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과 야망   
최창훈 목사(익산 고현교회) 

비전과 야망, 비슷한 말 같지만 전혀 다른 뜻을 가진다. 모두 미래를 지향하는 언어이지만 그 동기는 전혀 다르다.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만 야망은 사람의 욕망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자신의 야망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등장하곤 한다.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세 워달라고 하나님께 조른 적이 있다. 결국 제비뽑기를 통하여 초대 왕으로 기름 부은 사람은 외모와는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울이 었다. 그러나 사울은 오래가지 않아 왕다운 면모를 잃어버리고 만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요”라는 백성들의 외치는 소리 를 듣는 순간 그만 시기심에 사로잡히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왕이라는 청지기적 직분이 이제 는 자신이 지켜내야 할 소유의 자리로 바뀌게 된다. 내 자리를 넘보는 어떤 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야망이 백성을 잘 섬기고 나라 를 통치하라는 순수한 비전을 마침내 삼켜버리게 된 것이다. 비전의 도구로 주신 왕의 직분을 개인의 야망을 이루는 자리로 전락시 킨 사울을 향하여 하나님은 냉정하게 “내가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광야의 사람, 세례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라는 사명을 맡은 자였다. 그에게는 오실 주님 을 선포하는 소망과 꿈이 있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면서 세례를 베풀던 세례요한을 보고 그의 제자들은 야망을 품기 시작했 다. 예수님보다 요한이 더 유명해지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러한 유혹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 는 망하여야 하리라” 이것이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세례요한의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받은 말씀, 주의 길을 예비 하라는 소중한 비전을 값싼 야망과 거래하지 않았다. 광야에서 홀로 있을 때 주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그의 가슴에 언제나 울리고 있었 기 때문이다. 

비전과 야망은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비전이라고 주장하지만 속 내용은 야망일 수도 있다. 비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성취해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처음 주셨던 부르심의 동기를 상실하는 순간 우리가 말하고 있는 비전 은 야망으로 전락해 버리기 쉽다. 

이제 한 해를 결산하는&nbsp12월이다. 올 한해를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게 보내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비전을 소유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야망을 소유하고 있는가?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