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제 

양승훈 기독교 세계관 대학 원장.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nbspoblige)란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 무, 즉 "귀족들의 의무"(Obligation&nbspof&nbspthe&nbspnoble)를 말한다. 이것 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서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가진 개념이다.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가졌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사회 고위층의 공공봉 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귀 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다. 한 예로 카르타고의 한니발(Hannibal,&nbspBC247- BC183)이 로마에 대항하여&nbspBC&nbsp219년부터 벌인&nbsp16년간의 제2차 포에니 전 쟁 중 로마의 최고 지도자인 집정관(Consul)의 전사자 수만 해도&nbsp13명에 이르렀다. 

집정관이라면 로마 공화정(共和政) 시대의 행정 및 군사의 최고 지도자였다. 공화정 말기에는 문무(文武) 지상권(至上權) 을 가지고 속주(屬州)를 통치하였으며 그 권한은 거의 무제한이었다. 이러한 집정관이 죽음이 기다리는 전장의 전면에 나선다는 것 은 요즘 상식으로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비록 영화 속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nbsp1959년, 윌리엄 와일러가 감독 한 (루 월리스 원작) <벤허>(Ben&nbspHur)에도 비슷한 얘기가 등장한다. 벤허는 자신이 노예로 타 고 있는 선단이 적선의 습격을 받아 집정관이자 사령관인 아리우스가 바다에 떨어져 죽기 일보직전에 처했을 때 구해 주었다. 이 일 로 인해 벤허는 자유인이 되었고 급기야 그의 양자로 입적되기에 이르렀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고대 로마의 최고 기관인 원로원(元老院,&nbspSenatus) 의원들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입 법, 자문 등의 국정활동과 집정관 선출 등의 활동을 한 원로원은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가 설치하였으며 공화정 때는 그 권위가 매 우 높아져서 국정운영의 실질적인 중심기관이 되었고, 원로원 결의는 법률과 똑같은 효력을 가졌다. 그런데 로마 건국 이 후&nbsp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nbsp15분의&nbsp1로 급격히 줄어들었 다. 그 이유는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로마는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정(帝政) 이후 권력이 황 제에게 집중되고 귀족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지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은 퇴색하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권력과 특권을 향유하는 데 만 급급하였을 뿐, 자신들의 사회적 의무와 솔선수범은 소홀히 하였다. 이로 인해 사회적 발전의 역동성이 급속히 쇠퇴한 것으로 역사 학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비단 로마인들의 덕목만은 아니었다. 근대와 현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귀족들의 도덕의식은 사회 계층간 대 립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겨졌다. 특히 전쟁과 같은 총체적 국난을 맞이하게 되면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적 역량을 극대 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기득권층의 솔선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전쟁사의 미스터리라고 말하는 워털루전투(Battle&nbspof&nbspWaterloo)도 결국 노블리스 오 블리제로 설명할 수 있다.&nbsp1815년&nbsp6월, 나폴레옹&nbsp1세의 지배를 결정적으로 종식시 킨 이 전쟁에서 나폴레옹은&nbsp125,000여 명의 프랑스군을 이끌고 웰링턴 (Arthur&nbspWellesley&nbspWellington,&nbsp1769-1852) 지휘하의 영국 군&nbsp95,000여 명, 블뤼허가 지휘한 프로이센군&nbsp12만여 명 등 도합&nbsp20여만 명 의 연합군과 벨기에 남동쪽 위털루 남방 교외에서 대전하였다.&nbsp6월&nbsp16일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군을 격파 하였으며, 사기가 충천한 프랑스군은&nbsp18일 영국군에게 총 공격을 개시하였다. 비록&nbsp4만여 명의 프로이 센군의 지원이 있기는 했지만 사기나 병사들의 전투 경험으로 미루어(많은 영국 병사들은 인근에서 급하게 모집한 자원병들이었다) 영국 군이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nbsp4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 대패하였다(영 국군과 프로이센군의 전사자도 각각&nbsp15,000여명,&nbsp7,000여명에 이르렀지만). 이 전투에서 패 한 나풀레옹은&nbsp6월&nbsp22일, 돌아오지 못할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영구히 유배되었다. 

