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똑똑, 헛 똑똑   
심욱섭 목사(해운대제일교회) 

오래 전의 일이다. 등록한지 얼마 안되는 새가족 한 사람이 출석을 하지 않아 연락을 했더니 더 이상 교회에 나가기 싫다 는 것이다. 이유인즉 등록한 후에 여러번 권면을 받아 전도회에 참석을 했다. 그런데 전도회 회원 중 한 사람이 재정문제에 대하 여 회계에게 꼬치꼬치 따지는데, 정도가 너무 심해서 모임의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새가족이 생각하기를 ‘나는 교회 가 사랑이 많은 줄 알고 등록을 했는데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판단하고 몰아세울 수 있는가?’ 실망을 하고는 교회에 더 이상 나오 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회계를 향하여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지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똑똑 했다는 것이다. 목회 현장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성도들 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는 ‘지나친 똑똑’이 다. 똑똑한 것은 좋지만 지나치면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나친 똑똑은 헛 똑똑이다. 아무리 내가 옳고 그름을 분 별하고 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해도, 그것이 형제를 세우는 것보다 우선할 수 없다. 너무 법 좋아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다가 주 님께서 피로 사신 형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셨다면 지금 우리 중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부족해도, 실수가 있 음에도,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그저 긍휼하심으로 참아주시고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만한 것이다. 그런데 자신 은 그러한 은혜를 받고 다른 사람의 실수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이다. 

고린도교회가 우상의 제물 문제로 다툼을 벌일 때에 바울 사도께서 다음과 같이 권면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 가 다 지식이 있는 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 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고전8:1-2)”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 양심상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 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의 양심도 제한이 있다. 덕을 세우는 양심이어야 한다. 덕이 되지 않는 양심은 아무리 옳다 고 하여도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데 자유했지만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 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지식도 중요하지만 사랑은 더 중요하다. 옳고 그름도 중요하지만 형제를 구원하고 세우는 것은 더 중요하다. 지나치게 똑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