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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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와 아동문제
요즈음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이 도처에서 많이도 벌어지고 있다. 각양각색의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빈곤으로 양 육할 수 없어서 14층 아파트에서 혹은 강물위에서 던진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대 후반 의 새 엄마는 아이들을 매질하여 죽게 만들고, 재산을 노리거나 원한관계 혹은 다른 이유를 들어 옷이 발가벗긴 채 아이들이 야산 과 콘크리트 수로 안에서 죽임을 당했다. 아동들을 위해서 일 해온지 30년 동안 이처럼 생명을 경시하고 아이들을 참 혹하게 죽이는 요즘 세태는 보지 못했다. 이런 현상들을 정신적 영적 물리적 빈곤의 극심한 한 사회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지 그마 저 의심이 든다.
언제까지 이러한 생명경시와 아동의 학대, 방임유기가 지속 될 것인가? 경제 대란 이후 우리나라의 신빈곤층이 확산되고 있 다. 신빈곤층이 증가하는 속도만큼 사회복지 제도의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하루평균 자살자 36명, 정부의 복 지 안전망 수급권자 150여만명에서 제외된 차상위계층 500만이상이 배고픔과 절망, 좌절과 외로움에 서 죽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극단적 상황 앞에 놓여 있다, 절대빈곤과 상대적인 빈곤층의 증가속도는 전 체인구의 12%까지 늘어났지만 정책대안 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초생활보장수급권 가정의 아 동 16만명, 저소득가정 중 학비지원 아동 40만명, 해체가족 96만 가구의 아 동 38만명 등 잠재적인 방임아동의 총수를 90만여명 이상으로 볼 때 빈곤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 로 대두 되고 있다.
실제 빈곤여성과 아동청소년의 문제는 매우 다양한 사회문제를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국가의 사회복지 지원이 충 분하지 못하고 민간의 빈곤가족 지지망이 미흡하여 2004년 들어 아동학대 방임 유기, 청소년 매매춘, 빈곤여성 자 녀 동반자살, 10대 실업여성 동사, 빈곤노인 사망,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지는 사건들이 매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지 만 뾰쪽한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 하면 나를 영접함이며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고 하셨다(마18, 막9). 구약성경 전체에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이들 에 대한 생존권과 복지권 보장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고 신명기 24장, 26장은 더욱 구체 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십일조를 내어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문안에서 먹도록 하여 배부르게 하고 이 명령 을 범하지도 말고 잊지도 말라고 하며 또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간과 능력과 사랑과 물질의 십일조를 반드시 빈곤가족에게 나누어주되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하듯 하고 공동체의 중심에 빈곤가족 과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불러 세우는 일은 곧 복지권 문화권 생존권 교육권 등의 권리를 세우는 일이다. 함께 즐거워하고 사랑으로 섬 기고 봉사하고 나누는 명백한 과제를 하나님은 명령하고 있다. 예수님은 작은자들, 가지지 못한자들, 억눌린자를 데려다가 안으시고 말 씀으로 강조함으로서 이웃사랑의 모델 즉 사회복지 선교방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가가 절대적 빈곤층이나 차상위 계층의 빈곤가 족, 그리고 상대적 빈곤층에 대한 복지대책이 미흡하면 이를 보충하기 위한 민간 지지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민간 중에서도 특히 종교단체 그중에서도 1천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이웃사랑과 하나님의 사랑 을 실천한다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 교회의 인적 물적 영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나누기만 한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 지 않을 것이다. 돈 몇푼으로 구제하기보다 근원적인 기독교 사회복지지원체계를 마련하고 한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일을 교회 가 먼저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강명순 상임이사 / 기독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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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를 놀라게 하는 일이 도처에서 많이도 벌어지고 있다. 각양각색의 일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들을 빈곤으로 양 육할 수 없어서 14층 아파트에서 혹은 강물위에서 던진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대 후반 의 새 엄마는 아이들을 매질하여 죽게 만들고, 재산을 노리거나 원한관계 혹은 다른 이유를 들어 옷이 발가벗긴 채 아이들이 야산 과 콘크리트 수로 안에서 죽임을 당했다. 아동들을 위해서 일 해온지 30년 동안 이처럼 생명을 경시하고 아이들을 참 혹하게 죽이는 요즘 세태는 보지 못했다. 이런 현상들을 정신적 영적 물리적 빈곤의 극심한 한 사회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지 그마 저 의심이 든다.
언제까지 이러한 생명경시와 아동의 학대, 방임유기가 지속 될 것인가? 경제 대란 이후 우리나라의 신빈곤층이 확산되고 있 다. 신빈곤층이 증가하는 속도만큼 사회복지 제도의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하루평균 자살자 36명, 정부의 복 지 안전망 수급권자 150여만명에서 제외된 차상위계층 500만이상이 배고픔과 절망, 좌절과 외로움에 서 죽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극단적 상황 앞에 놓여 있다, 절대빈곤과 상대적인 빈곤층의 증가속도는 전 체인구의 12%까지 늘어났지만 정책대안 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기초생활보장수급권 가정의 아 동 16만명, 저소득가정 중 학비지원 아동 40만명, 해체가족 96만 가구의 아 동 38만명 등 잠재적인 방임아동의 총수를 90만여명 이상으로 볼 때 빈곤문제는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 로 대두 되고 있다.
실제 빈곤여성과 아동청소년의 문제는 매우 다양한 사회문제를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국가의 사회복지 지원이 충 분하지 못하고 민간의 빈곤가족 지지망이 미흡하여 2004년 들어 아동학대 방임 유기, 청소년 매매춘, 빈곤여성 자 녀 동반자살, 10대 실업여성 동사, 빈곤노인 사망,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지는 사건들이 매일 뉴스에 보도되고 있지 만 뾰쪽한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 하면 나를 영접함이며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고 하셨다(마18, 막9). 구약성경 전체에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이들 에 대한 생존권과 복지권 보장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고 신명기 24장, 26장은 더욱 구체 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십일조를 내어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문안에서 먹도록 하여 배부르게 하고 이 명령 을 범하지도 말고 잊지도 말라고 하며 또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간과 능력과 사랑과 물질의 십일조를 반드시 빈곤가족에게 나누어주되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하듯 하고 공동체의 중심에 빈곤가족 과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불러 세우는 일은 곧 복지권 문화권 생존권 교육권 등의 권리를 세우는 일이다. 함께 즐거워하고 사랑으로 섬 기고 봉사하고 나누는 명백한 과제를 하나님은 명령하고 있다. 예수님은 작은자들, 가지지 못한자들, 억눌린자를 데려다가 안으시고 말 씀으로 강조함으로서 이웃사랑의 모델 즉 사회복지 선교방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국가가 절대적 빈곤층이나 차상위 계층의 빈곤가 족, 그리고 상대적 빈곤층에 대한 복지대책이 미흡하면 이를 보충하기 위한 민간 지지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민간 중에서도 특히 종교단체 그중에서도 1천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이웃사랑과 하나님의 사랑 을 실천한다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 교회의 인적 물적 영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나누기만 한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일어나 지 않을 것이다. 돈 몇푼으로 구제하기보다 근원적인 기독교 사회복지지원체계를 마련하고 한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일을 교회 가 먼저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강명순 상임이사 / 기독신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