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투쟁   

요즘 도대체 이 나라 정치판을 어찌 바꿀 건가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점도 다양하니 쉽게 답할 수도 없습니다만, 몇 가지 관점부터 정리해 보는 게 순서일 듯 싶습니다.

우선 부패와 위선의 정치가 어떤 구조에서 시작되어 예까지 왔는지 살펴보고 관련 법이나 구조를 정비해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방 법이 있을 겁니다. 선거관련법, 정당관련법, 정치자금법 등을 정비해 정당정치를 통제 가능한 틀 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것이지요.

둘째로는 해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가능합니다. 기존 정치권의 그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규칙과 방법만 바꿔서 뭘 어쩌 겠냐는 겁니다.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허물어야 한다는 거죠. 요즘 같아서는 검찰 수사와 청문회를 주야장창 하면서 엄격 히 법을 적용해 비리 정치인을 죄다 감옥에 보내버리면, 남는 사람도 몇 없을 거고 혁명까지 안가도 가능하겠습디다. 그게 어려우 면 선거에서 기존에 나서지 않았던 새 사람들을 대거 뽑아 국회로 보내는 방식이라도 써야 합니다.

또 정치의 주술과 환상으로부터 국민과 정부가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복리와 생활에 초점을 맞추 는 생활 정치와 지방정치가 살아야 하고 지금과 같은 거대한 중앙집권적 정치는 과감히 축소시켜 작은 유리 상자에 가둬 놓고 그 안에 서 죽든 살든 썩든 해야지 온 국민이 정치만을 바라보며 울고 웃고 목매어 산다는 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우리는 세계화란 전 지구적 흐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세계화의 특징 중 하나는 권력의 이동입니다. ‘힘‘이 군사(武力)에 서 경제로 옮겨가는 것이고, 특히 금융으로 즉 ’돈‘의 권세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군대를 무장시켜 보내는 건 어렵고 복잡하지만 돈 은 그렇지 않습니다. 더구나 정보통신수단이 발달해 전 세계 어디서나 주문과 결재가 자유로워진 오늘날에는 돈이 국경과 규제를 넘 어 세상 어디든 유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nbsp97년의 환란이 그것이지요. 결국 권력인 금융이 국가와 정부의 통 제를 벗어나 있다는 의미이고 이런 시대에 정치와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소극적인 것들입니다.

대통령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청와대 비서진 뽑는 것 정도고 정치는 인스턴트 대책 밖에는 내놓을 게 없습니다. 노무 현 대통령이 뭐도 해놓고 뭐도 해놓겠다고 하지만 다 허울 좋은 큰 소리에 불과합니다. 박정희 시절에는 경제개발&nbsp5개 년 계획도 나오더니… 전두환 시절에는 잘 나갔는데… 이렇게 지나간 날의 기억을 더듬기도 하지만 그 시절이어서 가능한 거지 요즘 세 상에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국민의 눈이 중앙정치에서 자기 주변의 삶과 지역사회로 돌아오고 멀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몇 가지 관점들을 살폈습니다만, 정치개혁은 이런 관점들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여러 관점이 자유롭게 토의되고 수용됨으로 써 종합적인 방안이 추진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당도 정부도 이런 논의의 장들을 교묘하게 피해가고 국민을 그저 선거의 열 기 속으로만 몰고 갑니다.

선거가 다가옵니다. ‘권력에 대한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저 인간들이 국회에서 정치판에 서 어떤 일을 저질렀던가’에 대해, 또 ‘내가 저 인간을 국회로 보낸 걸 얼마나 후회했던가’에 대한 아픈 기억이 선거 때 살아나 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나라 정치를 또 한 번 죽이게 될 것입니다. 

변상욱&nbspCBS 부산방송본부 총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