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 이국진 목사, 필라델피아사랑의교회 담임
한국을 방문했을 때,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한 친구 목사가 내게 책을 한권 선물했다. 차동엽 신부가 쓴 “잊혀진 질문”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삼성의 창업자였던 고 이병철 회장께서 던졌던 여러 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그가 답변의 형식으로 쓴 책이었다.

이스라엘에 솔로몬이라는 왕이 그랬던 것처럼 아마도 그분은 한국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다 누린 사람이었을텐데, 솔로몬이 전도서를 쓰면서 질문을 던졌던 것처럼 여러 가지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답변도 듣지 못한 채 세상을 뜬 것이다.

그가 던진 질문들을 하나씩 살펴보니, 그 질문은 우리들이 평상시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읽어보면, 차동엽 신부는 감칠맛나면서 섣부르지 않은 대답으로 조금 한발짝 뒤로 물러나 같은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차동엽 신부가 제일 먼저 대답한 질문은 왜 인생이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차동엽 신부는 그 이유를 몇 가지 제시했다.

첫째로, 고통은 보호의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춥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그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동사를 면하게 되는 것처럼, 고통 때문에 우리는 조심하게 되고 심각한 손상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고통은 단련의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통해서야만 우리는 영광을 얻을 수 있으며,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고통은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지구 생태계의 보전을 위하여 고통이란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한 것은 고통을 피하려만 하지 말고 그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질문을 던져 보았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친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답을 못했다. 하긴 철학자들도 풀지 못한 인류의 대 숙제 가운데 하나인데, 평범한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그 누가 쉽게 답을 할질 수 있을까?

어떤 친구는 고통에 대하여 쓴 책들을 소개해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그것도 모두 영어로 된 책들을. 고통이 더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겸손해지고, 매일 하나님 잊지 말라구요.”

그렇다. 사실, 실제로 지금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돌을 던져댈 수 있겠지만, 그리고 내가 고통의 한 가운데 있다면 나도 쉽게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몇년 전에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파이퍼(John Piper) 목사님이 쓴 글이 생각이 났다. “당신의 암을 허비하지 마시오.(Don't Waste Your Cancer)” 그 목사님은 암에 걸렸을 때, 그 암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랑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이루어나갈 수단이 되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 하기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병에서 낫는 것만이 자신의 기도의 제목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많이 알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당신이 받는 그 고통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신 선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 이루시고 싶어하는 계획과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견딜 수 없는 심한 고통이 닥쳐와도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장담은 할 수 없지만, 그렇게 고백하고 싶다.

이국진 목사/ 필라델피아사랑의교회 담임, 신학박사(Ph.D. 신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