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사람의 혀는 작지만 그 역할은 자신과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바다에 항해하는 거대한 배 가 작은 키에 의하여 방향이 조정되는 것이다. 작은 혀지만 다섯자의 몸을 죽일 수도 있고 사릴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사 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 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하였다(사&nbsp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하는 말을 직역하 면 나에게 화로다 왜냐하면 나는 끝장났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이렇게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호와의 완전 무결하신 거룩과 영 광 앞에서 그 자신의 죄인 됨과 그 백성의 죄악 됨을 깊이 깨우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악을 삼키는 불과 같아서(사&nbsp33:14) 부패한 인간이 그 앞에 설 수 없으며 따라 서 하나님을 본 자는 그 누구도 살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출&nbsp33:20 삿&nbsp13:22). 환 상 가운데 여호와를 목도한 선지자는 실제로는 죽지 않았지만 의식 속에서는 자기가 벌써 죽은 것처럼 느꼈다.

 선지자는 자신의 죄 가운데 특별히 부정한 입술을 지목해서 말한다. 이는 첫째로 정결한 입술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스랍들 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을 대조할 때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마음으로 범죄 한 것이 입으로 표출된다는 점에서 (마&nbsp15:11) 부정한 입술이 모든 죄악을 총체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었다(약&nbsp3:2). 입술이 부정 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선지자는 백성의 죄악에 대하여 깊은 연대 의식 및 책임 의식을 느꼈다(사&nbsp29:13). 

 선지자는 자신을 비롯해서 백성들이 입술로 지은 죄에 대한 큰 책임과 후회와 결과는 죽어 마땅하다는 중죄인임을 고백하고 하 나님의 어떤 처분도 달게 받겠다는 참혹한 심정에서 하는 말이다. 이사야 같은 선지자도 이와 같이 탄식을 하며 입으로 지은 죄를 고 백하고 있는데 오늘의 목회자들은 입으로 인하여 지은 죄가 이만 저만이 아닌데도 이사야 같이 탄식하는 것은 모습은 보기 힘든다.

 성도는 어디에서라도 예는 예고 아니는 아니오 라고 해야하는데 아닌 것도 예로 예도 아니오 라고 하니 입술로 짓는 죄가 적 지 않다는 것이다. 입술로는 주님을 존경하지만 마음은 주님과 거리가 먼 이중적인 생활은 주님께도 큰 죄를 짓는 것이다. 목사의 어 려움은 설교가 아니고 설교한 것만큼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고 죄스러운 일이다. 물론 기능적인 면에서야 주의 도구 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포괄적으로 전하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지 아니한가?(롬&nbsp2:20-24) 주님은 말씀하시기 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하였다 (마&nbsp23:3). 이 구절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율법의 교훈들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준 다. 즉 예수께서 힐책(詰責)하신 것은 단지 가르침과 행함이 일치하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의 이율 배반적(二率背反的)인 삶의 태도였 을 뿐이다. 사실 그들이 가르치는 바 율법 그 자체는 그들의 실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참된 진리요 신앙인의 실천 강령이어야 했던 것 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께서는 행하고 지키라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을 빌어 강력한 어조로 그들의 가르침을 준수하라고 명하셨 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인간이 마땅히 습관처럼 지켜야만 될 절대적인 진리임을 천명(闡明)하셨다. 실로 참 진리는 어떤 구 조적 모순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빛을 발하며 모든 인간의 삶을 인도하는 등불이 된다(시&nbsp119:105). 그러 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였다.
 이 정도의 수준의 목회자 되어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행위가 없으면 교인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되어 있고 심하면 허점 이 노출되어 끝내는 배척을 받고 마는 것이다. 반대로 설교는 잘못해도 생활이 본 되고 그 행위의 열매를 보는 사람들은 설교 약 간 못해도 문제삼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로 설득하면 반항하지만 행동으로 설득하면 굴복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들은 아부하는 말은 하기가 쉬워서 세 치의 혀를 가볍게 놀리지만 정말 쓴 소리는 자기 인기관리와 직결되 고 장래 자기의 욕구를 채우는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어 결과에 반영되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치사하고 간사한 입술로 짓는 죄는 적 지 않다. 말은 달변가가 되어 잘하는 것보다 진실이 포함된 참된 말을 하는 한 마디의 말이 더 중요하다. 

 악인을 의롭다고 하고 의인을 악하다하는 자는 죄를 짓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악인은 악한 사람이라고 하고 의인은 의로 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좋아하시는 일이다. 악의 편에 서서 악인을 두둔하는 입술은 죄를 짓는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 고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적지 않다. 자기의 신변보호를 위하여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했으며 남을 모함하고 비방하며 수군 거리고 저주했는지 그러고도 어찌 죄가 없다하리요 이는 말도 아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서 저자는 기록하기를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하였다 (약&nbsp3:1-13).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목회자들도 입으로 지은 죄는 적지 않음을 시인하고 시편 저자처럼 내 입술 에 파수 군을 세워 달라고 기도하고 혀가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말로 너무나도 많은 죄를 지어 나여 망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윤근