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얼굴’   

사회는 여러 가지 얼굴들이 있다. 종교의 얼굴이 있고 직종의 얼굴이 있다. 다양한 기업의 얼굴이 드러나고 있고, 여러 공 공 기관의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단일 민족으로 살아온 한국 민족은 사람들마다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 서 자기 얼굴이 어떻게 사회 속에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얼굴은 그 본체를 나타내 준다. 그러기에 얼굴을 봄으로써 그 실체를 알게 된다. 그 얼굴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드러난 얼굴로서 사회적 평가를 파악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얼굴로 나타났고 나고 있을까? 기독교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최우선으로 붙잡아야 할 것 은 그 무엇보다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지키는 것을 통해 사회 속에 자기 얼굴을 드러내 기 마련이다. 

한국 초기 기독교의 얼굴은 민족을 위한 저항의식과 독립정신를 고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민족에게 신사 를 만들어 놓고 참배하라고 강요했다. 일부 신사참배를 한 기독교 인사들도 있었지만 적지 않은 교계 지도자들은 우상숭배로 규정하 고 참배를 거부했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일제가 강요하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이 일제에 대한 반침략을 비판하고 독립정신 을 일깨우는 민족운동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 되었다. 이때 기독교의 얼굴은 사회 속에 민족 앞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독교의 얼굴은 일본 패망 이후&nbsp6·25 전쟁과 근대화 및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 을까? 이 과정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지키기 차원에서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 행동의 결과 이 사회 속에 드러난 기독교의 얼 굴은 어떤지 알아보고 그 나타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에 무감각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역사적 심판을 통해 부 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믿음 지키기를 하는 가운데 한국 현대사 속에서 나타난 기독교 얼굴은 어떤 것이든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몫이다. 기독교 의 얼굴은 역사적 경험과 함께 형성되기 마련이다. 공산주의 치하에 겪은 경험이 하나님의 보호를 구한 것, 근대화 과정에서 잘 살 고 싶은 욕구가 하나님의 축복을 구한 것, 군부 독재 정권 하에서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현실적 처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구 한 것 등이 이 사회 속에 기독교의 얼굴로 나타나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전개될 민족 통일과 세계 평화 그리고 문명의 전 환 속에서 경험해야 할 것들로 인해 기독교의 얼굴이 형성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믿음 지키기를 위한 기독교의 행동으로 인해 사회 속에 드러나는 얼굴이 민족과 사회를 위한 것으로 나타나지 않 고 반민족적이고 반사회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는지를 점검하고 새 시대 속에 감당해야 할 기독교의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원용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