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로 엿보는 일본의 오늘 ]


① 영화 ‘배틀로얄 Ⅰ.Ⅱ’- 기성세대·청소년 ‘일그러진 공존’ 생존게임으로 청소년 범죄 막으려는 충격적 소재… ‘정신공황’ 일본 그려
얼마 전만 해도 일본인들은 안정된 정신적 풍토 위에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섬 울타리 안에서 별 문제없이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세기말을 거치면서 일본 사회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정신은 차츰 황폐해 지고 있다.

그 동안 일본을 지탱하던 종신고용제가 거의 무너짐에 따라 샐러리맨의 80%정도가 실직위기를 느끼고 있으며, 가정문제, 청소년문제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17세의 공포’란 말이 나돌 정도로 청소년들의 이지메(우리나라의 ‘왕따’보다 더 심각하고 조직적인 현상), 살인, 폭력, 자살, 총기 사용 등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학교는 더 이상 교육기관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학교는 붕괴되어 3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일본의 현재를 신랄하게 꼬집기라도 하듯, 영화 ‘배틀로얄’ 시리즈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게 할 정도로 시종 일본의 처절한 현실(다소 과장이 되긴 했지만)을 보여준다.

‘배틀로얄’은 원래 1999년 출간된 작가 다카미 코슈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는 당시 평단으로부터 “대단히 혐오스러우며 작가의 소양이 의심스럽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충격적인 내용과 재미로 소설 <배틀로얄>은 화제작 대열에 올라섰다.

“이 소설만은 영화화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탄생한 영화 ‘배틀로얄’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른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고, 실업률이 15%에 달하며, 실업자가 1000만 명, 등교거부 학생이 80만 명을 넘어섰다면, 아무리 유능한 정부일지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심각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처한 어른들은 집을 떠나거나, 자살해 버린다.

이런 덜떨어진 어른들을 보다 못한, 그나마 제정신(?)이 박힌 어른들이 내놓은 방안이 신세기 교육개혁법, 이른바 ‘배틀로얄’이다. 이 법안은 심각한 청소년 범죄의 증가로 인해 위기를 느낀 국민들의 분노를 해소하고, 청소년들로 하여금 어려움을 이겨내고 강인한 생존능력을 갖추고, 나아가서는 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선택한 법률이다. 그래서 전국의 중학교 3학년생 중 매년 한 학급을 무작위로 선발, 고립된 섬에 데려다 놓고 각자에게 지도와 식료품, 다양한 무기를 지급하고는 3일 동안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우게 한다. 이 기간 중 참가자에 의한 살인, 상해, 총기보유 등의 행위는 범죄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 처음으로 친구를 죽였다”라는 영화 홍보용 카피가 말해 주듯이 ‘배틀로얄’의 배경과 소재는 섬뜩하다. 영화 속에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기관총을 난사하고 무기를 휘두르는 그 자체로 충격의 강도는 배가 되고 폭력의 감각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런 충격적인 설정과 소재, 무자비한 살인 장면으로 인해 실제 일본에서는 일부 시민단체에서 상영중지 추진운동까지 벌이는 등 이 영화에 대한 찬반논쟁이 격렬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본에서 엄청난 관객을 동원했고,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큰 호응을 얻어 각종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았으며, 결국 우리나라에서도 무삭제로 심의를 통과해 ⅠㆍⅡ편 모두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고 상영됐다.

전편이 서로가 적이 되어 단 한 명만 살아남는 것이 허용된 반면, 속편은 선택된 학생들이, 전편에서 살아남은 학생이며 ‘어른들’ ‘강한 자’ ‘강대국’에 저항하는 상징적 인물이자 외딴 섬을 본거지로 삼고 활동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우두머리를 발견해 죽이면 승리하는 규칙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서로 전쟁을 벌이던 학생들은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는, 이내 결국은 모두가 같은 처지임을 깨닫고 서로 총부리를 겨눌 이유가 없다고 여기게 되자 곧 의기투합해 어른들과 싸우기 시작한다.

여기서 ‘어른’은 이제 일본을 넘어선 ‘그 나라’까지 확장된다. ‘그 나라’는 중국, 북한, 일본, 쿠바, 리비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 시점에서 60년 동안 전세계 22개국을 침공해 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라다. ‘그 아이’들도 일본 땅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고 긍지를 지닌 채 살아가기 위해 중동 어느 곳인가까지 총을 들고 나선다.

‘배틀로얄’은 한 편의 영화이기에 앞서 하나의 사회현상이다. 적어도 일본에서 이 영화가 제작되고 개봉됐던 2000년부터 지금까지는 쭉 그렇다. 일본인조차 자국의 미래에 대해 회의적인 이 때 과연 일본의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과장되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파격적 내용의 영화라 해도, 상당부분 현재의 일본을 반영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