하고, 지위 도 지켜야 하고 신앙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더욱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 자신의 마음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을 을 다스려야 합니다.
유대인의 교훈 집대성이라는 하는 「탈무드」(Talmud)에 보면 “가장 힘센 자가 누구냐? 자기를 이기는 자다”라고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지적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인간의 참된 본질은 그 외면의 아름다움이나 힘(power)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나 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삼 상 167)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Aquinas)는 “사람은 행위를 보고, 하나님은 의도를 보신다”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렘 11:20) 그래서 다윗 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관이며,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무리 위대하고 풍족하 여도 그것을 받는 마음이 더럽고 병들어 있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거하시며 우리의 모두 를 주장하시고 또 우리가 우리의 모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곳입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우리를 더럽게 하 기 때문입니다.(마 15:18) 나쁜 생각은 마음 속에서 나오는데 음란,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악독, 사 기, 방탕, 질투, 배신, 모독, 교만, 어리석음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모든 악한 것이 모두 마음 속에서 나오고 또 사람을 더럽 게 합니다.(막 7:21 이하)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 ① 악한 생각이 틈타고(창 6:5) ② 거짓되고 부패되 고(렘 17:9) ③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롬 1:29) ④ 무엇보다도 현재 소유하고 있 는 은혜들을 상실하게 맙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 기 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 서 남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잠 16:32,4:23)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하 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고 지키려면 할지라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에 (렘 17:9)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의 변화를 받지 아니하면 (엡 4:22-23) 결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도 지킬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지 키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 속에서 들어 있는 온갖 더럽고 악한 생각과 음행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시기와 교만과 탐욕과 질투와 숱 한 저주와 거짓말과 중상 모략과 말다툼과 음담패설(淫談悖說)과 횡설수설(橫說竪說) 등과 같은 것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롬 12:2) 예수님께서 주신 보혈의 은혜로 말미 암아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엡4:2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고 할지라 도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는 원죄(原罪)에 대해서는 구속을 받았지만 100% 성화(聖化) 되지 아니했기에 아직도 죄 의 성향(性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다스리고자 몸부림치지 아니하면 언제 어떻게 옛 사 람의 못된 성품이 다시 살아나서 우리를 더럽게 할지 모릅니다. 낡고 병든 마음, 죄로 더러워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마 5:8) 가까이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마음 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마음을 가질 때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지 성경을 통하여 교훈 을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골 3:15)
사도 바울이 골 3:15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 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 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빌 4:7에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평강만이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향락을 즐기며 그의 따르는 욕구를 마음속에 채운다면 믿음의 성도라고 할 수 없 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잠시뿐이며 염려과 근심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멸망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마음 의 상태는 인간의 전체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 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 1513)
오늘날 염려와 근심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전쟁에서 총탄에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 과 기쁨은 잠시뿐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영원하며 참된 것입니다(요 14:27)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풍성해야 합니다. 에드워드 포돌스커 박사가 “염려를 그치라 그리고 건강 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잠 17:22에 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첫째로,하나님의 평강(平康)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는 평강입니다(신 21:10,요 14:27)
모세가 신 12:1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에 안식을 얻을 때에 평안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는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불안과 공포의 날을 주시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강(平康)을 갖지 못함 으로 끊임없이 물질, 건강, 자녀, 부모, 직장, 사업 때문에 불안하고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 의 것들을 가지고 결코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소유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 다. 그러기에 영원한 평강이 넘치는 교회에 나오면 근심과 걱정이 없으며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둘째로, 하나님의 평강(平康)은 찬송하는 평강입니다(사 57:19)
사 57:19에서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 든지 평강이 있을지로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평강할 수 있습니 다.
찬송은 그저 기쁨의 노래이기보다는 우리에게 구원과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진정으로 감사하는 영혼의 찬양인 것입니다. 슬픔이 있는 사람이 어찌 기쁨의 노래가 있으며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찬송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임재할 때 비로소 말할 수 없는 기쁨의 노래가 우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의 입술의 열매 이며 곡조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 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히 13:15)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 지만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했기 때문에 밤새도록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행 16:25) 이처럼 하나 님께서는 우리의 찬송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 전 14:15에서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 미하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에 참된 평안이 넘치면 기도와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기쁨을 계속하여 유지하기 위해서는 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 (사 54:13) ②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요 16:33) ③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열심 히 믿을 때에(롬 15:13)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平康)이 우리의 마음 을 주장하여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킬 줄 믿습니다.
