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한국 교회가 젊은이를 잃으면 앞날에 소망이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런 문제의식마저 없다 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일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청년들의 활동은 살아있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세대의 활동과 비교해 볼 때 뒤 떨어져 있는 편이다. 우리 나라에서도&nbsp70∼80년대 청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교회의 성장 과 때를 같이한다.

젊은이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중간자로 가교역할을 한다. 그들은 곧 미래를 이끌어갈 주도 세력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중요한 위치로 주목받는 것이다. 

그들은 민감하고 감수성도 예민하다. 그래서 종교적인 문제에 쉽게 젖어들기도 하지만 또 한번 상처를 입으면 회복되기 어려 운 점도 있다. 젊음은 무엇인가를 위해 목숨까지라도 바칠 가치를 찾았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가능성의 계절이기도 하다. 사람은 대 부분 나이가 들고 삶의 역경을 거치면서 스스로 한계를 체득하게 될 때 절대자를 찾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 품에 돌아오 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한국 교회가 젊은이들의 이상과 꿈을 실현시키고 그들의 가능성을 교회로 끌어 나오게 할 수 있 는 방법은 없는가? 

일단 청년학생운동이 활성화되려면 먼저 기성세대가 살아야 한다. 젊은이들은 생각보다 순수하고 탐색적이다. 인생을 어떻게 무엇 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 알고자 한다. 기성세대를 통해 성경 안에 인물처럼 몸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누군가를 닮고 싶어한다. 구 체적으로 ‘누구처럼’ 살고 싶어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런 ‘누군가’를 찾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교회청년들은 나이든 사람 들이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병들지 않았다. 그들은 기성세대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한다. 기성세대의 가능성이 없으면 그들은 더 실망 할 수도 있다. 교회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회 기성세대들은 모두 젊은 세대를 거쳐왔다. 젊은이들은 그들에게서 정직한 것이 무엇인지 이론적인 지식보다는 정직하게 살아 가는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다. 그들은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정직과 신자가 갖는 정직함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고 싶어한다. 믿음으로 구 원받는다는 교리보다는 예수님 믿고 구원받은 자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제직이 일상생활에서 금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며 사는지를 보고 싶어한다. 예수님의 모습이 반사되 는 롤 모델을 원한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오늘 날 교회 안에 그런 모범을 보여줄 만한 모델이 그리 많지않다. 윗물부터 맑아지는 것 이 청년운동 살리는 방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성경적인 삶의 의미설정이 있어야 한다. 산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자기 소원을 이루려 는 목적지향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계획한 일을 이루려는 목적지향성 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본래 아담의 후예인 인간은 누구나 다 바벨탑을 완성하려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인격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시 기인 청년학생시절에는 소위 ‘성공’이 무엇을 뜻하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과 성경에서 가르치는 성공이 무엇이 다른지를 구분 할 수 있는 가치관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하나님 앞에 득죄치 않으려고 유혹을 뿌리친 요셉이 이 일로 감옥에 투옥되었 는데 성경에서는 이 사실을 ‘성공’(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형통’이라고 번역)으로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젊은 시절부터 스스로 설정해 놓은 소원(목적)만이 이루어지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세속적 성공증상’에 빠져 버린다면 한 국 교회는 물론 우리 나라 앞날에도 불행한 일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 마저 ‘많고 큰 것만이 성공’이라는 세속 사상이 흐른다면 청 년학생운동이 수적으로 왕성하다 하더라도 교회의 성경적 기능수행에는 위험신호가 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오늘의 청년은 어제의 유치부, 유년부, 중고등부였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시절은 청년기를 위한 준비 기간이 다.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시간들인 것이다. 바른 인생관과 합리적 사고력을 키워주고 믿음안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 야 한다. 청년들의 활동을 살리는 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림택권 총장 / 기독신문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