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왕따 해결의 ‘열쇠’   

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왕따는 당하지 않는 것일까? 자녀를 둔 부모라면 요즘 한번쯤 무의식적으로라도 가져봄직한 생각이 다. 한 교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동영상으로 만들어지고,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모아지고, 급기야는 사회 문제가 되어 한 교장 선생님 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사실 집단 따돌림 현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부모 세대 에도 집단 따돌림을 겪은 피해자는 있었다. 문제는 학교 교육이 철저한 입시 위주 교육으로 바뀌면서 친구를 우정과 나눔의 대상이 아 닌 물리쳐야 할 경쟁 대상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점이다. 도달해야 할 목표는 분명한데, 성취 가능성이 불투명해 좌절한 아이들이 적대 감을 표출할 ‘희생양’을 찾는다는 분석이다. 

이렇듯 비틀린 교육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능력을 잃고 친구를 괴롭히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심 하게는 나 아닌 다른 친구를 심리적으로 괴롭히고 학대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까지 한다. 왕따의 또 다른 심각성은 죄의 식 없이 단순히 ‘재미 삼아’따돌린다는 데서 기인한다. 

왕따 당하는 자녀와 놀리는 자녀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이 둘 사이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왕따 문제의 대안은 뜻밖에 학교 가 아니라 가정에 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자녀들은 왕따를 당하거나 왕따를 시키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가정 안에서 자녀 들의 자존감을 높여줘야 한다. 낮은 자존감의 자녀가 있다면 작은 변화에도 칭찬을 아끼지 말고 우리 가족으로서 소중한 자녀라는 것 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자존감은 가정에서 가족들이 그 구성원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중의 하나이다.&nbsp1976 년&nbsp4월&nbsp6일, 한 아이가 태어났다. 건강한 사내아이였고 평범한 부부의 평범한 출산이었다. 단 한 가 지, 그 사내아이에게 팔과 다리가 없다는 것만 빼고는.

정상적인 출산이었다면 감동적인 모자 상봉의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출산의 고통에서 벗어난 산모에게 너 무 큰 충격이 될 것으로 염려한 병원측에서 황달이 심하다고 둘러대는 바람에 어머니와 그는 한 달이 넘도록 만날 수 없었다. 드디 어 모자간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이 찾아왔다. 병원 측에서 그 어머니에게 아이를 보여 주던 그 긴장의 순간, 그러나 ‘모자 상 봉의 그 순간’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 대성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질 것을 염려 한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마디였다. 비록 팔과 다리는 없었지만 배 아파 낳은 아들. 한 달이나 만 날 수 없었던 아들을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이 어머니에게 무엇보다도 컸던 것이다. 오체불만족의 오토다케의 이야기이 다. 

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난 오토다케는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팔과 다리보다 더 좋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 하고 자신을 소중히 여겨 내일을 향해 즐겁게 달려가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오토다케가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자존감은 장 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고 왕따를 당할 수 있는 환경을 사랑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었다. 

왕따를 염려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에 먼저 마음을 쏟아보자.  

이의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