그러나 분노(忿怒)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을 결 코 마음을 다스릴 수 없고 그 마음에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분노(忿怒)는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지 못합니다 (약 1:20)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분노를 더디 해야 하며 (약 1:19) 할 수 있으면 분노를 참아야 합니다(잠 1429)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내지 만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잠 12:16,잠 19:11) 하나님의 백 성답게 하나님의 평강으로 분노를 몰아내고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신령한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롬8:5-6)
사도 바울이 롬 8:5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을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 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일을 생각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니 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속에 육신의 생각만 하면 육신의 것만 형성될 뿐이며, 마음 속에 영적인 생각하면 그 인격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 신의 일 곧 죄가 형성되어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고, 영을 좇는 자는 평안이 있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생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요 5:39)
주님께서 요 3:39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 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영생에 이르는 성경의 말씀을 상고할 때에 신령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 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의 마음의 교훈과 바르게 하는 것과 의를 위하여 살아가도록 유익하기에 우리의 다스리 고 지리려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딤후 3:16) 그래서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 함 링컨은 “성경을 늘 펴들고 있으랴! 그대의 천국 가는 길이 펴져 있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상고하는 일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말씀은 우 리 믿음의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빛이요 등불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 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둘째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갈 5:16)
사도 바울이 갈 5:16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신령한 생각을 계속해서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아니하고는 결 코 욕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습니다(갈 5:24) 그래서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 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엡 5:18)
3. 착한 양심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딤전 1:19)
사도 바울이 딤전 1:19에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미음에 곤하여 는 파선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한 딤전 1:5에서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 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착한 양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니다.
양심(良心)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만일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괴되어질 수밖에 없습니 다. 양심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양심은 영혼의 지성소이며 양심의 마음의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버리면 심령 이 어두워지고 분별력이 없어져서 짐승처럼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개인이나 국가나 사회나 민족이나 그 역사의 생명은 양심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죄를 짓게 되고 죄 를 짓게 되면 곧 망하게 됩니다. 부부가 착한 양심을 버리면 가정은 파탄이 되고, 사회에 착한 양심이 없어지면 도덕과 윤리가 무너 지고 회사원이 착한 양심을 버리면 기업의 신용도 무너지고, 공직자가 착한 양심을 버리면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게 됩니다. 국민들 의 양심이 병들면 아무리 성벽을 높이 쌓고 무기가 산더미처럼 있어도 그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태리의 시인이었 던 「페트라르카」는 “제왕을 위한 가장 확실한 호위는 군대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양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신앙의 양심이 무디고 병들면 아무리 좋은 건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최고의 봉사는 양심 의 봉사요, 무명의 교인일지라도 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르는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 였던 장자도 “인간의 최대 비애는 양심의 상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착한 양심이 무너지는 우리의 마음도 결국 무너지게 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착한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양심의 화인 맞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양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8:12에서 “이 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지를 짓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②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가 집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 3:9에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③ 양심에 화인(火印)맞은 자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딤전 4:2에서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③ 선한 양심을 가질 때에 나를 욕하는 자를 부끄럽게 합니다.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 3:16 에서 “선 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④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 전 3:21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 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시대에 산다고 할지라도 착한 양심만은 결코 버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흠 없는 양심 을 가질 때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깨닫고(행 24:16) 무릇 지킬만 것보다 착한 양심을 가짐으로 우리의 마음 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양심, 착한 양심으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에게 은혜를 부 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성급하게 분노를 일으키지 말아야 합 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약 1:20) 그러므로 분노를 더디 해야 하며 (약 1:19) 할 수 있으면 분노를 참아야 합니다(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 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말씀을 의지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 는 소극적인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평강과 신령한 생각과 착한 양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마음의 왕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마음의 상처를 치유 할 수도 없고 다스릴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마음의 왕좌에 모심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죄악들을 몰아내기를 바랍니 다. 그리함으로 생명의 근원(根源)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다스리고 날마다 승리하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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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사는 동안에 지켜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도 지켜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하고, 지위 도 지켜야 하고 신앙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더욱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우리 자신의 마음입니다. 우리 자신의 마을 을 다스려야 합니다.
