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독서   
백금산 목사 (예수가족교회) 

설교가 목회의 전부는 아니다. 목회는 설교 이상의 종합적인 것이다. 그러나 설교는 분명 목회의 중심이다. 설교는 목회자에 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인 동시에 가장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설교를 통해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숙되는 것 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으며, 설교 준비를 소홀히 하여 소위 ‘설교에 죽을 쑤었다’고 생각되는 날보다 더 고통스러 운 날이 어디 있겠는가?&nbsp17세기 영국에서 가장 학력이 화려했던 ‘청교도의 황태자’ 존 오웬이 학교 문턱에도 가 본 적이 없는 땜쟁이 출신 청교도 존 번연에 대해 찰스&nbsp2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의 모든 학식과 번연 의 설교를 기꺼이 바꿀 용의가 있습니다.” 좋은 설교자, 영향력 있는 설교자가 되고 싶다는 소원은 아마도 모든 목회자의 공통된 소 원일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목사의 평생 숙제인 ‘좋은 설교를 하고 싶은 소원’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이룰 수가 있을까? 우선 설교가 ‘설 교 내용’과 ‘설교 전달’의 양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과 전달의 양면을 기준으로 설교를 분 석하면 모든 설교를 다음의&nbsp4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내용도 좋고 전달도 좋은 설교, 둘째, 내용 은 좋은데 전달은 나쁜 설교, 셋째, 내용은 나쁜데 전달은 좋은 설교, 넷째, 내용도 나쁘고 전달도 나쁜 설교가 있다. 웨일즈 의 한 노 설교자가 어느 집회에 참석했다가 두 명의 설교자가 하는 설교를 듣고 첫 번째 설교에 대해서는 ‘빛만 있지 열은 없군’이 라고 평가하고, 두 번째 설교에 대해서는 ‘열만 있지 빛은 없군’이라는 평가를 했다. 이처럼 우리는 설교의 양대 요소인 빛(내용) 과 열(전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탁월한 설교자와 평범한 설교자, 좋은 설교와 빈약한 설교를 구별할 수 있으며, 나의 설 교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nbsp19세기 스펄전 목사님과&nbsp20세기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교회사의 가장 위대 한 설교자로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설교의 내용과 전달 양면에 있어서 교회사 최고의 탁월한 설교자들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도 이 두 사람 모두 신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스펄전은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로이드 존스는 의학박사 출신이기는 했지만 역시 신학 교를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신학공부도 하지 않은 그들이 어떻게 교회사 최고의 명설교자들이 되었을까? 이들의 설교 전달 능력 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과 체험, 성령의 부어주심을 경험함으로부터 나왔지만 이들의 깊이 있고 풍성한 설교 내용의 비결 은 독서에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당대 최고의 독서가들이었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당대 최고의 신학자 못지 않은 성경과 신학 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고, 풍성한 설교 내용을 가진 설교자가 되었다. 그렇다. 깊이 있는 성경 연구를 포함하는 폭넓은 독 서 외에 내 설교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독서를 게을리 하면서도 좋은 설교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서 물고기를 구하는 어리석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