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 VS 기독교 영화 그리고 교회

     ····· 우리는 영화를 제외하고서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문화적 특징과
     ····· 흐름을 파악한다. 우리는 나름의 기준과 감상법으로 영화의 메시지와
     ····· 예술적 형식을 평가한다. 기독교인으로 영화를 평가할 보편적인
     ····· 기준은 무엇인가? 좋은 영화와 기독교 영화란 무엇이며,
     ····· 그것이 좋은 영화가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문화 시대 속에서 교회 공동체가
     ····· 품어야 할 문제다.   편집자 주


     기독교 영화는 과연 좋은 영화인가? 벤허, 십계, 쿼바디스와 같은 전통적인 기독교 영화는 과연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가?
     강진구 - 좋은 영화는 좋은 음식과도 같다. 좋은 음식은 여러 가지 재료들을 잘 버무려서 좋은 맛을 제공한다. 또한 좋은 음식은 먹는 이에게 좋은 분위기를 제공한다. 좋은 영화도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재희 - 좋은 음식은 배탈을 일으키면 안 된다. 하지만 영화는 때로는 배탈을 일으켜야 좋은 영화가 되기도 한다. 신자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 신자에게 시비도 걸고, 그가 가진 생각들을 흔들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벤허나 십계 쿼바디스 등의 전통적인 기독교 영화들을 보면 우리가 가진 신앙을 견고히 하는 역할은 하지만 아무런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사회자 - 현재는 벤허와 같은 대작이 없다. 게다가 얼마 전 개봉했던 ‘미션바라바’와 같은 작품은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는 기독교 영화 관객이 없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혁현 - 영화도 하나의 산업이기 때문에 자본이 중요하다. 벤허나 쿼바디스와 같은 영화를 영화사적으로 보면 섹스가 판을 치던 그 당시 미국문화의 대안적인 영화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들 작품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풍성한 볼거리 위주로 만들어졌다. 이는 기독교 영화도 자본의 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오늘날의 기독교는 신화적인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현대인들에게는 성경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강진구 - 자본주의 산업의 도구로 기독교 영화가 이용당했다는 내용인데,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헐리우드 제작자가 기독교를 이용했다면, 그렇게 제작된 영화는 기독교인을 위한 영화일 것이다. 유재희 씨의 말대로 ‘기독교 관객이 없다면 기독교 영화는 없다’. 그러므로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기독교인의 구미에 맞춘 것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와 영화 그 긴장과 충돌
     사회자 - 우리들이 쉽게 보고 있는 영화에는 메시지가 흐르고 있다. 유심히 보면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인상을 주는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영화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재희 - 불편하다. <나쁜 남자>를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가스펠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매춘행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또 <오아시스>에서도 목사님이 나오는데 아주 무력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는 우리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시선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밀어붙이기보다는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나쁜 남자>의 김기덕 감독이 가스펠을 끌어들인 이유는 죄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영화는 작가의 관점과 의식이 빠질 수 없다. 영화도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일 수 있다. 영화는 경전이 아니다. 영화에 드러나는 감독의 관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이 그리는 것은 기독교가 해결해야 하는 사안에 대해 무력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봐서는 안 된다. 그래야 그들과 성숙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정혁현 - 나쁜 남자에서 가스펠은 아주 적절했다. 기독교인이던 여자주인공이 처절하게 나락으로 떨어진 채 피동적이고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는 기독교가 철저하게 세일즈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하면 수동적 소극적인 정조를 떠올리게 된다. 하루는 목사인 나에게 “거기 우는 교회입니까”라고 묻는 분이 있었다. 기독교가 공공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 작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영화에서 올바른 모습으로 비쳐기를 바란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강진구 - 영화에 나타나는 메시지는 감독이 가진 경험이나 세계관으로 볼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기독교의 모습은 감독이 경험한 신앙의 모습을 비쳐주는 것이다.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은 미션스쿨의 교사이기도 했다. 감독은 자신이 이해한 것만을 영화 속에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볼 때 이러한 점을 기억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봐야한다. 또한 자신의 주체적 신앙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사회자 - SF와 환타지 영화들은 뉴에이지 사상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야야 하는가?
     정혁현 - 한국 기독교 문화 운동은 ‘안티’운동의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反)뉴에이지’운동이다. 이들의 주장은 뉴에이지는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으므로 듣지 말고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 세계관은 이런 것’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뿌리내지도 않았는데 이들은 마치 기독교 세계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기독교인들을 뉴에이지 사상으로부터 분리하려고 한다. 반뉴에이지 운동이 잘 먹혀 들어가는 현상은 현재 기독교 문화의 낮은 질적 수준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극히 서구적인 근대적 세계관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주와 객의 이분법적인 사상은 전형적인 근대 철학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근대적 성격의 기독교 세계관은 현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에이지운동은 다종·다양하다. 그들은 반기독교적 운동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그 배경은 기독교 전통과 교회에 실망에 대한 표현이다. 진정한 문화적 태도는 뉴에이지가 나오게 된 근본적인 이유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실망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환타지는 영화의 고유한 속성이다. 영화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상상력을 통해 실현한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와 같은 환타지 영화는 후기 산업사회의 문화이다. 현대인은 환타지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얼마 전만 해도 환타지는 어린이들의 것이었다. 최근의 환타지 열풍은 현대인들의 정신성이 퇴행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강진구 - 영화의 세계는 환상이지만 영화는 극장 안에서 끝나버리지 않습니다. 문제는 영화는 현실을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환타지 영화를 어떻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프란시스 쉐퍼는 예술을 그것이 가지는 종교성, 사상성, 기술성, 예술적 가치의 네 가지 기준으로 평가한다. 쉐퍼는 주로 미술을 평가하는데 이런 방식을 사용했지만 영화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할 것이다. 환타지는 놀라운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을 기독교 영화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담고 있는 사상은 결코 수용해서는 안된다. 기독교는 우리가 해야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봐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해리포터>가 가지는 상상력은 받아들여야하지만 ‘마법’은 버려야한다.

정리 : 송대로 기자 DRSong@chongsh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