유대인의 교훈 집대성이라는 하는 「탈무드」(Talmud)에 보면 “가장 힘센 자가 누구냐? 자기를 이기는 자다”라고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지적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인간의 참된 본질은 그 외면의 아름다움이나 힘(power)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합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은 “나 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삼 상 167) 또한 [토마스 아퀴나스](Aquinas)는 “사람은 행위를 보고, 하나님은 의도를 보신다”라고 말하 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렘 11:20) 그래서 다윗 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감찰하신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관이며,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무리 위대하고 풍족하 여도 그것을 받는 마음이 더럽고 병들어 있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음은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거하시며 우리의 모두 를 주장하시고 또 우리가 우리의 모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곳입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우리를 더럽게 하 기 때문입니다.(마 15:18) 나쁜 생각은 마음 속에서 나오는데 음란,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악독, 사 기, 방탕, 질투, 배신, 모독, 교만, 어리석음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모든 악한 것이 모두 마음 속에서 나오고 또 사람을 더럽 게 합니다.(막 7:21 이하)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 ① 악한 생각이 틈타고(창 6:5) ② 거짓되고 부패되 고(렘 17:9) ③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입니다(롬 1:29) ④ 무엇보다도 현재 소유하고 있 는 은혜들을 상실하게 맙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 기 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 서 남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잠 16:32,4:23)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고 명령하 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고 지키려면 할지라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에 (렘 17:9)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의 변화를 받지 아니하면 (엡 4:22-23) 결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도 지킬 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지 키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 속에서 들어 있는 온갖 더럽고 악한 생각과 음행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시기와 교만과 탐욕과 질투와 숱 한 저주와 거짓말과 중상 모략과 말다툼과 음담패설(淫談悖說)과 횡설수설(橫說竪說) 등과 같은 것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는데(롬 12:2) 예수님께서 주신 보혈의 은혜로 말미 암아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엡4:2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라고 할지라 도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는 원죄(原罪)에 대해서는 구속을 받았지만 100% 성화(聖化) 되지 아니했기에 아직도 죄 의 성향(性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다스리고자 몸부림치지 아니하면 언제 어떻게 옛 사 람의 못된 성품이 다시 살아나서 우리를 더럽게 할지 모릅니다. 낡고 병든 마음, 죄로 더러워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마 5:8) 가까이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마음 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떠한 마음을 가질 때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지 성경을 통하여 교훈 을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골 3:15)
사도 바울이 골 3:15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 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 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빌 4:7에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평강만이 우리의 마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향락을 즐기며 그의 따르는 욕구를 마음속에 채운다면 믿음의 성도라고 할 수 없 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잠시뿐이며 염려과 근심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멸망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마음 의 상태는 인간의 전체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 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 1513)
오늘날 염려와 근심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전쟁에서 총탄에 맞아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 과 기쁨은 잠시뿐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주시는 평안과 기쁨은 영원하며 참된 것입니다(요 14:27)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풍성해야 합니다. 에드워드 포돌스커 박사가 “염려를 그치라 그리고 건강 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병들게 됩니다. 그래서 잠 17:22에 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평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첫째로,하나님의 평강(平康)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는 평강입니다(신 21:10,요 14:27)
모세가 신 12:10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마음에 안식을 얻을 때에 평안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는 사랑하시는 자녀에게 불안과 공포의 날을 주시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 하나님의 평강(平康)을 갖지 못함 으로 끊임없이 물질, 건강, 자녀, 부모, 직장, 사업 때문에 불안하고 고난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 의 것들을 가지고 결코 안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소유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 다. 그러기에 영원한 평강이 넘치는 교회에 나오면 근심과 걱정이 없으며 언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 다.
둘째로, 하나님의 평강(平康)은 찬송하는 평강입니다(사 57:19)
사 57:19에서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 든지 평강이 있을지로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평강할 수 있습니 다.
찬송은 그저 기쁨의 노래이기보다는 우리에게 구원과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진정으로 감사하는 영혼의 찬양인 것입니다. 슬픔이 있는 사람이 어찌 기쁨의 노래가 있으며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찬송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에 임재할 때 비로소 말할 수 없는 기쁨의 노래가 우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의 입술의 열매 이며 곡조있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 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히 13:15)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 지만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의 마음을 주장했기 때문에 밤새도록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행 16:25) 이처럼 하나 님께서는 우리의 찬송을 통하여 영광 받으시고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 전 14:15에서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 미하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에 참된 평안이 넘치면 기도와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기쁨을 계속하여 유지하기 위해서는 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며 (사 54:13) ②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요 16:33) ③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열심 히 믿을 때에(롬 15:13)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平康)이 우리의 마음 을 주장하여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킬 줄 믿습니다.
