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나?”   


어느 나라건 그 나라의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내용과 방법이 있다. 각종 보고서나 통계표를 기준으로 그 국가와 사회의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각종 삶의 모습이나 의식상태를 통계적 수치로써 주기적으로 가름해 내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통계청으로 연결된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의 현실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끄럽고 민망한 우리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띤다고 한다. 

요즘 한편에서는 소유의 욕망과 함께 삶의 질을 ‘웰-빙(well-being)’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을 무력화시키며 탐욕을 부 추기고 있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직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매일 접하는 뉴스 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이토록 치유하기 힘든 질병들로 깊숙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고 그저 놀랄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삶의 현실적 문제만이 아니라 이보다 더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사안에 대하여 생각의 깊이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관심을 가져야할 신앙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영국은 오랫동안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적 제도와 체계를 갖고서 세계를 복음전파의 영역으로 삼고자 했던 위대한 국가였다. 그 런데 그토록 성경 중심의 신앙을 중시하던 영국교회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 여파에 밀려 급격한 인본주의적 세속성 이 젊은이들의 생활을 유린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무너뜨렸다. 

그것은 곧 생활 속에 무차별적으로 침투해 들어와 사회나 가정의 성경중심적 정통성과 삶의 준거(準據)를 상실케 하고 급기 야 교회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불과 얼마 안 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영국의 복음주의는 겨우 국민의&nbsp4% 미 만으로, 그것도 나이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말을 듣고 이러한 모든 것들이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섬뜩한 예감이 들기도 한 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성경중심의 정통 신앙을 보수하고 있는 우리들이 지녀야 만 하는 의식의 준거(準據)는 세상 사람들이 측정하는 행복지수와는 확연히 달라야 할 것이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꼬?’라며 탄식하던 신앙인의 외침이 아쉬운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한국 교회는 정신을 가다듬고 우리가 자리 잡아야 할 터가 무엇이 고, 어디인지를 다시 한번 확고히 해야만 한다. 

우리 교회와 교단이 지닌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은 누가 뭐라고 해도 ‘청교도적 개혁신앙’이다. 오늘의 시대에서 청교도적(淸敎徒的) 개혁신앙(改革信仰)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삶의 질이 제아무리 발달하고 편리해졌다해도 성도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서 승리하는 삶’을 보여주었던 지난날의 신앙적 유산을 다시 획득해야만 한다. 

세속적인 쾌락과 무질서가 안방에까지 흘러들어와 성도들의 가정을 유린하고 있는 오늘의 시대에서 성도의 가정과 삶의 현장 속에 ‘거룩함과 성결함’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들이 다시 살아나도록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배타적 진리관’이니 ‘외고집’이니 하는 외부의 평가가 싫어서, 또는 그러한 ‘오해’를 받을까봐 적절히 주변과 손을 잡 는 오늘의 다원주의적(多元主義的) 흐름 속에서, 복음의 유일성(唯一性)과 배타성을 진실과 사랑과 희생으로서 전하는 가운데 청교도들 이 가졌던 순수한 복음의 열정과 진지함을 다시 새롭게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사단과 마귀가 그 어두운 힘을 발하는 이 시 대에 성령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그의 나라를 확장하고자 자신을 헌신하며 ‘불굴의 순교자적 모습’으로 선교적 사명을 이루어갔던 청교도 들의 믿음을 새롭게 회복시키는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지나간 시대의 위대한 유산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청교도적 개혁신앙’의 모습을 되새기면서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김성길 목사 /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