그러면 객관적 전력이 열세였던 영국군이 승리한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은 전사자들의 신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 다. 프랑스군 전사자들 중에는 주로 하층민들이 많았고, 영국군 전사자들 중에는 이튼칼리지 (Eton&nbspCollege) 출신들을 비롯하여 많은 귀족 자제들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nbsp1440년 헨 리&nbsp6세에 의하여 창설된 이튼칼리지는 주로 상류 부유층 자제가 입학하며,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이나 사관학교 등 으로 진학하여 영국의 지도자가 되는 일종의 “귀족 양성 학교”였다. 그런데 이 학교 출신들, 즉 귀족들의 자제들이 전투에 앞장 을 서자 서민 출신 군인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하게 싸워 이긴 것이다. 

이런 영국의 전통은 현대에 와서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제&nbsp1,&nbsp2차 세계대전 중에 이튼칼리 지 출신들의 전사자들이 무려&nbsp2,000여명에 달했다는 것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한&nbsp1982년&nbsp4월&nbsp2일, 아르헨티나의 무력 점령으로 시작된 포클랜드 전쟁 (Falkland&nbspIslands&nbspWar) 때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 앤드루 왕자가 참전한 것도 노블리 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nbsp75일간 지속된 이 치열한 전쟁으로 영국군은&nbsp452명, 아르헨티 나군은&nbsp630명의 사상자를 냈는데 이런 위험한 전장에 여왕의 아들이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한 것이다. 이들은 귀족으 로서의 특권을 이용하여 병역을 기피하기보다, 도리어 최전방에 나가 죽음으로 나라를 지킴으로 나라를 지키고 자신들의 리더십을 지켰 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nbsp6·25 전쟁 때에도 많이 볼 수 있었다.&nbsp6.25 전쟁에는 미군 장성 의 아들들이 무려&nbsp142명이나 참전해서&nbsp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 중에서 당 시 미&nbsp8군 사령관 밴플리트 (James&nbspAward&nbspVan&nbspFleet,&nbsp1892-1992) 장군의 아 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다. 후에 미국 대통령(1953-1961재임)이 된 아이젠하워 (Eisenhower,&nbspDwight&nbspDavid,&nbsp1890-1969) 장군의 아들도 육 군 소령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중국에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볼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nbsp1893-1976) 주석 은&nbsp6·25전쟁에 자기 아들을 참전시켰다. 그리고 그 아들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전사했다. 마오쩌둥은 아들이 전사했 다는 소식을 듣자 아들의 시신 수습을 하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했다. 주석의 아들이니 그 시체를 찾기 위해 많은 병사들이 희생될 것 을 알고 내린 지시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노블리스 오블리제 인해 마오쩌둥은&nbsp10억의 중국을 이끌 수 있었 다. 

역사를 돌아볼 때 큰 영향력을 미쳤던 지도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지위에 걸 맞는 희생과 봉사를 한 것을 볼 수 있 다. 한 나라나 단체에서 지도자들의 리더십은 결국 존경심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존경심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희생과 봉사로부터 생 긴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존경받지 못하는 지도자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자들에게는 보통 사람들보다 도 더 엄격한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이 없는 사회는 마치 윤활유가 없이 돌아가는 기계와 같 이 온갖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존경이 없는 사회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짐승들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지도자들의 도덕적 수준이 낮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도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 신과 배신감은 정말 심각하다. 정치, 경제, 종교 등 각 분야의 지도자들의 비리가 날마다 보도된다. 누가 얼마를 먹었다는 얘기 가 날마다 보도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보기관에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두들겨 맞는다고 “억, 억”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요즘 은 돈 떼먹는 소리가 “억, 억”하고 들린다. 자녀들의 병역 기피를 위해 뇌물수수, 위장이민, 원정출산 등 온갖 편법, 탈법이 동 원된다. 교단의 총회장이 되기 위해 몇 억, 몇 십억을 뿌렸다는 얘기도 들리고, 목회 세습으로 인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없는 사람들이 지도자의 위치에 있게 되면 그 단체 혹은 사회는 시끄러워진다. 

그러면 도대체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것은 원래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이를 몸소 실천 하신 대표적인 분이시다. 그 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죄인들을 위해 친히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들을 향한 하나 님의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 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6-8). 예수님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되었고,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가지 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 느니라”(요12:24)는 예수님의 말씀은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모토인 것이 다. 

 
자료 제공 : 인터넷직장선교회(icc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