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의 차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떤 자리에 앉히실지, 

혹은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 하실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고귀한 신분으로 우리를 요구하실 수도 있고, 

낮은 신분으로 요구하실 수도 있습니다. 

있는 자로 부를 수도 있고, 없는 자로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결코 우리의 게으름에 관한 싸움이 아닙니다. 

 
성실해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저 사람은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하고, 

저 사람은 대접을 받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하는 우리의 시각은
 
하나님의 시각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모든 기준들 중에서 

우리로 하여금 가장 못참게 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하지 않은데 

내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자의 가장 큰 특권과 평안이 어디서부터 오느냐하면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고통받기를 원하신다면 

나는 기쁘게 받으리라' 이런 태도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초대교회에서 베드로와 몇몇 사도들의 

그들이 받았던 일에 대한 반응입니다. 

예수의 도를 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도 전했더니 그들을 잡아다가 가두고 때립니다. 


그러나 그들은 석방될 때에 오히려 기뻐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불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런 것은 아무에게나 시키지 않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 없으면 예수를 못믿을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런 시련을 주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야만 예수를 간신히 붙잡게 되거든요. 

이렇게 삶에 대한 안목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전 생애는 가진 것 때문에 자랑스럽거나 

가지지 못한 것으로 인해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나를 부르신 부름 속에서 

다 필요한 것으로 알고 항복하는 만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강해'/ 박영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