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변화인가   
정연철 목사(양산삼양교회) 

아무 희망이 없을 것 같은 허허벌판 중국 섬서성 곡강(曲江)지구가&nbsp3년 만에 대단위 관광 개발지구로 변화했습니다. 투자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지역에&nbsp5천만 달러에 가까운 외자가 유치되었습니다.

제국의 압제로 절망 속에 빠져있던 포로 된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이&nbsp3년간에 걸친 큰 변혁을 맞이했습니다. 그다지 시선을 끌지 못한 예루살렘 거리가&nbsp5천의 무리들로 벅적거렸습니다.

주로 고가로 만들어진 순환선은 일반도로 가운데를 달리고 있고 일반도로엔 트롤리버스, 일반시내버스, 오토바이, 자전거, 차 를 기다리거나 보행하는 시민들이 섞여있습니다. 폐차 직전의 택시와 최신형&nbspBMW가 함께 달리고 낡은 가옥들 가운 데 현대식 고층 건물이 즐비합니다.

여러 곳에서 신기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뜨는가 하면,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 산 사람들 과 같이 뜁니다. 무장한 로마 병정들에 호위된 유대 총독과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는 백성들에 호위된 '유대인의 왕 '이 같은 지역을 호령합니다.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물이 공급되지 않고, 새 건물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말썽입니다.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중간에 정지해 버리고, 배수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아 비만 오면 새 동네가 침수되어 물바다로 변해 버립니다.

갑자기 일이 이상하게 전개됩니다.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는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뚜렷한 핵심조직도 없고, 잘나가던 분위기가 어느 순간 엉뚱한 곳으로 흘러갑니다. 왕이 될 줄 알았던 분이 십자가 운운합니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에 입주율은&nbsp30%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준비가 덜 된 곳에 이사한 사람들은 황량 한 곳에서 두려움에 떱니다. 대부분의 건물은 몇몇 부자들의 치부 수단으로 이용되고, 소시민들은 오히려 살 공간이 줄어듭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 속에 주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문 형편입니다. 모두들 어떻게 되나 두고보자는 심산입니 다. 대다수의 군중들은 이미 권력가들 무리에 포섭된 듯 합니다. 제자들은 운신의 폭이 점점 줄어들어 도망가기에 이릅니다.

영국의 한 학자는 우리가 '질주(疾走)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지난&nbsp100년간이 인류가 걸어온 수만 년의 역사에서 이룬 변화보다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마찬가지로 앞으 로&nbsp5~10년간은 지난&nbsp100년간의 변화보다도 더 급격한 변혁을 가져올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세상 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성도들과 교회도 변화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많은 교회에서 새로운 계획으로 변화를 추구 할 것입니다.

나라를 이루는 요소는 국민, 영토, 주권입니다.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 내용처럼 한 나라는 ‘국민’을 위해 변화해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를 이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모든 계획과 변화의 시도는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겠습니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