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불륜

글:정 혁 현 
얼마 전&nbspKBS2 ‘추적60분’은 교회 안의 성폭력 문제에 관한 충격적인 시사 다큐멘타리를 방영하였다. 이 런 문제에 대한 보수적인 기독교의 상투적인 대응은 언론의 선정성과 침소봉대를 탓하는 한편, 이에 따른 명예훼손을 시비 거는 것이 다. 이와 달리 감리교회는 현직 감독들의 연명으로 ‘참회’를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감리교 감 독들 명의의 성명은 땅에 떨어진 기독교의 도덕성에 대한 신선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 성명서는 본문에서 ‘성폭력’의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성적인 문란’이라는 최근의 사회 전반적인 성적 경향을 지적 함으로써, 성폭력과 불륜을 상호 교환 가능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과 ‘불륜’은 ‘성’이라는 교집합을 공유하 고 있음에도 전혀 다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성폭력’은 폭력의 문제로써, 폭력 행위자가 행사한 힘의 부당성을 지시하 는 개념이다. 반면 불륜은 성적 관계에 관한 사회적인 관습을 일탈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불륜은 ‘정의’라는 보편적인 잣대를 들이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사회의 ‘통념’이라는 다소 특수한 문화적인 문제인 것이다. 

정치 경제를 포함하는 사회문화적인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가족관계의 구조도 변화하며, 이에 따라 남녀관계의 정당성을 따지 는 기준도 바뀐다는 사실은 거의 입문 수준의 사회학적 연구 결과이다. 게다가 현재의 가족관계가 인간의 성적 욕망의 억압에 기초한다 는 사실도 성정치학의 기본 전제이다. 최근의 정신분석학은 이렇게 억압된 욕망이 어떻게 다른 얼굴을 하고 되돌아와서 사회문화 전반 에 병리적인 현상을 일으키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단적인 예를 들면 자본주의 사회의 도착적인 황금집착도 상실된 만족에 대한 대리 충 족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을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억압함으로써 고매한 인격에 도달할 수 있다는 태도는 최 근 다양한 방향에서 의문시되고 있다. 기독교의 성에 관한 태도 역시 이러한 의문스러운 가정에 기초하고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인간의 성욕을 타락의 원인이나 결과로 간주하는 기독교 일반의 태도는 역사적 예수의 말씀과 행위로부터 어떤 근거도 찾 을 수 없다. 기독교는 일방적이며 불의한 힘의 행사로서 ‘성폭력’에 대해 폭력의 범주에서 단호하게 저항해야 한다. 하지만 ‘불륜’ 의 문제에 인습적인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성폭력은 그 자체로 일종의 범죄로서 공 적인 치리를 받아 마땅하지만, 불륜문제는 훨씬 사적인 영역에서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그리 고 그에 앞서 현재의 성도덕이 ‘성’에 대한 부당한 평가를 바탕으로 하는 ‘억압’에 기초한 것이라는 사실이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 의 성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식적 필요를 훨씬 초과하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초과분의 성적 욕망이야말로 인간이 동물 과 다른 문화를 이루게 한 비밀의 열쇠에 해당할 것이다. 기존의 성도덕이 갖는 현실적 합리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사회 변화라는 실 정과 성이 인간에게 갖는 의미의 재평가와 아울러 고려함으로써 개방성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