그러나 분노(忿怒)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평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을 결 코 마음을 다스릴 수 없고 그 마음에 평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분노(忿怒)는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지 못합니다 (약 1:20)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분노를 더디 해야 하며 (약 1:19) 할 수 있으면 분노를 참아야 합니다(잠 1429)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내지 만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잠 12:16,잠 19:11) 하나님의 백 성답게 하나님의 평강으로 분노를 몰아내고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신령한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롬8:5-6)
사도 바울이 롬 8:5에서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을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 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성령의 일을 생각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니 다.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속에 육신의 생각만 하면 육신의 것만 형성될 뿐이며, 마음 속에 영적인 생각하면 그 인격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은혜의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 신의 일 곧 죄가 형성되어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되고, 영을 좇는 자는 평안이 있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 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생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요 5:39)
주님께서 요 3:39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 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영생에 이르는 성경의 말씀을 상고할 때에 신령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 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의 마음의 교훈과 바르게 하는 것과 의를 위하여 살아가도록 유익하기에 우리의 다스리 고 지리려면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딤후 3:16) 그래서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 함 링컨은 “성경을 늘 펴들고 있으랴! 그대의 천국 가는 길이 펴져 있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상고하는 일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말씀은 우 리 믿음의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빛이요 등불이기에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 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둘째로,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갈 5:16)
사도 바울이 갈 5:16에서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신령한 생각을 계속해서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아니하고는 결 코 욕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없습니다(갈 5:24) 그래서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 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엡 5:18)
3. 착한 양심으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딤전 1:19)
사도 바울이 딤전 1:19에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미음에 곤하여 는 파선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한 딤전 1:5에서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 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착한 양심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켜야 합니다.
양심(良心)은 생명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만일 양심을 버리면 믿음이 파괴되어질 수밖에 없습니 다. 양심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양심은 영혼의 지성소이며 양심의 마음의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버리면 심령 이 어두워지고 분별력이 없어져서 짐승처럼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개인이나 국가나 사회나 민족이나 그 역사의 생명은 양심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양심을 버리면 죄를 짓게 되고 죄 를 짓게 되면 곧 망하게 됩니다. 부부가 착한 양심을 버리면 가정은 파탄이 되고, 사회에 착한 양심이 없어지면 도덕과 윤리가 무너 지고 회사원이 착한 양심을 버리면 기업의 신용도 무너지고, 공직자가 착한 양심을 버리면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게 됩니다. 국민들 의 양심이 병들면 아무리 성벽을 높이 쌓고 무기가 산더미처럼 있어도 그 나라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태리의 시인이었 던 「페트라르카」는 “제왕을 위한 가장 확실한 호위는 군대도 아니요, 돈도 아니요 양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신앙의 양심이 무디고 병들면 아무리 좋은 건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최고의 봉사는 양심 의 봉사요, 무명의 교인일지라도 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르는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 였던 장자도 “인간의 최대 비애는 양심의 상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착한 양심이 무너지는 우리의 마음도 결국 무너지게 되 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착한 양심을 지켜야 합니다. 양심의 화인 맞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양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①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8:12에서 “이 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지를 짓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② 깨끗한 양심을 가진 자가 집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전 3:9에서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③ 양심에 화인(火印)맞은 자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딤전 4:2에서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③ 선한 양심을 가질 때에 나를 욕하는 자를 부끄럽게 합니다.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전 3:16 에서 “선 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 고 있습니다.
④ 우리의 양심을 깨끗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벧 전 3:21에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 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시대에 산다고 할지라도 착한 양심만은 결코 버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흠 없는 양심 을 가질 때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깨닫고(행 24:16) 무릇 지킬만 것보다 착한 양심을 가짐으로 우리의 마음 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깨끗한 양심, 착한 양심으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에게 은혜를 부 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형편과 상황 속에서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성급하게 분노를 일으키지 말아야 합 니다. 분노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약 1:20) 그러므로 분노를 더디 해야 하며 (약 1:19) 할 수 있으면 분노를 참아야 합니다(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 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고 말씀을 의지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세 는 소극적인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평강과 신령한 생각과 착한 양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 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마음의 왕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마음의 상처를 치유 할 수도 없고 다스릴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마음의 왕좌에 모심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죄악들을 몰아내기를 바랍니 다. 그리함으로 생명의 근원(根源)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마음을 다스리고 날마다 승리하는 기쁨을 체험할 수 있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