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정치참여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라는 말씀을 어떤이들은 개인적으로 해석하여 현실 정치에 대해 아무런 관심 없이 대하는가 하 면 어떤 기독교 지도자들은 사회적으로까지 확대 해석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어느 쪽을 따르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인 지? 어느 쪽도 아니라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요즘같은 선거철이 돌아오면 한번쯤 고민하게 된다. 

신앙인이라도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상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기독교철학자들이 정치도 하나님께 서 우리에게 주신 한 영역으로 생각해왔다. 정교분리라는 미명하에 신앙인들이라고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구 나 신앙에 반하는 일들이 공공연하게 시행되게 방관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하나님이 성령으로 간섭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선지자적인 자세 로 신앙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한국 초대교회 신앙의 선배들은 지금 보다도 오히려 그런 일에 잘 대처를 해왔다. 얼마 전에 삼일절이 지났지만 당시 만세운동 에 앞장섰던 지도자들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사가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는데 그 당시 교세에 비하면 엄청난 역할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그 적극적인 선지자적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를 뿐 아니라 개념조차도 의견이 분 분하다. 식민지 시대나 전쟁 시에는 행동지침을 마련하기가 오히려 쉽다고 한다. 그것을 빨리 종식시키는 것이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 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 시에는 그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나 욕구가 더 다양하게 제시돼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한 다. 

한국 기독교계가 아직 다양한 욕구나 방법에 대한 선지자적 행동 지침이 제대로 정립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혹 누군가 정치분야 에 대한 선지자적 행동 지침을 나름대로 정립했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지는 못했다고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단체를 형성하여 정치적인 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한 입장을 개인적인 정의를 내세워 주장하기도 한다. 기독인들 이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늘 기도하며, 복음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하 는 것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기본이다. 그 안에 정직한 지도자를 뽑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물론 포함된다는 것이 다. 그렇기에 그 필요성은 이미 결론이 났고 이제 필요성을 넘어 참여하는 방법과 승리를 위한 전략만이 핵심으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 이다.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 기독인들의 삶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할 수 없다. 사안에 따라서 가정과 가문, 공동체, 나 아가 국가의 명예와 이미지와도 연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정치 공동체 출현의 명분을 선교나 기독교의 이미지 개 선에 두지 않고 정의사회 실현에 무게를 둔다면 기독교의 정체성면에서 한번 재고해 볼 문제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가칭 ‘기독교 정당’이 출범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명칭에 관한 것이다. 특 히 하나님의 칭호나 이름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기독’이라는 말이나 ‘예수’라는 말은 찬양이나 예배에서 불리어지는 용어로 정치판 에서 사용되는 것은 가능한 자제해야 한다. 일부 서양의 기독교 국가에서 기독교 이름이 들어간 정당이 있는데 명칭을 사용하는 것 에 대한 우리 민족의 감정은 서양과는 다르다. 서양에 비해 우리는 이름의 의미를 중시하며, 함부로 쓰지 않는다. 먼저 이번 정치권 에 등장한 사람들이 그 이름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목적과 방법 그리고 한국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지 면면을 따져봐 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당장 그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필자는 지금 시점에서 기독교당의 출범이 타당하다 고 생각지는 않지만 정말 기독교적인 정신을 정치권에서 펼치고자 한다면 일단 다른 이름을 가지고 시작하고, 하나님의 칭호나 이름 이 정말 존중됨이 확고해진 후에 고려해 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내세우는 어떤 정신이나 목표가 변질될 때 그것이 싫으면 개인은 관계를 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변질의 불명예를 안은 채 역사 속에 남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창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